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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아재 Nov 29. 2024

일타이피

한 번의 시도로 두 개의 이득을 취한다는 고스톱 용어

이제 갓 마흔이 된 점백은 자신이 맡고 있는 아파트 현장 인근의 주점 마담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하도 협력업체의 영업부장이 읍소를 하길래 한번 가서 우연히 2차까지 간 것이 화근이었다. 당장 끊자니 아쉽고, 계속 진행하자니 오래가지 못할 관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아내가 알기라도 한다면 그 화근을 어찌 이겨낼 수 있겠는가. 


“우리 소장님은 언제든지 오세요. 공짜로 해 드릴게요.”


붉은 립스틱을 한 마담은 몸에 촥 달라붙은 원피스를 입고 요염한 엉덩이를 흔들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이 있기는 하지만 공짜도 공짜 나름이다. 이 끝은 너무나 명약관화였다. 물론 마담을 소개해 준 것은 협력업체의 영업부장이었다.


자신이 술을 얻어먹지 않는다고 협력업체랑 거래를 끊을 것도 아니었다. 워낙 대리석 관련해서는 독보적인 회사였다. 그래서 번번이 깊은 술자리는 싫다고 거절을 했더니, 변칙적으로 조그마한 동네 이자까야에서 저녁 식사나 하자고 해서 나갔는데 그게 그만 어쩌다 보니 임자를 만난 셈이 되었다. 

 

영업부장은 아마도 괜찮은 술집이 어디 있을까 하고 찾았을지도 모른다. 룸살롱을 다 거절했는데, '그럼 가벼운 식당에서 한잔해요'라고 해서 따라 나간 곳, 이자까야의 가게 주인이 너무 자신의 스타일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술집이름만 이자까야를 따라한 동네 접대형 주점이었다.

  


“결혼했어요?”

“한번 다녀왔지요.”

“아이는?”

“아직은 낳고 싶은데 전 남편과는 없었어요.”


세상에 공짜밥이나 공짜옷은 들어봤어도, 공XX는 처음이었다. 그게 인연이 되었다. 점백은 자신의 현장 근처에 회포를 공짜로 풀 곳이 생겨서 좋았고, 마담은 나름 싱싱한 젊은 현장소장을 단골로 두니 자연스럽게 가게 매상에 도움이 되었다. 일을 마치면 으레 가게 들려서 술 한잔씩 하고 퇴근하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둘의 관계는 점점 깊어졌다. 마담의 자취방에도 이따금씩 놀러 가게 되었다.

 

이제 갓 삼십 대 후반 정도로 나름 귀여운 구석이 있는 술집 마담은 수시로 점백에게 연락을 했다. 한 번은 주말에 문자가 왔다. 집에서 편하게 쉬고 있을 때였다. 집에 갑자기 형광등이 켜지지도 않고 냉장고도 꺼진 것 같다고 했다. 갑자기 전기가 다 나갔는데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내에게 회사 핑계를 대고 나가서 처리를 해 주었다. 그는 주말에 연락이 온 이후로 관계를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결심은 술 한잔 마실 때마다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기 힘들듯이 술 한잔 걸치고 공짜로 오라는 마담의 말은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물론 가면 양주를 마시고 매상을 올려주게 된다. 마담입장에서도 손해 볼 건 없는 장사였다. 몸이 좀 축나긴 하지만, 이미 화류계 생활로 도가 튼 여자는 젊은 미끼를 놓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본사에서 점백에게 전화가 왔다. 아파트 현장에 본사 임원이 방문한다는 연락이었다. 그 임원은 바로 대학교 같은 토목과 선배인 윤 상무였다. 윤 상무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타인을 적절히 희생도 시키면서 젊은 날에 매우 빠르게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사장의 매형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 외에 정치도 잘하고,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전국의 현장을 이따금씩 들려서 격려도 하고 회사의 이익을 위한 나름의 정신교육도 시킨다. 다 그 스스로의 자리를 굳건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술도 잘 마셨고, 오는 여자도 마다하지 않는 스타일의 선이 굵은 남자였다.

 

오전 11시에 온 윤 상무 일행에게 현장을 안내했다. 틀림없이 또 자신의 관리방식에 대해서 말할 것이 뻔했다. 꼼꼼히 현장의 운영상태를 살펴보고 윤 상무 주재로 인근 식당에서 낮술판이 벌어졌다.



윤 상무와 시공관리 담당 팀장 그리고 본사의 시공관리팀의 선임도 참석했다. 이쪽은 한 명인데 저쪽은 세 명이었다. 윤 상무는 그렇게 자신들의 사람들을 앉혀놓고 술 한잔 마시고 본격적인 방문의 이유를 밝혔다.

