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정서랍 Feb 26. 2024

진실 하나. 성공포르노에 빠지는 이유

왜일까?

왜 성공포르노에 빠질까? 사실여부가 불투명한 에피소드와 뻔한 명언으로 포장된 이야기에 사람들은 왜 열광하는가?


특히 사실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것은 성공포르노에 관한 글을 쓰게 된 계기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데, 강연이나 저서를 소비하는 이들은 판매자와의 정보서열에서 꽤나 불리한 입장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권위의 원칙을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간절함을 매개로 하기에 수요자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힘들다.


또한 누구나 알 법한 '꾸준히 해라', '죽기 살기로 해라'라는 정보는 뻔하디 뻔하기 때문에 화자가 누구인지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앞으로 성공 강연과 저서를 주수입으로 삼는 이들을 '판매자'라고 칭하겠다.



성공포르노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꼽을 수 있다.


첫째, 기나긴 마차행렬

1848년 미국, 서커스단 광대 댄 라이스가 휘그당 후보 재커리 테일러를 자신의 마차에 태우자 그를 따르던 군중의 행렬이 마차를 따라 길게 늘어섰다. 이 행렬은 꽤나 큰 파급력을 가져왔고 테일러는 제12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후 그때의 마차행렬에 착안한 '밴드웨건 효과'가 탄생했다.


밴드웨건 효과는 한마디로 다른 사람의 수요가 누군가의 수요에 영향을 끼치는 현상을 뜻한다(수요가 수요를 낳는다).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듯, 대중들은 자신의 소신을 내비치기 보단 대세에 편승해 다수가 지지하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편승효과'라고도 한다.


이른바 '성공 장사'를 하는 판매자들은 이 현상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추종자를 모으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사업 초기에도, 번창한 후에도 여론 조작을 위해 여러 개의 계정을 구매해 댓글 공작을 펼치는데 (그렇지 않다면 앞서 얘기한 '100명의 직원'에게 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는 소수의 목소리가 다수의 여론으로 둔갑하는 현상으로 발전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조작된 목소리만을 내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순수한(?) 추종자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크기 때문이다.


둘째, 매몰비용의 오류

성공 강연에 매료된 사람들은 판매자를 존경하고, 이 존경은 지출로 이어진다. 꽤나 큰 비용을 치르고 판매자들이 늘어놓은 '성공하는 비법'을 듣고 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일정 시간이 지나거나 분량을 소비하면 환불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때 이성적인 사고를 마비시키는 또 한가지 요소가 발현된다. 매몰비용의 오류다.

매몰비용의 오류란 이미 투자한 재화나 노력이 크면 클수록 소비한 상품의 가치를 더욱 크게 매기는 현상을 일컫는다. 우리가 비싼 자동차를 사거나 휴대폰을 큰 맘 먹고 샀을 때 나쁜 리뷰를 애써 찾아보지 않는 이유와 같다. 돈과 시간을 쏟아 부은 추종자들은 그 비용이 클수록 판매자를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만일 판매자가 틀렸다면,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자신은 비용을 내다버린 꼴에 지나지 않으니까 판매자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고 변호하는 데에 일조한다.


여기에 판매자들이 추종자를 모집하는 것에 각고한 노력을 기울이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추종자들이 비판자들을 몰아내는 역할을 자처하기 때문이다. 성공 강연 유튜브들을 둘러보면, 댓글창 상단 대부분이 추종자들의 '감사 인사'와 '내 인생이 이만큼이나 변하고 있습니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판매자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낸다면 말 그대로 벌집을 건드리는 셈이다. 추종자들은 판매자가 얼마나 감사한 사람인지, 자신이 그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밝히는 데에 주저가 없다. 설령 판매자를 향한 비판이 올바른 것이라도 그들이 설득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그들에게 논리는 믿음이요, 이성은 맹목으로 갈음됐으니까.


셋째, 뭔가를 하고 있다는 착각

올해로 30살이 된 A씨는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가 더욱 비참하게 느껴진다. 주변 친구들은 취직을 했고 차를 샀고 돈을 번다.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해외여행을 갔더랬다. 옆집 민수는 의대에 합격했고 부모님은 이제 취직하라는 얘기도 하지 않는다.

A씨는 이 현실을 어떻게 타파해야 할지 골똘히 고민한다. 대개 이즈음에 인간군상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운동을 시작하고 자기계발에 몰두한다. 자격증을 따고 현실과 타협해 중소기업에 입사한 후 커리어를 쌓는다. 둘째, 술과 담배 그리고 포르노에 빠진다. 유튜브에서 동기부여 영상과 성공 강연에 몰두한다.

A씨는 정확히 후자였다. 그는 담배와 술기운, 포르노에 멍해진 뇌를 희석하기 위해 유튜브에 접속해 동기부여 영상과 성공강연을 본다. 유명한 학자가 나와 '인생은 고통이니 정신 차려라'라고 말하는 것에 알 수 없는 고양감을 느낀다. 성공한 사람이 마이크를 들고 '당신은 뭐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라고요!'라며 격정적으로 외치면 심장이 뛴다. A씨는 그때만큼은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낀다. 가슴속에 피어나는 열정과 현실을 타파할 열망을 느낀다. 댓글에 '감사 인사'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제 A씨는 그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감정의 잔상은 영상이 끝나고 1~2시간가량 지속되다가 이내 사라진다. A씨는 그날밤 술과 담배, 포르노를 끊었을까?

동기부여라고 하지만 이 또한 일종의 도피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올바른 사람이 하는 올바른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한층 더 성숙해지고 성공에 나아갔다고 느끼기 쉽다. 정작 작은 화면 바깥에 있는 수많은 채용 공고나 정부의 고용복지정책, 집앞 편의점에 붙어 있는 아르바이트 모집글은 외면한다. 영상을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뭔가를 하고 있다는 착각에 점점 빠져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성공 강연과 동기부여는 나쁜가? 내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판매자가 뻔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추종자를 모을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하는 조언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일종의 원형을 가지고 전세계 모든 이들에게 교과서처럼 작용한다. '운동해라', '성실해라', '믿음을 가져라' 등의 말은 성공의 단초가 된다. 문제는 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몇 십만 원에서 몇 백만 원을 쓸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성공포르노에 빠지는 것이 위험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 성공이 극심한 정형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에도 다양한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4평 남짓한 방에 수십 명을 밀어 넣는다. 세계 0.1%도 되지 않는 CEO가 되라고 하고 직장인에겐 퇴사가 답이라고 말한다.


학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10대부터 치열한 경쟁으로 던져진 국민들은 좁은 트랙에서 오로지 한점만을 보고 달린다. 달리다 넘어지면 낙오자, 트랙을 벗어나면 낙마다. 성공을 꿈꾸는 욕구는 잘못이 없지만, 그 때문에 무심코 지나치는 풍경들을 한번쯤은 상기할 필요가 있다.


혹시 보았는가? 트랙 옆에서 춤을 추고 있는 괴짜들을? 길에서 벗어나, 달리는 사람들에게 물을 나눠주는 이들은? 다음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정형화된 성공에 대한 이야기다.

이전 01화 나는 억만장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