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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와여정 Oct 15. 2024

죽음을 받아들이다 (1)

[노년의 화가는 무엇을 그렸나] - 에두바르드 뭉크

그림이 곧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던 뭉크는 자신의 그림과 헤어지는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자신의 내면을 쏟아 부은 그림이 팔려나가야 할 순간이 오면 그는 비슷한 그림을 그리거나 판화로 다시 탄생시켜 자신의 화실에 남겨두고 싶어했다. 뭉크는 자신의 그림이 하나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연작 또는 시리즈의 형식으로 함께 감상해야만 비로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뭉크의 그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절규’(The Screen, 1893)지만, 뭉크의 다른 그림들을 보는 순간 우리는 그의 그림에서 보편성만큼이나 특이성을 발견하게 된다. 실체가 없는 공포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고 있는 그림의 주인공에게서 자신을 엿보는 것이 어렵지 않기에 이는 현대 미술의 대표작이라 할 만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인생의 편린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결핵으로 엄마를 잃고 9년 뒤 자신의 누나마저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뭉크에게 죽음과 병은 언제나 주위를 서성이는 공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취약하면서도 병적인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감추는 게 더 편하고 자연스러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그림은 보이지 않는 그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도구가 되었다.  

감추는 듯 드러내는 그의 그림은 무척 강렬하지만 직접적이거나 공격적이지는 않다. 우리는 그의 고통을 분명히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은 밖을 향한다기 보다는 안을 향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더욱 더 다가가게 한다. 이는 그의 그림에 공감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뭉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인체를 해부함으로써 외연의 완성을 추구했다면 나는 영혼을 해부함으로써 내면을 다루고 나 자신의 인생과 그 의미를 설명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한 1889년 파리를 방문하면서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대상을 건조하게 다루는 인상주의 대신 ‘살아 숨쉬고, 느끼고, 고통받고, 사랑하는 인간을 그려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함으로써 자신의 색깔을 취하게 된다. 

1890년 그림 ‘Spring Day on Karl Johan Street’와 1892년 그림 ‘Evening on Karl Johan Street’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쇠라의 포인틸리즘의 영향을 받아 후기 인상주의 화풍으로 그린 1890년 작품은 봄날의 거리 풍경을 한가로이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채워넣은 전형적인 인상주의 그림의 주제와 화풍을 차용한 실험작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햇빛이 충만한 거리는 포근함이 느껴지고 그 곳을 총총히 걸아가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은 더없이 여유롭고 한가로워 보인다. 사람들은 단지 풍경의 한 부속품일 뿐 햇빛이 반짝이는 거리는 따스함과 찬란함, 고요만이 가득하다.  

[칼 요한 거리의 봄날](1890) - (좌) / [칼 요한 거리의 저녁'(1892) - (우)

