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신고는 했고요. 그쪽은 사고가 나야 개입이 되는데 저희는 확실한 사전처리를 원해서요. 너무 불안해서 못살겠어요.”
“흠...지금 느끼시는 공포가 일에서부터 십까지라면 몇 정도 되시나요?”
“십이에요. 십요. 제발 살려주세요.”
여자가 수화기 저편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직원은 찬주의 눈치를 살폈다. 다 들리는데도 직원은 굳이 손가락 열 개를 다 폈다.
찬주가 고개를 천천히 두 번 끄덕였다. 접수를 받아도 좋다는 자신들만의 싸인이었다.
“위치를 말씀해 주세요.”
“안산역 5번 출구쪽에 위치한 ‘머리짱짱 잘 자르는 미용실’입니다.”
“잠시 상품 설명 좀 드릴게요. 이용하실 수 있는 용역 서비스는 3가지가 있습니다. 일단 해당 상대방에게 경고는 30만원이고요, 이건 단순 1회입니다. 웬만하면 이것으로 끝나기도 합니다. 방문해서 경고는 50만원입니다. 제일 쎈 것은 세트상품이 있는데요. 경고와 물리적으로 아예 차단시켜 드립니다.”
“마지막 세트상품 가격은 얼마에요?”
“100만원인데요.”
“저한테는 좀 쎄군요....”
“허허, 네 대신 무한 애프터서비스를 해 드립니다.”
“지금 급하니까 100만원짜리로 할께요.”
“계좌번호 보내드릴게요. 일단 착수금 30만원만 보내세요.”
세희는 서둘러서 돈을 보냈다.
잠시후 남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 가해자에 대해서 아는 대로 문자로 알려주세요. 연락처 있으면 연락처도 주시고요. 집주소까지 알면 제일 좋고요.”
“전에 사귀었던 남자라 다 알아요.”
“흠...그럼 너무 좋네요. 잘 처리해 드릴게요. 가게 주소 보내시고, 저희 직원이 도착하면 문자 드릴테니 그 이후에 퇴근하세요.”
세희는 전화를 끊었지만, 아직 불안했다. 가게 안은 환했지만 가게 밖은 깜깜했다.
시계를 보니 저녁 7시였다. 겨울이라 해가 빨리진다.
오늘은 몸이 피곤해서 좀 일찍 퇴근하고 싶지만, 직원이 온다고 하니 기다려보기로 했다.
한 시간이 지나서 문자가 도착했다.
[ 사장님, 슬슬 퇴근해 보세요. 저희가 보고 있을게요. ]
찬주는 차 안에 앉아 있었다. 검정색 봉고에는 총 3명이 타고 있었다. 여사장이 불안해 하는데, 그 이유가 곧 밝혀졌다. 인근에 해당 남자로 보이는 사람이 차 안에 앉아 있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하관은 날렵하고 빠르다. 경험상 차라리 퉁퉁한 스타일이면 말로 해서 다 해결되는데, 날렵한 스타일은 쉽지 않다. 100만원이 큰 돈은 아니지만 더 받으면 서민들이 이용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장님, 지금 가서 경고할까요?”
“아냐, 오늘은 첫 날이니까 일단 분위기를 좀 지켜보자고. 차량번호 다 찍고 있지?”
“네, 봉고차를 기준으로 360도 다 촬영되고 있습니다.” 직원이 답했다.
“자, 타겟은 지금 저 여자 보느라 정신 없으니까. 상훈이가 여사장님 동선보다 조금 앞에 걸어가주고 동영이는 여기 운전대 잡고 있고, 내가 뒤에서 쫓아갈게. ”
이윽고 여사장이 나와서 가게문을 닫고 골목길 쪽으로 빠른 걸음을 옮겼다. 여자가 움직이자 서 있던 스토커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여자의 뒤를 쫓았다. 그 뒤에 찬주가 붙었다. 뒤에서 소리가 나자 여사장이 뒤를 힐끔거렸다. 모자를 눌러선 스토커 남자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남자가 어느샌가 거리를 확 좁혀서 여사장의 손목을 낚아챘다.
‘아악.’ 여자의 목소리가 골목길에 퍼졌다.
