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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Jun 12. 2024

결론은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을 읽고

이 책은 총 32종류 사물의 기원을 탐구하고 있는데 일부 이야기를 잘 기억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풀어놓으면 박학다식하다는 평가를 듣기에 딱 좋을 만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대부분의 호기심 넘치는 질문은 ‘누가, 언제부터’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질문에 대해 이 책은 너무 심각하지는 않은 수준에서 훌륭한 대답을 제공하고 있다.

  

어떤 사물의 기원이 반드시 인간이 문자를 사용하여 기록을 남긴 이후에 시작되었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적 지식만으로 사물의 기원을 탐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다행히도 이 책의 저자는 고고학자이기 때문에 발굴된 유물을 토대로 사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역사 기록의 한계를 훌륭히 메워주고 있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가 이렇게 역사학과 고고학이 상호보완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네 개의 테마 중 첫 번째였던 ‘잔치: 요리하고 먹고 마시다’였다. 막걸리, 소주, 김치, 삼겹살, 소고기, 닭, 상어 고기, 해장국의 기원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읽으면서 배가 고파지거나 목이 마르는 것 같은 느낌도 살짝 들었다. 막걸리와 맥주가 사실은 같은 술이었고, 우크라이나에서도 염장을 한 생삼겹살을 즐겨 먹었으며 신라는 닭을 숭상한 나라였다는 등의 사실이 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책의 기본 목적은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을 찾는 것이겠지만 사실 누가 처음으로 어떤 사물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도 세계 각국에서 해당 사물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유물이나 그러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문서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국가·지역·문화권별로 고유의 특성은 분명 있겠지만, 비슷한 사물이 전 세계에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거듭해서 목격하고 나니 인간이라는 같은 종의 보편성이 이렇게도 강력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를 외치게 된다. 저자도 책 곳곳에서 이러한 내용을 강조했는데 그중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친다.


원조 유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당 문화의 현대적 의미와 보편적 가치다. 이는 유네스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하며 붙인 타이틀, ‘김장: 김치를 만들고 서로 나누기’에서 확연히 알 수 있다. 선정위원회 측은 김치의 원조를 따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인류가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지혜롭게 저장 음식을 만들고 함께 나누었던 지혜를 김치에서 발견하고 이를 높이 평가했다. 승자는 불분명한 원조를 큰 소리로 주장하는 자가 아니었다. 세계 사람들이 절로 고개를 끄덕이는 가치를 재발견해낸 자가 승자였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s://heritage.unesco.or.kr/%ec%9c%a0%ec%82%b0%eb%aa%a9%eb%a1%9d/?mod=document&uid=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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