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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아재 Oct 01. 2024

경비원, 호랭이

학교폭력을 처리하는 어떤 경찰 엄마의 신박한 방법



여자는 저번에 잡은 동네 주폭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술에 취해서 법정에 나온 동네 주폭은 39세였다.


동네 병원과 시장을 돌면서 걸핏하면 술에 취한 채 행패를 부렸다. 


그걸 검거한 것이 바로 주혜였다.


피해자들은 보복이 두려워서 재범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고 결국 바로 구속이 되었다. 


문제는 그가 출소한 지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주혜에게 ‘이혼’이라는 중대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혼은 남들의 얘긴 줄만 알았다.


다른 것은 다 참아도 ‘거짓말’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남편이 순순히 외도를 인정했으면 한 번은 봐주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남자들이 얼마나 유혹에 약한 존재들인지 그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경찰서 내에서도 다들 회식을 마치고 자신이 일찍 들어가고 나면 ‘킥킥’ 대면서 이후의 무용담들을 주고받는 것을 알면서 모른 척했다.


사내들의 풋정 같은 것까지 ‘촉’을 세우기엔 너무 바빴다.


동물들 같으니라고. 


언제나 남편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성혁이 아빠, 잘 들어. 나 지금 농담하는 것 아니고, 내 직업 알지? 그리고 내 성격 잘 알지? 나 지금 화 엄청나게 났어. 총이 있었으면 내 머리통에 대고 쏴야 할 정도로 화가 났다면 비유가 될까 모르겠어. 그 정도로 화가 났다는 말이야. 자 좋아. 다 알겠어. 당신의 변명도 알겠고 다 알겠다고. 그러니 이제 마지막 기회야. 정말 잘 생각하고 대답해 주길 바라. 난 당신이 신중하게 정말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답을 해주었으면 좋겠어.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야............... 솔직히 말하면 이번 한 번은 용서해 줄게.”


주혜는 동아줄을 내렸다. 하지만 남편은 그 동아줄을 끝까지 잡지 않았다.  


끝까지 오리발 내미는 것은 전과가 쌓인 잡범들이 하는 짓이다. 


기존에 쌓인 전과가 있으니 이번 범죄가 탄로 나면 누적되어서 가중처벌 요건이 되니 기를 쓰고 거짓말을 한다. 끝까지 아니라고 우긴다. 증거를 대라. 난 무죄다. 난 끝까지 무죄다. 


증거가 보여야 고개를 떨군다. 주혜는 핸드폰을 들면서 손이 떨렸다. 


그 증거를 남편에게 내밀었다. 


“여보, 내가 죽을죄를 지었어.”


남편은 뒤늦은 무릎을 꿇었지만, 이미 동아줄은 거두어지고 없었다. 


경고했잖아. 방금까지. 그 줄을 잡으라고. 그 버스를 타라고. 그 막차를 타라고, 이게 진실의 막차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꼭 차가 떠나고 난 뒤에 무릎을 꿇으면 이미 떠난 열차가 어떻게 선로를 돌아오냐고 주혜는 아이들이 영어 캠프에 간 사이에 아무도 없는 안방에서 악다구니를 썼다. 


그녀는 법원에는 항상 범인이나 피의자 누군가의 이름을 든 받으러 갔는데 자신의 일로 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두 번 다시는 법원에 오고 싶지 않았다. 


이혼숙려기간조차 지나고 완전히 이혼 서류가 마무리되었을 때, 최소한 커피 한 잔은 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 전쟁에 실패한 적군이 퇴각하듯이 남편은 그 길로 휑하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갔다.


그 길의 휑한 횡단보도에서 얼마나 서 있었을까. 소나기가 내렸다. 

주혜의 볼에 빗물이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내내 흘러내렸다.  


여자 혼자 그것도 경찰인 주혜가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주혜는 잘 알고 있다. 


한국은 특히 여자에겐 정말 ‘헬’이다. 


미국이나 캐나다는 그 흔한 슈퍼마켓만 가도 문고리 잡을 일이 없다고 친구 희정이는 떠들어 대었었다. 모르는 남자들이 열어준다든데.


그런 면에서 한국은 아직 후진국이다. 


