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나다아재 Oct 26. 2024

남편을 당근하다

심한 코골이 남편을 당근마켓에 올린 정숙 씨 사연

정숙 씨는 결혼한 지 30년 차다.

벌써 30년이라니.

청소기를 돌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머, 소름 돋아.’


남편은 오전에 일찍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면서 청계산으로 내뺀 지 오래다.

남편이 퇴사한 지 3년.

산으로 들로 밖으로 나다닌다.

그나마 시어머니가 남편 퇴직시 용돈하라고 사주신 오피스텔이 하나 있어서 월 80만 원의 월세를 용돈삼아 받아서 혼자 쓰고 잘 지낸다.


정숙 씨는 동네 조금만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다.

E여대 약대를 재학시절에 과 미팅으로 남편을 만났다.

군대 다녀온 복학생 4학년과 1학년이었다.


5살 차이는 나름 괜찮았다.

그게 인연이 되어서 지금까지 무탈히 아들하나 딸하나 놓고 잘 살아왔다.


남편이 퇴사하고 수입은 줄었지만 크게 가계 운영에 문제는 없다.

문제는 점점 남편이 꼴배기 싫어진다는 점이다.

심한 코골이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목젖이 늘어지고 뱃살이 얹어지면서 부쩍 코골이가 심해졌다.


정숙 씨가 저녁 10시 정도에 모처럼 자려고 누우면 따로 싱글침대를 두 개 놓고 쓰는데도

무슨 고장 난 청소기 마냥 고장 난 기계음이 난다.


‘크으윽. 뿌우. 크으윽. 뿌우’


그럼 패턴이라도 동일하면 좋을 텐데.

그냥 어떤 때는 자다가 컥컥 대다가 숨을 쉬지 않는다.


'컥. 컥......'

그럼 숫자를 센다. 아니 그냥 머릿속에서 숫자가 그림으로 보이고

카운터다운이 시작된다.


하나

다섯

여섯

일곱

깨워야 하나. 싶을 때


'푸하~'하고 숨을 몰아서 내뱉는다.

이게 또 일정하기가 않다. 어쩔 땐 5초.

어쩔 땐 10초다.

가끔은 한 10초 이상 걸리기도 한다.  


그렇게 수면무호흡증이 겹치는 날에는 정숙 씨는 잠을 포기해야 한다.

가끔 친구들과 한잔하고 거나하게 취해서 들어온 날에는 자면서 이까지 간다.


‘크으윽. 뿌우. 크으윽. 뿌우. 컥. 컥...... 푸하. 빠지직. 빠지직.’

이건 거의 뭐, '들어보지 않은 자 말하지 말라 '수준이다.


처음에는 침대가 삐걱대는 줄 알았다.

잠이 오다가 하도 소리가 신경쓰여 정숙 씨는 일어나서 침대를 확인했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혹시 이런 것을 녹음해서 유튜브에 올리면

대박이 나는 것이 아닐까.

절대 기계음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준의 소리가 아니다.

외계의 소리 같은 이질적인 음표가 합쳐진 소리다.


불규칙하고

불연속적이며

불편한 소리다.


그럼에도 내일의 평온한 근무를 위해서도 자야 했다.

손님들이 몰리면 하루종일 서서 근무를 해야 한다.

좁은 약국 안에 환자들을 위한 대기석을 만들어 놓아서 정작 자신이 앉을 공간은 없다.

손가락 한마디 만한 주황색 수면용 귀마개를 양쪽 귓속에 깊게 꽂아 넣고 잠을 청했다.


잠을 자기 위해서 집중.

또, 집중이다.

이번엔 잠을 자야 한다.

못 자면 내일 하루종일 약국에서 졸 수도 있다.


불편한 소리도 패턴으로 만들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자고 '후'하고 입으로 내 쉰다.


하지만 남편이 가만히 자게 해 줄리가 없다. 

“아, 쓰바아아..으어어..”


놀라서 눈을 떴다

뭔가 하고 보니 이번에는 잠꼬대까지 추가다.

결국 정숙 씨는 베개와 이불을 챙겨서 거실 소파로 향했다.

