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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솔 Mar 17. 2021

전화 말고 카톡해

당신도 전화 공포증이 있나요?

나는 예전부터 전화로 얘기를 나누는 게 불편했다. 만나기만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떠는 친구들일지라도 예외는 아니다. 분마다 요금이 올라가는 국제 전화도 아니고, 심지어 통화 무제한 요금제를 쓰건만 전화만 하면 용건만 말하고 끊게 된다. 평소에도 그다지 다정한 말투는 아니기에 "너 화났어?"라고 물어보는 친구도 더러 있었다. 특별히 급한 일이 있지 않고서야 먼저 전화를 거는 일은 거의 없다. 통화 버튼은 내게 웬만하면 터치하고 싶은 않은 껄끄러운 존재다.


특히 집에 있을 때 지인에게 전화가 오면 바로 받지 않고 몇 초 동안 고민을 다. 별다른 일을 하고 있지 않아도, 전화가 오면 뭔가 방해를 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 지금은 좀 귀찮은데.'

영 내키지 않을 땐 슬그머니 휴대폰을 뒤집어놓았다가 한 시간쯤 뒤에 카톡을 보낸다. 부재중 전화는 전화로 답한다는 암묵적인 룰을 능청스럽게 무시하는 것이다.

"전화했었네? 몰랐어."




통화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것도 회피의 이유 중 하나다. 나는 통화를 하다가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리는 일이 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어들게 되고, 잠시라도 어색한 침묵이 흐르면 얼른 전화를 끊고 싶어 진다. 적막한 전화기를 들고 있는 것만큼 뻘쭘한 일은 없다.

멀티플레이에 약한 부류이기에 특히 게임을 할 때는 절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남자 친구가 피시방만 가면 연락이 두절돼서 싸우는 커플들이 많은데, 만약 전화를 받는다고 해도 제대로 된 대화가 이어질 가능성은 0%라고 확신한다. 건성건성 대답하는 걸 듣고 있자면 절로 부아가 치밀걸.

"이럴 거면 전화는 왜 받아!"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는다.


물론 내게도 핫팩처럼 뜨거워진 휴대폰을 붙잡고 남자 친구와 밤새 노닥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보통 연애 초기에 전화 통화를 오래 했는데, 만남이 길어질수록 자연스레 통화 시간도 줄어들었다. 그래도 연인 사이라면 매일 통화를 해야 한다는 일종의 신념 같은 게 있어서 거부감이 덜했다. 하지만 이런 신념은 시간이 갈수록 의무감으로 변질됐다. 상황 보고하듯 주기적으로 하는 통화가 의미 없이 느껴졌다. 그건 관계의 방증이기도 했다.


지금은 솔로지만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다 해도, 예전처럼 몇 시간씩 휴대폰을 붙잡고 있을 일이 있을까? 누군가에 대한 설레는 호기심으로 이불속에서 밤새 얘기를 나누던 그때가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내가 나이를 먹은 탓도 있겠지만, 카카오톡의 등장으로 우리의 연락 방식은 문자 지향적으로 변했다. 이젠 말보단 글로 소통하는 게 더 익숙하다.


사람들과 좀 더 빈번하게 장시간 연락을 하게 되었지만, 관계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메시지를 일부러 확인하지 않거나, 무표정으로 'ㅋㅋㅋ'를 남발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을 땐 이모티콘으로 대신하고, 단톡방에 메시지가 쌓여 있으면 읽지도 않고 밑으로 내린다. 전화만큼 집중력이 필요하지 않아서 나처럼 멀티플레이에 약한 사람도 얼마든지 다른 일을 하며 카톡을 주고받는다. 하루 동안 수많은 말들이 오고 가지만, 그중 상당수는 휘발되어 사라진다. 반면 어떤 말들은 채팅창에 두고두고 남아 이불킥을 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 중에 대답하고 싶은 메시지는?


'전화 공포증'이라는 증상이 있다. 전화를 걸거나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증상으로, 심한 두근거림과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주로 10대~30대의 젊은 세대들에게 나타난다. 성인 중 무려 50% 이상이 전화 공포증을 겪고 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전화를 불편해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의 연락을 메신저로 주고받는 젊은 세대들 위주로 이 증상이 나타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요즘은 비대면 시대가 아닌가. 우리가 통화 버튼을 누를 일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나는 심한 두근거림을 느끼는 정도는 아니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과 통화할 땐 꽤 긴장하는 편이다. 그래서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는 절대 받지 않는다. 지인과의 통화도 수다로 길게 이어지는 건 반갑지 않다. 얼굴을 마주하고 있을 땐 즐거운 대화가 왜 전화기만 거치면 불편해지는 걸까.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는 건 그만큼의 시간을 오롯이 할애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작정하고 시간을 정해서 만난 게 아니니 계획에 없는 시간을 쓰게 되는 셈이다. 게다가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않으려면 상대방의 말에 계속 집중해야 된다. 전화할 때 딴청을 피우면 바로 티가 난다. 표정을 읽을 수 없으니 두배는 피곤한 느낌이다. 많은 이들이 '수다는 피곤하니 용건만 간단히'를 선호하는 이유가 아닐까.




물론 아직도 카톡보다 전화를 선호하는 지인들이 있다. 나는 농담 반 진담  "어르신. 전화 말고 카톡 하세요."라고 말하지만 꿋꿋하게 전화가 걸려온다. 글로 적는 건 아무래도 번거롭단다. 그중엔 한 번 전화를 하면 도통 끊을 생각을 안 하는 지인이 있는데 그의 전화를 받기 전에 대략 10번은 망설인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그는 쉴 새 없이 말을 하는 타입으로 통화는 꽤 유쾌하게 이어진다. 너무 길게 이어지는 게 문제지만.

내가 전화 통화를 불편하게 여긴다고 해서, 전화를 걸어오는 이들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의 시간을 내게 기꺼이 할애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항상 받을까 말까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전화는 좀 그래요.'

목소리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담겨 나온다.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어도 떨리는 목소리는 감출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나는 내 일상의 감정들을 내보이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모른 척 회피하며 오늘도 부재중 전화를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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