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아가야. 먼 옛날 어느 바닷가에 코로나 왕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단다. 이 나라는 영토는 작았지만 백성들이 알콩달콩 살아가는 평화로운 나라였단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나라 공주인 엘사가 몹쓸 병에 걸렸어. 이웃나라에서 번지던 전염병이 이 공주님에게까지 온 거였지. 공주가 기침과 재채기를 하면 그 침방울 안에 바이러스가 가득해서 주변 사람들이 쓰러져 나갔단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공주는 오랜 기간 궁전 맨 구석방에서 혼자 숨어 지내야 했어. 숨어 지내는 동안 분노와 우울은 커져만 갔단다. 그런데 어느 날 공주의 아버지와 어머니, 즉 왕과 왕비가 갑작스런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진 거야. 슬퍼할 겨를도 없이 공주는 대관식을 치르게 됐어. 공주는 자신의 병을 숨긴 채 마스크를 끼고 대관식에 나섰어. 기침과 재채기를 하지 않으려 숨까지 참으며 안간힘을 썼지만 채 몇 분도 버티기 힘들었단다. 결국 공주는 마스크를 던져버리고 기침과 재채기를 세차게 했고 그날 대관식에 참석했던 귀족과 시종들은 모두 며칠 지나지 않아 병에 걸려 목숨을 잃었어. 게다가 삽시간에 백성들 사이에 병이 퍼져나가면서 온 왕국이 공포에 휩싸였단다. 충격을 받은 공주는 그 길로 궁전을 빠져나가 먼 별장에 스스로를 가뒀어. 왕이 될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지만 누구도 공주가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았어. 자신들도 병에 걸려 죽을까봐 두려웠던 게지.
공주에게는 동생 아나가 있었어. 아나는 여전히 언니를 사랑했어. 아나는 병에 걸린 언니를 데려와서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아나는 병에 걸릴 위험을 무릅쓰고 언니가 있는 별장으로 직접 찾아갔단다. 엘사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아나에게 병을 옮기기 싫어 아나를 밀치고 다가오지 못하게 고함을 쳤어.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아나에게 가서 아나 역시 병에 걸렸지. 아나는 궁전에 돌아온 뒤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게 됐어.
이처럼 언니와 동생이 국정을 신경 쓰지 못하는 사이에 코로나 왕국에서는 권력을 찬탈하려는 사람들이 속속 나타났어. 어떤 사람들은 공주가 떠난 뒤에도 방역을 제대로 하고 있다면서 현 정부 정책을 옹호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방역에 빈틈이 있다면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단다. 마스크 수급에 문제가 생기고, 종교 집회에서 감염자가 급속히 늘어나자 이들 위정자들은 그저 권력을 잡는 기회로만 여겼지. 몇 달 뒤에 있을 선거를 앞두고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했으니까.
정치인들이 권력 다툼에만 골몰하자 민심은 갈수록 흉흉해졌어. 사람들은 서로를 벌레 쳐다보듯이 했고, 옆에 있는 누군가가 기침이라도 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를 피했단다. 이제 사람들은 서로를 바이러스로 여겼어. 그 흔하던 대화도, 악수도, 인사도, 함께 하는 식사도 사라졌어. 이렇게 사람들이 서로를 바이러스 덩어리로 여기자 사회 분위기가 얼어붙었어. 물건이 돌지 않고 돈이 돌지 않으니 모두 끼니를 이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호주머니 사정이 나빠졌어.
게다가 이웃나라들은 코로나 왕국을 바이러스의 온상으로 여기기 시작했어. 이 병이 처음 발병했던 내륙 나라는 코로나 왕국에서 병이 처음 시작됐을 거라며 은근히 책임을 떠넘겼고, 이웃 섬나라 역시 코로나 왕국 때문에 자국에 병이 퍼지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코로나 백성들의 자국 출입을 막아버렸단다. 수출입 길까지 막히면서 코로나 왕국은 점점 궁지에 몰렸지.
그 때 먼 나라에서 온 한스 왕자가 코로나 왕국에 등장했어. 그는 영웅 행세를 하면서 인기 몰이를 해 왕국을 독차지하려 했단다. 그러려면 왕권을 가진 엘사와 아나를 제거해야 했지. 한스는 엘사를 납치하고 병든 아나를 가둬서 왕권 찬탈 기회를 잡았어. 그리고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엘사를 처형하려 했지. 병을 퍼뜨린 마녀라는 이유를 대면서. 그런데 그 순간 아픈 아나가 달려와 온 힘을 다해서 처형을 막고는 쓰러져 버린 거야. 동생의 사랑과 희생정신에 감동한 엘사는 비로소 마스크를 끼고 사람들 앞에 우뚝 섰어. 과거의 아픔과 죄책감을 이겨낸 엘사는 한스를 옥에 가두고 법질서를 바로잡았지. 단체 집회를 하지 말라는 정부의 요청에 따르지 않는 종교집단을 단죄하기 위해 각종 비리 수사와 함께 세금 부과를 위한 법 개정이 이뤄졌지. 무엇보다 엘사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사람들에게 서로를 미워하지 말라고 간청하는 것이었어. 사랑과 희생만이 이 병을 이길 무기라는 걸 설파했단다. 엘사는 또 자신이 마스크를 낀 것처럼 백성들도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는 꼭 마스크를 끼고 손을 자주 씻도록 시켰어. 혹시라도 자신에게 들어온 바이러스를 전파시키지 않도록 타인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희생하는 이런 행동들이 병을 이기는 유일한 무기라는 점을 백성 모두가 결국에는 이해했단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몇 달 뒤 치료제와 예방약이 개발됐어. 이제 병에 걸린 사람들은 치료 주사를 맞았고, 아직 병에 안 걸린 사람들은 예방 주사를 맞았단다. 다른 백성들이 모두 주사를 맞은 뒤에야 비로소 엘사가 주사를 맞았어. 이제 엘사와 코로나 백성은 깨달았어. 병마를 이기는 것은 공포와 차별, 적대감이 아니라 사랑과 배려, 희생정신이라는 것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