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탐구와여정 Apr 07. 2021

[8] 방탕과 사죄와 용서의 작용

오페라 '탄호이저' '삼손과 데릴라' '타이스'

누구에게나 악의 모습이 있고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에 굴복하지만은 않는 것은 악을 넘어서는 양심과 선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스스로의 반성에 의한 것이든, 다른 사람의 안내와 도움으로 인한 것이든 인간은 잘못을 반성하고 용서를 받기 위해 노력하는 아름다운 존재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 Opera) '탄호이저' 한 장면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는 방탕하고 타락한 음유시인 탄호이저의 사죄와 용서의 여정을 그린다. 내용이 도덕적이고 단순한 면이 없지 않지만 나약한 인간의 모습과 이를 뛰어넘는 기적의 순간을 울림이 있게 전달하고 있다. 나약한 인간이기에 자신의 욕망과 구원의 손길 사이에서 방황하고 용서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구원의 희망은 인간의 순수하고 희생적인 사랑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탄호이저는 비너스의 왕국에서 향락과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던 중 인간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한다. 1년이라는 시간동안 충분한 즐거움을 누렸는지 다시 돌아가게 해달라는 탄호이저의 요청에 비너스는 더 큰 즐거움을 약속하지만 탄호이저는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의 희망을 두겠다고 외치며 비너스에게 간청한다. 화가 난 비너스는 탄호이저의 구원에 대한 바람을 저주하며 탄호이저를 보내준다. 

어느새 바르트부르그 성 근처 계곡에 놓여진 탄호이저는 로마로 향하는 순례자들의 행렬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는다. 인간 세계로 돌아온 것을 기뻐하던 그 때 헤르만 백작과 기사들로 이루어진 사냥 무리와 만난다. 탄호이저를 알아본 무리들이 함께 성으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탄호이저는 주저한다. 그 때 기사 중 한 명인 울프람은 백작의 조카 엘리자베스가 탄호이저의 노래에 반해 그에게 품게 된 사랑을 떠올려준다.

무리와 함께 성으로 가기로 한 탄호이저는 성에서 열리는 노래 경연대회에 참석한다. 엘리자베스는 탄호이저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에 들떠있다. 탄호이저가 도착하자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노래 경연대회를 준비한다. 

탄호이저는 그러나 사랑을 주제로 하는 노래에서 여전히 비너스를 기억하면서 세속적 즐거움에 대해 노래하게 되고 이로 인해 백작의 노여움을 사 처형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엘리자베스가 눈물로 간청하여 탄호이저는 가까스로 사죄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로마로 참회의 순례를 떠나 교황의 용서를 받아오면 모든 것을 용서해주기로 한 것이다.

몇 달 동안 탄호이저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간절히 기다리던 엘리자베스는 로마로부터 돌아오는 한 무리의 순례자들을 만나지만 그 중에 탄호이저가 없자 괴로워한다.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의 영혼을 받아달라는 기도를 하며 쓰러진 엘리자베스를 울프람이 도와준다. 

https://youtu.be/HwG5C6IR8sE

밤이 되자 지친 발걸음으로 돌아오는 탄호이저를 발견한 울프람은 그로부터 절망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탄호이저는 순례자들과 함께 참회를 하기 위해 로마의 교황에게 갔지만 교황은 그의 죄를 듣고 교황의 지팡이에 새싹이 나는 것만큼이나 그의 죄는 용서받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탄호이저는 절망한 나머지 비너스에게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하지만 울프람은 엘리자베스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탄호이저의 정신을 붙잡는다. 그 때 엘리자베스의 장례 행렬이 등장하고 탄호이저는 엘리자베스에게 하늘에서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간청한 뒤 쓰러져 죽는다. 새벽이 되자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도착해 자신이 들고 있던 교황의 지팡이에서 꽃이 피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탄호이저는 끊임없이 유혹에 빠지고 육체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갈팡질팡하다가 끝내 절망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주변을 둘러싼 사랑과 우정은 그에게 기회를 여러번 주었지만 그의 어리석음은 그칠 줄 모르고 금방 포기하거나 절망에 빠진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에 대한 믿음을 간직한 엘리자베스의 순결하고 고귀한 사랑과 희생으로 탄호이저는 마침내 용서를 받게 된다. 비록 죽고 나서야 용서를 받았지만 용서와 구원을 향한 그의 여정은 드라마틱하면서도 희망적이다. 

