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나다아재 Oct 08. 2024

음주운전

소주 한 병과 맥주 500cc 두 잔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

지난주 금요일 오후였다. 을지로 3가 힙지로 근처에서 모처럼 친구들과 술을 한잔 했다.

밤 10시 반으로 기억한다. 대리기사를 잡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내가 설정한 3만 원으로는 30분 넘게 잡히지 않았다. 그날은 왜 그런지 모르지만 3만 원 이상은 내기 싫었다. 왜 쓸데없이 오기가 올라올 때가 있지 않은가? 바로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식당 인근에는 가끔 누더기 같은 옷에 비닐포대기 같은 것을 간이 바퀴 달린 카트에 끌고 다니는 노숙자들도 보였다. 나는 오늘 마신 주량을 체크해 보았다.


소주는 1차에서 한 병 정도 마신 것 같았고, 2 차가서 맥주는 500cc를 두 잔 정도 마셨다.

안주도 많이 먹었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용기가 용솟음쳤다.


‘에이, 대리도 안 잡히는데 그냥 몰고 가자. 까짓것.’


나는 털썩 운전대에 앉았다. 식당 앞에는 내 차까지 총 4대의 차가 있는데 다들 차량의 뒤 범퍼 쪽은 가게의 유리창쪽을 향해 있었다. 차량의 앞쪽이 골목을 향하고 있어서 그냥 엑셀만 밟고 골목을 빠져나가면 그만이었다. 술을 마셨는데 후진을 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나는 그것도 맘에 들었다. 시동을 걸었다.


헤드라이터가 맞은편 이미 문을 닫은 인쇄소 가게 앞으로 비췄다. 어두운 인쇄소 앞과 바로 옆 골목가에 서서 담배들 피우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을 눈부시게 했다. 일부는 손을 들어서 눈가를 가리기도 했다.  


나는 일단 안전벨트를 매고 자동차 기어를 ‘P(주차모드)’를 ‘D(주행모드)’로 바꾸었다.

이제 액셀 페달만 밟으면 바로 차는 나갈 차례였다. 아직은 브레이크 페달 위에 발이 얹혀 있었다.  


‘텅’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내 차의 앞유리창에 뭔가 사람의 팔 같은 것이 부딪혔다.


‘뭐지?’


나는 너무 놀랐다. 그 와중에 얼른 보니 액셀 페달은 아직 밟지 않은 상태다.

음주운전으로 사고가 나면 복잡해진다.


얼른 ‘D’로 놓은 자동차 기어를 ‘P’로 바꾸었다.

심장이 갑자기 놀라서 ‘쿵쿵’ 뛰는 것 같았다.


나 지금 엑셀을 안 밟은 것 맞지?

브레이크에서 발을 살짝 뗐다

아, 차에 블랙박스가 있으니 증거가 되어 줄 터였다.

시동을 끄고 ‘휴’하고 잠시 숨을 내 쉬었다.


헤드라이터가 꺼지니 잠시 엷은 자동차 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남자가 내 옆에 서 있었다. 노숙자 같은 허름한 모습이다.

그가 자동차 앞유리 위에 자신의 왼팔을 얹고 나의 진로를 막고 서 있었다.


시비가 걸릴 듯싶어서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창문 끝만 살짝 내렸다.


“무슨 일입니까?”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 나의 눈은 빠르게 주변 사람들을 훑었다.

아무도 이쪽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한두 명의 청년들이 담소를 나누면서 이따금씩 내가 서 있는 쪽을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


“청년, 잠시 내려보소. 지금 가면 큰 실수합니데이.” 다행히 아저씨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아니 지금 생각해 보니 목소리는 거의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이는 듯싶었다.

아마 큰소리로 말했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내려, 엄청난 화를 내면서 그 남자와 시비가 붙었을지도 몰랐다. 그 목소리는 당시 내게 매우 설득력 있게 들렸다.  