“야, 야”
찬주가 바로 개입했다. 굵은 목소리를 일부러 냈다.
스토커가 살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가로등 아래로 사내의 얼굴은 깊은 그림자가 져 있었다. 짜식, 개 폼은 다 짓고 있네.
“뭐...뭐야? 에이 씨발.”
질문 같지도 않은 말을 던지고 스토커는 반대쪽으로 몸을 빠르게 튀어나갔다. 날렵한 몸 만큼 역시 빠른 발이었다. 하지만 이미 앞서 보낸 상호가 자신쪽으로 뛰어오는 남자의 목 쪽으로 팔을 감았다. 그냥 맞은 편에서 오는 남자인 줄 알고 옆으로 피해가려다가 정통으로 목 부분을 맞은 것이다.
“어이쿠.” 남자가 외마디를 뱉었다. 상호는 빙긋이 웃었다. 팔 부분을 어루만졌다. 레슬링에서 팔로 상대의 상체를 쳐서 넘어뜨리는 기술이었다. 의도치 않게 너무 정타가 들어간 것 같았다.
바닥으로 한 번 뒹군 남자는 상호쪽이 강해보이자 이번에는 다시 찬주 쪽으로 뛰어왔다. 상호나 찬주나 형제들 답게 한 덩치하는 체구였다. 유도 유단자인 찬주는 상대가 비틀거리면서 자신의 사정권에 들어오자 그대로 잡아서 바닥에 꽂았다. 상대의 힘과 속도를 활용한 유도기술이었다. 단, 머리는 다치지 않게 상대의 하체를 먼저 떨어뜨리려고 얘썼다.
“으윽. 아...씨...” 남자가 허리에 충격을 받았는지 바닥에 누워서 비틀거렸다.
“야, 니들 뭐야?”
찬주가 옷을 훌러덩 벗었다. 골목길 희미한 불빛을 받아서 상체에 가득한 이레즈미 문신이 번들거렸다. 아까 나오기전에 올리브오일을 미리 몸에 발라놓은 효과였다.
“나, 윤세희 친오빠. 찬주라고 해. 윤찬주.”
찬주는 목을 좌우로 움직여서 일부러 소리를 냈다.
‘우두둑, 우두둑.’
보통의 남자들은 이 정도 하면 대충 정리가 된다. 정리가 되지 않으면, 더 심한 것을 보게 되지만 현대인들은 웬만해서는 합리적인 사고를 할 줄 안다. 그래서 싸움이 심하게 커지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일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다.
“뭐...에...요?“
남자가 엉거주춤하게 일어서더니 얼른 자세를 고쳤다.
오빠라는 말이 그제서야 머리에 각인이 된 것인지 남자는 바로 태세전환을 했다.
그가 고개를 다시 숙였다.
“어이쿠, 몰라뵈었습니다.”
“어, 괜찮아. 다만 우리 세희를 누가 좀 괴롭히고 있다는 말이 내 귀에 들어와서 들린거여. 경고한다. 오늘은 1차 경고. 다음엔.....바로 죽는거야. 그러니 따라다닐거야? 말거야? 확실히 얘기해. 여서 ” 찬주의 엄지 손가락이 자신의 목을 옆으로 길게 긋는 흉내를 냈다.
남자가 고개를 아스팔트 바닥에 대듯이 붙였다. 완전 엎드린 자세였다.
“절대 안 따라다니겠습니다.”
그날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찬주의 기분은 썩 좋지가 않았다. 왠지 모를 찜찜함 때문이었다. 상대가 이렇게 빨리 수긍하면 꼭 뒷탈이난다. 아니 그럴 사람이 빨리 수긍하면 괜찮은데, 저렇게 깐깐해 보이는 스타일이 빨리 수긍하면 그건 항상 더 큰 변고를 불러왔다. 왜냐하면 지금 남자가 보인 태도는 일단 작전상 자신이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후퇴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단계에서 남자를 불법적으로 붙잡을 수도 없다. 그냥 만일을 대비해서 직원에게 핸드폰 해킹을 준비시켰다. 그게 끝이었다. 오늘의 목표는 남자의 진짜 의도를 아는 것이었다.
다음날 오전에는 별일이 없었다.
