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백은 비행기를 타고 심한 난기류를 만난다.
점백은 가족여행을 위해서 10월 마지막주에 베트남행 비행기를 탔다. 아내와 두 아이들을 데리고 일 때문에 못 간 여름휴가를 떠나기 위해서였다. 확실히 관광 성수기에 비해서 항공료도 싸고, 호텔료도 저렴했다. 거기에 무료로 룸 업그레이드 서비스까지 약속받은 터라 기분이 좋았다.
오전 11시 30분, 비행기를 탔다. 대한항공은 정시에 정확히 출발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궤도에 올랐고 스튜어디스들이 분주히 좌석통로로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소고기에 감자 아니면 비빔밥이 선택사항이었다. 점백은 비빔밥을 선택했다. 음료는 와인을 선택했다. 아내는 음료를 안 먹겠다고 했다.
“와인을 달라고 해, 그리고 그걸 나를 주면 되지.” 그가 환하게 웃었다.
공짜로 와인을 한잔 더 마실 수 있음에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식사 중간에 스튜어디스에게 보충을 받아서 와인 한잔을 더 마셨다. 비빔밥에 와인을 세 잔이나 달라고 해서 마셨다. 좌석 티켓팅이 늦어서 이코노미석 사이사이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도 다행히 아내는 바로 옆에 앉았다.
인천공항에서 베트남 다낭까지는 비행기로 약 4시간 30분 거리다. 약 2시간 정도 가는 데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났다. 마침 슈퍼태풍 ‘드래건’이 올라온다는 소식이었다. 이미 슈퍼태풍이 다낭 쪽으로 오고 있다는 사실에 베트남 당국은 놀라서 일단 다낭 공항을 폐쇄시킬 작정이었다.
오늘의 이벤트를 위해서 악마 둘이서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막내 악마는 실무를 구경하는 것이고, 반장 악마는 어떻게 일을 진행하는지 알려주는 날이었다. 그는 오늘 막 점백이가 탄 비행기를 떨어뜨릴 작정이었다. 승객 300명 중에는 정말 나쁜 녀석이 4명 있었다.
“이 사람들 중에서 몇 명이나 천국 가는 것인지 이제는 보이지?”
팀장이 말했다.
“네, 확정가 4명 정도로 지금은 보이네요.”
“바로 지옥 가는 나쁜 놈 4명에 천국 가는 사람 확정가 4명이니 나쁜 딜은 아니지.”
“그럼 중간은요? 나머지 290명은 다 지옥 가나요?”
“에이, 아니지, 저기 보이잖아, 확정가 없이 왔다 갔다가 하잖아. 중간은 굳이 투표로 말하면 부동표라고 할 수 있지. 대충 그래도 반타작은 한다고 보면 돼.” 반장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가 말을 덧붙였다.
“그렇지, 근데 뭐 매번 정확히 따지면 이런 사고는 못 일으키지. 장사니까 손해를 볼 때도 있고 이익을 볼 때도 있고 그래. 그래도 많이 늘었네, 이제 셈도 제대로 할 줄 알고.”
그는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한다.”
반장이 몸집을 부풀리더니 비행기 밑에 붙었다. 궤도를 따라서 가는 비행기는 힘이 셌다.
일단 궤도에서 벗어나게 흔들어야 하지만 점점 인간의 기술력은 정교해지고 있었다. 사고를 유발하는 것도 힘이 필요했다. 자동궤도로 움직이는 것을 고장 나게 할 정도의 힘이 오늘은 필요했다.
반장은 비행기에 매달려서 흔들었지만, 혼자서는 힘에 부쳤다.
“야, 막내야, 나 혼자서는 힘에 부친다. 일단 너도 와서 좀 흔들어라. 이리 와.”
이제 막내까지 합류해서 비행기를 흔들어댔다.
비행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좌우로 그리고 아래위로 요동쳤다.
비행기 안에 안내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승객 여러분, 난기류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심하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좌석벨트를 매 주십시오.”
비행기가 덜덜덜 떨리면서 조금씩 앞쪽이 내려가고 있었다.
점백은 잡지에서 읽은 기사가 생각났다. 난기류는 속도, 열, 방향이 다른 두 기류가 만날 때 발생된다는 것이다. 무사히 지나가기를. 늘 겪는 일이지만 오늘은 유독 심한 난기류에 그는 손끝이 지릿하게 저린 느낌이었다.
