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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머리유교걸 Oct 12. 2021

지원하지 않았던 회사 이야기

미래지향적인 목적과 그렇지 못한 양식

모두가 그렇듯, 입사지원을 위한 첫 발걸음은 회사의 설립목적과 추구하는 인재상부터 살피는 것이다.

눈여겨보던 회사에서 채용공고가 나서 당장 입사지원서 단계를 밟아나갔다.


회사의 지향점 살펴보기.

자유, 상상, 도전, 질적 도약 등등 단어로 이루어진 한 문장은 대외적인 그 회사의 이미지와도 무척 찰떡이었다. '아, 역시!'라는 생각을 갖고 지원 의지를 다잡았다. (사실 입사지원이라는 게 다소 귀찮은 면이 있어서 늘 미래에 그 회사를 다니는 나를 상상하며 수시로 귀찮음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회사가 지향하는 인재상이 나와있지는 않았지만, 설립목적만으로도 충분했다.

"자유로운 상상을 하고, 도전의식이 있으며, 질적 도약을 위해 준비되어있는 그러한 사람 바로 여기 있습니다!"를 외치며 입사지원서를 다운로드하였다.


아.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첫 번째, 입사지원서 양식이 내가 10년 전에 다른 회사를 지원하며 작성했던 것과 같았다.(이전 회사가 10년씩이나 시대를 앞서 나간 회사는 전혀 아니다)

'국적'을 써야 하는 칸이 있었다. 학력도 고등학교부터의 내용을 다닌 기간을 포함해 소재지와 학점까지 촘촘히 작성해야 했다. 블라인드 채용과 너무나 역행하는 양식이었다. 물론 그 회사가 국적을 토대로 취업제한을 두거나 아주 상세한 학력사항을 토대로 입사지원자를 거르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냥 '참고'만 하려는 거겠지.


찜찜해하며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보았다.

(★이 부분은 개인에 따라 느끼는 것이 분명 다를 것임을 전제로) 다소 놀라운 문항이 있었다. [우리 회사의 신규 사업기획을 위한 아이디어를 떠올려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주십시오.]

입사지원자의 아이디어가 입사 지원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한 때 기업들의 각종 공모전들은 저작권을 갈취하려는 얄팍한 속셈 아니냐 하는 이야기가 돌았고, 그래서 최근 공모전에서는 응모한 아이디어의 저작권 귀속 여부에 대한 공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저 항목이 놀라웠다. 물론 입사지원자의 아이디어를 '갈취'하려는 것은 아닐 거라는 것은 안다. 입사지원자가 얼마나 회사에 핏한 사람이며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 정도겠지.


입사지원서를 다시 보고 또 처음부터 다시 봤다. 그렇게 한 다섯 번을 다시 봤다.

다시 보는 동안 신규 사업기획 아이디어를 구상해봤던 것도 사실이고, (크~~ 기가 막힌 게 있는데!!) 10년 전 입사지원서를 열어보면 똑같을 학력사항 포함 입사지원서를 '그대로 가져다붙이기만 하면 되니 다른 품을 덜 들겠다'라는 생각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입사 지원하지 않았다.

입사지원자도 구인공고를 포함한 전반적인 내용으로 입사 지원할 회사를 평가한다. 그들 입장에서는 그 양식이 수많은 입사지원자 중 회사와 가장 핏한 지원자를 '선별'하기에 우수한 양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선별하는 양식으로 이루어진 집단 안에서 즐겁게 일하는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나는 지원 의지를 다잡는데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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