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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정서랍 Feb 29. 2024

진실 둘. 성공의 정형성

'정형화된 성공'을 맹신하는 사람들

성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고 하지만 모아보면 꽤나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다. 당연하게도 금전에 관한 모델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자아의 신화보단 금전적 신화를 우선시하는 사회적 행태가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현재 한국사회에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화이트칼라는 블루칼라를 무시하고, 블라인드에서는 회사명에 따라 발언권이 나뉜다. 누군가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냐고 물으면 연봉을 알려주면 된다.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를 통해 지적한 것과 정확히 똑같은 세태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돈이 나쁘다는 얘기도, 노력으로 이뤄낸 성과가 나쁘다는 얘기도 아니다. 다만 성공이라는 단어를 해체함에 있어서 모두가 획일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사회 어딘가가 분명 병들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렇게 정형화된 성공이 무서운 이유는 길이 오로지 한 곳으로만 뚫려있는 것처럼 착각하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부모의 압력 내지는 지인의 압력에 굴복해 사무실에서 회계업무를 담당하는 다빈치를 상상해 보라. 공공시설 민원대에 앉아 있는 아인슈타인은 어떤가? 영업사원으로 맹활약 중인 이중섭은?


성공의 정형성을 이해하려면 정형화된 성공 모델들의 예시를 알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첫째, 꾸준히 입금되는 불로소득

불로소득이란 말 그대로 '노동 없이 발생하는 소득'이다. 인간이라면 저마다 '노동 해방'과 '경제적 자유'를 꿈꾸지만 유독 불로소득과 관련한 희망은 이상하리만치 명확하다. 불로소득이라고 말하면 대다수는 건물주를 떠올리는데, 한국에서 부동산은 경제적 지위를 공고히 굳히는 역할을 한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은 우스갯소리로만 치부하기엔 꽤나 뼈가 있는 문장이다.


건물주가 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이 꿈꾸는 건물이 얼마짜리 땅에 서 있고, 어느 지역에 속해있고, 달마다 지갑을 채워주는 월세가 얼마인지 정확하게 얘기하곤 한다. 주변 환경과 각종 매체가 건물 소유를 일종의 성공의 영역으로 떠받들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부자는 대개 건물을 가지고 있다. (현실에서도 그렇다.) 건물을 가진 부자는 늘 우아한 명품을 여기저기 걸치고 나와 주인공의 관계에 훼방을 놓거나 중요한 문제를 돈으로 해결한다. 간혹 주인공의 재벌 친구가 등장해 주인공 대신 골칫거리를 없애주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현대판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인 셈이다. 건물과 돈을 가진 자라면 해결 못할 일은 거의 없으니까.


국세청이 2022년에 공표한 '부동산 임대소득 신고현황(2022년)'을 보면 임대소득 신고를 한 국내 건물주는 총 140여만 명이다. 이 중 임대소득을 벌지 못한 약 13만 명을 제외하면 건물로 돈을 버는 사람은 전체인구대비 2.4%에 불과하다.


다른 대표적 예시는 주식투자를 통한 정기적 수익이다. 주로 배당금을 가리키는데, 배당이란 회사가 1년간 벌어들인 자본 중 이익잉여금 일부를 주주들에게 분배하는 행위다. 이외에 주식시세차익도 불로소득에 속한다. 한국경제신문이 한 증권사와 협력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 217만 명의 국내 주식 평균 수익률(2020년 4월~2022년 5월)은 1.9%에 그쳤다. 해당 기간동안 코스피, 코스닥 지수가 약 50~55%가량 상승했음에도 개인투자자들은 쏠쏠한 재미를 보지 못한 셈이다. 미래를 위한 재테크는 건강한 습관이지만 빚까지 내 가면서 주식에 몰두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뜻이다. 애초에 잃을 확률이 훨씬 높다.


한편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는 파이어족은 이 글이 비판하고자 하는 바와는 거리가 멀다. 파이어족이란 Financial Independence(경제적 독립)와 Retire Early(조기은퇴)의 앞글자만 따온 신조어로, 수익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노후 계획까지 완성한 후 이른 나이에 은퇴하길 꿈꾸는 사람들을 칭한다. 그러나 이들은 부자가 되겠다는 일념보단 남들보다 덜 소비하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그리겠다는 목표가 더 크기 때문에 글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불로소득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성공모델의 비판적 예시라고 보기엔 어렵다.


둘째, 인생은 한방! 일확천금

코인, 주식, 로또 대박이다. 사실상 언급되는 성공방법 중 가장 도박에 가깝다. 특히 코인은 과열되기 시작한 2015~16년쯤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사회현상을 낳았다. 코로나19와 코인 시세 폭등이 겹친 지난 2021년 한국금융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층의 신용대출 규모가 급격히 증가했다. 다중채무자(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채무자)의 대출 잔액은 2020년 기준 2019년보다 16.1% 증가해 130조 원 규모에 이르렀다. 카드론 대출 잔액도 전년도보다 16.6% 늘었다.