숭고하고 정의로운 여성의 사랑과 용기, 희생에 의한 구원의 가능성은 바그너의 오페라에 종종 등장하는 주제다. 특히 신에 의한 용서와 구원을 다룬 ‘탄호이저’는 단순하지만 강렬한 이야기와 웅장하고 힘있는 음악으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나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한없이 나약하고 반복적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인간이지만 또한 주변의 도움과 정신적 깨우침으로 얼마든지 구원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회와 사죄라는 과정을 통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기적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 Opera) '삼손과 데릴라' 한 장면

인간의 욕망과 타락, 참회와 기적은 생상의 ‘삼손과 데릴라’에서도 나타난다. 이는 전형적인 영웅의 몰락과 마지막 참회 및 사죄로 얻어낸 기적의 결말을 이야기한다. 팔레스틴의 노예로 잡혀 있는 히브리인들을 이끄는 삼손은 고통과 절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히브리인들에게 신을 향한 믿음을 잃지 말라고 용기를 북돋운다. 

히브리인들의 소란을 꾸짖는 팔레스타인 지휘관 아비말렉을 죽이고 삼손은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도망을 친다. 이에 팔레스틴의 대사제는 크게 분노하고 어떻게 해서든 삼손을 잡으리라 다짐한다. 다시 돌아온 삼손은 예전의 연인인 팔레스틴 여인 데릴라의 유혹 앞에 흔들린다. 그녀의 유혹에 빠지면 큰 화가 있을 것이라는 히브리 노인의 경고에도 그날 밤 자신의 집으로 오라는 데릴라에게 빠져버린다.

데릴라는 팔레스틴의 대사제에게 삼손을 무력하게 할 수 있는 비밀을 알아내겠노라고 약속한다. 그러면서도 혹시 삼손이 그날 밤 자신을 찾지 않을까 초조해하고 불안해한다. 자신의 욕정을 어쩌지 못하고 데릴라를 찾은 삼손은 계속해서 욕정과 경고 사이에서 갈등한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욕망을 초반에 완벽히 차단하지 못한 상태에서 갈팡질팡하는 순간 결론은 뻔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방향으로 향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삼손은 어떠한 경고에도 이미 데릴라에게로 향한 마음을 접을 수 없게 된다.

데릴라는 삼손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다면서 힘의 원천이 되는 비밀을 자신에게 털어놓으라고 요구한다. 삼손은 신과의 언약으로 얻은 징표를 말해줄 수 없다고 버티지만 데릴라가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자 그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 만다. 

https://youtu.be/zxY3gYX6mVs

자신의 힘의 원천인 머리칼을 잘린 삼손은 팔레스틴 군인들에게 잡혀가게 되고 눈이 뽑힌 채로 감옥에서 연자매를 돌리는 형벌을 받게 된다. 삼손은 데릴라로부터 당한 배신으로 괴로워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잘못으로 히브리인들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 것에 대해서도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신과의 언약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으로 삼손은 씻을 수 없는 자신의 과오를 자책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힘을 주어 자신과 히브리인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신을 조롱하는 팔레스틴인들에게 복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한다. 

팔레스틴 대사제와 데릴라는 신 다곤의 사원에서 향연을 펼치고 삼손을 불러와 조롱한다. 사원의 중심인 두 기둥 사이에서 모두가 다 볼 수 있도록 신 다곤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명한다. 삼손은 자신에게 힘을 달라고 신에게 기도하고 온 힘을 다해 두 기둥을 무너뜨려 자신과 그곳에 있는 모든 팔레스틴인들을 깔아뭉갠다. 

비록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잘못으로 자신은 물론 민족의 운명까지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그는 참회와 반성을 바탕으로 신에게 호소하여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냈다. 적은 물론 자신에게까지도 죽음을 불러오는 결과였지만 그의 마지막은 통한과 분노에 가득찬 자책과 복수였다. 