나는 자동차 창문을 다시 올리고, ‘딸깍’하고 손잡이를 당겨서 문을 밀어서 열었다.

자동차 문이 열리자 그는 기대고 있던 몸을 세워 뒤로 비켜주었다.

일단 차 문을 열고 내리자마자 , 나는 리모컨으로 자동차 문부터 잠겼다.  


“왜요?” 그를 쳐다보았다.


나는 내 앞을 막은 남자가 해지고 땟구정물이 반질거리는 두꺼운 파카를 입고 있는 노숙자란 사실에 살짝 놀랐다. 이미 차 안에서 봤지만 막상 자세히 보니 인상이 약간 찌푸려졌다. 그리고, 혹시 남자가 차에 부딪혀서 다쳤다는 말이라도 듣지 않을까 겁이 났다.


“담배 하나만.” 그는 작고 낮은 목소리로 느릿하게 말했다.


나도 담배를 피우려고 생각했었는데. 타이밍 한 번 좋았다. 담배를 건네니, 남자는 호주머니에서 1회용 라이터를 꺼내서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이면서 담배 끝에서 붉은 불빛이 올라오게 쭉 빨았다.


“크, 고급 담배가 그런지 맛이 좋구먼.”


지금 상황이 조금 기가 막히기도 하고 일단 남자가 어디 다쳤다는 말이 없어서 나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에이, 뭐야. 그냥 해프닝이었잖아.‘


남자는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옆 식당과 경계석처럼 놔둔 붉그스름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거기에는 약 3개의 낡은 플라스틱 의자가 놓여 있었다.


“여기 잠깐 앉아보소. “ 노숙자 같은 남자가 옆에 의자를 가리켰다. 그리곤 뭐가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이제 다쳤다는 말을 하려는 것일까? 나는 뭔가 이끌린 듯이 그의 말에 따랐다.


“직장인?” 남자는 뒤에 조사도 붙이지 않았다.


“네.”


“허허, 좋을 때구먼요. 나도 직장인이었어요. 아주 평범한 직장인이었죠. “ 남자의 시선이 지나가는 사람들 위로 향했다. 내가 그의 시선을 쫓았지만 그곳은 컴컴한 하늘 밖에 없었다.


노숙자 같은 남자 옆에는 은색 낮은 접이식 카트가 있고 거기엔 온갖 종류의 검정 비닐과 침낭처럼 보이는 물건들이 잔뜩 나름의 질서로 묶여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이 사람이 어떤 시비를 걸려고 하는 것일까 하는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남자가 내뿜는 연기는 입과 코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흰 연기를 뿜어냈다.


“그 당시는 나이트클럽이었지요, 내가 여자를 한 명 꼬셨거든요.”

남자는 묻지도 않은 말을 마치 내가 자신의 잘 아는 지인인 것처럼 말했다.


“네?”


“그때 대리운전을 불렀으면....”


“네?” 난 남자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몰랐다. 음주 운전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구나. 정도 느낄 뿐이었다. 나의 질문은 그래서 아저씨 어디를 다쳤나고요. 하고 물어보는 것이지만 일단 기다렸다.


“내가 이 노숙자 생활을 한지 얼마나 된 줄 아시오?”


‘제가 어떻게 알아요?’라는 말이 나올 뻔했다.  


여보세요. 나는 당신에게 관심이 일도 없다고요. 난 그냥 이 남자가 내 차에 다쳤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당신은 얼마나 다쳤냐고? 하지만 그 말은 나오지 않았다.


“흠, 어디 보자, 2021년인가에 출소해서 음. 생각해 보니 나도 겨우 3년밖에 안 되었소. 그전에는 아주 멀쩡한 직장인에 가장이었지요. 그런데 뭐가 이렇게 빨리 사람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았다오.”


“...............” 난 그냥 듣고 있었다.  