어느 학자가 그랬다고 들었다. 한국의 정신 개조가 이루어지려면 앞으로 100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주혜에게 필요한 것은 요 몇 달의 진정기간이었다. 


아무튼 급작스런 부모의 이혼 때문에 중학교 2학년 된 딸은 우울증에 빠졌다. 


초등학생 6학년이 된 아들은 아직도 아빠를 찾는다. 


“엄마가 뭘 알아? 동생 성국이는 맨날 맞고 다녀. 삥 뜯기고.”


딸이 달려가서 몸으로 막아서 그날은 그냥 보내주었지만 듣고 보니 동생은 맨날 삥을 뜯기고 있었다고 한다. 


딸이 그날밤 자신에게 울고불고하면서 고함을 치는 바람에 주혜는 싱글맘으로서의 자신의 처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그날 밤 일찍 잠자리에 든 아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눈자위에는 아직 멍자국이 남아 있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 땅의 얼마나 많은 외벌이 엄마들이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을까. 


하물며 자신은 경찰인데도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근무시간도 늦춰가면서 아들의 뒤를 밟았다. 


교복을 입은 동네 중학생들 3명이 아들의 멱살을 잡기도 하고, 뒤통수를 세게 내려치기도 했다.


주혜는 피가 거꾸로 솟아서 본인 직접 나설까 하고 생각을 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그는 경찰이기에 더 참아야 했다. 이성이 본능을 눌렀다.  


잘못하면 일이 더 커질 것 같았다. 


설사 아이들을 혼낼 방법도 마득치 않았다. 


중학생들이 초등학생을 혼냈다는 이유로 잡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주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놈의 촉법소년 제도 덕분에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바퀴벌레 한 마리 때문에 집을 태울 수는 없다. 


결국 그녀는 고심 끝에 어쩌면 가장 잘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이코’를 한 명 떠올렸다. 


주혜는 결국 후배를 찾아갔다. 




후배 ‘호랑이’


그의 별명은 호랑이였다. 지금은 경찰 일을 접고 탐정일을 하고 있다. 


“선배, 맨날 모텔 쪽에서 살아요. 요즘은 그쪽으로 일거리가 많네, 하하하.”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웬일이유, 선배 스타일에 일 없이 그냥 올 사람도 아니고.” 커피믹스를 타 주면서 그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큰 덩치를 보고 있잖아니 종이컵이 소주컵처럼 작아 보이는 착시를 일으켰다.


주혜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련의 이혼과 큰 딸과의 갈등과 아들을 괴롭히는 촉법소년들에 대해서 사건의 피해자 브리핑하듯이 간단하게 읆었다. 


“참, 선배도 많이 나이 들었네. 하긴 가족이 있으면 제 아무리 맹수라도 약해진다니까.”라고 호랑이는 고개만 끄덕였다. 


“잠시 좀 쉴 생각이었는데 잘 됐네. 내 동생이 여기 사무소는 잘하고 있으니까. 돈 워리. 이쪽 일은 언제든지 다시 해도 되니까. 나 비싼 것 알지?” 돈은 줘도 안 받을 것이면서 일부러 너스레를 떤다. 




그는 그렇게 우리 아파트의 경비원이 되었다. 


목표만 생기면 행동도 빠르고 추진력도 좋다. 


하여튼, 뭘 하든지 엉뚱하게 접근하고, 지나서 보면 항상 이 녀석 방식이 백 퍼센트는 아니어도 맞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엔 어떤 일로 자신을 놀라게 해 줄 건지 궁금해졌다. 


주혜는 쉬는 날 마트라도 가려고 아파트를 가로질러 나가다가도 벌건 대낮에도 랜턴을 들고 다니는 그와 마주치곤 했다. 


후배 호랑이는 그때마다 멋쩍은 웃음을 보내면서 청색 모자를 들었다 놓았다.  


그는 아파트와 아파트의 동 간 거리를 재기도 하고 지하주차장을 랜턴을 가지고 돌기도 했으며 한 달은 꼬박 아파트 안에서 뭔가 건축하는 사람처럼 혼자 분주했다. 


‘저 놈 또 시작했네.’


하여튼 뭐 하나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다. 


그걸 정신과에서는 편집증이라고 했다. 