반면, 1892년 작품은 여러 영향과 실험을 거치며 비로소 자신의 화풍을 확립한 뭉크의 특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1890년 작품과 똑같은 거리와 풍경, 그 안의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림이 전하는 분위기는 정반대에 가깝다. 우선 시간이 낮이 아닌 밤이 되었고 거리의 사람들도 등을 돌리고 걸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면을 향하여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텅비어 있는데 그들의 내면이 공허한 때문이리라. 마치 유령과도 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희번덕거리고 있지만 이는 분명 위협적이지 않고 연민을 자아낸다. 내면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며 공허해진 것인지,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것인지, 얼어붙은 표정이나 뻣뻣해진 몸과 달리 가슴 속에는 격정이 몰아치고 천둥이 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그림 속 인물들이, 즉 그림 속 인물들로 대변되는 자신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뭉크는 이 그림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묘사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거리에서 마주쳤는데,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짓고는 이내 그를 지나쳐 가 버린 것이다. 그 때의 뭉크의 마음이 어땠을지를 연상하면서 그림을 보는 순간 비로소 그의 그림이 얼마나 절묘하면서도 개인적인 그림인가가 비로소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의 그림이 개인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은 것은 바로 그 절묘성에 있었다. 분명 가슴이 사정없이 뛰고 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다 보니 표정과 몸짓은 어색하기만 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경직되어 있다. 좋은 기회를 흘려버린 것만 같아 안타까우면서도 멍청한 자신을 탓하며 후회하는 것은 이미 지나버린 일에 대한 것이다. 뭉크는 바로 순간의 절망을 절묘하게 포착했다. 그것이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이지만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인생의 순간을 담아냈기에 뭉크의 그림은 개인 내면에 바탕한 진솔한 인간의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그의 그림은 질투와 공포, 절망과 슬픔 등 개인적인 감정을 다루고 있지만 그가 다루고 있는 소재는 지극히 보편적이다. 사랑과 생명, 그리고 죽음이 그것이다. 이른 나이에 마주친 죽음의 경험으로 인해 그의 그림이 우울하고 불안하며 병적으로 죽음에 집착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정도의 차이일 뿐 누구나의 인생을 수놓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깨달음의 순간 또는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순간은 느닷없이 다가오는 것이기에 어느 누구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로는 버겁고 힘에 부쳐 무너지기도 하고 안간힘을 써 저항하기도 하면서 힘겹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뭉크에게 인생이란 이렇듯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것은 죽음의 연속이었고 절망의 연속이었으며 고통의 연속이었다. 짙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는 그의 그림 곳곳에 무거우면서도 어둡게 자리하고, 생명을 잉태하지만 동시에 팜므파탈의 치명성을 가지고 있는 여성은 때로는 순수하지만 때로는 몽환적이고 때로는 강렬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뭉크의 그림이 어두움으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 생명이 가득한 풍경을 나무와 열매로 표현하기도 하고 육체적 노동의 강인함과 결실을 건장한 남성의 무리들로 나타내기도 했다. 오슬로 대학의 메인 강의실을 수놓은 그림들은 개인적이기 보다는 보편적인 접근방식을 취한 역사화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삶의 긍정과 무한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웅장함이 가득한 것이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뭉크의 인생을 담은 그림들은 다소 음울함과 어두움에 잠식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파괴적이거나 위협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연민을 자아내거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기에 그의 그림에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그림의 주제를 찾아 내면을 향한 뭉크는 그 내면을 표현함에 있어 화산처럼 분출하는 폭발성 대신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격렬함을 선택했다. 퀭한 눈을 하고 무표정한 표정은 텅빈 공허함을 나타내는 듯하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큰 충격에 얼어붙은 것이며 귀를 틀어막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들은 끓어오르는 슬픔을 힘겹게 억누르고 있는 모습이다. 하나같이 안쓰럽고 측은하며 다가가 안아주고 싶지만 고통은 각자의 몫이라는 듯 뭉크의 그림 속 인물들은 철저히 혼자다.  

‘Death in the Sickroom’(1894-95) 속 인물들은 같은 슬픔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어느 누구도 서로 부등켜 안거나 흐느끼기 보다는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내면화하고 있다. 휑한 눈으로 정면을 향하고 있는 누이나 의자에 앉아 두손을 꼭 쥐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누이나 등을 돌린 채 죽음을 응시하고 있는 뭉크 자신이나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온전히 느끼고 있는 것이다. ‘The Scream’(1893) 속 자신을 형상화한 인물인 비명을 지르고 있는 사람은 불안과 공포가 휘몰아치는 내면의 풍경을 외부의 풍경에 효과적으로 투사하고 있다. 하지만 멀찍히 떨어져가고 있는 두 명의 친구는 이와는 철저히 동떨어진 채 극단적인 원근법의 표현으로 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병실에서의 죽음](1894-1895)

