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화가는 무엇을 그렸나] - 피터 폴 루벤스
바로크의 대가 루벤스는 팔방미인이었다. 종교, 신화, 알레고리, 인물, 풍경 등 주제를 넘나 들며 최고의 그림들을 그렸고 외교관으로 유럽 여러 나라를 오가며 전쟁을 중재하는 등 자신의 역할을 화가에만 한정짓지 않았다. 신앙심이 깊고 평화를 사랑했으며 가정적이고 친화적인 사람이었던 루벤스의 이러한 기질은 뛰어난 그림 실력과 더불어 그의 성공을 보장하는 요소들이었다.
그의 그림 스타일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특히 인간의 몸을 관능적이면서도 역동적으로 표현하는 데 능했는데 미켈란젤로가 남성적인 근육질 몸매의 다부진 형체로 대표된다면 루벤스는 여성적인 볼륨감과 밝게 빛나는 탐스러운 형체로 특징지을 수 있다. 또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라파엘로 대변되는 정돈된 화면과 절제된 공간 배치와는 반대로 화면 전체를 화려한 색과 형체로 가득 채우고 서로 뒤엉켜 나뒹구는 인물들을 전면에 등장시키며 바로크의 감성을 확실히 전달했다.
카라바지오로 시작된 바로크의 역사는 선명한 명암과 인물의 생생한 묘사, 화면을 뚫고 나올 듯한 긴장된 구도로 전형성을 탈피했다. 원근법과 대칭형 구도, 형체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통해 회화의 완성을 이룬 르네상스 시대는 후기로 들어서면서 목과 사지를 늘리고 몸을 비트는 형태를 취하며 강렬한 색과 비대칭성 구도를 선보이는 등 완벽함을 넘어서는 기괴함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카라바지오는 매너리즘의 기괴함을 넘어서는 강렬함과 충격을 통해 회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새로운 성화를 선보인 카라바지오의 그림에 기존의 보수적인 교단들은 거부 반응을 보이기도 했으나 루벤스는 이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루벤스의 성화는 카라바지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강렬함과 긴박감이 느껴진다.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예수의 모습 대신 십자가에 못이 박힌 채 똑바로 세워지는 도중의 모습이나 피를 흘리고 정신을 잃은 채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모습, 무덤에 넣어지는 모습 등 그의 그림은 다분히 역동적이다. 그의 그림 속 인물 중 어느 하나도 가만히 있거나 무표정인 사람은 없다. 모두들 바삐 움직이고 긴박감이 넘치는 모습들이다.
그러나 사실 루벤스의 그림 스타일은 성화보다는 우화적인 그림에 더 들어맞는 부분이 있다. 화려한 색과 밝은 빛이 충만한 그의 그림은 성화 중에서도 성모 승천 등 찬미를 부르는 그림에서 더욱 빛을 발하기도 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왕족을 위한 그림에도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것이었다. 앙리 4세의 부인이자 프랑스의 왕비인 마리 데 메디치에게 의뢰를 받아 그린 그림들에서 루벤스의 재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마리 데 메디치의 일생을 21개의 장면으로 구성하여 시리즈를 그린 루벤스는 신화와 사실을 적절히 섞어 화려하면서도 장대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왕족을 위한 그림에 누구보다 능하고 왕족을 그 누구보다도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임을 입증했다.
그녀의 탄생에서부터 앙리 4세와의 결혼, 그 후 아들 루이 13세를 낳고 남편이 죽은 뒤 프랑스를 통치하다 아들이 성인이 된 뒤 왕위를 물려주지만 갈등으로 망명을 갔다가 화해를 하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오는 길고 긴 이야기를 극적이면서도 장엄하게 풀어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올림푸스 신들로 둘러싸인 특별함으로 만들어내고 결혼과 왕권의 부여에 있어 신성함을 부여했으며 자신이 당한 수모와 고난도 훗날의 승리를 더욱 값지게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등 의뢰인의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결과물로 만들어낸 루벤스의 능력은 높이 살 만한 것이었다.
이렇듯 대화를 통해 의뢰인이 원하는 바를 알아내고 이를 수용하여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사람을 상대하고 대화를 이끌어내는 일에 능했던 루벤스는 당시 플랑드르를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의 외교관으로 임명되어 영국과의 평화 협정을 위한 임무를 수행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성공적인 평화 협상을 위해 자신이 그린 선물을 가지고 갔는데 ‘Peace and War’(1629)는 전쟁의 참혹함 대신 평화를 통해 얻어지는 풍요로움과 화합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그림이었다.
