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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Apr 07. 2021

[10] 사랑에 대한 집착도, 경시도 모두다 비극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 '카르멘' '돈 죠반니'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서로 사랑할 때 사랑은 고귀하고 그 희생도 값어치가 있다. 어느 순간 어느 누구의 사랑이 식었을 때 그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아쉽게도 아무런 노력도 없이 사랑이 지속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의 사랑은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순간 식을 수밖에 없다. 

사랑이 식은 사람의 기만과 태만은 무조건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상대가 돌아오기만을 바라거나 그러한 상대에게 예전으로 돌아가자고 애원해봤자 소용은 없는 것이다. 그러한 상대와의 사랑에 목을 메는 것은 결국에는 본인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 Opera) '마담 버터플라이' 한 장면

푸치니의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는 사랑에 모든 것을 건 일본 여인 초초상(나비부인)과 사랑이라고 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가벼운 마음, 즉 흥미와 오락으로 일관한 미 해군 중위 핀커톤의 사랑을 그린다. 상대를 만나기도 전에 자신의 모든 인생을 맡기기로 한 초초상의 사랑을 단지 무모함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핀커톤이 중매쟁이와 집을 임대할 때 기본 999년 동안 매달 갱신할 수 있다는 계약 조건은 결국 상대에 따라서는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비극의 시작을 암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초초상은 999년이라는 평생에 걸친 사랑을 기대했지만 핀커톤은 매달 갱신이라는 짧고 편리한 시스템을 적극 이용했던 것이다.

집안이 몰락해 어린 나이에 게이샤의 삶을 살게 된 초초상은 핀커톤과의 결혼을 계기로 영원히 행복하고 한 사람에게만 헌신하는 삶을 살기로 한다. 종교를 기독교로 바꾸면서까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기로 한 초초상과 달리 핀커톤은 눈 앞의 흥분과 재미에 혼이 빠져있을 뿐이다. 영사 샤플레스가 결혼에 대한 초초상의 진지한 마음을 환기시키며 경고를 하지만 핀커톤은 당장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이점만 챙긴 채 나중에는 미국에서 미국인 부인과 결혼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핀커톤이 떠난지 3년이 되었지만 초초상은 나가사키 항구를 바라보며 핀커톤이 오기만 기다린다. 생활비도 다 써가고 중매상은 초초상에게 새로운 남편 야마도리 군주를 소개해주지만 초초상은 조금도 꿈쩍하지 않는다. 

핀커톤의 편지를 들고 방문한 샤플레스는 초초상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핀커톤의 편지 내용을 차마 전달하지 못하고 넌지시 야마도리 군주와 결혼을 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한다. 초초상은 펄쩍 뛰며 핀커톤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 핀커톤에게 아들의 존재를 알려주고 반드시 돌아오도록 간청한다. 

나가사키 항구에 핀커톤이 탄 배가 들어온 것을 확인한 초초상은 온 집안을 정원에서 딴 꽃으로 장식하고 아이와 함께 밤새도록 핀커톤을 기다린다. 들뜨고 행복한 마음을 표현한 음악을 배경으로 나란히 앉아 핀커톤을 기다리고 있는 초초상과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분명 밝고 잔잔한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먹먹해지고 눈물이 고여온다.

https://youtu.be/CpJO1PVGA7c

새벽이 되어서야 지친 몸을 이끌고 아이와 함께 초초상이 쉬러 간 사이 샤플레스가 핀커톤과 미국인 아내를 데리고 온다. 핀커톤은 한 때의 추억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결국 뛰쳐나가고 미국인 아내와 샤플레스를 마주한 초초상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차린다. 

아이의 미래를 미국으로 데려가겠다는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인 초초상은 혼자서 자결할 준비를 한다. 엄마를 찾아 뛰어들어온 아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초초상은 ‘명예롭게 살 수 없다면 명예롭게 죽는다’며 자결한 아버지처럼 똑같이 단검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사랑에 진지하지 못하고 단지 한순간 즐기는 재미로만 접근한 핀커톤의 마음과 행동은 잘못된 것이고 응당 죗가를 치러야 하기에 그가 느낄 고통은 응당 감수해야 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사랑에 인생을 건 초초상의 결말이다. 