이렇듯 뭉크의 그림에 흐르는 전반적인 아우라는 슬픔과 고독인 것이 분명하다. 자신의 인생을 그림으로 기록하고자 했던 뭉크에게는 따라서 자화상이 가장 사실적이면서도 솔직한 그림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첫번째 자화상이었던 ‘Self-Portrait’(1881-82) 속 뭉크는 다소 풀린 눈에 꽉 다문 입술로 화면 밖을 응시하고 있다. 하지만 밝게 드러난 오른편의 얼굴과 달리 어둠에 감추인 왼편의 얼굴은, 비록 비스듬히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활활 빛나고 있다. 과연 뭉크는 인물화의 눈을 표현함에 있어 내면을 드러내는 창문으로서의 눈이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보는 현미경으로서의 눈으로 인식한 듯하다. 드러난 오른쪽 눈은 오히려 무미건조하기까지 하지만 어둠 속에 가려진 왼쪽 눈은 또렷이 빛나고 있다. 즉, 뭉크의 눈은 어둠 속에 가려진 내면을 향해 불타고 있는 것이다.

1895년 작 ‘Self-Portrait with Cigarette’ 또한 담배 연기에 가려 형체가 희미하게 지워진 중에도 그의 두 눈은 동그랗게 불타고 있다. 마치 놀란 토끼눈처럼 화면 밖을 향하고 있지만, 마치 감추고 싶은 무언가를 들킨 듯 당황한 것도 같지만, 사실 그는 자신의 취약함을 이러한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후 뭉크의 자화상은 더욱 실험적이고 과감하게 나아갔다. 1906년 작 ‘Self-Portrait with Wine Bottle’은 언제나 죽음의 그림자에 짙게 눌려 사는 불안한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꼭 쥔 두 손과 축 쳐진 어깨는 죽음과 불안의 무게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무력함을 나타내는 듯하고 군데군데 어두운 색으로 덧칠한 얼굴은 수심과 폐색이 만연하다. 그의 뒤에서 서성이고 있는 타인들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군중 속의 외로움을 나타낸 것일 수도 있고, 끈질기게 뭉크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괴롭히는 죽음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평생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짓눌려 살았지만 장수를 누린 뭉크는 자신의 노년기에 이를수록 노쇠한 자신의 육체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자화상을 많이 남겼다. ‘Self-Portrait after the Flu’(1919) 속 뭉크는 플루에 시달려 노쇠한 몸이 더욱 더 힘이 없어진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침대 옆 의자에 걸터앉아 화면을 응시하고 있는 뭉크의 얼굴은 형체가 거의 지워진 채 벽과 같은 창백한 낯빛을 하고 있다. 허리를 곧추 세울 힘은 물론이고 입을 꼭 다물 힘조차 없는지 입을 살짝 벌린 채 얼굴도 어깨도 모두 아래로 쳐져 있다. 벽의 한쪽 면에는 문이  열린 듯 보이는데 밖은 온통 어두움 뿐이다. 마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듯 생기가 없고 음산하기만 하다.

[와인병이 있는 자화상](1906) - (좌) / [시계와 침대 사이의 자화상](1940-1942) - (우)

이러한 음산한 분위기는 오히려 뭉크 말년의 마지막 자화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Self-Portrait between the Clock and the Bed’(1940-1942) 속 뭉크는 노쇠한 몸에 검은 낯빛을 하고 있지만 최대한 자세를 바로 한 채 꼿꼿이 서 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제목에서처럼 침대와 시계 사이다. 하지만 보통 침대가 의미하는 죽음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잘 정돈이 되어 있고 시간의 흐름, 즉 역시나 유한한 인생을 의미하는 시계의 바늘도 사라져 있다. 열려진 방문 사이로 보이는 음침한 공간도 한편에는 햇빛이 비치는 듯 환하게 그려져 있다. 평생을 죽음의 그림자에 짓눌려 산 뭉크의 마지막 깨달음은 어쩌면 죽음이라는 허상의 공포에 대한 깨우침이었는지도 모른다. 연민과 공감을 자아낸 ‘절규’의 작가 뭉크의 노년의 자화상을 통해 뜻밖의 용기와 희망을 발견하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모순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마지막 ‘소리없는 아우성’이 더욱 의미있는 이유는 비로소 죽음과 공포를 초월한 것만 같은 그 의연함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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