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회사에서 연수 선발 후 지원했던 모든 미국 학교에서 리젝을 먹기 전 해에도 경제학 유학의 문을 두드렸었다. 당시 회사 생활에서 여러 면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던 터라 어떻게든 이 곳에서 벗어나겠다는 마음으로 지원했건만 겨우 한 학교에서 부분적으로 생활비만 지원되는 2차 추가 합격 자리를 얻은 것이 전부였다. 결과적으로는 자포자기 상태로 지원했던 회사 연수에 선정되는 바람에 이 학교에는 가지 않았다. 이 흑역사를 굳이 꺼내는 이유는 내가 경제학 대학원 과정 입학에 조언을 주기에는 적절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최소한 '영국'의 경제학 대학원 과정 입학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좀 있을 것 같다. 낯설기도 하고 재정지원이 적다는 인식도 있는 탓에 영국에 있는 경제학 대학원 과정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고 정보도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 경험이 영국 유학을 고려하고 있는 경제학도들에게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이 글에서는 영국 박사과정에 입학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미국과의 차이점을 위주로 소개하려 한다. 물론 내가 박사과정에 입학한 것은 무려 5년 전의 일이므로 많이 상황이 바뀌었을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하길 바란다.
우선 영국에서 석사 및 박사과정을 지칭하는 용어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미국에서는 보통 한 단계인 석사과정(master's degree)이 영국에서는 MSc(Master of Science)와 MRes(Master of Research)로 구분된다. MSc는 상대적으로 취업에, MRes는 박사과정 진학에 초점을 맞춘 석사과정에 가깝다. 학부 졸업 직후에는 대부분 MSc 과정에 진학한 후 MRes를 거쳐 PhD 과정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MRes는 미국의 석박사 통합과정에서 수업을 듣는 기간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MSc는 1년이지만 MRes와 PhD는 학교마다 기간이 천차만별이다. MRes 없이 바로 PhD로 들어가 논문을 쓰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MSc 수료 이후에도 MRes 과정을 2년씩 거치면서 수업을 엄밀하게 하는 학교도 있다. (요즘은 MSc 이후 바로 PhD로 진학하는 학교에서도 첫 1~2년 동안 의무적으로 수업을 듣게 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고 들었다.) 또한 석사과정에 MPhil(Master of Philosophy)이라는 명칭을 쓰는 학교도 있기 때문에 지원하고자 하는 대학원의 과정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정 학교의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해당 학교에 석사과정으로 입학 후 좋은 성적을 받아 남는 것이다. 이 기준은 학교마다 달라 런던에 있는 LSE나 UCL 같은 학교는 70점 이상(Distinction)을 받아야 잔류할 수 있는 반면 더 낮은 점수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기준 성적을 넘겨 그 학교에서 박사과정을 계속하게 되더라도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대부분 교수 추천서, 연구 계획서(research proposal) 등의 추가 서류를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박사과정 동안 금전적 부담을 줄이려면 좋은 성적에 더하여 추가 서류를 잘 챙기고 끊임없이 펀딩 담당 직원 또는 교수를 괴롭히는 것이 필요하다.
석사과정을 마친 후 다른 학교의 박사과정으로 옮기는 경우도 흔하다. 박사를 같은 학교에서 하고 싶어도 MSc 과정의 최종 성적이 일반적으로 7월 이후에나 나오기 때문에 MSc 졸업 직후 바로 MRes 또는 PhD로 진학하려면 미리 여러 군데에 지원해 놓는 것이 좋다. 5년 전에 내가 지원할 때만 해도 MSc 이후 바로 PhD로 입학하는 학교는 지원 전에 세부 전공 담당 교수와 미리 연락을 하는 문화가 있었다. 미리 써둔 연구 계획서와 함께 '난 이런 주제에 관심이 많고 당신 학교의 박사과정에 지원하려 한다.'라는 식의 메일을 보내고 교수가 마음에 들면 박사과정 지원 시에 자기 이름을 언급하라는 식의 답장이 오는데 이런 경우 사실상 합격이라고 보면 된다. 난 총 여섯 군데의 학교에 지원을 했고 그중 세 학교의 교수들에게 위와 같은 절차를 진행했다.(나머지 세 곳은 교수와의 사전 접촉이 필요 없다고 지원 홈페이지에 명시되어 있었다.) 두 곳에서는 교수들이 2~3일 내에 긍정적인 답장을 보내와서 쉽게 합격을 할 수 있었다. 한 학교에서는 한 달쯤 지나서야 '흥미로운 주제긴 한데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고 일단 한 번 지원은 해봐라'라는 내용으로 사실상의 거절 메일을 받았는데 이 곳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합격 여부를 알려주지 않고 있다.
이러한 지원 및 연락은 MSc를 졸업하던 해의 1월 내에 끝냈다. 교수와의 접촉이 필요한 경우는 4월 정도까지 지원을 해도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굳이 1월에 모든 학교의 지원을 마친 이유는 교수 접촉이 불필요했던 학교들의 지원 기한이 1월이었고 추천서 받는 기한을 집중시켜야 학생과 추천인 모두 편하기 때문이었다. 이 일정에 맞추려면 연구 계획서와 추천서가 1월 초까지는 미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사실상 MSc 과정이 시작하는 10월부터 연구 계획서를 쓰고 추천서를 써줄 사람을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미국 대학원 과정 입학을 원하지만 학점, 추천서 등의 스펙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학생들을 위한 조언을 하나 할까 한다. 돈과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면 LSE나 UCL의 MSc 과정 1년을 경유하여 미국으로 가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이 학교들의 MSc 과정이 미국 학교에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옵션인데 실제 이 경로를 택한 학생들이 US News Ranking 20위 이내의 미국 학교에 합격하는 사례를 상당히 봤다. 물론 학비와 생활비로 5천만 원 이상 생각해야 하고 졸업 후 바로 미국으로 가려면 입학하자마자 좋은 추천서를 받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영국에 있는 학교는 아무래도 TOEFL보다는 IELTS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IELTS가 시험 치기에는 더 좋은 환경이었는데 (잠시 검색해 보니 내가 봤을 때랑 시험 형식이 좀 바뀐 것 같긴 하다.) 영국에서 박사과정까지 할 생각이 있다면 IELTS를 봐 두면 좋을 것 같다.
석사과정을 한 학교에서 박사까지 하고 싶다면 시험을 잘 보자.
지원 전에 교수 접촉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나머지 준비 절차는 미국 박사과정 지원 절차와 비슷하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info.lse.ac.uk/current-students/phd-academy/The-Team-and-How-to-Contac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