“선배, 저는 뭐에 하나 꽂히면 나머진 잘 안 보여요. 천성이...” 호랑이는 가끔 나무라면 그렇게 변명을 하곤 했다. 


“어떤 형사가 책상 위에 정신과 약봉지를 두니? 자랑이냐. ” 주혜는 목소리를 낮추면서 그의 약봉지를 슬그머니 그의 열린 서랍으로 던져 주었다. 




그러던 중에 아들은 또 눈 주변이 시퍼렇게 맞아서 들어왔다. 이번에는 입술 주변도 피가 터져 있었다.


눈에서 불꽃이 튀어나왔다.  


“누가 그랬어?”라고 말했지만, 주혜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다. 


아들은 말이 없었다. 


이런 걸 말하지 않는 아들의 속이 가끔은 궁금했다. 


이게 남자답다고 아들이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수많은 범죄자들이 그렇듯이 가족을 대고 협박을 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워낙 그런 범죄자 새끼들이 많아서 주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피해자들을 고립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하이에나 떼처럼 그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가장 약한 부분을 찾는다. 


그건 고립된 피해자. 


조금 참으면 해결되겠지만 그래도 주혜의 속은 타 들어갔다.


주방에서 못 마시는 소주를 맥주컵 가득히 따라서 타는 속에 그냥 들이켰다.


어쩔 때는 백가지 약보다 한잔의 소주가 더 위로가 된다. 



전화를 걸었다. 후배 호랑이는 신기하게도 항상 세 번 울리기 전에는 반드시 받는다. 


그러니 불통의 위험은 없다. 


“우리 아들 또 맞고 왔다.” 주혜의 목소리가 살짝 잠겼다. 


“선배, 준비는 거의 다 끝났어. 미안 내 성격 알잖아. “ 못 들은 척 쾌활한 답이다.  




사건이 벌어지던 날은 한글날이었다. 


국경일이지만 주혜는 일이 있어서 경찰서로 출근했다. 


덕분에 친정엄마 찬스를 또 써야 했다. 


일을 마치고 오후 4시경 아파트 단지 안으로 걸어서 들어오는데 경찰차가 두 대나 경광등을 번쩍이면서 아파트 입구 쪽에 서 있었다. 


보도블록에 앉아 있는 세 명의 아이들은 교복 상의가 여기저기 뜯어져 있고, 점점이 피가 묻어 있었다. 

다들 얼이 빠져 있었다.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고?”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있어서 못 봤어요.”


“가죽점퍼를 이렇게 입고 있었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주먹이 날아왔어요.”


“덩치가 산만했어요. 반항할 수도 없었어요. 멱살을 잡고 때렸어요.”


아이들은 울음반 말반으로 섞인 말을 쏟아냈다. 그들의 어깨가 심하게 아래위로 들썩였다. 모르는 사람에게 이유 없이 맞은 아이들은 씩씩대었다. 


아이들의 눈은 심하게 부풀어 있었다. 


아이들의 맞은 부위는 공통점이 있었다.


왼쪽 눈은 주먹만큼 부어올라서 눈은 저절로 감겨 있었고, 감긴 눈에는 마치 진물 같은 핏물이 번져 있었다. 왼쪽 뺨에는 커다란 손자국이 있었고, 입술은 터져 있었다.


주혜는 그걸 보는 순간 시원한 사이다가 ‘캬’하고 올라오는 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호랑이가 이미 예언한 부분이었다. 


“딱 세 대씩만 때릴게요. 어디 부러뜨리지도 않고 딱 우리 성혁이 지난 6개월간 맞은 것에 백분의 일만큼만 때릴게요.”


“그래. 그래도 힘 조절해. 너무 세게 쳐서 혹시나....”

죽이지는 말고라는 말이 목에서 나왔다가 다시 뱃속으로 사라졌다.  


다행히 아이들은 얼굴 말고 부러진 곳이나 다른 상처는 없었다. 


학교 가면 누가 봐도 쳐 맞은 자국이 선명할 텐데. 


그래, 니들도 맞는 사람의 심정은 느껴봐야지. 


그 아이들 옆에는 여자 3명이 목에 핏대를 올리고 있었다.