 

“사장님이 저번 주 회의에서 당신 이름이 나왔어. 맡는 사업장마다 이익이 낮다고.”

  


윤 상무는 노골적으로 전국에서 가장 이익이 낮은 이유에 대해서 불만을 표시했다. 



“아니 우리가 흙 퍼서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맨날 다 퍼주고 나면 남는 게 도대체 뭐야?” 



윤 상무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본부장으로 관리하는 사업장 중에서 점백이 현장소장으로 가는 곳은 항상 이익이 적게 난다. 그 이유는 물론 안전에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 철근의 두께도 정확히 따지고, 제대로 건축이 되지 않으면 협력업체도 불러서 혼을 내곤 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러니 가장 공기(공사기간)도 자연스럽게 길어졌다. 공기는 하루만 늦어져도 인건비가 엄청난 금액이다. 거기에 장비대여료와 기회비용까지 하면 상당한 금액이다. 그는 작정을 하고 왔다. 무엇보다 이런 이야기를 회의시간에 직원들도 잔뜩 있는 곳에서 얘기를 하긴 힘들다. 

 

“윤 상무님, 공사 제대로 하는 게 그렇게 문제가 됩니까?” 



점백이 입에 거품을 물었다. 윤 상무의 시선이 자신의 얼굴에서 왼쪽 가슴을 향하는 듯해서 시선의 끝을 쫓아서 봤더니 가슴에 아직 ‘현장소장 김점백’이라고 박힌 명찰이 달려 있었다. 참 정신이 없는 하루네. 오늘 하도급 업체랑 시방서 내용 가지고 하도 실랑이를 벌인 데다가 본사 임원이 와서 한소리를 하니 정신이 없었다. 하도급 업체들 관리도 모두 그의 몫이고, 이번 공사의 공사기간을 적기에 맞추는 것도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갑자기 생기는 회식도 반갑지 않았다.

 

“저 새끼는 학교 다닐 때도 반골이더니, 지금도 저러네.”



윤 상무의 입가에 씁쓸한 비소가 흘렀다. 그건 비웃음이었다. 대학교 토목과 6년 선배는 벌써 승승장구해서 상무를 달고 있다. 이미 자신의 나이에 누구는 임원이고, 누구는 아직도 올라갈 길이 멀었다. 안 그래도 그런 콤플렉스가 있는데, 윤 상무가 중얼거리듯이 흘린 말은 점백이 가진 불만이라는 이름의 기름에 불을 붙였다. 그는 얼굴로 피가 확 순식간에 밀려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참아야 한다고 이성은 그의 본능을 잡았지만, 그의 본능이 이성을 메다꽂았다. 어떤 복수는 현장에서 해야 한다. 오늘이 지나고 나면 두고두고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억울함이 있을 것 같았다. 점백은 순간 참지 못했다. 이미 소주를 2병이나 마신 그의 이성은 고삐가 풀렸다. 그의 오른손이 윤 상무의 뺨을 갈랐다.

 

‘철썩’



힘이 실려 있지는 않았다. 다만 자신은 자신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고 싶었다. 이 놈의 술 때문에 감정이 제어 되지 않았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건 엄청난 사건이었다. 일개 과장이 상무에게 손찌검을 하다니. 지금도 점백은 그 사건만 생각하면 어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 이후 웬만하면 회사의 회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점점 떨어졌다. 다른 부서와는 회식이라도 하면서 정보교환을 해야 승진에도 도움이 되고 업무에 대한 팁도 익히게 되고 좋은 장점들이 많은데 그는 그냥 묵묵히 자신의 일만 했다.

 

그때 윤 상무에게 바로 사과했지만, 다음날 윤 상무가 불러서 그 방에 들어갔을 때의 모멸감은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넌 내가 이 회사를 나갈 때까지는 승진은 물 건너갔다고 보면 돼. 하여튼 누가 이기는지 두고 보자고.”



윤 상무는 그의 집무실 책상에 앉아서 시선을 내린 채로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설마 중견규모의 회사이고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렇게 될까 싶었지만, 윤 상무의 말은 맞았다. 승진은 번번이 되지 않았다. 



