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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Feb 21. 2021

일하다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신 분들께

저는 대학교 졸업 후 꽤 오랫동안 일을 하다가 석사 및 박사 과정을 겨우 마치고 나서 학계가 아닌 원래 직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소위 '성공적인 대학원 생활'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직장 생활을 하다가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신 분들께 공감이 갈 수 있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 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글에는 제가 석사와 박사 과정을 하면서 최소한의 평정심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태도를 몇 가지 적어 보았습니다.



첫째, 나이 어린 대학원 동기들에게 기죽지 마시길 바랍니다. 확실히 나이도 들었고 중간에 공백 기간도 있었기 때문에 배우는 속도가 느린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 부분은 어차피 바꿀 수 없는 이상 그냥 인정하시는 게 속 편합니다. 대신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축적한 경험은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 됩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헤크만(James Heckman)은 비인지적 기술(non-cognitive skills)이 인지적 기술(cognitive skills)보다 학생의 임금, 취업 가능성에 더욱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즉, 학과 지식보다는 인내심, 자신감 등의 정신적 요소가 학생의 성공 가능성을 올리는 데 더 큰 역할을 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경험했다면 야근, 상사의 갈굼 등 갖가지 시련을 겪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비인지적 기술이 쌓였을 것이기 때문에 대학원 과정 전반에서 겪게 될 스트레스에 더욱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꼬는 것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저는 정말 직장 경험이 정신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박사과정을 하실 예정이라면 수업과 시험이 어렵다고 해서 너무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경제학의 경우 석, 박사 통합과정에서 보통 처음 2년 동안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게 되는데 여기서 시험 점수가 높다고 해서 박사학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박사학위를 받는 데는 시험 성적은 필요 없고 오직 논문만이 중요합니다. 대학원 수업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여기에서 다루는 내용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내용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이는 어차피 대부분의 박사과정 학생들은 논문을 쓰기 위해 그 분야의 기초부터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저도 수업 들을 때는 상당히 고생했지만 막상 제 논문 주제는 수업에서 배운 적이 전혀 없습니다. 초반 수업이 괴롭더라도 이건 그저 통과의례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버티다 보면 논문 쓰는 단계에 가서는 상대적으로 수월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셋째, 대학원 과정(특히 박사과정)을 절대 힘들었던 직장 생활의 보상 또는 휴식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회사의 높은 분들이 우리 때는 외국에서 골프 쳐 가면서 대충 해도 박사학위 잘 받아왔다는 무용담을 늘어놓는 경우가 있는데 도시 전설급 괴담에 불과하니 흘려들으시기 바랍니다.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것은 비록 티끌만 한 분야라도 그 분야의 최전선을 탐구하는 전문가로 인정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성실함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물론, 대학원 과정에는 방학도 있고 출퇴근 시간에도 제약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직장 생활할 때처럼 힘들게 일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연구 활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평일에 하루 8시간씩은 연구실에 있는 등 최소한의 루틴은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사실 한두 가지 이야기를 더 할 수도 있었는데 이 글에서는 주제상 독자 분들께 최대한 용기를 드리는 것이 맞을 것 같아 뺐습니다. 주제넘은 말씀을 드리긴 했지만 최근에 박사학위를 받은 직장인으로서 조언이 하나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inomics.com/advice/8-life-lessons-youll-learn-doing-a-phd-705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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