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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Oct 15. 2024

노년의 통찰을 담다 (1)

[노년의 화가는 무엇을 그렸나] - 클로드 모네

고집스러울 정도로 인상주의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화가 모네는 바로 인상주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을 빛의 작용에 따른 시각적 효과로 순간적으로 포착한 인상주의는 모더니즘의 결정체였다. 그림의 모든 부분을 세부적으로 정밀하게 묘사하고 매끈하게 색을 칠해 넣는 기존의 방식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그림이 아니었다. 그림은 어떠해야 한다는 공식에 따라 머리로 그린 그림에 가까웠다. 머리가 아닌 눈으로 그리는 그림이어야 한다는 것이 모더니즘의 시작이었는데 이는 혁명에 가까운 것이었다.

눈으로 보고 그리는 그림은 우선 정교할 수가 없다. 우리의 눈이 눈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선을 끄는 한 가지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주변부로 흐릿하게 보이도록 하는 기능은 눈의 기능이 미약해서가 아니라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눈으로 접하는 모든 것을 다 처리할 필요가 없으며 오로지 한 가지에만 집중함으로써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이 되는 것이다.

19세기 초반 존 콘스타블이 나무 둔치의 색을 표현할 때 갈색이 아닌 눈에 보이는 대로 검푸른 색으로 칠한 것이나 마네가 흰 색의 옷을 표현할 때 빛에 반사된 분홍색을 집어 넣는다든지 하는 것은 바로 정직한 그림을 그리기 위한 비슷한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집중적으로 다룬 것은 인상주의에서 비로소 발현되었다.


모네는 1872년 ‘Impression, Sunrise’라는 그림을 인상주의 전시회에 선보였다. 해가 뜨는 바다를 그린 이 그림은 형체보다는 색, 엄밀히 말하면 빛을 표현한 작품으로 선으로 형태를 표현하고 이를 색으로 매끈하게 채워넣는 기존의 그림을 기준으로 할 때 전혀 그림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무엇을 그렸는지는 알 수 있지만 그리다 만 것과 같은 느낌에, 색도 선에 따라 깔끔하게 칠해지지도 않았고 구분도 되지 않았다. 그저 화면 전체를 물감으로 짓이겨 바른 것과 같이 거칠고 불투명했다. 이 그림을 보고 한 평론가가 제목의 ‘인상’에서 이름을 따와 이들을 인상주의라고 불렀다. 이는 분명히 조롱을 넘어 비난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인상주의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 있어서만 혁신적이었던 것이 아니다. 역사화, 인물화가 대접을 받던 당시의 화단에서 풍경이나 일상의 모습을 담은 그림은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내러티브가 없고 왕족이나 귀족을 그린 그림도 아닌 인상주의 그림들은 화가 주변의 일상을 담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주변의 풍경을 그리거나 인물이라고 해야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들, 아니면 모여있는 군중을 그렸다. 르느와르가 그린 그림들은 빛이 가득한 공간 속에서 여유롭게 파티를 즐기거나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었고 드가는 강렬한 조명 아래서 춤을 추는 발레리나의 모습이었다. 

모네는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 보다도 유독 야외의 햇빛 자체에 집중하는 태도를 취했다. 대상은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들녘의 건초 더미들이나 자신의 집 창문에서 내다 보이는 루엔 성당의 모습, 역 관리인에게 특별히 부탁해 그림에 담을 수 있었던 생 라자르 역의 모습 등 다양했다. 단지, 빛의 작용에 따른 색의 변화는 어느 한 순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임을 간과하지 않았다. 따라서 모네는 같은 대상을 시간을 달리 하며 몇 번이고 그렸다. 루엔 성당을 30번 이상, 생 빅투아르 역을 12번, 건초 더미들을 25번 그리는 식이었다. 마치 그림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한다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어떤 모습인지 기록을 하듯, 즉 사물을 관찰하는 과학자의 모습으로 그림을 그려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종달새: 눈의 효과](1869) - (좌), [생드니 거리, 1878년 6월 30일 축제](1878) - (우) 

한 예로 모네의 1869년작 ‘The Magpie: Snow Effect’는 눈 쌓인 마당 문 위에 내려 앉은 까치 한 마리가 주인공이다. 하지만 진짜 주인공은 눈 위를 반짝 비추는 햇빛임이 분명하다. 그림의 왼편 위쪽에서부터 비추는 햇빛은 풍경을 포근히 감싸주어 온통 눈으로 뒤덮인 풍경이 차갑지 않고 따스하게 느껴진다. 햇빛이 내려앉은 곳은 원래의 눈 색깔인 하얀색이 아니라 노란빛을 띠고 담벼락이 만들어낸 그늘로 덮인 눈은 푸른빛으로 서늘함을 안겨준다. 문 위에 앉은 까치는 햇빛을 받으며 잠시 쉬고 있는 듯한데 재미있는 것은 눈 위에 비춘 까치의 그림자가 반대 방향으로 잘못 그려져 있다. 모네는 까치의 그림자 방향을 신경쓸 만큼 까치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던 듯하다. 중요한 것은 까치가 아니라 까치가 있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풍경을 감싸고 있는 햇빛의 존재가 진짜 주인공인 셈이다. 