미국출장길에서 한 번 그런 적이 있었다.
점백은 아내를 힐끔 쳐다보았다. 아내는 이 심한 난기류에도 평온한 자세로 졸고 있는 것인지 눈을 감고 있었다. “당신은 지금 잠이 와?” 그가 두려운 마음과 시끄러운 소리를 이기려고 아내를 향해서 고함쳤다.
“어? 어.. 어 미안... 지금 비행기 많이 흔들리네.” 그녀가 눈을 떴다.
“나... 소... 손 좀 잡고 기도 좀 해줘요.”
그가 털썩 아내의 손을 잡았다.
이제 그의 손끝은 차가워지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배여 나왔다.
아내는 남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호호호, 당신 지금 완전히 쫄은거야? 천하의 점백이도 쫄은 모습을 보일 때가 다 있네. 별일이야. 호호호. “
아내는 남편을 보면서 웃었다.
그리고는 곧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자 그녀의 표정도 진지해졌다.
“와, 심하게 흔들리긴 하네요.”
그대로 그녀는 정면을 응시하면서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아내가 남편의 손을 자신의 양손 사이에 넣은 상태로 가슴께까지 올려서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이마를 그 손에 대고 기도를 막 시작하려고 했다.
그 순간을 반장이 바로 알고 파고들었다.
“야, 막내야, 네가 좀 혼자 흔들어야겠다. 난 쟤를 좀 막아야겠다.”
반장은 바로 손톱을 세워서 여자의 관자놀이를 눌렀다.
“아..”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뭔가가 팍 하고 머리를 찔렀기 때문이었다.
송곳으로 뭔가가 뇌속을 찌르는 듯한 아픔이었다.
갑작스런 통증에, 여자는 기도 자세를 풀었다. 인상을 찌푸렸다.
비행기는 이미 둘이서 흔들어서 궤도에서 조금 이탈된 상태가 되자 막내 악마가 체중을 확 실어서 온 힘으로 흔들어 대자 점차 각도가 앞으로 쏠리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세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비행기 안의 사람들도 이제는 공포에 휩싸였다. 비상벨 소리 같은 것이 정기적으로 비행기내에 울렸다.
‘딩. 딩. 딩.’ 하는 알람 소리가 계속해서 울렸고, 비행기 고도가 낮아지자 마침내는 ‘텅’하는 소리와 함께 천정에서 산소마스크가 일제히 내려왔다.
“아악. 살려줘요.”
“제발요.”
사람들의 제각각 단발마같은 비명을 질렀다.
방송이 나왔다.
"산소마스크를 켜 주세요. 비상상황입니다. 산소마스크를 착용해 주세요."
사람들이 허겁지겁 자신들의 머리 위에 떨어진 노란색 캡을 입 주변에 댔다.
“엄마, 무서워.”
아이들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렸다.
수평에서 조금씩 비행기는 앞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고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듯 했다.
‘딩. 딩. 딩’ 소리는 계속해서 울렸다. 점백도 저 소리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았다.
'아, 저 놈의 소리때문에 더 무서워.'
그는 턱까지 덜덜 떨렸다. 이렇게 죽는구나. 눈물이 찔끔 올라왔다.
평생 착한 일도 못해보고 나쁜 짓만 하다가 가는구나.
점백의 아내는 갑자기 머리를 찌르는 송곳같은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점백은 자신의 아내가 기도를 하려다가 관자놀이를 맛사지하면서 인상을 쓰고 있는 모습에 아내에게 물었다.
“.....왜.... 그래? 다.....당.....신 괜...찮아?” 점백은 두려움에 고개도 제대로 아내쪽으로 돌리지 못하고 덜덜 떨면서 겨우 물었다. “아. 미안. 머리가 갑자기 너무 아파서요...” 여자는 양손은 주먹쥐어서 손가락 관절을 이용해서 관자놀이쪽을 연신 비볐다.
그녀는 머리가 아팠지만 참으면서 다시 남편의 손을 잡았다. 살면서 내내 자신의 속을 썩여온 남편이었다. 맨날 사업을 핑계로 늦게 들어오지, 와이셔츠에 립스틱을 묻히고 들어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남편이 꾸준히 생활비를 벌어줘도 두 아이를 지금껏 잘 키워올 수 있었다고 그 밤 내내 어두운 거실에 앉아서 그녀는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했다. 남편의 잘못 또한 자신의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자책했다. 늘 그녀는 자신 스스로에서 문제를 찾았다.
