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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From Korea Feb 28. 2023

이란 ‘반히잡 시위’ & 인도네시아 무슬림의 유연성

이란과 인도네시아 이슬람교의 폐쇄성과 개방성


“인도네시아 이슬람교는 나일롱 아닌가요?”


인도네시아는 약 2억 7천만 명 인구 가운데 

87~88% 정도가 이슬람교도입니다. 

세계 최대의 무슬림 국가입니다. 


인도네시아 주재원 시기, 

수도 자카르타를 방문했던 분들은 아랍이 아닌 인도네시아가 1위라는 얘기를 듣는 순간 많이들 놀라곤 했죠. 


이어서 식사할 때는, 이슬람 사회임에도 술과 돼지고기를 허용해 주는 문화에 다시 한번 눈을 크게 뜹니다. 

그리곤 웃으며 “너무 융통성 있는 이슬람인 것 같은데~”라고 꽤 자주 이야기들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경시하듯이 ‘지나친 융통성’ ‘나일롱’ 언급을 하는 건데, 그냥 장난스럽게 웃고만 넘기기에는 아쉽습니다. 한번 생각해 볼 부분이 있습니다.






2022년 9월 13일 이란,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는 가족과 함께 테헤란에 왔다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고 종교경찰(Morality Police)에게 구금됩니다. 


그리고는 조사를 받다가 갑자기 쓰러져 의식불명이 되고 3일 후 숨집니다. 이른바 '히잡 미착용 의문사'가 발생하고 다음날부터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지며 반정부 시위로까지 확산됐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00여 명이 넘는 시위대가 사망하고 계속 사상자는 늘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이란 당국의 강경무력진압에 대한 규탄 시위도 확대되었죠. 






히잡(Hijab)은 아랍어로 ‘가리다, 숨기다’ 의미입니다. 이슬람 여성들이 머리·목 등을 가리며 쓰는 두건을 가리킵니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상징하면서도 여성의 자유의지를 억압한다며 비판의 대상도 됩니다.


이란에서는 만 9세 이상 모든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써야 합니다. 예외 없이. 


그러나 반드시 쓰지 않아도 되는 국가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인도네시아입니다. 


약 2억 3천만 명이 무슬림인 곳임에도 히잡을 쓰지 않는 젊은 무슬림 여성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너와 내가 쓰든 안 쓰든 서로 상관하지 않죠. 상대방이 술을 마시든 돼지고기를 먹든, 무슬림인 본인이 먹지 않으면 오케이입니다. 


인도네시아는 확실히 융통성 있는 소프트한 이슬람교 분위기입니다. 강성인 곳도 물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타인·타종교에게 관용적입니다.






이란 또한 과거에는 여성들이 히잡 착용을 강요받지 않았고 미니스커트나 수영복도 자유롭게 입었습니다. 1979년 이란 혁명 전까지는. 당시 전제왕정의 독재와 무능·부정부패에 맞서 다양한 종교지도자·민족주의자들이 뭉쳤습니다. 그리고 팔라비(Pahlavi) 왕조를 축출하는 데까지는 성공합니다. 


그러나 강성 이슬람 세력에서 다른 종교지도자 및 반대파들을 숙청하면서 다양한 연합의 이란 혁명이 이슬람 혁명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이슬람 종교지도자가 절대권력을 갖는 신정일치 국가가 되었습니다.






최고지도자(Supreme Leader)는 종신직 국왕 같은 지위로서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입니다. 군 통수권, 사법수장 임명권, 대통령 인준·해임권 등을 가지고 있죠. 이란 파견·주재원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사실상 독재가 이루어집니다. 


이슬람 체계를 수호하는 혁명수비대나 종교경찰에게 체포되는 것을 과거 우리나라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는 것으로도 비유합니다. 즉 ‘반히잡 시위’ 촉발이 된 아미니 의문사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처럼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로 여기면 된다는 거죠. 


현재 지속되는 이란 시위는, 단지 여성의 성난 목소리가 아닙니다. 전 세대의 다양한 구성원이 참여하는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위한 시위인 겁니다. 포용성은 없고 폐쇄성만 있는 신정국가 안에서.






한편 유연성의 인도네시아 이슬람교를 살피기 위해서, 1945년으로 갑니다. 우리가 일제치하에서 광복을 맞이한 때, 인도네시아도 공화국 독립선언과 함께 건국 헌법을 채택합니다. 그러나 이후 4년간 네덜란드와 독립전쟁을 벌이는데 결국 몰아냅니다. 


여기서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이 대다수이지만 국교로 삼지 않습니다. 외세와의 독립전쟁을 통해 갖게 된 공동체정서와 애국심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드넓은 땅의 다양한 민족을 포용하기 위해 종교국가가 아닌 정교분리의 세속주의를 표방합니다. 모든 종교를 아우른 거죠. 현재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교외에도 개신교, 천주교, 힌두교, 불교, 유교를 공식 종교로 인정하고 각각의 주요 기념일을 모두 공휴일로 합니다. 


사실 언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인도네시아 건국의 아버지들은 다수의 중부지역 자바어를 표준어로 하지 않고, 다양한 지역에서 두루 사용되던 말라유어(Melayu)를 언어(Language)라는 의미의 Bahasa 단어를 사용하여 Bahasa Indonesia로 명명하며 표준어로 삼습니다. 


즉 통일된 하나의 조국, 인도네시아로서 종교와 언어 등을 포용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시위가 있지만, 이란의 ‘자유를 달라!’ 같은 유형은 없습니다. 그건 그야말로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니까요. 






신정일치의 폐쇄성과 배타성을 보여주는 이란의 이슬람 체제와 비교했을 때, 인도네시아의 소프트한 이슬람교는 융통성 속에서 다양함에 대한 포용성을 보여줍니다. 비록 일반 정통 교리를 내세운 중동의 국가들과는 결이 다를지라도, 인도네시아 이슬람교를 폄하하듯 ‘나일롱 이슬람교’라 쉽게 얘기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표면적으로는 정통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과격 이슬람주의 행태를 보이는 종파들과 견주어서, 일방주의적 폐쇄성이 아닌 문화 상대주의적 포용과 공존을 보여준 경우로 음미해 볼 만하다 생각됩니다. 아울러 다시금 인도네시아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한국에는 테헤란로가 있고 이란에는 서울로가 있습니다. 폐쇄적이었다면 당연히 실행되기 어려운 국가 간의 교류 케이스입니다. 자연스럽게 예측이 되죠. 이름 교환은 상대적으로 개방성이 있었을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일 거라고. 실제로 1977년입니다. 


지난 2009년 6월 이란에는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이 있었습니다. 부정선거 의혹의 대통령 선거 무효화와 재선거를 요구한 전국적 시위였습니다. 가슴에 총격을 받고 사망한 시위대의 한 여대생은 ‘더 타임스’ 선정 ‘올해의 인물’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시위대는 강경 진압되며 시위는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지 분위기는 2009년 이상입니다. 더 확산된 시위 열기와 그에 못지않은 무자비한 진압이 계속 진행 중이라고 하는데… 두 국가를 바라보며 무슬림의 다양성을 응원하게 됩니다.






*** 상기 관련 이데일리 칼럼 기재한 지 시간이 좀 흘렀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인도 주재원 시기에 알게 된 이란 친구 소식을 들었습니다. 일종의 기득권층이라 할 수 있는 사업가 집안의 자녀임에도 시위에 나섰다는 겁니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몇 차례 바꾸기도 했다는 거죠. 언젠가 건강히 만날 그 친구를 생각하며 해당 칼럼을 브런치 버전으로 남겨봅니다.




From  JF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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