순진한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배신이었고 돌아오리라 믿었던 남편은 물론 하나뿐인 아들까지 한순간에 잃게 되었으니 삶이 송두리째 뿌리뽑힌 듯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까마득한 어린 나이에 모든 것이 암흑 속에 묻힌 듯 보였을 것이다. 초초상의 자결은 사랑에 대한 무거운 책임과 엄중한 자세를 각성하고 그녀의 순수하고 진심어린 사랑을 보여주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긋난 사랑의 끝이 삶의 끝은 아니다. 사랑은 구원이고 숭고하며 아름다운 것은 맞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의 파탄이 그 반대일 필요는 없다. 양방향이어야 할 사랑이 일방향이 되었다면 그 다음 수순은 그 자리에 멈추거나 또는 상대를 추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끝난 사랑 앞에서 사랑에 들인 자신의 것이 아깝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온 몸과 마음을 다한 결과가 허망하게 끝난 것이 견디지 못한 상처로 남는 것은 물론이다. 또한 그것이 명예가 되었건 시간이 되었건 돈이 되었건 본전이 아까워 이를 회수하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랑은 한순간에 서로를 옭아매는 지옥이 될 수 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 Opera) '카르멘' 한 장면

비제의 ‘카르멘’에서 여주인공 카르멘은 어쩌면 팜므파탈의 전형일 수 있다. 자신이 표적으로 삼은 사람을 반드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야 마는 유혹의 화신이자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기를 바라는 정열의 여신이다. 하지만 빠르게 타오르는 것만큼 빠르게 사그라드는 성냥불처럼 카르멘의 사랑은 순식간에 차갑게 변해버린다.

카르멘은 자신을 탐하는 남자들을 향해 사랑은 잡으려고 하면 날아가 버리고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찾아온다는 유명한 아리아를 부른다. 그 많은 남자들 중에 단 한명,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호세를 향해 꽃을 던지며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사랑하면 그만이고 상대는 그 순간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 아닌 경고를 한다. 

https://youtu.be/K2snTkaD64U

고향 마을에 계신 어머니가 정혼자 미카엘라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며 호세는 어머니가 바라는 바른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지만 카르멘의 유혹에 이내 맥없이 빠져들고 만다. 그 결과 싸움을 일으킨 카르멘을 감옥에 가두러 가던 중 카르멘을 놓아주고 자신이 감옥에 갇힌다. 

감옥에서 나와 카르멘을 찾아간 호세는 카르멘과 재회하고 사랑을 속삭이지만 호출을 받고 군대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된다. 카르멘은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과 함께 집시 생활을 하자고 설득하지만 호세는 거부한다. 하지만 군대 선임과의 삼각 관계에 얽혀 싸움을 일으키는 바람에 호세는 더 이상 군대로 복귀할 수 없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집시 생활을 하게 된 호세와 카르멘의 사랑은 시간이 갈수록 식어간다. 사랑은 자유고 어떠한 구속도 받지 않는다고 외치는 카르멘에게 호세와의 사랑은 유효기간이 끝나 버렸다. 호세에게 사랑이 끝났다고 선언하며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마침 카르멘에게 구애를 하는 투우사 에스카밀로가 나타나 호세에 대한 카르멘의 사랑은 조금의 여지도 남아있을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어쩔 수 없이 떠나지만 분노한 호세는 카르멘을 향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에스카밀로의 투우경기가 열리는 날 그와 함께 투우경기장에 온 카르멘은 자신을 찾아온 호세와 대면한다.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라는 호세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카르멘은 두 사람의 사랑은 끝이 났으며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못박는다. 자유롭게 사랑하고 자유롭게 죽으리라는 카르멘을 향해 호세는 칼을 휘두르고 카르멘은 죽음을 맞이한다. 


어떠한 구속도 거부하고 자유로운 사랑만을 추구하는 카르멘은 상대방에 대해서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호세를 적극적으로 유혹했지만 설사 호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카르멘은 마음 아파하지 않았을 것이다. 호세가 카르멘의 요구를 거부하고 군대로 돌아갔다면 역시나 카르멘은 호세를 금세 잊었을 것이다. 

카르멘은 새로운 사랑에 언제나 열려 있다. 자신의 마음을 흔드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내 그에게로 온 신경을 집중했을 것이다. 물론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카르멘이 남자가 없이는 못사는 사람도 아니다. 에스까밀로가 구애를 하기도 전에 카르멘은 이미 호세와의 마음을 정리했다. 하지만 호세는 사랑의 유무와는 별개로 한번 시작한 사랑을 쉽게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더구나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고 선택한 사랑인 만큼 호세는 카르멘과의 사랑을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의 비극에 대해서는 딱히 어느 한 사람을 비난하기 보다는 두 사람 모두가 안타까울 뿐이다. 두 사람의 문제는 그들의 사랑이 너무 다르다는 데에 있었다. 서로 다른 사랑을 함으로써 두 사람 모두에게 비극으로 끝이나고 말았던 것이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 Opera) '돈 조반니' 한 장면

사랑은 너무 진지하게 여겨서도 문제가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가볍게 여겨서도 안된다. 사랑의 시작은 쉽지만 끝은 어렵다. 그 누구도 사랑을 시작할 때 끝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끝낼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에도 격이 있다. 달콤한 사랑의 약속으로 시랑을 시작해놓고 이내 그 사랑을 던져버리는 것은 사랑의 자격이 없고 더 나아가 인간의 자격이 없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는 오로지 재미를 위해 여자들을 농락하는 귀족 돈 조반니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하인 레포레로의 도움으로 여자들을 닥치는대로 유혹하고 즐긴 뒤 떠난다. 밖에서 망이나 보면서 주인의 농간을 돕는 레포레로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그처럼 여자들과 즐기고 싶어한다. 이태리, 프랑스 등 유럽 각지를 돌면서 농락한 여자들의 이름을 수첩에 기록하는 것으로 나름의 무료함을 달랠 뿐이다. 

