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아이와 같은 아이
다르다는 건 좀 외로운 일이다.
어릴 때 나는 종종 다른 아이처럼 취급받았다. 우리랑 '같은 아이'가 아니라 '다른 아이' 취급을 받으면 외롭다. 내가 특별히 다르다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나이 또래 애들이 흥미를 느끼는 것에 무관심했던 탓인지 어느 순간 소외되곤 했다. 예를 들면, 남자 아이돌이라든지, 외모를 가꾸는 것이라든지…. 어른들 말 잘 듣고 재미없는 모범생. 그게 남들 눈에 비치는 내 정체성이었다. 물론 그리 인정하지 않지만(삐딱한 성격이 있다), 적극적으로 그 정체성을 깨부수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았다. 오해를 바로잡을 만큼 그렇게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었기에 진짜 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 이미지에 맞춰 나를 생각했다.
사춘기 또래 집단에서의 소외 경험은 꽤 영향이 오래 간다. 대놓고 따돌림을 받고 괴롭힘을 당한 건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그 경험이 오래도록 수치심으로 남았다. 대학교에 올라가도, 직장을 다녀도, 나는 어디에서도 온전히 소속된 느낌을 받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감과 거리감을 느끼곤 했다. 부적당한 느낌. 그 외로움이 오래도록 내 곁에 있었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가까워지는 것이 어려웠다.
친밀한 관계는 안전 기지 역할을 해준다. 어떤 집단에 있더라도, 그 집단의 모든 구성원과 친해질 수는 없다. 심리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이 하나둘 정도 있으면 그 사람이 숨쉴 구멍이 되어준다. 그게 나쁘고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어째서 내가 외롭더라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물론 내 뇌리 깊숙이 박힌 기억이 하나 있긴 하다. 이 역시 사춘기 때 기억인데, 꼭 그 기억 때문이 아니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내가 그리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신념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보다 이런 생각을 한다. 살아오면서 느꼈던 그 외로움이, 사실은 내가 엉뚱한 곳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마치 백조가 오리들 틈에 있을 때 자신을 '미운 오리 새끼'처럼 느끼듯이, 어쩌면 나는 그래서 외로웠던 게 아닐까? 하는…. 백조는 오리와 다를 뿐,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백조가 '미운 오리 새끼'가 되는 순간이 있다. 바로 백조가 오리가 되려고 하는 순간이다. 백조만의 아름다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오리가 되려고 애쓰는 순간, 백조는 '백조'가 아니라 '오리 같지 않은 오리'가 되고 외로워진다. 즉 내가 오리 무리에 끼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미운 오리 새끼'임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마음이 없다면, 그래서 나와 비슷한 백조 무리로 날아간다면 어떨까? 아니, 꼭 백조 무리에 있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내가 오리가 아니라 백조라는 것을 알고 백조가 가진 아름다움을 사랑한다면, 오리 무리에 있더라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다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