그녀는 모든 것에 감사했다. 이 모든 것에 오점이 있다면 그 또한 그녀의 잘못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교만하지 않게 살려고 늘 노력해 왔고, 큰 돈을 기부할때도 익명으로 하길 원했다. 남편을 볼때 철이 들지 않았지만, 대신 매월 봉사를 나가고 있는 유기견 단체에서 축사를 확장할때 이백만원을 기부하고 싶다고 하자, 흔쾌히 동의해 준 남편이었다.
이렇게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다만, 아쉽다면 남편과 자신은 가도 좋지만 아이들은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이제 막 알아나갈 단계에 너무 어린 나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꼭 남편을 떠나서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서, 이 비행기 안에 누군가는 반드시 목적지에 가서 할 일을 해야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관자놀이를 만지면서 그녀는 그런 작은 소망을 마음에 차곡차곡 담았다.
남편의 손은 차가웠다. 맨날 큰 소리 뻥뻥치고, 나만 믿으면 된다고 허세를 부릴때는 언제고, 또 이런 ‘쫄보’같은 모습을 보니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자신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온 하루하루의 삶이었다. 그래도 살자. 아이들을 살리고 이 비행기안에 작은 소망을 지닌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서 살자.
그녀는 왠지 늘 기도에 대한 확신에 차 있었다. 그녀의 기도는 참 잘 들어주시는 것 같았다. 큰 아이가 어릴 때 병원에 가야 하는데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열이 펄펄 끓을때 그녀는 기도를 했고, 무사히 병이 나았던 경험이 있었다. 둘째는 자전거를 타다가 내리막길에서 배수로 틈에 바퀴가 끼는 바람에 앞으로 날 듯이 넘어져서, 얼굴을 갈은 적이 있었다. 그때도 그녀는 그 소식을 듣고 회사에서 울면서 병원을 향했었다. 그 상처도 씻은듯이 낫게 해 주셨다. 택시 안에서 그녀는 참 희안한 경험을 했었다. 뒷자석에 앉아서 묵상기도를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하는데 선명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린 것이다.
“네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니, 너는 아무 염려하지 하지 말아라.” 그때는 억하심정도 올라 왔었다. 아니, 아이를 다치게 하시고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하지를 못했다.
지금은 기도를 할 시간이었다.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파왔다.
어금니에 힘이 들어갔다. 남편의 손을 꼭 쥐었다.
“전능하신 하나님, 지금 저와 남편 그리고 두 딸들이 타고 있는 이 비행기가 너무 흔들려서 목숨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너무 무섭습니다. 이 순간 비행기가 너무 흔들려서 남편도 너무 무서워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이고, 방법이라면 당연히 받아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목숨이시니 하나님께서 거둬 가시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주신이도 하나님이시고, 추수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이 미천한 종이 하나님께 소원하기는 저만 데리고 가 주시길 바랍니다. 제 남편과 두 딸은 조금 더 지상의 다양하고 편안한 삶을 누리고 갈 수 있게 부탁드립니다. 심장마비든지 머리의 두통을 터트리시든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방법으로 저를, 제 영혼을 가져가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지금까지 잘 살게 해 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데, 부족한 종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비행기가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게 권능의 하나님이 도와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그녀는 아수라장이 된 비행기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들리게 크게 크게 목소리 외쳐서 기도를 했다. 그건 굉장히 확신에 찬 희생의 기도이자 명확한 발음으로 하는 마치 9시 뉴스의 아나운서가 하는 발음처럼 들리는 빠른 템포의 기도였다. 그 순간이었다. 아내를 따라 눈을 감았던 점백은 선명히 아내의 손과 자신의 손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 점백의 오른손은 아내의 기도하는 양손 사이에 맡겨진 채 였다. 손이 뜨거워져서 점백은 눈을 살포시 떴다. 그 순간 점백의 눈에는 기도를 마친 후 눈을 감고 있는 아내의 손 사이에서 한줄기 불빛이 마치 양손 사이에 취침등이라도 켠 듯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1초,
2초,
3초.