자포자기에 빠질 수도 있었지만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간절히 바란 삼손에게 기적은 이루어졌다. 그에게 용서는 이렇듯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잘못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으로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비록 영웅의 몰락이라는 주제로 후세에까지 널리 회자되는 삼손이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영웅의 면모를 드러냈다. 그의 잘못은 씻을 수 없는 과오임에 틀림없지만 그에게도 용서는 찾아온 것이다. 다만 그것이 회한과 자책으로 얼룩져있기에 해피엔딩이라기 보다는 비극에 해당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 Opera) '타이스' 한 장면

완벽한 인간은 없기에 인간은 이렇듯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끝도 없이 추락하여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아도 기적처럼 일어선 삼손이 있다면 쾌락만을 추구하며 절대로 구원받지 못할 것 같던 여인이 성결하게 되는 믿기 힘든 스토리도 얼마든지 있다. 물론 반대로 회개하라고 외치며 죄인을 의의 길로 인도한 성인이 세상의 유혹에 빠져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마세네의 ‘타이스’는 상반된 두 캐릭터의 정반대되는 인생역전으로 주목을 끈다. 기원 4세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배우이자 매춘부인 타이스에 빠져 향락에 젖어있다. 한 때 타이스에게 빠져있었지만 수도사가 된 아따나엘은 타이스를 크리스천으로 개종해 구원을 받게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아따나엘은 학창 시절 친구이자 현재는 알렉산드리아의 재력가가 된 니시아스의 도움으로 타이스와 만나게 된다. 타이스는 자신의 삶을 바꾸라는 아따나엘의 강력한 권고를 무시하고 오히려 아따나엘에게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는 삶의 폐해를 경고한다. 

아따나엘은 계속해서 타이스를 개종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하고 타이스의 집을 예고없이 찾아간다. 타이스는 자신의 집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아름다움이 영원히 계속되기만을 비너스에게 기원하던 중이다. 아따나엘의 방문을 받은 타이스는 그를 유혹하지만 그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의 사랑은 그녀에게 영원한 삶을 줄 것이라고 약속한다. 마음이 흔들린 타이스는 결국 아따나엘을 따라 회개와 구원의 길에 오르기로 결심한다. 기쁨에 넘친 아따나엘은 사막에 있는 수녀원에 가는 길을 타이스와 동행한다. 혹독할 정도로 타이스를 다그쳐 수녀원에 도착한 아따나엘은 그러나 타이스가 수녀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다는 것을 갑작스럽게 깨닫는다.

자신의 모든 임무를 마치고 수도원으로 돌아온 아따나엘은 그 이후로 타이스의 육체적 형상을 잊지 못한다. 아무리 기도를 하고 금식을 해도 그녀의 생각이 떠나질 않자 아따나엘은 수도사로서의 삶을 청산하고 타이스를 되찾아 그녀와 함께 도망칠 생각을 한다. 

수녀원을 찾은 아따나엘은 그러나 타이스가 참회를 통해 이미 참선과 순전의 경지에 올라 성인에 올라선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타이스는 천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죽음에 이르고 아따나엘은 타이스를 잃고 슬픔에 빠져 무너져내리고 만다.

https://youtu.be/7zTm60jRO6g

향락에 빠져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던 타이스가 신에게로 향하여 깨달음과 참회를 통해 성인의 경지에 오르고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아따나엘의 도움과 지도로 기존의 삶을 모두 버리고 수녀원에 안착한 뒤 끊임없는 회개로 타이스는 새 사람이 되었다. 

반면 자신은 이미 새 사람이 되었고 다른 사람, 그것도 악의 화신처럼 여겨졌던 타이스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겠다는 강한 신념으로 마침내 이를 이루어낸 아따나엘은 자신의 억눌렀던 욕망을 분출함으로써 오히려 길을 잃게 되었다. 타이스를 구원하기 위해 길을 떠나려던 아따나엘에게 수도원의 지도자 팔레몬이 아따나엘에게 한 경고가 결국 현실이 된 것이다. 

세속의 일에 간섭하는 것은 수도승의 서약에 위반된다는 팔레몬의 경고는 즉, 인간이라는 존재의 나약함과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셈이다. 인간의 욕망, 세속의 유혹이라는 것은 인간의 벗어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이 반드시 그 굴레를 드리우는 것이다. 이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해도 순식간에 되돌아갈 수 있는 강력하고도 끈질긴 사슬처럼 호시탐탐 집어삼킬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약점과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신의 사랑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신의 사랑이 너무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더욱 구체적이고 때로는 온갖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인간의 사랑 또한 존재한다. 

자신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상대만을 위하는 무조건적인 사랑, 어리석을 정도로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끝까지 지켜나가는 사랑, 비록 비극이지만 아름다운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남녀간의 사랑도 숭고함에 있어 그 궤를 같이 한다. 

이전 10화 [7]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책임의 충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