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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Oct 15. 2024

끝까지 삶을 갈망하다 (1)

[노년의 화가는 무엇을 그렸나] - 마네

마네만큼 파리를 사랑한 화가가 있을까. 19세기 파리는 바야흐로 모더니즘의 시작을 알리는 시기였다. 화가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성공과 출세를 이루고자 몰려들었다. 그곳에서 나고 자라 화가가 된 마네에게 파리는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희망을 품고 꿈을 쫓아 찾아와 열정을 쏟아부은 화가들이 생각하는 파리와는 달랐다. 그에게는 파리는 성공을 위한 수단이나 꿈을 향한 여정으로서의 장소가 아닌 자신이 살아 숨쉬고 사람들과 어울려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문화와 역사의 현장이었다. 화가로서 마네는 자신의 캔버스에 담아야 할 대상이 바로 파리와 그 안의 사람들이었다. 당대의 파리라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을 캔버스에 담고 싶었다. 그것이 곧 시대의 정신이자 역사의 기록이라는 사실은 동시대의 철학자 보들레르에 의해 칭송을 받고 동시대의 화가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따라서 모더니즘의 시작을 마네에게서 찾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확실해서 이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마네는 진정 이러한 사명이나 철학에 철저히 근거해서 그림을 그린 것일까. 마네가 그림을 시작하고 배운 것은 아카데미 시스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파리 살롱을 통해 성공한 토마 쿠튀르(Thomas Couture)의 스튜디오에서 트레이닝을 시작한 마네는 그곳에서 6년 동안 머물렀다. 루브르에서 대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마네는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지는 않았다. 비록 전통적인 테크닉으로 무장된 토마 쿠튀르였지만 가끔씩 야외로 나가 스케치를 하는 등 그의 가르침에는 혁신적인 부분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마네는 그에서 더 나아가 일상 속의 실제 모델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다. 즉, 누드를 그린다면 스튜디오에서 조각같은 포즈를 취한 비현실적인 누드가 아니라 여름 바닷가 또는 옷을 벗는 것이 당연한 현장에서 사실적인 누드를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그림이 바로 [풀밭 위의 점심식사](1863)와 [올랭피아](1863)였다.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보자. 한적한 야외 풀밭 위에 네명의 남녀가 자리하고 있다. 세 명은 풀밭 위에 앉아 있고 한 명은 강에서 몸에 물을 적시고 있다. 원래의 제목이 [목욕(The Bath)]이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강가 옆 풀밭에서 목욕을 즐기는 여인들과 두 남자가 등장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목욕이라는 주제는 예로부터 그림의 주제로 자주 사용했고 이러한 그림에는 자연스럽게 누드, 특히 여인의 누드가 등장했다. 다만 마네는 전통적인 주제를 현대적인 내용으로 각색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1863년 살롱에서 거절당했다. 비록 주제는 전통적일지 모르지만 기존의 누드화가 갖는 신비롭거나 고상한 느낌과는 달리 너무나도 현실적이면서 아름답지 못했다. 이에서 심사위원들이 느꼈을 당혹감이 어느 정도 짐작이 되기도 한다. 그림의 테크닉 또한 그리다 만 것 같은 투박함과 구도나 시점의 엉성함에서 드러나듯이 이 그림은 완성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풀밭 위의 점심식사](1863) - (좌) / [올랭피아](1863) - (우)

한편 1863년 살롱에서 낙선작이 너무 많이 나오는 바람에 예술계에서 비판이 일었고 정부측에서 할 수 없이 낙선자전을 따로 열기에 이르렀다.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심사위원단이 아닌 대중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예술의 움직임에 부응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마네의 그림을 본 대중의 반응은  마네의 기대와는 달리 가히 충격적이라 할 정도로 폭력적이었다. ‘저속하고’ ‘외설적’이라는 평가는 스캔들을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마네는 졸지에 관심 좀 받겠다고 무리수를 던진 ‘관종’으로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루브르에 걸린 대가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그림을 사랑하지만 그들과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이 시대 화가들의 일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한 마네의 시도가 그리도 비난을 받고 욕을 먹어야 하는 일이었을까. 자신감이 넘치고 위트가 넘치는 마네였지만 참혹한 평가에 낙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념이나 사명으로 시작한 일이었다면 실망할 필요도 없고 회복의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저 자신이 좋아서, 오로지 자신의 자유의지로 한 일이었기에 대중의 이러한 반응에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것은 물론 낙심도 하고 실망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치밀하게 계획한 일도 아니고 누가 시킨 일도 아니며 누구와 동조하지도 않았기에 이러한 평가에 대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따지지 않았고 따질 수도 없었다.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친구들에게서 위로를 받기도 했지만 그것이 마네를 지탱하는 힘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네는 또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 혼자서 독립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갈 뿐이었다.  