잠자리가 불편했지만 워낙 신랑의 소리공격에 당한 탓에 그냥 뻗었다.


그날은 아침에 일찍 눈을 떴다.

불편하게 잠을 잔 탓에 허리가 뻐근했다.

그녀는 결심했다.


‘좋아, 내가 끝장을 본다.’

 

오전 7시 반이 되니까 밤새 알람금지로 해 놓았던 설정이 풀리면서

알람들이 쏟아졌다.

마침 중고거래 앱에서 문자가 떴다.

그녀가 올려놓은 '중고명품가방'이란 키워드에 맞는 물건들이 올라와 있었다.


잠시 눈으로만 그걸 쫓다가 그녀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안방문을 열고 자고 있는 남편의 누워 있는 사진을 찍었다.

얼굴에 하트모양을 넣고 당근에 올렸다.


[ 남편, 분양합니다. 연식 60년, 결혼 생활 30년. 종지부 찍고 이제 자유의 세상으로 보내려고 하오니, 유기남편 원하시는 독신녀 분들 중에 외로워하시는 분께 선착순 분양합니다. ]


이렇게 당근앱에 올리고는 식사를 하고 서둘러 출근했다.

남편은 오늘 오전에 친구들을 만나서 당구를 친다고 했다.

 

오전 내내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약국으로 가서 하얀 가운으로 갈아입고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망중한을 좀 즐기고 있었다. 오전에는 약국에 손님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가장 한가한 시간이기도 하다.

핸드폰에 알람이 울리면서 댓글들이 올라왔다. 시간대를 보니 아마도 남편들 출근시키고 이제 핸드폰을 보고 답을 단 듯하다.


댓글 1_ 여보세요, 폐기물은 그 집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ㅋ

댓글 2_ 당근이 무슨 폐기물 버리는 곳인 줄 아느냐. 호호호

댓글 3_ 다 참고 살고 있다. 이런 식으로 멀쩡한 남편을 유기하면 되겠습니까? (재밌네요.)


같은 농담이 섞인 문자들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장난스럽게 분위기가 좋았다.


조회수도 두 자리를 금방 넘었다. 이윽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나정숙 씨죠? 여기 당근 운영팀 000인데요. 이게 저 농담으로 올리신 거죠? 사람을 중고마켓에 이렇게 올리시면 안 됩니다. 자제 바랍니다.”


전화를 한 여자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네, 죄송합니다. 하도 남편이 코를 골아서 화가 나서요.”


정숙 씨가 놀라서 사과했다. 뭔가 큰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것은 아닌지.

전화하신 여성 담당자 분도 기가 막힌 지 큭큭 대면서 웃는다.


“큭큭, 고객님, 다 그러고 살아요. 남편이 중고로 거래가 되면 난리도 아닐 겁니다. 호호호.”


“아, 그래요? 호호호.”


얼굴은 모르지만 남편들에 대한 동질감으로 둘은 웃음보가 터졌다.

한참을 웃다가 끊었다.


병원 닫는 시간에 맞춰서 일찍 닫고 집에 가니 남편이 외출했다가 등산복 차림으로 들어왔다. 등산을 가도 등산복차림, 당구를 쳐도 등산복 차림. 24시간 만능인 등산복이다. 등산복 만드는 사람들에게 상이라도 줘야 한다. 국민 할아버지복장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웬일로 손에 꽃이 들려 있다. 자세히 보니 한송이를 얇은 연질 점착지와 아트지 그리고 그 위에 투명 비닐로 굴곡지게 잘라 감싸 놓아서 고급스럽게 포장된 꽃이다.


“ 왠, 꽃이에요?”


“어, 오늘 친구들 만났는데 누가 당근거래를 하나 봐. 누가 이 동네인데 남편을 당근에 올렸다고 하더라고. 허허허. 그래서 난 안 쫓겨나려고  사 왔지.”


“호호호, 그랬어요? 저녁은요?”


다행히, 남편이 자신의 사진까지 보지는 못한 것 같았다.


“아직 집에서 먹는다고 친구들은 보냈지. 먹자 저녁. 얼른 씻고 나올게요.”


그럼 그렇지.


삼식(三食)이가 오늘 저녁을 거를 리가 없지.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