점백은 이번에는 꼭 승진하고 싶었다. 중견 건설회사에 취업한 지도 벌써 15년. 기계공고를 졸업하고 이를 악물고 공부해서 건축기능사를 따고 실무경력을 쌓아서 결국 그는 건축기사 자격증까지 따냈다. 그의 동기들은 다 차장이나 빠른 사람은 부장을 달았다. 내년이면 그의 나이도 마흔 살이다. 그런데도 그는 만년 과장 타이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윤 상무와의 불화는 회사 내에서도 알고 있었다. 다들 쉬쉬하면서도 말을 하진 못했다. 윤 상무는 사장의 처남인지라 그의 위치는 회사 내에서도 확고부동했다. 다른 회사로 이직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 회사에서 쌓아서 올려놓은 실적도 있고, 명문대라도 나왔으면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면 이곳만큼 경력으로 대우해 주는 것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좋아, 다시 정리 좀 해 보자. 그는 주말에 아내가 아픈 어머니 병문안을 간다고 하자, 일단 자신도 현장 쪽에 있는 호텔로 향했다. 원래는 전세나 월세를 잡아주는데 이번에는 단기라서 호텔에서 묵게 되었다. 이름만 호텔인 곳이다. 그 방에 앉아서 그는 꼬박 이틀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가 할 수 있는 복수의 종류는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을 좀 해 보았다. 노트를 사서 그곳에 그가 할 수 있는 행동들을 정리해 보았다. 범죄의 종류에는 가장 약한 것은 그 집에 돌멩이를 던지는 일탈행위에서부터 뭔가를 훔치는 도둑 그리고 강도 등이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강력한 것은 복수의 상대방인 윤 상무의 목숨을 뺏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살인이라는 것이 과연 우발적이든지 아니든지 일어나면 그건 엄청난 죄책감을 가지고 올 것이 뻔했다. 메모에 적은 살인이란 단어 위에 볼펜으로 엑스자를 그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안된다. 세상에 그렇게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범죄를 저지르면 언젠가는 잡힌다. 아니 잡히지 않는다고 해도 누가 뭐래도 자기 스스로가 안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그걸 빌미로 살인을 한다면 그건 자신의 삶에 숨길 수 없는 큰 오점이 될 터였다.

 


‘띵동’



문자소리가 났다. 술집마담 그녀였다. 가뜩이나 자신의 머릿속이 복잡한데 또 뭐야. 문자를 확인해 보니 집안 전기가 또 나갔다는 내용이었다. 그래 몸도 찌뿌둥한데 잘 되었다. 그녀의 집은 자신의 숙소에서 차로 20분 남짓이다. 이 여자는 한가해서 난리고, 윤 상무에 대해서는 뭔가를 해야 할 것 같고, 어쩌다 보니 자신의 삶의 두 개의 거대한 구멍이 발생한 것 같았다. 그건 거대한 싱크홀 같은 느낌이었다. 여자의 요구는 점점 강도가 세지고 있다. 어쩌면 스스로 전기휴즈를 고장내고 자신에게 연락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일단은 답을 해야 했다.

 


[ 도구 챙겨서 바로 갈게요. ]



오늘이야 아내가 집에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아내와 있는 주말에 이런 식으로 연락이 오면 곤란하다. 틀림없이 저번에 주말에 전화하거나 문자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언질을 주었는데, 그녀는 그런 그의 요청을 보기 좋게 거절한 셈이었다. 생각보다 여자의 상태가 심각한데? 



집에 도착하니 빌라의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집안은 컴컴했다. 휴즈를 찾으려고 하는데 막상 자신과 정을 통하고 있는 마담이 홀로 기거하고 있는 집이라는 생각이 드니, 몸이 먼저 뻣뻣하게 반응했다. 마담의 침실 방문을 슬며시 열었다. 속옷차림으로 등을 보인채로 이불속에 누워 있었다. 아마도 낮잠이 든 것 같았다. 졸려서 현관문을 살짝 열어두었을 것이다. 점백은 옷을 벗어 바닥에 둔 채로 그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삼십 분이 넘게 그는 그녀를 괴롭혔다. 하지만 몸의 행동과 달리 머릿속은 매우 복잡했다. 이제 그는 이 관계를 정리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마침내 그는 거사를 치르고, 휴즈를 고쳤으며, 그 사이에 다시 잠든 여자를 두고 숙소를 빠져나갔다.

 

현장 인근 호텔로 향하던 그는 3년 선배인 찬주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찬주 형은 국토부 고위공무원이다. 다른 사람은 무시해도 후배지만 유일하게 윤 상무가 어려워하는 사람이 찬주 형이다. 그런 찬주를 생각해 냈다. 그가 전화해서 보자고 하면 천하의 윤 상무도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다.  

 

“주말에 왠 일?”