“나이트클럽에서 꼬신 여자랑 자려고 했지. 가까운 거리니까 모텔을 가려는데 대리운전 해서 갈 수가 있어야지. 내가 그때는 왜 그렇게 매사에 수줍어했는지 몰라요. 아무튼, 그래서 내가 그냥 운전을 했어요. 그때가 아마 내가 음주운전을 몇 번 즈음했을 때였소. 그전에도 음주 운전했는데 안 걸렸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을 한 거지. 아무튼 조심스럽게 운전을 해서 가는데 누가 자꾸 빵빵 거리길래 내가 창문을 살짝 내렸어요. 마침 빨간 신호등에 걸렸을 때 말이요. 내가 평소에는 괜찮지만 술만 들어가면 간덩이가 좀 붓거든요. 내가 차 창문을 열고 신호등에서 ‘뭡니까’ 그랬거든요. 아 그랬더니 유튜버래. 지금이야 워낙 많으니까 알지만 그때는 난 무슨 나이트 삐끼이거나 그냥 시비 거는 사람인줄만 알았죠. 그러면서 자꾸 서라는 거야. ‘당신 음주 운전했지’ 그러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정신이 빡 들었어요. 그때 액셀을 밟은 거죠. 교차로를 지날 때마다 신호는 자꾸 빨간색으로 바뀌는데 누군가 쫓아오는 상황이니 내가 얼마나 긴장을 했겠어요. “


못 들은 척하려고 해도, 사이사이 담뱃불을 빨아가면서 하는 노숙자의 얘기는 점점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요?”


“놀라서 엑셀을 더욱 세게 밟았다오. 시속 70km에서 100 이 되고 120, 150까지 올라갔어요.”


“시내에서요?”


“그렇지요. 아마 밤 12시는 족히 되었던 것 같아요. 차가 별로 없었어요. 그때 사거리를 몇 개 즈음 지날 때였어요. 막 건널목에서 손님을 내려주려고 정차해 있던 택시의 뒤를 그대로 박았어요.”


“어이쿠, 저런. 그래서요?”


“현장에서 택시가 저만치 튕겨서 나가고, 내 차는 건널목에 정말 찌그러져서 그냥 기절해지요. 그 사고로 70대였던 택시기사분이 즉사했고, 뒤에 탄 60대 아줌마가 죽었어요. “ 남자가 마치 뭐라도 공중에 뿌리듯이 양손을 펼쳤다.


“아, 저런...”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난 정신을 바로 차렸죠. 그러자 내가 술을 잔뜩 먹었다는 생각이 났고, 내 옆에 여자도 다행히 에어백이 터져서 살아났죠. 난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현장에서 나와서 보다가 겁도 나고 술도 먹었으니 그대로 골목사이로 뛰어서 도망을 갔어요.”


남자는 끝 밖에 남지 않은 담배를 쭉 빨았다. 그리고 바닥에 휙 하고 던졌다.


“젊은이, 잘 듣기 바라요, 그 사건으로 난 모든 것을 잃었어요. 내 이래 봬도 나름 중견기업의 자금부장으로 근무했었는데 회사에서는 잘렸고, 원래 사이가 삐그덕거리던 아내와는 그게 빌미가 되어서 이혼했죠.”


“어이쿠.”


“원래 안 좋은 일은 따라와요. 보험사에서는 음주에 대해서는 보험 적용을 안 해줘요. 그 사망합의금으로 보험사에서 피해자들에게 1억 5천만 원씩 지급했어요. 그나마 퇴직금 받은 거에 이혼까지 정신이 없었죠. 물론 난 바로 진행된 재판에서 징역 7년인가 나와서 복역했다오. 초범이지만 음주에 뺑소니까지 영향이 컸다오. 아이들은 당연히 연락을 끊었고. 더 무서운 게 뭔지 아시오?”


“두 명의 피해자 사망보험금으로 3억이 나갔고, 내 옆자리의 여자는 전치 3주인가 나와서 치료비 나가고, 변호사비에 하니까 대략 4억인가 그냥 나갑디다. 그냥 퇴직금은 다 날아갔고, 남은 재산 저축한 돈 조금에 집하나 있었는데 이혼하면서 주고 나니 난 빈털터리가 된 거유.”