1865년 마네는 어찌보면 [풀밭 위의 점심식사] 보다도 더 대담한 [올랭피아]로 살롱에 출전했고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이 그림은 그해 살롱에 입선이 되었다. 역시나 여인의 누드인 [올랭피아]는 여전히 대담한 포즈에 화면 밖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도발적인 시선, 이에서 더 나아가 온갖 치장을 했음에도 저속함을 감출 수 없는 태도와 분위기로 그만 더욱 더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고 말았다. 사실적인 묘사에서 오는 다듬어지지 않은 몸매와 몸가짐이 충격적일 수 있고 아름답다는 느낌이 전혀 없는 누드에서 역겨움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으로 포장하지 않았다고 해서, 실제 일상에서 보는 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고 해서 그것이 그리도 역겹고 천박하며 비난받을 만한 일일까. [올랭피아] 속 여인은 진정 아름답지 않은 것일까.

마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마네 또한 억울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마네는 자신이 살아가는 파리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안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주변의 사람들 또한 너무나 사랑했다. 당연히 마네는 이 모든 사랑스러운 것들을 그림에 담아냈다. 스튜디오에서 조각을 보며 과거와 똑같은 아름다움, 박제된 고전미, 정형화된 여성미를 무한 생산하는 것이 화가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눈을 현실로 돌리면 얼마나 아름답고 생생하며 또한 새로운 것들이 많은가. 그림이란 화가에 의해 자의로 재탄생된 또 다른 세계가 아닌가.

단지 그 뿐이었다. 이를 어떠한 그림의 사조나 화풍으로 설명하려고 하거나 당시의 어떠한 시대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따라서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상을 현재로 잡았으니 사실주의라고 할 수 있고 야외에서 길을 가다 만나는 풍경과 사람들을 그렸으니 인상주의라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당시 전통적인 예술사조와 권위적인 살롱의 갑질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려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마네는 일종의 선구자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마네는 어느 사조에 엮이거나 하나의 그룹으로 묶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동료 화가들을 후원하거나 그들의 화풍에 동조하기도 하면서 어울리기는 했지만 그들과 딱히 그림에 대해 논쟁을 하거나 강한 주장을 하지는 않았다. 모네, 르느와르, 드가 등 인상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열린 ‘독립예술가전’에 한 번도 전시를 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꾸준히 살롱에 그림을 출품하면서 자신의 그림이 당선이 되고 인정을 받기를 고대했다. 때문에 반살롱을 외치던 드가로부터 엄청난 조롱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렇듯 새로운 흐름의 선구자인 듯하면서도 여전히 살롱에 연연하는 듯하기도 하기에 마네의 위치는 다소 애매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림에 대한 마네의 솔직하고도 확고한 태도였다. 그것이 어느 누구에 의해 동조되거나 비난받을지언정 마네는 분명히 그림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보였다. 즉, 마네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그렸고 그것을 그림이라는 장치에 맞춰 자유자재로 실험하듯이 그렸다. 때문에 자신의 취향이나 관심에 따라 주제가 왔다갔다 하고 종횡무진이어서 마네의 그림 중에는 ‘이 그림이 마네 그림이었나’ 싶은 그림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구도나 시점, 붓칠이나 색깔 등 테크닉에 있어서도 어떠해야 한다는 틀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그렸기에 어딘가 어색하고 이상하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네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군더더기 없는 시원시원함과 투박한 듯 진실된 모습 때문인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고 억지로 꾸미지 않은 편안함이 느껴지는 것이 매력이다.  

[카페에서](1878) - (좌) / [스튜디오에서의 아침(검은 재킷)](1868) - (우)

이러한 매력은 오로지 자신이 살아숨쉬는 파리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를 그림에 담아내는 것이 마네에게는 크나큰 행복이었고 파리를 거니는 일이 그림의 영감을 얻는 일이었으며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그림에 담아낼 아름다운 소재로 보였다. 

