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과정(MSc) 첫 반년의 이야기
2014년 8월. 학부를 졸업하고 6년 반 동안 회사 생활을 하다가 경제학 대학원 과정 유학을 위해 영국으로 출국했다. 진학할 학교가 확정된 4월 이후에는, 어차피 앞으로 공부하느라 고생할 텐데 지금이라도 놀아야지 하는 생각과 그래도 지금부터는 공부할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사이에서 불안해하면서 놀았다. 출국 직전에는 3~4주 정도 남은 휴가를 소진하면서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겠다 싶어 마냥 놀았다.
이렇게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경제학 MSc 과정(영국의 석사과정에 대한 소개는 영국의 경제학 박사과정에 입학하는 법 참조)의 빡빡한 커리큘럼, 평균 8~9세는 젊은 동급생들, 하루 종일 앉아서 공부만 해야 하는 생소한 일과와 맞닥뜨리게 되니 첫 1년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지 않을 리 없었다. 나와 같은 학교에서 MSc 과정을 마친 후 MIT(하버드와 함께 경제학 분야에서 순위가 가장 높은 학교다.)에서 박사를 받은 교수 한 명도 박사과정보다 MSc 1년이 훨씬 힘들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을 정도로 MSc 과정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과정이다.
9월 말 본격적인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는 보통 Math camp라고 부르는, 3주 정도 수학과 통계학을 가르치는 기간이 있었다. 하루 평균 6시간 가까이 수업을 듣고 숙제도 해야 했지만 아직까지는 내용이 크게 어렵지 않았고 시험에서 일정 점수만 넘으면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부담은 별로 없었다.
MSc 과정은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계량경제학으로 구성된 필수과목과 선택과목 한 개를 두 학기 동안 수강하고 마지막 학기에는 시험을 보는 방식이었다. 각 과목은 매주 강의가 2~3시간, 조교가 문제를 풀어주는 클래스가 1시간씩 있었다. 즉, 한국 식으로 계산하면 한 학기에 13학점을 수강하는 셈이었다. 필수과목의 성적은 학년말 시험 한 번으로 결정되었고 선택과목은 학년말 시험과 논문을 50%씩 반영하여 성적을 매겼다.
첫 학기 미시와 계량은 학부에서 배운 수준에서 약간 심화된 정도였고 딱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물론 그 학부 시절이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과거에 들어본 적이 있다 뿐이지 내용을 완벽하게 알고 있거나 문제 풀기가 쉽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선택과목이었던 노동경제학은 평소에 관심이 있던 분야여서 새로운 내용을 배우는 재미가 있었다. 거시는 교수가 말하는 속도가 워낙 빠르고 수업 내용도 난이도가 꽤 있어 따라가는 데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내가 박사학위를 받은 분야가 이때 수강했던 거시 수업의 내용과 가장 연관이 큰 것 같다.
이 때는 아직 영어 듣기에 완전히 익숙하지는 않을 때라서 강의 슬라이드를 중심으로 예습을 하려고 노력했고 복습도 수업 후 1주일 이내에 철저히 하려고 노력했다. 모든 과목에서 매주 나왔던 숙제도 매번 풀어보고 클래스에 들어갔다. 매일 오전 9시 전후에 학교에 도착해서 수업을 듣고 남는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오후 8시 반에서 9시 사이에 집으로 돌아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젊은 애들과 경쟁하려면 일단 공부에 투입하는 시간이라도 늘려야겠다는 생각에 몸이 축나는지도 모르고 그런 생활을 했다.
나중에 박사과정에 들어가서 노동경제학을 전공할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노동경제학은 강의 슬라이드를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강의계획서에 언급된 논문을 모두 읽어보려 노력했다. 박사과정(MRes) 지원 준비를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연구 계획서에 쓸 주제를 찾으려는 목적도 있었다. 6~7주 정도 하다가 다른 것들을 할 시간이 부족하여 그만두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가 아니라 오히려 박사과정 때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박사과정 지원을 위한 추천서를 염두에 두고 그 학기 노동경제학을 강의하던 교수의 오피스 아워에 몇 번 찾아가 억지로 질문을 하기도 했다.
10주 동안의 첫 학기가 정신없이 지나갔는데 마지막 주에는 각 과목별로 모의고사(mock exam)가 예정되어 있었다. 최종 성적과는 관계가 없고 단지 학습 상황을 확인해 보라는 목적으로 보는 시험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겨울방학이 끝난 후 박사과정에 지원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석사과정의 정식 성적이 없는 상황에서 이 성적을 중요하게 볼 거라는 생각에 신경을 많이 쓰고 공부를 했다. 시험 결과가 좋지는 않았는데 박사과정 진학에 문제가 없었던 것을 보면 모의고사라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시험이 끝나고 주말부터 방학이라 한국에 잠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시험기간의 피로가 누적되어 감기몸살이 걸린 상태에서 입국하는 바람에 공항에서 발열검사에 걸려 얼른 병원에 가 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그 탓에 2주 정도 한국에 있었는데 초반 2~3일은 꼼짝없이 요양을 해야만 했다.
한국에 2주 머물고 돌아온 후 남은 겨울방학 기간 동안 박사과정 지원을 하느라 바빴다. 연구 계획서를 마무리하고 추천서를 부탁하였으며 지원서를 작성했다. 이렇게 좌충우돌했던 유학생활의 첫 반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universitybusiness.com/college-library-design-trends-collaboration-students-stu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