마침내 그녀의 손에서 빛이 점점 사그라졌다.
그것은 영적인 능력이 지극히 높은 사람들이 가지는 ‘오라’ 같은 것이었지만 점백과 아내는 디테일한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순간 점백의 아내는 머리의 두통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비행기의 떨림이 멈췄다.
갑자기 마구떨리던 진동벨이 턱 하고 멈춘 것 같았다.
앞으로 쏠리던 비행기 좌석도 각도가 정상으로 서서히 뒤로 재쳐졌다.
그건 막 기도의 끝 그리고 여자의 손에서 나온 오라 같은 빛이 나온 다음에 바로 일어난 일이었다.
옆 자리의 앉은 할머니는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입을 떡하니 벌리고 점백과 아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사람같이 보였다.
“이 사람 때문에 살았어, 내가 다 봤어. 이 여자분이 기도하니까 손에서 막 빛이 나왔어.”
할머니는 옆자리에 앉은 딸처럼 보이는 여자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녀도 그걸 봤지만 쉽게 수긍할 수는 없었다. 워낙 세상에는 사기도 많고, 이상한 일도 많이 벌어지고 있었다. 점백도 방금 본 것을 생각해 봤지만 당장 이해가 되질 않았다. 뭐 자신이 잘못 본 것인지도 몰랐다.
할머니가 그렇게 외쳤지만 사람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저 다들 갑자기 멈춘 비행기 상태에 그제야 '휴우' 하고 안심을 하면서 박수를 쏟아냈다. 그것은 기장과 부기장을 향한 박수였다. 같은 줄에 앉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여자의 손에서 나온 빛을 봤지만, 뭐 두 사람 손 사이에 휴대용 전구라도 들어 있겠지하고 생각했다.
얼마 안 있어서, 비행기내 좌석 안정 싸인이 떨어졌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여보를 찾고, 엄마를 찾고 자식을 찾았다. 점백의 아내도 비행기에 안정 싸인이 떨어지자 마자 아이들 좌석쪽으로 가서 아이들을 얼싸 안아주었다.
막내악마는 깜짝 놀랐다.
“아니, 선배님 왜 갑자기 그만하라고 하시는 거에요?”
실무급 악마가 흔들던 비행기를 갑자기 손에서 놓은 것이다.
“얌마, 그만해라. 철수하자.”
막내도 놀라서 비행기를 흔들어대던 손을 놓았다.
“왜요? 선배님, 무슨 일인데요?”
“야 인마, 이번 딜은 포기하련다. 에이 괜히 시간만 낭비했네.”
반장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너 봤지? 지금”
“뭘요?” 막내는 눈을 껌뻑였다.
“에이, 카드로 치면 우리는 두 페어인데, 로열스트레이트플러쉬를 쥐고 있네. 카약 퇫.”
반장이 공중에서 떠 있는 상태로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면서 침을 뱉는 시늉을 했다.
반장이 비행기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말을 계속했다. 반장이 멀어지니 막내도 조금씩 반장을 따라서 날아갔다.
날아가면서 옆에서 날고 있는 막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반장이 말했다.
“저기 저 사람 말이야. 그냥 성인(聖人)급이네. 괜히 확정가 4명에 여기 털어서 부동표로 한 150명이 우리 쪽으로 넘어온다고 해도 성자 한 명과 비할바는 아니지. 이번 건은 털어도 우리가 손해다. 많이.”
반장이 손가락을 뻗자 여자의 얼굴이 확 클로즈업이 되어서 보였다.
“성자급이면 더 높은가요?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요.”
“그럴 거야, 요즘엔 우리도 거의 못 보니까.”
“우와, 성인급은 우리 쪽으로 150명이나 넘어와도 안 되나요?”
“안되지, 지옥으로 오는 사람으로 치면 몇 십만 명과 바꿀 정도의 영성이니까. “
“지금 막 기도한 저 여자 말이야. 기도를 하는 걸 보면 영성이 나오거든. 저 여자는 성인 즉 서양에서는 세인트(Saint)라고도 하고 성자(聖者)라고도 하지. 불교에서는 보살이라고도 하는. 남편이 어떤 면에서 일조를 했네. 아내가 그런 마음을 종교로 승화를 시킨 케이스야. 분노와 좌절 이런 것을 전부 하나님한테 쏟은거지. 그걸 들어주신 거고. 자세한 것은 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거지만. 성자는 뭐 우리도 인정하는 것이니까. 그런 훌륭한 사람인 거야. 요즘 보면 완전 저쪽도 많이 힘든가 봐. 치팅(Cheating:속임수)을 하네. 치팅을... 하마터면 완전 손해 보는 장사를 할 뻔했어. 참나원.”