“아니, 이 동네 무서워서 어디 살겠어요? 이 선량한 아이들을 죽도록 패 놓고 빨리 범인을 잡아주세요.”


아이들은 호주머니에 쪽지가 발견되었다. 




[ [ 

개새끼들아. 잘 들어라. 

나는 

니들이 맨날 줘 패던 아이의 엄마다.

한 번만 더 우리 아들을 패면 그때는 

그냥 경고로 안 끝낸다.

다시 한번 정확히 말한다. 

 ]]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아이들에게서 받은 그걸 보여주었을 때

주혜는 아연질색했다.


‘하여튼 시키지 않은 짓을 또 하네..’  


시키지 않은 짓 때문에 경찰에서도 잘렸는데 또 장난을 친 것이다.

물론 쪽지에 적힌 내용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은 정확히 맞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쪽지를 아이들에게 남기면 현직 경찰인 자신이 얼마나 곤란해 질지는 생각하지도 않은 게 틀림없다. 


‘아, 이 미친놈 호랭이 쉐키.’

주혜는 두 손가락으로 머리를 짚었다. 


여자 3명이 아이들의 손짓으로 바로 욕할 상대를 찾았다. 


“아니, 경찰이라는 년이 지 아들 맞았다고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해?”


“어머, 제가 쓴 것이 아니에요.” 주혜는 손사래를 쳤다.


그나마 거기서 그쳤으면 좋았을 텐데.


자신들의 피 같은 얘들이 처맞았다는 것과 그 가해자가 아직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억울함을 호소한 가해자 중 한 명의 엄마가 사진으로 찍어둔 쪽지를 방송국에 흘렸다.  


그냥 동네 개싸움으로 끝날 해프닝이 가해자가 경찰이고 형사라는 사실이 퍼지자 갈비 냄새를 맡은 굶주린 개떼처럼 기자들이 경기도 변두리 지역으로 몰려왔다. 


“한 말씀 좀 해주시죠. 현직 형사라고 들었는데 이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쪽지를 본인 쓴 것 맞나요?”


이제 국민적인 관심이 쏠렸다. 


“반드시 범인을 밝혀서 이 억울한 중학생들의 폭행사건 범인을 잡겠습니다.” 경찰서장도 나서서 인터뷰를 해야 했다. 


사건은 경찰서 강력계에 할당되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중학생들이 맞았다는 사건이 강력계에 할당되는 일은 드물었다. 


다른 중대한 사건들도 많기 때문이다. 


“넌 일단 좀 쉬어. 휴직처리해 줄게.”라고 서장조차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경찰들은 당연히 아파트 CCTV만 확보하면 금방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절대 범인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엄마는 당일 경찰서에서 근무한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이런 아이러니도 없었다. 


강력 1팀에서 수사를 맡고 강력 2팀이 알리바이를 댔다. 


강력 2 팀원들은 팀장의 알리바이와 동선을 1팀에 고스란히 다 댔다. 


심지어 뉴스에서 같은 시간대 경찰에서 근무하는 실시간 거리의 CCTV로 각종 매체와 유튜브에서 분석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언론 보도가 되면 될수록 엄마 주혜의 알리바이는 확실했다. 


그녀는 핸드폰도 제출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시간대에 똑같은 복장으로 나타난 오토바이 배달기 사는 전체 10명이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각자의 배달하는 아파트에 들어가서 나오면 되는 것을 그들은 무슨 일인지 배달을 마치고 아파트를 한 번씩 돌아서 배회를 했다. 


그건 CCTV동선을 혼잡하게 만들었다. 키와 덩치도 비슷한 열 명의 오토바이 기사들이 CCTV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강력계 형사들이 인근에 근무하는 오토바이 배달맨들을 다 불러서 얘기를 했지만 다 아니라고 했다. 


물론 이것도 호랑이 녀석의 작품이었다. 


문제는 아이들이 맞은 공원 옆 지점, 즉 김주혜 형사의 아들이 맞던 지점이 CCTV가 있다가 주민들의 항의로 없어진 지역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조사를 하면 할수록 이들 중학생의 만행은 점점 더 드러났다. 


이들에게 삥 뜯기고 맞고, 심지어 어떤 여중생은 성추행을 당할 뻔하기도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당연히 이들은 대중으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다. 