“하루아침에요?” 내가 물었다.


“허허, 우습죠. 평범하게 부자는 아니어도 어디 손 안 벌리고 나름 잘 산다고 생각했었는데, 인생이란 게 그렇더만요. “


남자가 검지와 중지손가락을 마치 승리의 브이자처럼 세워서 자신의 얼굴 쪽으로 붙였다. 난 싸인을 바로 알아보고 그에게 담배를 건넸다. 그는 두 번째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남자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총각도 오늘 어쩌면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만약 운이 나쁘다면 나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겠지요.”


남자의 시선이 다시 서 있는 한 무리의 남자들을 향했다.

그중에 한 남자의 목소리는 조금 컸다.

조금 전까지는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던 세 명의 무리다.


“어, 여기는 상황이 없네. 몰라 아직도 얘기 중이야. 어 그쪽 떴다고? 오케이 그럼 그리로 갈게.

GPS보고 네 차 따라갈게. 오케이” 남자가 전화를 끊었다.


“명동팀에서 상황 떴다고 그리로 오래.”


“여기는 어떡하고?”


“여긴 보니까 텄어.” 한 친구가 작게 말했지만, 주변이 조용해서 바람을 타고 그 말이 들렸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건 뭔가 내가 다행히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기도 했고, 나의 잘못되길 기다리는 작은 무리들에게 뭔가 한방을 먹인 느낌 때문이었다. 나는 그 청년들을 보면서 두 번째 담배를 태워 물었다.


조금 전까지 근처에서 딴전을 피우면서 있던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주고받더니 일제히 사라졌다.

그들이 가면서 내 쪽을 보면서 골목을 빠져나가고 나서야 나는 소름이 쫙 끼쳤다.


“허허, 내 강연이 좋았다면 강연료나 좀 내주고 가소.” 다시 내 시선이 노숙자를 향했다. 그는 이미 이런 상황을 알고 내게 경고를 한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왜 이 남자가 나에게 너스레를 떨면서 자신의 지난 얘기들을 늘어놓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남자가 특유의 양쪽 입 끝이 내려간 미소를 지었다. 그건 마치 나 울기 직전인데 웃긴 그런 우는듯한 미소였다. 난생처럼 그런 미소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남자에게 엄청난 신세를 진 것 같았다. 고맙기도 하고, 인생의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


나는 남자를 데리고 인근 편의점 밖에 붙은 ATM기로 가서 20만 원을 뽑아서 사내에게 건네주었다.

사내는 나를 따라오면서도 자신의 정체 모를 짐들이 담긴 카트를 잘도 끌고 왔다.


“감사합니다.” 내가 돈을 건네면서 꾸뻑 인사를 했다.


“아니, 앞으로 음주운전은 절대 하지 마시오.”


“네, 어르신 알겠습니다.” 나는 입꼬리를 올려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술 먹고 운전하는 그건, 당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하는 도박이라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잖소.”


20만 원을 받고 나서야 남자는 환하게 자신의 미소를 보여주었다. 남은 치아가 몇 개 없었다.


나는 문득 부끄러워졌다.


대리운전 앱을 켰다. 핵심 시간이 지나서인지 2만 8천 원에 가겠다는 대리기사가 잡혔다.


세 번째 담배를 물었다.


목이 텁텁했다.


“대리가 잡혔네요. 어르신, 어디... 가다가 내려드릴까요?” 그건 빈말이었다.


“허허, 난 여기가 내 집인데 어디를 가겠소. 암튼 총각, 음주운전은 절대 하지 마시오. 패가망신하는 지름길이니까.” 노인은 인사를 대신해서 손을 한번 들어 보이고는 카트를 끌면서 골목사이로 사라졌다.


나는 20만 원이 절대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 음주운전을 하지 않게 되었다.



끝.








작가의 이전글 미묘한 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