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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Apr 06. 2021

[7]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책임의 충돌

오페라 '노르마' '트리스탄과 이졸데'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나 자신만이 아닌 타인과 사회에 대한 배려와 책임에 있다. 비록 그것이 개인의 욕망과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더라도 인간이기에 이를 고뇌하고 해결하려고 한다. 때로는 개인의 이익을 희생하면서도 인간이기에 이를 받아들이고 극복하려고 한다.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는 여주인공 노르마의 호소력있는 아리아로 유명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적대적 관계에 있는 두 남녀의 비밀스런 연애와 갈등, 그와 병행하는 사회적 역할과 제한,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루고 있다.   

대사제 노르마와 로마 정복군의 총독 폴리오네는 비밀스런 연애를 지속하며 둘 사이에 두 명의 자녀까지 두고 있다. 하지만 폴리오네는 젊은 여사제 아달기사를 흠모하며 그녀에게 자신과 함께 로마로 가자고 설득한다. 노르마는 이러한 사실은 모른 채 오로지 곧 로마로 돌아가는 폴리오네가 자신과 두 자녀를 버리고 갈까봐 걱정하고 있다. 

갈리아 시캄비의 왕 오로베소는 자신의 딸이자 대사제인 노르마에게 로마군에 대항할 수 있는 최적기를 알려달라고 한다. 노르마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며 참을성 있게 기다리라고 한다. 자신의 연인 폴리오네에 대한 공격을 차마 진행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노르마의 이러한 복잡한 심경은 평화를 위해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오페라 초반의 아리아를 통해 간절하게 울려퍼진다.

https://youtu.be/g-6JhBYZCrw

폴리오네는 새로운 사랑 아달기사와 로마에 함께 돌아갈 것만 생각할 뿐 노르마와 두 자녀에 대한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아달기사는 사제로서의 자신의 신분과 적군의 총독과의 사랑에 대해 고민과 갈등을 계속하다 열정적인 폴리오네의 사랑 고백에 그만 굴복하고 만다. 

아달기사는 노르마에게 찾아가 사랑을 고백하고 사제로서의 서약을 파기해달라고 부탁한다. 같은 처지에 있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생각하며 아달기사의 부탁을 들어준 노르마는 하지만 아달기사의 상대가 폴리오네라는 사실을 듣고 경악한다. 

절망한 노르마는 아버지가 없이 자라게 될, 심지어 적군의 총독 아버지를 둔 자신의 두 자녀가 앞으로 겪게 될 고난을 생각하며 모두 다 함께 죽어버릴 생각도 하지만 마음을 바꿔 아달기사에게 두 자녀를 부탁하며 폴리오네와 함께 로마에 가서 살 것을 권고한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 Opera) '노르마' 한 장면

하지만 아달기사는 폴리오네가 노르마의 연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와의 사랑을 포기하기로 하고 오히려 폴리오네를 설득해 노르마에게 돌아가도록 하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폴리오네의 마음은 돌아서지 않고 변함이 없다. 배신감에 분노한 노르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적군을 공격하라고 선언한다. 

오르베소는 자신의 성지를 더럽힌 죄로 폴리오네를 잡아 희생물로 삼으려 한다. 노르마는 마지막으로 폴리오네에게 아달기사에 대한 사랑을 버리고 자신에게로 돌아오면 살려주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폴리오네는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으며 아달기사를 희생물로 삼겠다고 하지만 폴리오네는 물러서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희생물로 삼으라고 부탁한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노르마는 적군의 총독과 사랑에 빠져 두 자녀를 낳은 자신이 죄인이며 희생자가 되어야 한다고 고백하고 아버지 오로베소에게 눈물로 두 자녀를 부탁한다. 노르마의 고결함에 감동한 폴리오네는 노르마와 운명을 함께 하기로 결심하고 두 사람은 불 속으로 걸어간다. 

국가라는 집단의 일원으로서, 특히나 집단의 종교적 지도자로서 국가에 대한 책임감을 지닌 대사제 노르마가 개인적인 연정, 그것도 적국 총독과 사랑에 빠진 운명은 참으로 고통스럽고 힘겨운 난제였음에 분명하다. 과연 어떠한 식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좋은지, 과연 어떠한 식으로 끝을 맺을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비극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집단의 책임과 개인의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은 수많은 활동적 제약과 양심적 가책으로 괴로워한다. 집단의 일원인 것이 마음대로 된 것이 아니듯, 사랑 또한 마음대로 되지 않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운명에 빠진 개인은 결국 자신에게 지워진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운명의 힘 앞에 스스로 무릎을 꿇고야 마는 것이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 Opera) '트리스탄과 이졸데' 한 장면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이졸데는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적국의 트리스탄을 치료해준다. 사랑의 감정에 이끌려 행동했지만 이내 사랑과 의무 사이에서 갈등을 유발하고 만다. 더 나아가 이후 두 나라 사이의 평화협정의 조건으로 트리스탄이 이졸데를 삼촌인 왕 마크의 신부로 데려가자 배신과 모욕감을 느끼게 되고, 더불어 트리스탄을 죽이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까지 겹치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은 사랑과 사회적 의무 사이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개인의 고통을 보여준다. 결국 두 사람은 죽음의 묘약을 마시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자 했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사랑의 묘약을 마시는 바람에 모든 사회적 의무를 무시하고 사랑에 빠져드는 내용으로 흘러간다. 

https://youtu.be/qRlStG0NHr8

하지만 바그너는 의무를 저버린 사랑의 추구가 가져오는 결말을 파국으로 끝을 내고야 만다. 두 사람이 사랑의 광란에 빠진 것을 사랑의 묘약 탓으로 돌린 것이나 왕 마크가 자신을 배신한 이졸데에 대한 배신감 보다 자신의 충신 트리스탄이 자신을 배신한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장면, 나중에 두 사람의 사랑이 사랑의 묘약으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두 사람을 용서하기로 하는 것 등은 모두 개인적 사랑 보다 사회적 의무를 높이 두는 바그너의 사상을 담고 있다.

설사 개인의 사랑을 사회의 의무 앞에 둘 정도로 사랑에 빠져있다 하더라도 두 사람의 끝이 결국 비극으로 향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개인과 사회 사이에서의 갈등은 결국 사회의 승리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둘 사이에서 절충을 찾지 못해 사회적 비난에 직면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개인은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또한 사회는 개인에게 당연한 의무를 지우고 개인이 그에서 벗어날 경우 비난과 처벌로 개인을 매장시켜야만 할 것인가. 

차마 저버리지 못하는 사회적 책임 앞에서 개인은 이렇듯 종종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끝을 내곤 한다. 그럼으로써 숭고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지만 개인은 오로지 희생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사회적 책임이나 규율을 저버리거나 개인적 양심이나 절제를 벗어나 욕망에 사로잡힌 개인에게 정녕 용서의 기회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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