여론은 수사의 동력이 되고는 하는데, 이번에는 잘 나가던 배의 엔진에 찬 바닷물이 끼얹어지는 격이었다. 경찰서로 그딴 일에 수사력을 집중하지 말라는 항의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아니, 뉴스를 보다가 속이 터져서 전화를 안 하는가. 그딴 새끼들 쳐 맞았다고 뭐 갱찰이 움직일 일인교.”


“잘 팼던데, 내가 아버지였으면 난 아마 다리를 부러뜨렸을 겁니다.”


사태가 이쯤 되자 경찰서 수사팀도 수사를 하는 척하면서 다른 용의자들 추적에 더 신경 쓰기 시작했다. 


한 달 후, 다른 사건의 중대 용의자가 나타나자 언론의 관심이 식기 시작했다. 


아니 뚝 끊겼다. 


눈치를 보던 서장은 그제야 팀장들을 불러 모아놓고 한마디를 했다.


“아니, 막말로 이 범죄자 새끼들이 쳐 맞은 걸 뭐 하러 우리가 찾아. 알고 보니까 그 중학생 쉐키들 아주 동네에서 유명한 양아치 새끼들이더구먼. 양야치들을 두들겨 팼다고 동네사람들이 다 좋아하더라. 오토바이맨 말이야, 의적 홍길동이여. 야, 이제 수사하는 흉내만 내고 다들 각자 일해. ”라고 말하면서 주혜를 대신해서 회의에 참석한 강력 2팀의 형사 눈치를 봤다. 


그리고 다시 주혜를 복직시켰다. 


일단 사건과는 전혀 무관함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사건은 다른 중대한 사건에 밀려서 사라졌다. 


이제 중학생 아이들은 더 이상 초등생 성혁이가 지나가도 먼 발취에서 지켜볼 뿐 감히 때릴 엄두를 못 냈다. 


아니 성혁이 외에 다른 아이들도 괴롭히지 못했다. 


자신들이 맞아보니 폭력의 강도와 아픔, 이빨이 흔들리는 피해가 어떤 것인지 잘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제대로 맞아본 놈들은 사람을 잘 못 때린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성혁이의 엄마가 형사라는 사실도 알았기에 중학생 패거리들은 성혁이를 보면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그렇게 훌쩍 1년이 지났다. 


호랑이는 경비원을 그만두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이미 교장으로 정년 퇴임을 하고 3년째 쉬고 있는 자신의 삼촌에게 추천했다. 후임자가 있다고 하니 관리사무소에서는 쉽게 사표를 받아주었다. 


“조카, 그렇게 좋은 사람이면 한번 대시라도 혀 봐.”

삼촌은 자신보다 술을 잘 먹는 덩치 큰 조카를 향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에이, 삼촌 그런 분이 아니에요. 우리 팀장님은 그냥 쳐다보기만 혀도 빛이 난 다니까요. 별명이 빛주혜에 유. 빛주혜. 그렇게 경찰서에서 일할 때 보면 피해자들에게 친절하고 범죄자들에게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인데도 막상 지 아그들한테 쩔쩔매는 것 보면 허허 경비원 하면서 제일 재밌어요. 그것 보는 맛에 여태껏 다녔어요.” 같은 고향의 삼촌이어서 그냥 사투리가 표준이 되었다. 사내는 소주를 2병이나 마셨지만 표시도 안 났다. 


“삼촌, 암튼 그럼 앞으로 우리 팀장님 잘 부탁해요. 일 있으면 저한테 먼저 전화 주시는 것 잊지 말구유.” 사내는 삼촌이 마시지 않고 있던 잔까지 들어서 입에 털어 넣었다.


이틑 날.


호랑이와 주혜 경장, 어스름한 석양빛을 보면서 둘은 아파트 입구에 서 있었다. 


“호랭아 고맙다.”


“선배 한 잔 사소.”


“가자 오늘 한 잔 살게.”


“어허, 됐어. 오늘은 나도 바빠. 내가 뭐 노계랑 마실일이 있소? 다음에 봐요. 잘 들어가고. ”


늘 그런 식이다. 


호랑이는 그렇게 손꼬리를 흔들면서 석양 속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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