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화가는 무엇을 그렸나] - 렘브란트
렘브란트의 그림에는 유난히 드라마가 두드러진다. 성경의 한 장면, 신화의 한 장면, 역사의 한 장면, 집단초상화의 한 장면, 그리고 초상화와 자화상에서도 렘브란트는 대상의 외모를 아름답게 또는 완벽히 재현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기 보다는 그 장면에 맞는 드라마틱한 이야기, 더 나아가서는 내면의 드라마틱한 감정을 차분하게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두었다.
드라마틱한 감정을 차분하게 드러낸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질테지만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는 순간 이것이 무슨 말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렘브란트의 그림에는 언제나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화면을 장악하며 비중있게 등장하거나 그들이 누구인지를 지시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서가 아니다. 그들은 그 순간 일어나는 사건에 아주 깊숙이 관여하면서 온 몸과 마음으로 자신의 상황에 충실하게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아니 어쩌면 렘브란트 자신이 그 상황에 몰입하여 직접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라는 설명이 더 맞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실감나면서도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표정과 행동을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렘브란트의 판화 ‘Adam and Eve’(1638)을 보면 그림 속 아담과 이브는 사탄의 유혹을 받고 지혜를 얻게 해준다는 사과를 먹으려 하고 있다. 사과를 먹으려고 입으로 가져가는 이브를 아담은 옆에서 제지시키고 있지만 그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라는 표정이다. 왜 자신을 막느냐고 옆으로 흘깃 쳐다보는 이브에게 아담은 뭐라 할 말이 없어 군색하기만 하다.
우리는 다음 이야기를 알고 있기에 그림 속 아담과 이브가 결국은 사과를 먹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고 따라서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으레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십상이다. 하지만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우리 앞에서 이 모든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양 지금이라도 당장 사과 먹는 일을 멈추게 해주고 싶을 정도로 그 상황에 몰입하게 된다.
심지어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관찰자가 아닌 그림 속 인물이 되어 보게끔 하는 묘한 끌림이 있다. 우리는 이브가 되어보기도 하고 아담이 되어보기도 하면서 우리라면 그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우리도 별 다를 바 없이 렘브란트의 그림 속 인물처럼 했을 것 같다는 결론에 다다르곤 한다. 렘브란트 자신이 그림 속 인물 하나하나가 되어보고 나서 그린 것처럼 리얼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것은 바로 그의 그림이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진솔하기 때문이다.
렘브란트는 상업이 발달하면서 신흥세력이 성장한 암스테르담에서 이른 나이에 부와 명성을 얻었다. 그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려나 풍속화, 성화 등을 그리면서 렘브란트는 인물의 내면을 포착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반대로 외면의 표현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심지어 얼굴 일부가 가리워지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아예 뒷모습으로 그릴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감정이나 느낌, 현장의 긴장감을 표현하기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드라마의 생생한 전달과 감정의 이입을 유도하기 위해 렘브란트가 주로 그린 것은 성화였다. 하지만 기존의 성화와는 확실히 다른 것이 있었다. 렘브란트는 예수의 탄생과 죽음, 부활이라는 종교적 의미에만 제한을 두지 않고 인간의 삶과 드라마에 더욱 초점을 맞추었다. 따라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다룬 장면은 예수와 성모 마리아 등 몇몇 주요 인물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사람들이 함께 등장한다. 특히 제목 ‘The Three Crosses’(1653)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날 처형을 당한 것은 예수만이 아니고 다른 두 도적들도 있었으며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가족은 물론, 처형을 집행하는 사람들, 처형을 모의한 사람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구경을 온 사람들 등 다양하다. 그들은 각자의 역할이나 관심 사항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 전혀 예수의 처형에만 온 집중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새삼 그 동안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에 비로소 생각이 미치게 되는데 과연 이러한 아수라장 속에서 예수는 어떠한 상태였을까 하는 것이다. 예수는 예수 대로 자신의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으리라. 모두의 비중이 비슷하게 처리되면서 예수는 정 가운데, 후광을 입고 자리하고는 있지만 군중 속의 한 인간으로서, 모두가 그러하듯이, 철저히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처지라는 사실이 더욱 뚜렷이 다가온다.
예수의 장면을 그린 또 다른 그림 ‘Christ at Emmaus’(1648)와 ‘Christ with the Sick around Him, Receiving Little Children(Christ Healing the Sick)’(1648-50)에서도 분명 주인공은 예수지만 그 순간 모든 사람이 예수에게 집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존재가 가장 중앙에 위치하고 있지만 그의 얼굴은 환한 빛으로 빛날 뿐 아무런 표정이 없다. 오히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신성한 모습 때문인지 그의 존재는 오히려 사건의 현장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이 두 그림에서는 확실히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예수에만 집중하거나 예수에 자신을 대입해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는 그저 신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네 인간 군상들을 표현하고 있다. 예수와 함께 있지만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 오히려 예수가 아닌 제자 중 한 명에게 더 시선이 가 있는 여관 주인, 고침을 받기 위해 예수를 간절히 바라는 병자들, 잡담에 몰두하는 구경온 사람들 등 그 중요한 순간에도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모든 사람은 각자의 상황과 각자의 위치, 각자의 관심에 따라 행동하고 각자의 감정에만 충실하다. 그러한 그림을 통해 렘브란트는 각각의 인생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싶어한 듯하다. 이를 위해 그는 주로 구약성서의 이야기 속 인물들을 그의 그림에 많이 구현해냈다. 신약성서가 예수의 탄생과 행적, 죽음과 부활을 통한 인류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구약성서는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의 행실과 마음을 간파하고 있는 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에 따라 잘못을 저지르고 마는 인간의 삶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렘브란트가 보여주고자 하는 인간의 삶에 더 부합한 면이 있었다.