하지만 마네는 일상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듯 캔버스에 그대로 옮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연극적인 듯 어두운 배경에 특이한 의상이나 제스처를 취한 인물화를 그리기도 하고 마치 그림을 위한 장치라는 듯이 꽃이나 과일 등 정물을 한쪽에 느닷없이 배치하는 등 그림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과 장치들을 적극 활용했다. 따라서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화면 밖을 뚤어지게 응시하면서 교감을 시도하거나 사색에 잠긴 듯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현실을 약간 비틂으로써 마치 현실 밖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듯 약간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인물들의 행동이나 모습에서 부자연스러움도 느껴진다. 배경 또한 거울을 등장시키거나 초점을 과장함으로써 마치 여러 공간이 중첩되어 있는 듯 보이기 때문에 인물의 상태나 배경에 대한 이해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 강한 생명력이 마네의 그림에서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그림 속 등장인물들이 딱히 무엇을 하고 있지도 않고 어떠한 극적인 순간을 담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일상의 순간을 살아가고 있고 때로는 멍 때리며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은 그 상태, 그저 이야기를 나누고 누군가와 함께 있고 거울을 보고 생각을 하고 있는 그 상태가 살아있다는 것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은 사람마다 다를테지만 적어도 마네에게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점하고 편안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그 모습에 다름 아니었을까 싶다. 

[폴리 베르제바의 바](1882)

이러한 삶에 대한 열망은 아마도 마네가 매독 합병증으로 다리가 썩어들어가는 병에 걸러 파리 변두리에서 요양을 하거나 다시 파리로 돌아와 거동도 잘 하지 못해 집 안에만 있어야 할 때 가장 강했을 것이다. 그 좋아하는 파리를 마음껏 걸어다니며 보이는 모든 것을 눈에 담고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곧 살아있는 것이었던 마네. 끝내 다리를 절단하면서까지 삶의 의지를 불태웠지만 얼마되지 않아 50 중반의 나이에 결국 숨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마네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림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고통 중에도 하루에 몇 시간씩 그림을 그리며 마지막으로  남긴 대작 [폴리 베르제르의 바](1882)는 마네의 마지막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삶에 대한 다양한 시선이 녹아있다. 다소 우울한 듯 사색에 담긴 중앙의 여인은 화면 밖의 어딘가를 응시한 채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실제의 공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며 시끌벅적 활기가 넘친다. 심지어 여인의 뒷모습을 비춘 듯한 거울 속 여인은 한 남성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다른 이들의 모습은 물론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모습까지도 마치 멀리 떨어져서 보고 있는 듯한 여인의 모습은 마네 자신을 투영한 것일까. 인생의 중년을 넘겨 노년을 향하는 시점에서 병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 마네의 심정은 착잡하면서도 아쉽고 허망하면서도 아련한 그 무엇이지 않았을까. 

복잡한 그 마음을 더욱 엉클어놓고 더욱 휘저어놓는 것은 어쩌면 50이 넘어서도 식지 않은 삶에 대한 열망이 아니었을까. 흔히 50의 나이를 삶에서 한풀 꺾인 시기로 보곤 한다. 외모나 몸이 예전과는 눈에 띄게 다르고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보다 앞으로 살날이 더 적게 남았다고 생각이 드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죽음에 더 가까워지는 시기, 마네는 병으로 인해 막연함을 넘어 확실히 죽어가고 있었다. 죽음을 마주하며 더욱 부여잡게 되는 삶에의 의지. 마네는 이 마지막 대작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것은 지나온 삶에 대한 회한 한 스푼, 나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계속될 삶에 대한 동경 한 스푼, 마지막 삶의 고삐를 쥐고 있지만 너무도 선명하게 끝이 보이는 삶에 대한 미련 한 스푼...

마네의 그림에 언제나 등장하던 정물은 어김없이 여인 앞 탁자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오렌지 더미와 유리병에 꽂힌 장미꽃 두 송이. 가슴에 달린 꽃송이는 마치 지금이 최고의 순간인 듯 절정이다. 하지만 이 꽃들과 오렌지는 곧 시들어갈 것이고 인간의 삶 또한 마찬가지로 마지막을 향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많은 순간 잊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마네도 아마 지금까지는 그랬을 것이다. 그림 속 여인은 자신의 마지막을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 이 그림을 그리면서 마네는 자신의 마지막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토록 생동감이 넘치고 찬란한 생의 한가운데 혼자서 죽음을 생각하는 마음은 어떠한 것일까. 

마지막 마지막 순간까지 그린 꽃 그림들(1882-1883)

마네는 병상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밖에 나갈 수 없을 때에도 작은 캔버스에 꽃그림을 그렸다. 친구와 지인이 보내주는 꽃을 마네는 기쁘게 받고 그것을 그림으로 옮기며 화려하고 탐스러운 최고 절정의 순간을 자신의 눈에 가득 담고 또 담았다. 그렇게 그린 16점의 꽃그림들은 그 무엇보다도 생생하고 싱그럽고 아름답고 찬란하다. 마치 죽음을 향하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의 생을 만끽하고 있는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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