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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솔 Mar 10. 2021

다시는 취직하지 않겠습니다

퇴사 3년 차의 다짐

며칠 전 3년 전에 그만둔 회사의 사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잊을만하면 연락을 해오곤 하는데, 용건은 항상 똑같다.

"잘 지내지? 요즘엔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네.. 혹시 회사로 돌아올 마음이 생기면 언제든 환영이야."

새로 구한 직원이 또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느즈막이 답장을 보냈다.

"네. 잘지내고 있습니다.^^"


마지막 직장은 직원 수 10명 남짓의 작은 회사였다. 나는 그곳에서 시각 디자인 업무를 맡았었다. 중소기업의 디자이너 연봉은 말 그대로 쥐꼬리였지만, 야근이 없다는 점과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라는 장점 때문에 4년을 다녔다. 나는 야행성이라 아침엔 늘 늦잠을 잤다. 그래서 회사가 가깝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였다.


8시 20분이면 아빠가 깨우는 소리에 신경질적으로 일어나 대충 세수만 하고,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 무려 기본요금에서 300~400원 정도만 더 내면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얼마나 경제적인가! 퇴근할 땐 운동 겸 걸어서 집에 갔으니 버스를 타는 것 보다 그리 큰 손해는 아니었다.


이때 내 평소 취침 시간은 새벽 3시였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을 땐 온갖 딴짓을 해도 그렇게 안가던 시간이, 퇴근과 동시에 가속이 붙어 흐르기 시작한다. 나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새벽까지 최대한 버티다 잠이 들었다. 매일 4~5시간밖에 자지 않았기에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닐 뿐, 잠이 많은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요즘엔 8~9시간씩 잘 때도 많다. 나는 그냥 잠이 많은 인간이다.




10년의 직장생활을 통해 확실히 깨달은 점이 있다면 내가 회사 생활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직장인이 처음부터 또는 서서히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 놈의 회사. 나랑 진짜 안 맞다.' 그 안 맞는 직장인 노릇을 그래도 꾸역꾸역 10년 동안 해왔으니 이제 할 만큼 했다 싶었다. 사표를 낸 지 3년이 흘렀고, 지금은 내 일을 하고 있다. 회사에서 내게 배정해 준 일이 아닌 진짜 '내 일'말이다.


사실 쥐꼬리만큼이라도 매달 착실히 월급이 나오는 직장을 그만두는 게 두렵긴 했다. 내 생각만큼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꼼짝없이 그놈의 회사로 돌아가야 했다. 운이 좋았던 건지 퇴사 몇 달 만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직장인이었을 때와 비교한다면 가히 혁신적으로 시간을 다르게 쓰고 있다.

아침 출근의 압박에서 벗어나자 기상 시간은 끝도 없이 늦어졌다. 물론 자는 시간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이젠 새벽이 아니라 아침 7~8시에 잠이 들기 때문이다. 한국에 살지만, 미국 어디쯤의 시차를 따르고 있는. 뭐 그런 느낌이다.


오후 2~3시쯤 느지막이 일어나 삼순이 캔 사료를 경쾌하게 따며 하루를 시작한다(말 그대로 깬 따개). 아점이라고 부르긴 애매한 시간에 밥을 먹고, 이런저런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저녁이다. 그제야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어느새 저녁과 밤은 내게 휴식의 시간이 아니라 집중해서 일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 패턴이 무척 잘 맞는다. 나는 근 30년을 넘게 강제적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왔다. 이제야 비로소 나만의 패턴을 찾은 것이다. 비록 햇빛을 충분히 보지 못해서 비타민D를 챙겨 먹긴 하지만, 가능한 한 오래도록 이 생활 패턴을 유지하리라 다짐했다.




물론 남들과 하루를 반대로 사용하기에 그만큼의 불편함도 따른다. 은행 업무라도 볼라치면 점심도 거르고 서둘러 은행을 찾는다. 꾸물대다가 고객센터에 전화할 시간을 놓친 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 일주일에 4번은 택배가 오는데 자다가 인터폰 소리에 깨서 헐레벌떡 물건을 받곤 한다. 우리 집에 오는 택배기사님들은 나를 한심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백수 아가씨, 이제 일어났나 보네.'


전엔 고모가 집으로 전화를 했었는데, 내가 받자 깜짝 놀라며 "너 회사 그만뒀니?"라고 물어 순간 당황했다. 일 년 전쯤 소개팅 자리에서 교대 근무를 하는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나 이웃 주민들이 자기를 백수로 여길 거라며 웃었다. 사람들은 아침 9시에 출근하지 않는 이들을 두 종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돈 많은 백수거나 그냥 백수. 그러니까 나도 돈 많은 백수 하고 싶다고.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선 늦어도 밤 11시에는 잠을 자야 한다는 기사를 자주 접한다. 밤 11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멜라토닌이 가장 활발하게 분비된다는 것이다. 강력한 항산화 역할을 한다는 그 멜라토닌이 과연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보다 강할지는 의문이다. 퇴사 하고 몇 달쯤 지났을 무렵, 자주 만나는 지인이 말했다.

"야, 너 요즘 얼굴이 완전 뽀얗다." 

회사를 그만두자 내 얼굴이 눈에 띄게 폈단다. 퇴사가 만병 통치약이라는 덴 역시 일리가 있다. 매일 아침을 짜증과 함께 시작했던 나로선 그냥 맘편히 팍삭 늙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자고 일어나는 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인생이 얼마나 행복해지는가.



요즘 미라클 모닝이 핫하다. 예전에 '아침형 인간' 키워드가 유행했던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이제 아침도 모자라 새벽에 일어난다. 새벽 4시에 기상한다는 글을 보며 어느 정도 동감했다. 새벽만큼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없기 때문이다. 부지런하고 의지가 뛰어난 이들은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게으른 나는 곧 잠이 든다. 하루를 알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심이 든다. 나는 자주 나태해지고, 꽤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회사라는 강제적인 울타리를 벗어난 후 새삼 깨닫게 됐다.

'참 게으르구나, 나란 인간.'


다행스럽게도 회사에 다닐때 보다 벌이는 훨씬 좋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얼마나 아름다운 덕담인가.

물론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산다면 수입도 늘어날 것이다. 책과 영화를 덜 보고, 약속을 줄이고, 치킨에 맥주도 줄이고, 늦어도 10시 전에 일어나 좀 더 일에 매진한다면... 나는 그냥 적당히 게으르게 살기로 했다. 새벽 4시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이는 이들을 존경하지만, 오후 두 시까지 침대에 누워 고양이 엉덩이를 두드리고 있는 이의 삶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한다.


사실 꾸준하게 잘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고작 3년 차에 접어들었고, 언제 갑자기 수입이 끊기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히곤 한다. 월급을 받는 게 아니니 매달 수입이 천차만별일 때도 있다. 그럼에도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직장인이 최고다."라는 말엔 동의할 수 없다. 그 월급을 위해 그동안 내 삶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상납해왔다. 3년 전 용기 내준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아침형 인간에 다시 끼워 맞추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일찍 일어나는 새만 먹고 살라는 법은 없다. 야행성 인간도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모색할 것이다.

"전 사장님. 죄송하지만 다시 취직할 일은 없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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