렘브란트가 바라보는 인간의 삶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욕심과 욕망에 따라 어김없이 잘못을 저지르고 마는 나약한 인간, 어리석은 인간에 집중되어 있다. 다윗을 질투하고 그에게 위협을 느껴 살기를 느끼는 사울의 모습, 다윗의 편지를 받아들고 잘못인 줄 알면서도 불륜을 받아들이는 듯한 밧세바의 모습, 밧세바를 얻기 위해 남편 우리아를 죽음의 전쟁터로 보내는 다윗의 모습 등 인간은 누구나 취약한 면이 있고 그것이 결국은 발목을 잡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착잡한 일이다.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면서 잘못을 저지르는 그들을 마냥 비난하거나 욕할 수만은 없는 우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러한 순간에 맞닥뜨렸을 때 어느 누구도 간단히 유혹을 물리칠 수는 없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그 상황이 되었을 때 그림 속 인물과 같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없고 누구라도 살면서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즉, 인간은 어느 누구도 잘못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렘브란트 자신의 삶에도 들어맞는 회한의 근원이기도 했다.
젊은 시절 이루어낸 부와 명성에도 불구하고 렘브란트의 인생이 평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자신만의 고집이 있었고 그것을 밀어부치는 뚝심이 있었기에 그는 남이 바라는 그림 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그림을 그렸고 그것이 고객의 입맛에 딱 들어맞지만은 않았다. 자신의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거절도 당하고 자신의 그림이 잘려나가는 수모도 당했다. 개인사에 있어서도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괴로워했으며 자신의 재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빚더미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한 인생을 살아오면서 자신이 느낀 회한이 없을 수 없다. 특히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 되면서 렘브란트는 점점 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그의 이야기는 평생에 걸쳐 그려낸 그의 자화상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22세 때의 자화상 ‘Self-Portrait as a Young Man’(1628)를 시작으로 63세 인생의 황혼에 그린 ‘Portrait of the Painter in Old Age’(1669)까지 렘브란트는 무려 90여 개의 자화상을 남겼다. 때로는 과장된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오리엔탈 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하는 등 그의 자화상은 한 때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시간이기도 했던 듯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렘브란트는 화가로서의 자신, 인간으로서의 자신에 집중해가는 듯 보인다.
특히, 그의 마지막 자화상인 ‘Portrait of the Painter in Old Age’는 렘브란트가 죽은 해에 그려진 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 주름진 얼굴에 눈꺼풀은 쳐져있으며 머리칼과 수염은 백발이 되었다. 젊은 시절의 초상화처럼 짐짓 과장스런 표정을 지어보이거나 도도한 자세를 취하는 일은 없다. 대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앞으로 쥐고 있는 모습과 입을 꼭 다문 표정이 진지하고 진실돼 보인다. 지난날을 되돌려 보며 복잡한 마음인 건지, 죽음을 앞두고 착잡한 마음인 건지, 눈은 슬프면서도 한편으로는 편안해 보인다.
젊은 나이에 부와 명성을 얻으며 한 때는 가장 높은 곳에 오르기도 했고 후반으로 갈수록 파산도 겪고 사랑하는 가족들도 잃으면서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져보기도 하는 등 인생의 굴곡을 겪은 렘브란트의 삶은 스스로 되돌아봤을 때 특별히 성공적이었다고 하기도 힘들고 특별히 실패작이었다고 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비록 후대에 걸쳐 가장 훌륭한 화가 중 하나로 칭송받고 있지만 렘브란트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느낀 삶이란 여느 누구의 삶이나 마찬가지로 온갖 우여곡절과 풍상으로 점철된 보통의 삶이었다.
하지만 삶의 마지막을 앞둔 시점에서 렘브란트는 어쩌면 만족보다는 회한이 더욱 앞서는 것이었으리라. 그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인 [Return of the Prodigal Son](1669)은 렘브란트의 마지막 희망이 담긴 작품이자 세상의 모든 탕자들에게 보내는 간절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아버지보다는 탕자에 자신을 이입시키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렘브란트도 자신을 탕자로 인식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돌아온 탕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언제라도 따뜻하게 맞아주는 아버지의 손길이었다. 그저 돌아오기만 바라는 아버지가 있는 한 탕자가 할 일이라고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렘브란트는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노년에 이른 렘브란트에게 그 아버지란 신일 수도 있고 바로 자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보듬고 어루만지며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듯 렘브란트는 자신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비로소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듯한 렘브란트의 마지막 자화상은 그래서 더욱 애잔하고 깊은 감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