전쟁에 대한 혐오와 평화에 대한 사랑은 루벤스가 외교관으로서 은퇴를 하던 순간 유럽에 드리운 전운에 대한 불안함과 공포를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 더욱 극적으로 나타났다. 1637년작 ‘The Horror of War’는 평화를 사랑하고 소망하는 자신의 마음을 전쟁에 대한 극적인 공포와 더불어 겁에 질린 채 무력하게 쓰러져가는 참혹함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림 속 전쟁의 신 마스는 피로 물든 칼과 방패를 들고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를 막으려는 비너스의 다급하고 애절한 몸짓은 그리 큰 위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복수의 여신 알렉토에 이끌려 역병과 기근을 낳는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전쟁과 양립할 수 없는 예술과 다산, 자비는 전쟁으로 위협을 받고 평화 시 지어진 건축물들은 모두 파괴될 것임을 암시하듯 화합의 여신,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 그리고 건축가가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채 쓰려져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역시나 책과 그림이 마스의 발 아래 짓밟힌 채 놓여있고 평화의 상징인 지팡이와 올리브 가지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왼편에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하늘을 향해 허망하게 두 손을 치켜들고 공포에 떨며 서 있는데 이는 불운에 처한 유럽을 형상화하고 있다. 옷은 찢기고 모든 장식품은 빼앗긴 채 공포와 비참함에 빠진 여인의 표정은 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를 한 눈에 보여주고 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두를 만족시키는 그림을 그릴 줄 알았던 루벤스는 하지만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 들어서는 오로지 자신을 만족시키는 그림을 그렸다. 1635년 외곽의 성을 구입해 가족과 함께 단란하게 삶을 즐긴 루벤스는 그곳에서 산과, 평원, 계곡과 초원 등 주변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인물화가 그림의 중심이었던 당시 회화 분위기 속에서 풍경화는 루벤스 자신 외에는 다른 누구도 만족시키고자 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비록 가짓수가 많지는 않지만 루벤스의 풍경화는 테크닉이나 아름다움에 있어 인물화에 못지 않은 뛰어남이 묻어 난다. 19세기 영국의 풍경 화가 존 콘스타블은 “루벤스는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풍경화에서 최고였다”고 평가했는데 실제로 그의 초기작 ‘Haywain’(1821)은 루벤스의 ‘Landscape with Het Steen’(1636)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하늘에는 잔잔한 구름이 가득 떠 있고 끝도 없이 먼 곳으로 뻗어나가는 평원은 마음을 틔워준다. 그림 전면에는 뒤엉킨 나뭇 가지와 뿌리들이 세밀화에 가깝게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고 나무에 둘러싸여 고요히 자리한 성 주변에는 루벤스와 아내, 아이가 한가롭게 산책을 즐기고 있다. 장에 내다 팔 물건을 가득 실은 수레를 타고 가는 동네 사람들과 사냥을 즐기는 남자, 저 멀리 소들을 돌보고 있은 여인들의 모습은 평화로우면서도 분주한 시골 마을의 일상을 엿보게 한다.
이 그림은 같은 해 그린 ‘Landscape with a Rainbow’(1636)와 함께 쌍을 이룬다. 역시나 수레를 끌고 가는 남자와 한 무리의 소, 그 옆을 지나는 아낙네들의 모습은 두 그림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요소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풍성한 구름이 가득한 하늘, 녹음이 짙은 나무와 평원 위로 둥글게 떠오른 무지개는 공통점이 많은 이 두 개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두 그림이 사실은 서로 같은 듯 다른 느낌을 풍긴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실제로 ‘Landscape with Het Steen’은 본인이 직접 등장하기도 하고 나무와 풀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마치 북유럽의 사실적인 풍경화의 계보를 잇는 느낌을 전한다. 하지만 ‘Landscape with a Rainbow’는 무지개와 더불어 밝게 빛나는 빛으로 가득한 화면, 전반적으로 거리를 두고 묘사한 풍경 등으로 인해 다소 동화적인 느낌이 든다. 마치 이상향을 표현하기라도 한 듯 현실성을 띠기 보다는 아련한 느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루벤스에게 풍경이 가지는 의미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화가로서 성공한 삶을 살고 외교관으로 명예로운 삶을 살았지만 그가 살던 당시의 유럽은 전쟁이 끊이지 않고 평화가 지속되지 못하던 험난한 삶의 터전이었다. 비록 평화를 위해 많은 정치적 노력을 기울였고 독실한 신앙심으로 종교에 의지하여 평화를 갈구하기도 했지만 전쟁은 예기치 않게 찾아와 많은 것을 앗아가 버리는 잔인한 것이었다. 그 속에서 고통받는 것은 힘없는 사람들이었다. 햇빛이 가득 들고 나무가 많은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일상을 만끽하는 즐거움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힘들게 얻어지는 것이라는 깨달음은 노년의 루벤스에게는 더욱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이었으리라.
분주한 정치와 다사다난한 일상을 벗어나 시골의 빌라에서 여유를 만끽했던 로마인들의 작은 정원은 자그마하게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을 이상향으로 만들고자 한 바람이 아니었을까. 그들이 바라본 이상향은 거창하고 웅장한 것이 아니라 소박하면서도 익숙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루벤스에게 이상향은 신이 모여있는 올림피아 산도 아니고 왕족이 거하는 웅장한 궁전도 아니며 제단과 성화가 있는 교회도 아니었다. 소소하지만 분주한 일상을 이어가고 여유와 함께 어울림이 있는 하늘 아래 작은 자연의 공간이었다.
전쟁이 무서운 것은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고 많은 것을 누리지도 않는 일상의 소박한 삶 마저도 송두리째 앗아가는 무자비함과 잔인함에 있었다. 예술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한 화가 루벤스가 평화를 사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의 바탕이 바로 평화에 있기 때문이다. 루벤스의 풍경화는 전쟁이 사라진 평화의 시기에 예술과 풍경과 사람이 하나로 어우러진 궁극의 이상향의 표현이자 루벤스의 간절한 바람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