“형, 윤 상무 말이야. 한번 사과를 좀 하고 싶은데, 형이 다리 좀 놔주면 안 될까나?”

“이제야 사회생활 좀 하네. 오케이 그럴게. 그래봐야 과 선배인데. 진정으로 사과하는 것 잊지 말고.”

“장소는 내가 보낼게요.”



1차를 한정식 집에서 마셨다. 점백은 일어서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윤 상무는 전체 회장을 맡고 있는 찬주 형의 위세 때문에 나온 터라 입으로는 웃고 있지만 눈빛은 여전히 싸늘했다. 찬주 형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대강의 소문도 다 알고 있었다. 윤 상무의 잔이 빌 때마다 가득 소주를 따랐다. 마치 점백이 뭘 하지 않아도 이미 그의 의도대로 착착 움직여 주는 사람이었다. 담배를 핑계 대고, 마담에게 전화를 걸었다.



“손님 데리고 한 20분 정도 있다가 가도 되나요?”

“과장님은 언제든지 환영이지요.”

“일전에 말한 그분 모시고 갈 건데, 잘 좀 부탁할게요.”



가게에는 마담과 여종업원 한 명만이 있었다. 점백은 자신의 애인인 마담에게 눈을 찡긋했다. 옆에 앉은 윤 상무의 비위를 좀 잘 맞춰달라는 뜻이다. 덩치가 산만한 윤 상무 옆에 있으니 아담한 사이즈의 마담이 더 작아 보였다. 찬주 형 옆에는 더 어린 가게 점원을 붙였다. 이미 전작에서 술을 많이 마신 터였다. 시시콜콜한 얘기들이 흘러갔고, 굳이 별도의 부탁이나 사과도 하지 않았다. 공사판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안주처럼 지나갔다. 언뜻 시간을 보니 제법 지나 있었다. 점백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다 싶었다. 

 


“어 집 사람이 많이 아프다고 하네요. 저는 먼저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남자들끼리 있을때야 어딜가느냐고 붙잡지만 지금처럼 여자들이 있으면 짝도 맞지 않는데 굳이 잡을 이유가 있으랴. 점백의 예상대로 아쉬운 척만 하고 두 남자는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마담이 배웅을 나오겠다고 하면서 가게 입구까지 나와서는 눈을 부라리고 아래위로 떴다.



“아니, 지금 내 앞에서 감히 와이프 얘기를 하고 일어난다고요?”



점백의 의도처럼 마담은 극히 흥분하고 있었다. 



“미안, 많이 아픈가 봐. 데리고 응급실이라도 가야겠어. 여긴 자기에게 잘 부탁할게요.”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점백은 자신의 호텔 숙소로 돌아와서 잠을 잤다. 침대 위에 전기장판을 깔아 둔 덕분에 뜨듯하게 푹 잤다. 간밤에 세상은 눈이 와서 하얗게 바뀌어있었다. 종이배를 만들어서 강물에 띄워 보내면 내 알바가 아니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기분 좋게 현장으로 나갔다. 오후에 본사에 들어갈 일이 생겨서 승인도 받을 겸 사무실로 향했다. 그는 찬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어제 먼저 가서 미안해요.”

“아냐, 덕분에 좋은 시간 보냈어.”

“그 윤 선배는 어때요?”

“어이쿠, 아직 통화를 하긴 그렇지? 뭐 안 그래도 마담과 정분이 완전히 났던데, 네 칭찬을 입에 가득 담아서 하더라. 밤새 잠을 안 재웠다고 아직 자신이 살아있다면서 입에 거품을 물던데 하하하.”



점백은 그렇게 조용히 한 달을 지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USB 하나를 들고 윤 상무의 방으로 향했다. 이제 마지막 테스트를 진행할 때였다. 



“허허, 후배님, 저번에는 좋았어. 덕분에..... 허허허... 고마우이. 아니 그래? 어쩐 일이야?”



윤 상무는 기분이 좋은지 중얼거리면서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자신의 책상에서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선배님, 올해 승진 꼭 하고 싶습니다.”

“흠...” 윤 상무의 눈이 점백을 향했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오케이, 네가 그렇게 나한테 그렇게 잘하는 데... 승진시켜 줄게.”



