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상 속에는 이제는 너무도 자연스러워 그 인과관계를 따지지 않고 그냥 받아들여 버리고 살아가는 것들이 너무 많다.
‘과학적’이란 말에 더 깊은 사고를 하지 않고 믿어버리는 경향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그에 대해 짧게 써보려 한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터이니 잠깐 한 숨 크게 쉬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중력은 과학적 사고에 의하여 발견되기 전에 이미 있었다.
과학적 사고가 있었기에 중력이 생겨난 것은 아니다.
또 만약 태초에 거대한 폭발이 있었음이 확인되고,
연구에 의하여 폭발의 과정이 샅샅이 분석 된다고 하더라도,
과학은 A와 B가 작용하여 폭발했음을 찾아낼 뿐이다.
혹은 폭발의 원인은 A와 B였음을 발견할 뿐이다.
여기서는 ‘왜’ 폭발이라는 활동이 존재하는지,
그 폭발이란 활동을 완성하기 위해 ‘왜’ 굳이 A와 B의 재료를 필요로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의 답은 찾을 수 없다.
(그리고 발견되어진 것들을 활용하는 것을 ‘응용과학’이라 부르고 그것을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실체화 하는 것을 ‘기술’이라 부른다.)
위와 똑같은 말을 다시 설명 하자면
빛의 속도(진공 상태의)가 3.0×10⁸m/s 라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 과학이 하는 일이며,
빛의 속도를 3.0×10⁸m/s로 정하는 일은 과학이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빛의 속도는 발견되기 전부터 정해져 있던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이 할 수 없는 일, 하지 않는 일을 가지고
과학의 이름을 빌어 특정 명제를 판명하고 결정하는 일은 더 이상 과학이 아니라 종교다.
그것은 합리적 사고가 아니라 일종의 ‘믿음’인 것이다.
우리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명목 아래에 얼마나 많은 믿음을 안고 사는지 모른다.
과학이 이 우주에 있는 셀 수 없는 수많은 법칙을 발견해나가기 전(어쩌면 아직도 발견되지 못한 법칙들이 더 많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존재해왔던 법칙들은,
그렇다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무엇이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인가
나 자신은 아님이 분명한데 그러면,
자율신경이 심근세포에 작용해서.
전기적 신호가 작동해서.
- 그 법칙들은 왜 그렇게 정해져 있는 건데?
과학적으로 설명해봤자 원초적인 설명은 할 수 없다.
빙글빙글 돌 뿐이다. 그게 과학의 테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