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이나 거절당한 아파트 매매계약
한 번도 거래해본 적 없는 손님이 어느 날 방문하여 매매의뢰를 했다.
60대 중반의 남성이었는데, 집을 꼭 팔아야 해서 임차인을 먼저 내보내고 공실 상태로 두고 있다고 했다.
인근 신도시 입주물량 때문에 거래가 쉽지 않았는데, 드디어 매수인이 나타났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4번이나 부결되었다.
첫 번째는 미리 약속한 계약 시간에 나타나지 않길래 전화하였더니,
"지금 바쁘니까 이따 전화할게요~"
하더니 2시간 동안 전화가 없었다. 결국 매수인은 가게 문 열 시간 되었다고 돌아갔고.
두 번째 계약 시간에는
'잔금을 치르기 전에는 절대 우리 집으로 대출을 받으면 안 된다'라고 억지를 부렸다.
매매 잔금을 다 치르고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해간 다음에 대출을 받든지 말든지 하라는 것이었다.
담보대출 안 받고 현금으로만 집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국내 중개업계 잔금 진행 절차 및 상황, 잔금 대출의 성격 등등을 1시간가량 설명하고 설득했는데,
옆에서 그걸 듣고 있던 매수인이 심히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해결되면 연락달라며 돌아갔다.
이틀 후로 다시 잡은 세 번째 계약 때는,
"우리 집으로 대출받는 걸 허락하겠다.
대신 잔금을 본인 통장으로 먼저 송금시켜 주면 그걸 확인한 후에 매도 서류를 떼서 들고 가겠다"
그래서 다시 동시이행에 대해 설명.
당신은 매수인을 못 믿으시지요? 그런데 은행은 당신을 어찌 믿어서 대출금부터 송금해 주겠나요?
어쩌고 저쩌고 설득... 그 사이 매수인은 가게 알바가 쉬는 날이라 들어가봐야 한다고 돌아갔다.
너무 힘들어서
"이게 몇 번째냐 이런 식으로 하면 계약 못하겠다"
했더니 당황하여
"중개사님이 하라는 대로 다 하겠으니 계약 진행하세요!"
라고 했다. 다음날로 계약 시간을 잡아놓고 퇴근하는데 띵동 문자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신호등에 차 세우고 폰을 열어보니.
'대신 잔금 치르기 전에 인테리어나 청소는 절대 안 됩니다!'
집이 너무 험해서 완전 올수리를 해야 할 상황이라, 잔금 전에 중도금을 지급하고 인테리어를 진행한다는 특약까지 기재해서 미리 동의받아 놓은 상태였다.
매수인이 계약을 네 번 차까지 기다린 이유도 공실 상태에서 중도금을 지급하고 인테리어랑 청소를 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인 것을 능히 알고 있었는데도 매도인은 또 조건을 내건 것이다.
그래서 그만 몇 주 동안 인내했던 게 폭발했다.
"계약 안 합니다. 저는 이런 집 계약하기 싫습니다.
중개업에는 중개업법, 민법 외 각종 법이 연관돼 있고, 또 상식과 관행도 적용됩니다.
그런데 그동안 3번의 계약 보류는 기존 절차도 모두 무시하고 상식과 관행도 거부하고 계약자들에 대한 막연한 불신, 일어나지 않은 미래 상황에 대한 불안감으로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집 팔지 마세요!
집 팔고 잔금 때까지 불안해서 어찌 사시겠습니까?
저는 이 집 매매계약을 진행할 생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정중히 인사하고 끊었다. 그리고 매수인한테 사과하고 다른 집을 연결해 주었다. 착한 매수인은 중개사가 며칠 동안 매번 1시간 넘게 통화하던 걸 들은 터라서 '살다 살다 별일을 다 봤네' 하면서 흔쾌히 협조해 주었다.
그리고 그 집은 매물장에서 두 줄을 그었다. 매매를 찾는 손님들이 오면 다른 집들만 브리핑했다.
그렇게 두 달 여를 지나다 보니 손님 중에는 '이 부동산은 왜 그 8층은 소개 안 해줘요? 다른 부동산에서는 강추하던데?' 하고 묻는 분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그 집은 안 합니다. 그 집 사고 싶으시면 다른 부동산 가세요'라고 했다.
내가 그 집을 잊은 지 세 달째가 되는 어느 날,
타 중개사무소에서 매매를 보러 오겠다며 그 집과 몇 개 물건을 꼭 찝어서 문의했다.
다른 물건을 브리핑해도 그 물건을 꼭 보여달라 하길래 속으론 '나갔을지도 모르는데...' 하면서도 상대 공인중개사에 대한 예의로 고민 끝에 매도인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마 기분 나빠서 내 번호는 차단했을 거야 하고 걱정했는데 그는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서 안 팔렸으니 잘 보여주라고 했다. 손님은 그 집을 가장 마음에 들어했는데 대신 다소 무리한 금액 조정을 요구했다.
세 달 만에 전화하여 단도직입적으로 0백만원을 더 조정해주면 계약하겠다고 했더니, '중개사님한테 미안하니까 그렇게 하겠다' 고 했다.
뿐만 아니라, 담보대출에도 협조하고 잔금 전 인테리어도 동의한다고 먼저 이야기했다.
계약서 작성부터 잔금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잔금 및 소유권이전등기까지 다 끝내고 매수인도 돌아갔는데 매도인은 폰만 만지작거리고 앉아있었다.
'왜 안 가시나 뭔가 좀 불편한데..?' 하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물었다.
"중개보수 드려야죠? 얼마 드리면 되죠?"
확인설명서의 중개보수란을 펴서 보수금액을 알려줬더니 다시 물었다.
"지난번에 저 때문에 4번이나 계약이 깨졌잖아요. 그 중개보수도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헐 이건 또 무슨 소리?
"저 때문에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왜 내 말대로 안 해주나 기분 나빴는데 천천히 생각해보니 중개사님 말씀이 다 맞았어요. 제 동생이 작년에 자격증을 따서 올해 개업했는데 물어보니깐 중개사님 말씀이 다 맞다고, 오빠는 왜 그렇게 했냐고 중개사들이 얼마나 힘든줄 아냐고..."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있던 차에, 내가 전화하자마자 바로 원하는 금액으로 맞추어 준 것이란다.
"제가 잘 몰라서 고집을 부렸어요.
그런데도 짜증 안 내고 조목조목 설명해 주시고 결국에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계약을 체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당시 의뢰인의 마음을 완전히 설득하지 못했으니, 중개보수 청구권이 형성되지 않은 거죠.
아무튼 뒤늦게나마 제가 계약을 완성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추가 입금을 거절하자 그는 나갔다. 그리고 20분 후 다시 전화를 했다.
인근 식당에 밥값을 넉넉히 결제해 놓고 왔으니 방문하여 맛있게 식사하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다시 말했다.
"저는 사실 중개사가 그렇게 힘든 직업인줄 몰랐어요. 집 하나 보여주고 쉽게 돈 번다고 생각했는데 동생 이야기를 들어보니 극한 직업이 따로 없더라고요. 앞으로 저 같은 진상 말고 좋은 손님들 만나셔서 돈 많이 버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아주 가끔은 변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이 갈수록 삭막해진다고들 한다. 그러나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