“그래도 한번 시작한 일인데....”
“끝장을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허허, 벌써 저 여자의 기도 때문에 천사들이 호위 떴어. 이건 우리가 하려고 해도 안돼. 절대.”
멀리서 내려오는 천사들 때문에, 반장과 막내는 자연스럽게 비행기에서 먼 위치로 이동했다. 그건 마치 뜨거운 바람이 내려오자 이동하는 차가운 바람과 같은 원리처럼 자연스러웠다.
막내는 바람을 따라 이동하면서 말했다.
“참.... 수더분하니 겉으로는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원래 그래, 절대 겉으로는 알 수가 없어. 전에는 정말 초라한 노파였으니까.”
“그럼... 저희는...?”
“그냥 찌그러지는 거지. 신경 쓰지 마, 이것 말고도 딜 할 곳은 많으니까. 나 간다. 하마터면 큰 실수를 할 뻔했네. 아 짜증 나.”
번쩍하고 검은 구멍이 공중에서 생겼다가 서서히 없어지면서 반장은 사라졌다.
막내가 미련이 남아서 멀리서 지켜보니, 이제 비행기는 아래에 두 명의 일꾼 천사들과 위에 두 명의 호위천사들이 그리고 제일 앞에는 대 천사가 큰 칼을 들고 미소를 지으면서 비행기를 호위하고 있었다.
비행기를 흔들던 난기류는 멈췄다. 고도가 낮아졌던 비행기는 다시 고도를 높이면서 정상궤도로 진입되어 자동운항 항법장치가 작동되기 시작했다.
기장이 부기장에게 말했다.
“아니, 태풍이 확 오다가 방향을 틀었네. 다행이야.”
“그러게요. 참, 신기한 일도 많은 것 같아요. 갑자기 이렇게 바뀔 수가 있나요?”
“나도 벌써 30년 넘게 비행기를 몰고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확 생기곤 한다네. 마치 신께서 우릴 돕고 있는 것처럼 말일세.”
“아무튼 오늘 십년감수했습니다.”
기장이 손수건을 꺼내서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그러게 자동항법장치는 가자마자 고쳐야겠어.”
기장은 조금 전까지 고장 났다는 신호를 보이던 장치가 초록색으로 안정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직 목적지까지 많이 남은 상태에서 수동으로 가려면 피곤한 일이다. 고쳐졌으면 다행이다. 어쩌면 심한 비바람에 잠깐 영향을 받은 것일지도 몰랐다.
비행기 안에서 점백이 승무원 호출 버튼을 눌렀다.
예쁜 스튜어디스가 다가왔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저, 와인 한잔만 더 주시면 안 될까요?”
점백의 얼굴은 이미 마신 와인으로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그의 시선이 예쁜 스튜어디스를 향했다. 아이보리 치마와 하늘색 셔츠는 참 누가 디자인했는지 예쁘게도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새 그의 눈이 스튜어디스의 엉덩이를 향했다.
“네, 잠시만요.”
스튜어디스는 익숙한 폼으로 와인잔을 기울여서 종이컵에 따랐다.
이제는 ‘쪼르륵’하는 와인이 종이컵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행기가 궤도에 안착해서 부드럽게 운항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가방 속에서 비스킷을 하나 꺼내서 와인을 마신 후 안주삼아 먹었다. 아내를 보니 선잠을 자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잠을 자기 위해서 실내등을 꺼 두어서 아내의 잠든 모습은 희미하게 보였다.
지나온 시간들이 그녀의 주름살 사이에 스며 있었다. 첫 아이가 생겼을 때, 그 아이가 걸을 때, 아이의 자전거를 뒤에서 밀어줄 때,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줄에 서 있을 때, 졸업할 때 초등학교를 가족이 가서 사진을 찍던 날들 그 모든 것에 아내가 있었다.
“잘 살아야겠다. 더.”
그는 아내의 손을 살짝 잡았다.
아내는 미동도 없이 잠들어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