그해 4월, 비트코인 관련 커뮤니티에서 마포대교 검색량이 폭증해 관할 경찰서가 비상근무에 돌입했다는 사실도 잊으면 안된다(다행히 실제 자살자는 없었다). '100만 원으로 평생 먹고 놀 수 있는 돈을 벌었다'는 허황된 이야기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까닭이다. 타인의 빚더미를 구경하며 와인을 마시는 사람은 1%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99%가 넘는 사람들은 여전히 빚으로 쌓은 산을 치우고 있다.


로또 당첨확률은 814만5천60분의 1이다. 쌀 20kg 포대 14개를 쏟아놓고 특정 무늬가 새겨진 쌀 한 톨을 한 번에 찾을 확률과 같다. 작가 앰브로즈 비어스는 이렇게 말했다. '로또는 수학을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떼어가는 세금이다.' (물론 직장인들이 일주일을 버티게끔 하는 물건 중 로또만한 것이 없다. 로또에 진심으로 목숨 걸지는 말자.)


또, 미국에서는 복권을 이렇게도 부른다. 'stupid tax'


셋째, 드디어 취뽀! 대기업 입사

누구나 꿈꾸는 기업에 합격한 것은 축복받을만한 성과다. 그간의 노력과 헌신, 모든 경험이 이뤄낸 결과물이니까.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이라면 공기업과 대기업 둘 중 하나를 꿈 꿀 것이다. 처음부터 중소기업에 입사해 최저시급에 가까운 월급으로 사회에 발을 내딛을 거라고 말하는 청년은 없다. 억대연봉, 말끔한 정장, 똑똑하고 헌신적인 동료, 남 부럽지 않은 성과급은 누구나 꿈꾸지만 현실을 한번 살펴보자.


국내경제활동인구 대다수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근로자 2천800여만 명 중에서 2천500여만 명이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대기업 종사자는 약 300만 명이다. 10명 중 9명은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셈이다.


보건복지부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제공한 2023년 대한민국 중위소득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중위소득은 207만 7892원이다. 통계청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23년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은 1인 기준 335만 3884원이다. 중위로 보나 평균으로 보나 모두가 얘기하는 연봉 1억 원과는 큰 괴리가 있다.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은 개인의 삶에 많은 이점을 안겨주며 그 누구도 이를 폄하할 수 없다. 그러나 직업에 귀천이 있다는 사상은 곤란하다. 우리는 싫든 좋든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회망에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배달기사가 없다면 당신은 택배를 제때 받을 수가 없다. 간호조무사가 없다면 간단한 채혈도 30분에서 1시간을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른다. 건설인부가 없으면 건물주가 존재할 수나 있겠는가. 직업에 귀천이 있다는 생각이 더 나아가면 자신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이런 생각은 취업준비생에게 가장 위험한데, '대기업을 준비하는 나'라는 상태에 심취해 중견, 중소기업은 없는 회사처럼 취급하는 '가능성 있는 상태'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기업에 피해의식을 갖는 경우도 흔하다. '대기업이니까 뭐든 우리보단 낫겠지'라는 생각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내가 원해서 대기업을 가지 않은 거야'라며 신포도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이러나 저러나 심리적 주화입마나 다름없는 상태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에서 직업이 삶을 유지하는 방식이 아닌, 일종의 권력망처럼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국가경제규모에 비해 엘리트주의가 극심하다는 얘기다. 물론 좋은 직업이 존경과 권력을 부르는 현상은 동물적 본능 중 하나라지만 이 때문에 사회가 멍들고 있다면 생각을 한번쯤 재고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이를 더 자세히 설명하려면 비교 사회에 대한 이야기와 예시가 필요한데, 후술할 '진실 넷. 서로에게 씌우는 차안대' 목차에서 더욱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참 이상하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둘러보고 있노라면 500만 원 이상 월세수입을 얻는 사람과 코인으로 수십 억을 번 사람이 즐비하고 성과금만 몇천만 원을 받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현실 통계는 왜 저 모양이지? 통계가 잘못된 것일까? 이 모든 악의 근원은 한국사회 특유의 비교문화와 인터넷 커뮤니티 때문이다.


단언컨대 인터넷 커뮤니티는 거대한 변기다. 현실에서 받는 불만족과 분노를 배설하는 창구에 불과하다. 온갖 폄훼와 비하, 비교, 갈라치기가 횡행하는 SNS가 이토록 부흥한 지금, 사회가 몸살을 앓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지도 모른다. 많은 시간을 인터넷에 할애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외면한 채 한남더힐을 외치며 다음날도 출근해야하는 작은 회사를 망각하고 연봉 1억을 부르짖는다.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가 제일 크다. 그렇기 때문에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좀체 보기 힘들다.


다음은 성공포르노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이야기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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