“형, 그놈 쫄기는 쫄았나 보네요.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상호가 말했다.
“아냐, 연락이 올거야. 그런 놈 스타일을 내가 좀 알아. 크.” 찬주가 시니컬하게 답했다.
오후 4시경이 되자 직원에게 문자가 왔다. 미용실 여주인 세희가 보낸 문자였다.
상대 남자가 보낸 문자를 스캔한 내용이 들어있다.
[ 너, 어디서 양아치 데려와서 날 떼내려고 하는데 나한테는 전혀 안통해.
널 죽일 생각이야. 너도 죽이고, 네 부모도 죽이고, 나도 죽는다. ]
찬주는 세희가 보낸 문자를 보고 웃었다.
상호를 향해서 손을 뻗어서 핸드폰 화면을 보게 했다. 상호가 고개를 도리질하면서 지갑에서 5만원 짜리를 하나 꺼내서 찬주에게 건넸다. 형과의 내기에서 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수싸움에서 형은 늘 앞서 있다. 그것이 자신이 형을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뭔가를 잘 읽는다. 이런 내기에서 이겨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런 형의 수를 알면서도 확인하고 싶어서 내기를 걸곤 한다. 어차피 형은 모아서 용돈으로 얹어서 또 찔러준다.
“야, 니 형수가 용돈 줄여서 죽겠는데 잘 됐다. 크크크.” 찬주는 웃으면서 지갑에 돈을 넣었다. 그리곤 상호에게 말을 건넸다.
“상호야, 너 사람 죽일 때 됐지?”
“네, 형님, 안 그래도 몸이 근질근질하여라.”
“거, 하여튼 너는 형 말만 들어면 디야. 합법적으로 이렇게 쥑여야 벌도 안받아. 받더라도 정상 참작이 되어서 가볍게 받고 나오는거지.”
상호는 그의 친동생이다. 어릴 적 상호는 눈 앞에서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찬주는 학교에 있어서 그 사고를 보지 못했지만 동생은 눈 앞에서 목격한 것이다. 그 이후로 동생에게는 약간 정신병 같은 것이 찾아왔다. 정신과 의사에 의하면 너무 큰 충격으로 전두엽 손상을 당했다고 했다. 자가세포들이 자신의 전두엽 세포를 공격하는 증상 같은 거라고 하는데, 찬주는 중요한 것은 친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고 휴유증으로 동생 상호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사회에서 말하는 사이코패스가 된 것이다. 그런 동생은 최소한 1년에 한 번은 사람을 죽여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 조건으로 찬주가 상호를 데리고 있다.
찬주가 직접 세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 일단 걱정마시고요, 저희가 처리하고 나면 경찰이 올텐데 절대 저희 말씀하시면 안됩니다.”
“네, 저한테는 생명의 은인이 되실텐데요.”
일단 찬주는 스토커 남자의 사생활부터 조사를 했다. 이미 저번 시비를 걸때 남자의 폰을 해킹해 두어서 바로 접속이 가능했다. 정확히는 복사를 한 것이다. 이런 류의 남자들은 대인관계가 넓지도 않았다. 한 2주간 차분히 조사를 했다. 남자의 친구는 공사판에서 아는 박씨 말고는 딱히 없었다. 물론 그 사이에는 남자의 핸드폰 속 위치 파악을 해서, 여자 근처로 알람이 울릴 때만 찬주의 직원이 출장을 갔다. 2주간 딱 3번이었다. 이미 상대방도 찬주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 속으로 이런 저런 결심을 하면서 망설이고 있을 터였다.
찬주가 스토크의 메시지를 보고 있는데, 의미심장한 문자가 하나 발송되었다. 상대는 박씨 아저씨였다. 물론 박씨 아저씨란 이름은 남자의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이었다.
[ 박씨 아저씨, 그동안 감사했어요. 저 멀리 떠납니다. 나중에 자리잡으면 연락 드릴게요. ]
찬주는 결심했다.
“오늘 밤에 가야 쓰것다. 가자.”
찬주는 여자의 집으로 갔다. 집에는 여자의 친엄마도 와 있었다. 두 명은 복도 계단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오후 8시부터 대기를 했다. 중간에는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조심하면서 먹었다. 물론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담당하는 친구가 스토커의 실시간 위치를 알려준 것이 도움이 되었다.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어요.”
