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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Nov 01. 2020

모든 두려움과 함께 쓰기

안녕하세요? 두려움

    

글을 쓰지 않고 글쓰기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낸 시간이 꽤 길었습니다. 마지막 책을 내고  3년 이상을 그리 보냈습니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는 것이 태산을 옮기려고 한발 떼야만 하는 것처럼 힘들었습니다.      

나는 늘 두려웠습니다.      

안 써지면 어쩌지? 글을 끝내 지 못하면 어쩌지? 시간이 모자라면 어쩌지? 너무 힘들면 어쩌지?

글을 쓰기 전에는 안 풀리고, 고생하고, 집중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생길까 두렵고 걱정이 됩니다. 그러면 열에 아홉 번은 미룹니다. 주변을 정리하거나 샤워를 하고 아니면 잡다한 일부터 처리하고 집중해야지 하면서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집안일을 합니다. 혹은 마음을 정돈한다는 핑계로 명상도 합니다.  

    

어찌해서 글을 쓰고 나서도 두렵고 걱정이 되기는 매 한 가지입니다. 

이 따위 글을 누가 본다고 사서 고생이지? 이렇게 써서 언제 완성하지? 내가 소질이나 재능이 있기는 한 거야? 삼대가 덕을 쌓아야 작가가 된다는 데 이게 나한테 가능해? 

그러면 일단은 부정적으로 치닫는 내 마음, 이 불편한 심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반대의 핑곗거리를 만듭니다. 

남들의 평가가 뭐가 중요해? 꼭 유명해지려고 글을 쓰는 건 아니잖아. 티끌모아 태산이잖아. 재능 있는 자가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잖아. 운명은 스스로 만드는 거야. 

물론 다 맞는 말입니다 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글 써서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아 유명해지고 싶지요.  돈도 벌고 싶고. 내게 재능이 있었으면 좋겠고, 작가로 성공할 수 있다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인걸요.

    

글을 쓰지 않고 있을 때도 두렵습니다.  

이러다 그냥 나이 먹어 실컷 글이라도 써 볼 걸... 아쉬워하고 후회하면서 죽으면 어쩌지? 

재밌는 드라마나 책을 보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김밥을 먹으면서도 커피를 마시면서도 불현듯 올라오는 두려움에 가슴이 답답합니다.     


고통스럽고 그 고통에 무감각해지다가 불현듯 무기력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팡질팡 보낸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삼대가 덕을 쌓은 조상님의 덕분인지 아니면 엄마의 기도 덕분인지 신의 사랑 덕인지 다행히 두려움의 감옥에서 탈출구를 찾았습니다. 두려움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와 함께하는 것을 허락했지요.  존재를 부정당해서 봐 달라고 자꾸 고개를 내밀던 두려움은 내가 자신을 인정하자 그렇게 나를 괴롭히자는 않았습니다. 그냥 내 안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처럼 두려움에게 한 자리를 내줬습니다.    

  

여전히 글을 쓰기 전에도, 글을 쓰면서도, 쓰고 나서도 두렵습니다. 하지만 이젠 두려움이 내게 문을 드리면 '안녕'하고 인사는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썩 사랑스럽진 않지만 함께 지낼 만은 합니다. 

글이 안 써질 까 두려워. 완성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 내 글을 아무도 좋아해 주지 않을까 두려워. 두려움이 속삭입니다. 그래도 두려움과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겐 엄청난 변화입니다. 

 

그리고 내게 큰 위한이 되었던 것은 유명 작가들,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도 모두 실패와 좌절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위대한 것은 두려움을 극복해서 없앴던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보며 두려움에게 자신의 전부를 내주지 않고 나아갔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나는 오늘도 두려움과 함께 글을 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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