점백은 그날 밤에 마담의 집을 찾았다. 그리고 집에 몰래 설치해 둔 몰래카메라를 챙겼다. 그리고 USB도 꺼냈다. 집 마당에 나가서 적당한 크기의 바위를 들어서 내려찍었다. 세상에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일 때가 있었다. 더구나 과 선배였다. 그리고, 마담의 집 근처 편의점에서 소주를 두 병 정도 사서 소시지 하나와 함께 마셨다. 10시 정도 넘으니 차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윤 상무의 업무용 차량이었다. 검고 크고 좋은 차다. 그 차에서 대리기사가 내리고 뒷 문을 열자 남자와 여자가 내렸다. 윤 상무와 마담이었다. 점백은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담배를 천천히 피웠다. 그리고 조용히 발길을 숙소로 돌렸다. 막상 눈앞에서 확인하고 나자 입맛이 씁쓸했지만 한편 이제 마담과는 완전히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런 여자니까, 또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기 승진자 명단 발표가 회사의 입구와 복도 쪽에 붙었다. 그곳에 점백의 이름이 있었다. 



[ 제35차 정기승진자 명단 ]

[ 차장 김점백 - 귀하는 성실히 현장에서 열심히 프로젝트를 수행해서 회사의 성장에 발판을 마련한 공로로 2025년부로 과장에서 차장으로 승진발령함 ]


참 이렇게 쉽게 될 수 있는 승진이었다. 그걸 7년이나 걸리다니. 아쉽고 서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 또한 인생이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말하니 내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마담에게도 전화를 할까 하다가 돌이켜 생각하니 굳이 할 이유가 없었다.


항구같은 여자.

들어오는 배를 막지도 않고, 정박을 하면 주차비만 받으면 되는 항구. 

그간의 공짜는 참 감사했었다.   



그 이후로는 마담도 더 이상 점백에게 문자나 전화를 하지 않았다. 점백은 약 6개월 전에 술에 너무 취해서 전화를 한번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지금 여기가 어딘지를 모르겠어." 택시안에서 그의 혀가 꼬였다. 

"기사님 좀 바꿔봐요. 내가 통화할께." 마담의 목소리는 미역이파리마냥 미끈했다. 그녀의 다리나 목소리나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 구역질을 달고 깨끗한 집으로 향하긴 싫었고, 아무도 없는 숙소는 더 싫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마담이 옆에서 홀딱 벗고 자고 있었다. 옷을 입고 돌아보니 이불속에서 얼굴 반만 꺼낸 채 실눈으로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가끔 이렇게 와도 돼요.”


윤 상무의 얼굴이 오버랩이 되었다. 인사도 안하고 옷만 입고 몰래 빠져 나왔다. 점백은 다시는 가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했다. 내친김에 마담의 연락처도 삭제했다. 점백은 그 이후로 절대로 마담을 찾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훌쩍 1년 흘렀다. 그가 공사하던 곳도 완공되어서 다음 프로젝트에 투입이 될 때까지는 본사 출근을 하면 된다. 출근하면 커피한잔을 들고 동료들과 수다를 좀 떨다가 회의를 하거나 어제 못한 자료들을 검토하고 보고서를 적으면 평온한 하루가 지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오전에 거래처에 물건을 전달할 것이 있어서 들렸다가 오후에 회사에 출근하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오전에 윤 상무의 아내가 회사에 와서 난리를 한바탕 치고 갔다는 말이 들렸다. 


출근하면서 윤 상무쪽의 분위기를 한번씩 봤는데 아주 죽을 상을 하고 앉아 있었다. 오갈때 보면 표정은 그전과는 백팔십도 바뀌어 있었다. 항상 활기차게 웃던 사람은 눈이 쾡하게 패여 있었고, 깔끔한 양복은 후줄근해지고 있었다. 처남을 위시로 그동안 버텼던 윤 상무는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혼했고, 연말을 버티고 회사에서 그만두게 되었다는 말이 들렸다. 


그의 마지막 퇴사하는 날 일부러 윤 상무가 있는 층으로 내려갔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배웅을 하는지 한번 지켜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따라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회사 사장의 권력을 등에 입고 이런저런 권력의 칼을 휘둘렀기 때문일 것이다. 복도에서 그를 만나자 점백은 살짝 목례를 하고 그를 따라가서 그의 책상위에 놓인 종이상자를 들었다. 그것을 들고 주차장까지 쫓아가서 트렁크에 넣어주었다. 둘 다 별다른 말이 없었다.  


차가 움직이다가 말고 차창이 내려갔다. 전과 달리 윤 상무의 시선이 점백을 향했다. 이번에는 점백이 윤 상무의 시선을 피해 주차장의 천장 파이프를 향했다. 


“결국 자네가 이긴 셈이 되었네.” 


점백이 그 말을 되새기는 사이에 차는 주차장 램프를 타고 점백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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