또 다른 그림인 1878년작 ‘Rue Saint-Denis Festivities on June 30, 1878(Rue Montorqueil Decked with Flags)’에서도 제목에 등장한 깃발들이 주인공인 것 같지만이 실질적으로는 건물을 온통 뒤덮고 있는 깃발들이 만들어내는 빨강과 파랑, 하양의 어지러운 향연이 진짜 주인공이다. 나람에 나부끼는 깃발은 형체를 잃은 채 삼색이 뒤섞여 출렁이는 물결로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실제로 이 풍경을 창문 밖으로 바라본 모네의 눈에는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모습이나 건물에 빼곡히 걸린 깃발들은 선명한 형체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가지고 있는 색깔들이 서로 뒤엉켜 만들어낸 물감들의 조화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를 표현함에 있어 거칠고 성긴 붓질은 눈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적절하다. 


모네의 그림을 보고서야 비로소 우리는 기존의 정교하고 세밀한 그림들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고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만 하는 수많은 사물들의 종합선물상자 같은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반대로 모네의 그림은 그림을 자세히 하나하나 들여다 보는 대신 한 눈에 모든 것이 보이도록 하는 낱개의 스낵인 셈이다. 실제로 모네의 그림들은 하나 같이 한 눈에 들어오는 시야의 폭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것이 건물이든 사람이든 나무든 그의 그림은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깊이 보도록 하는 매력이 있다. 

마치 한 눈에 보고 빠르게 그려낸 그림 같지만 사실 그는 같은 그림을 시리즈로 보여주면서 깊이 보도록 유도하고 있었고 그 대상은 실내가 아닌 야외에 있는 것이어야 했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창문 밖을 향하거나 야외로 나가 강 둑, 배 위에서 그리곤 했는데 노년이 되어 그가 선택한 최종 장소는 바로 자신의 정원이었다. 지베르니에 거처를 정하고 자신의 정원을 넓은 연못과 그 위를 지나는 일본풍의 다리, 연못 주변의 버드나무들로 꾸미고 모네는 언제나 자신의 정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시작된 모네의 마지막 여정은 수련 시리즈로 표현되었다. 연못 위를 수놓은 수련은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그림의 한 켠에 자리한 것일 뿐 모네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수련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련이 떠 있는 연못과 그 연못에 비추는 주변의 풍경과 하늘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면서 이 모든 것을 품은 연못의 진가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모네에게 마음껏 볼 수 있는 장소과 이를 마음껏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비로소 마련되었지만 이를 그림으로 옮기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인 시력은 노년의 모네에게 절망을 안겨주었다. 나이가 들어 시력이 악화된 모네는 당시 백내장 판정을 받고 깊은 좌절에 빠졌다. 이를 고치기 위해 의사를 만나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수술 외에는 확실한 치료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새롭게 도입된 지 얼마되지 않은 치료법인 수술에 대해 모네는 많은 불안감을 느꼈고 혹시라도 수술이 잘못되어 시력을 완전히 잃을까봐 두려운 나머지 계속해서 수술을 미루기를 반복했다.

모네에게 눈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자 자신의 그림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그 자체였다. 즉, 모네 그림의 시작과 끝은 모두 그의 눈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시력의 악화는 곧 그림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이를 고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은 가장 확실한 방법인 수술을 고려하다가도 혹시라도 잘못될 수도 있는 가능성으로 인해 주저하게 된 모네의 태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작가에게 시력이란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지만 특히나 빛과 색의 오묘한 작용을 그림에 담아내고자 한 인상주의 화가 모네에게 시력은 가장 중요한 요건이었음에 틀림없다. 

시력이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정도로 안 좋아지자 결국 수술을 결심했고 다행히 이를 통해 성공적으로 시력을 회복한 모네는 수술을 받기 전 좋지 않은 시력으로 고군분투했던 작품들과 비교해 훨씬 더 정제되고 밝은 색으로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수술 받기 전 작품의 색깔을 누런색에서 푸른색으로 교정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시력을 회복한 노년의 모네 그림에서 젊은 시절의 그것과 유사하면서도 또 다른 매력을 찾을 수 있다. 특히나 모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사한 군인들을 기리고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몇십년에 걸쳐 그려온 그림들 중 수련을 연작으로 그려 프랑스 정부에 기증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미술관이 오랑주리 미술관이다.  

[두 그루의 버드나무](1924-1926)

그 중에서도 1924-26년 그린 ‘The Two Willows’는 마치 자신의 정원을 그림에 그대로 옮겨담은 듯 거대한 캔버스를 연결하여 사방으로 펼쳐지게 그린 그림인데 그림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두 그루의 버드나무가 인상적이다. 모네의 여느 그림처럼 그림의 제목으로 등장한 버드나무가 주인공이 아니라 버드나무가 있는 풍경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그루의 버드나무가 주는 느낌은 처연하면서도 고요하다. 그 고요가 바람이 없는 잔잔함에서 오는 외적인 고요가 아니라 내면의 묵직함에서 오는 내적인 고요로 여겨지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일까.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자신의 마음을 담아내는 깊이있는 그림은 사색을 불러온다. 노장의 작품이 마음에 더욱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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