역시나 가면을 쓰고 기사단장의 딸 애나의 방에 침입한 조반니는 애나의 비명에 달려온 아버지와 결투를 벌이게 되고 결국은 그녀의 아버지를 죽이고 만다. 도망친 조반니의 정체도 모른 채 애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그녀의 약혼자 오타비오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청한다. 

한편 조반니에게 배신당한 엘비라는 조반니를 찾아 복수를 할 생각으로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조반니가 여자를 유혹할 때 여자를 구해내는 역할을 한다. 조반니와 마주친 애나와 오타비오가 엘비라의 이야기를 믿어야 할지 망설이던 중 애나는 조반니의 목소리에서 어렴풋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에 조반니에게 당한 모든 이들이 의기투합해 그에게 복수하기로 계획하지만 번번히 조반니를 놓치고 만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기회를 찾아 여자를 유혹하기를 멈추지 않던 조반니와 레포레로는 우여곡절 끝에 묘지에서 재회한다. 여전히 농락당한 사람들을 비웃으며 한숨을 돌리던 중 조반니는 유령으로 나타난 기사단장으로부터 무시무시한 경고를 듣는다. 

‘아침이 되면 더 이상 웃을 수 없을 것’이라는 기사단장의 경고에 무서워 떠는 레포레로와 달리 조반니는 기사단장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여전히 여자들과 어울려 술과 춤을 즐기던 중 이윽고 기사단장의 방문을 받는다. 그는 조반니에게 참회하라고 이르지만 조반니는 완강하게 거부한다. 결국 불길이 일어 조반니를 집어삼키는 것으로 오페라는 끝을 맺는다.

https://youtu.be/7cb1QmTkOAI 

재미있는 것은 조반니가 당한 무시무시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집에 모여든 모든 이들은 조반니의 끝을 확인하고 각자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며 발랄한 분위기 속에서 오페라가 끝이 난다는 사실이다.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시종일관 밝고 경쾌하며 심심찮게 익살스러운 장면이 등장하는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 악은 반드시 처벌을 받는 것으로 끝이 난다. 적당히 교훈적이고 상당히 재미가 있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중 ‘돈 조반니’는 그 중 무겁고 심각한 장면이 다른 작품에 비해 많은 편이지만 여전히 그 끝은 명랑하다. 

잘못한 사람은 벌을 받고 그 밖의 사람들은 마치 그러한 사람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겠다는 듯, 마치 자신을 괴롭히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해맑게 자신들의 삶을 꾸려나가고자 한다. 이 얼마나 유쾌하면서도 명쾌한 결말인가. 

사랑을 가볍게 여긴 조반니로 인해 많은 이들이 크나큰 상처를 입고 고통을 당했다. 아버지를 잃는가 하면 자신의 진실된 사랑이 비웃음을 당하기도 했고 결혼이 파토가 날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악행은 누군가의 복수가 아닌 하늘의 뜻에 따라 응징을 당했고 선량한 피해자들은 새 삶을 살아가기로 하는 것이다. 


배신, 농락, 집착 등 그 어떠한 것이든 사랑의 이름으로 고통을 주는 사람은 반드시 사죄를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사랑의 이름으로 고통을 받은 사람은 훌훌 털어버릴 수만 있다면 좋겠다. 모차르트의 오페라처럼 악인은 하늘에 의해 응당한 처벌을 받고 모든 꼬인 것들은 풀리며 모든 고난은 끝이 나고 모든 이들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짝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사랑의 여정, 그 끝에서 모두가 웃을 수 있다면 좋겠다. 

모든 사랑이 같지 않다. 사랑을 알아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사랑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고 혹 그 사랑이 잘못되었을 때 적극적으로 정리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랑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이끌어나가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의 힘이라는 것도 있지만 많은 경우 사랑은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다. 사랑이 가장 위대하지만 사랑이 전부는 아니다. 

사랑은 단지 가꾸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사랑에 정답은 없고 따라서 실패도 없다. 정진만이 있을 뿐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삶과 사랑의 여정에 오페라가 언제나 함께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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