사무실 직원이 준 통화를 듣고서, 찬주는 서둘러 손님맞을 준비를 마쳤다.
이윽고, 현관 벨이 울렸다. 여자가 나가려고 하자 찬주가 말렸다.
“일단 어머님이 나가세요. 저희 직원들이 있으니까 너무 걱정은 마시고요.”
찬주가 이어폰으로 조용히 말했다.
“타겟 떴다. 어머니 나가는 중.”
찬주는 현관문 입구에 섰다. 어머니의 뒤였다. 남자는 검은 배낭을 메고 있었다. 인적이 뜸한 시간에 찾아온 것은 나름의 결심을 하고 온 것 같았다. 새벽 1시라니.
여자의 어머니가 문을 조금 열자 남자가 문을 확 잡아당겼다. 어머니는 일부러 문고리를 탁 놓고 뒤로 빠졌다. 이미 연습한 대로 였다. 문을 활짝 열리자 남자가 뛰어들려고 하다가 찬주의 거대한 덩치를 보고 탁 멈췄다. 뒤에서 직원들이 남자를 밀었다. 찬주의 남자의 등을 잡아서 현관 바닥에 꽂았다. 남자의 손에서 긴 사시미 칼이 떨어졌다.
일단, 놀란 세희양의 어머님은 안방으로 모셨다. TV를 틀어드리고, 볼륨을 키웠다.
그 사이에 직원들이 익숙하게 남자를 처리했다.
잠시 후, 의자에 꽁꽁 묶인 남자가 거실에서 싹싹 빌고 있었다.
그의 왼쪽 눈에는 피멍이 들어 있고, 얼굴의 눈두덩이는 퉁퉁 부어 있었다.
“한 번만 살려주시면 절대 다시는 세희씨 근처에도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
남자는 뭐가 추운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스토커 남자의 발 밑에서 넓게 깔아놓은 투명한 비닐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너 내가 경고 했잖아. 한 번 봐줘도 두 번은 못 봐준다고.”
찬주는 남자쪽으로 시선을 돌리지도 않은 채로 이미 예상을 했다는 듯이 입가에 쓸쓸한 미소를 띄우고는 테이블 위에 놓인 소주를 맥주 글라스에 가득 따라서 한 잔을 마셨다. 그리고 왼손으로 입가를 쓱하고 닦았다. 그리고 말을 툭 뱉었다.
"야야, 너도 참 딱한 인생이다. 그냥 조용히 네 삶을 살았으면 좋았을텐데...쯧쯧."
"어..어엉...살고 싶어요. 제발 살려주세요....다시는 다시는 세희씨 옆에는 얼씬도 않하겠습니다. 어...엉엉엉..." 묶인 남자는 부들부들 떨면서 눈물을 뚝뚝 연신 흘렸다.
"상호야, 쟤 양말 좀 벗거라."
이제 곧 독한 작업을 해야 할 터였다. 운전도 직원이 하니까 술 마시는 것에 부담이 없었다. 문득 찬주는 세희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두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세희씨 하고 싶은데로 해도 됩니다. 어차피 여길 자진해서 들어와서 이 녀석을 찾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아마 자기 지인한테도 다 작별인사를 하고 왔을거구. 여기서 맘대로 하세요.”
세희가 현관 쪽에 떨어진 남자의 사시미 칼을 쥐고 천천히 걸어왔다. 그녀는 날카로운 칼 끝을 세워 그대로 남자의 허벅지를 내려찍었다. 그녀의 손끝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아아악.’ 남자가 소리를 질렀지만 그 사이 입에 넣어둔 양말 덕분에 소리가 문 밖으로 나가진 않았다.
찬주는 일의 마무리는 반드시 자신의 동생 상호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면 어디서 이런 완벽한 기회를 다시 또 구해야 하니까. 힐끔 동생 정상호를 쳐다보니, 눈빛에 황금빛 환호가 일어나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한마리 호랑이 같은 기세였다. 어휴, 저럴때는 아무리 친동생이라도 소름이 살짝 올라오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