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판사는 2년 후 평온한 은퇴를 앞두고 있었지만, 마음이 늘 불편했다. 15년 전에 아내가 죽었기 때문이다. 묻지마 살인자의 칼을 맞은 아내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그 이후 그의 가정생활은 파탄을 맞이했다. 그는 매일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들지 못했다. 그에게 밝은 세상의 태양은 사라졌다. 이제 세상은 거대한 원망덩어리였다. 한때 삶을 포기할 뻔했다. 그나마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두 아이들은 무탈히 잘 키울 수 있었다. 그의 본 성품과 인품을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이 독지가처럼 나서서 십시일반 도와준 덕분에 그가 법원에서 근무할 동안 집안 청소나 빨래 그리고 음식을 채려 주는 가사도우미도 둘 수가 있었다.
그는 퇴임 후 남들보다 높은 연금도 보장되어 있고, 두 자녀는 이제 장성해서 자신들의 직장을 가지게 되었고, 각자의 세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그는 늘 생각했다.
사고 당시 아내는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에게 식당 봉사를 하러 갔었다. 어떤 미친놈이 칼을 들고 설치면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찔렀는데 그중 한 명이 그의 아내였고, 결국 아내는 목숨을 잃었다. 아이들을 출가시키고 나니 외로움은 더해갔다. 그는 자신의 평온한 가정을 처참히 밟은 범인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이 미친 범행을 일으킨 범인의 이름은 ‘김점백’이었다. 그 이후 최 판사는 매일같이 그 녀석에 대해서 조사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집무실 책상 보드판 위에 아예 녀석의 이력서를 자신만 알아보는 초성으로 올려놓고 계속해서 새로 추가되는 내용을 업데이트해 나갔다. 탐정사무소도 활용했고, 자신의 사법연수원 동기들을 통해서도 자료를 취합했다.
최 판사가 확인한 결과 녀석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범죄 경력이 하나씩 추가되었는데, 이런저런 절도죄로 소년원을 드나들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어떤 여자와 결혼을 잠시 했다는 서류도 있었다. 주로 건설업 현장에서 막일로 일을 했고 잦은 음주와 가정폭력으로 경찰에 신고되어서 구류를 살았던 흔적도 남아 있었다. 그렇게 아내와 이혼하고, 자식들과도 뿔뿔이 흩어져서 자신의 불우한 삶을 괴로워하다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으로 경찰 조서에는 기록되어 있었다.
사회의 독초.
사회의 생활쓰레기 같은 놈이었다.
하필이면 이런 인간쓰레기에게 그 청순하고 지고지순한 아내가 목숨을 잃다니 생각만 하면 머리에 피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최 판사는 인맥을 동원해서 김점백이 출소하는 날을 알고 있었다. 그날 청송교도소의 거대한 철문 앞에서는 몇몇의 재소자들이 만기출소를 했다. 그중에 김점백도 있었다. 미리 손을 써둔 덕분에, 경찰 수사관 출신의 유능한 탐정들이 조용히 미행을 해서 김점백의 거주지를 알아냈다.
이미 교도소에 들어가고 나가는 편지들의 내용들을 통해서 김점백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있다는 문장을 읽기도 했지만, 그는 개소리라고 판단했다. 그런 놈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전과자들은 한번 교도소에 들어가면 더 진화해서 나오곤 하는 모습을 그는 법조계의 현장에서 너무나 많이 봐 왔다.
새롭게 김점백의 거주지로 확인된 곳은 그의 누나가 구해준 전셋집이었다. 보증금 5천에 월세 30만 원. 아마도 누나는 그나마 먹고살만한 형편인 듯했다. 당장 생활비가 여의치 않은 동생을 위해서 월세가 저렴한 집을 구해준 듯싶었다. 물론 보증금의 명의자는 누나 김점순이었다.
최 판사는 자신의 인맥을 통해서 구하지 못할 자료가 없었고, 행하지 못할 행동도 없었다.
김점백의 새로운 주소지는 경기도 안산시의 한 유흥가 인근 빌라였다. 최 판사는 탐정을 통해서 하나 둘 보고를 받기로 했다. 아직 자신은 김점백을 바로 만나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바로 만나면 그냥 그 녀석을 향해서 덤빌 것 같았다. 최 판사는 자신의 자제력이 더 무서웠다. 만날 때 만나더라도 제대로 준비를 하고 만나고 싶었다.
길고 날카롭지만 휴대가 가능한 독일산 접이용 나이프를 샀다. 국산 제품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어서 캠핑용으로 나온 유명 브랜드 제품을 구입했다.
칼은 항상 몸에 지녔다. 그러다 보니 한번 테스트를 해 보고 싶었다. 아직 한 번도 사람을 찌르려 하거나 찔러본 적이 없어서 그는 슈퍼마켓에 가서 돼지고기를 샀다. 얇게 썰린 삼겹살이 아니라 통으로 된 덩어리 살을 사겠다고 하니, 고기 코너를 맡고 계신 담당 판매자 분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칼은 어떻게 찔러야 하는 것일까. 유튜브 영상을 찾아서 어디를 어떻게 찔러야 단번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지도 확인했다. 하지만 유해정보라고 자세히 나온 곳은 없었다. 일단 슬라이스를 해서 식사를 하기 전에 덩어리 고기에 칼을 꽂아 보았다.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이렇게 그도 범죄자의 길에 한 발을 올려놓은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하는 자괴감도 동시에 들었다. 복수를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냥 넘어가면 어떨까. 하지만, 그의 손에 죽어간 아내의 고통이 눈만 감으면 여전히 느껴졌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이던가. 물론 15년의 형량을 좁고 힘든 교도소에서 살고 나온 김점백은 자신의 죗값을 다 치렀다고 생각할 터였다.
최 판사는 은퇴를 하고 나면 점백을 처치하고 자신도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자신의 예상보다 조금 일찍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계산이 맞았지만 그의 정년이 2년 정도 뒤로 미루어졌다. 국가의 정책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은퇴 후까지 복수를 미룰 생각은 없었다.
점백이 감옥에서 삶과의 투쟁을 했다면, 자신은 퇴근 후에 아내가 없는 빈자리 자체가 하나의 투쟁 시간이었다. 하루의 고충을 어디에 얘기할 수도, 털어놓을 때도 없었다. 가끔 받는 스트레스의 무게를 얘기할 곳도 없었다. 국가에서 상이라도 받으면 진정으로 자랑할 곳도 없었다. 친구들에게 고충을 얘기하는 것도 하루이틀이고, 상을 받았다고 자랑하면 진정으로 받아주고 축하해 주는 친구들도 결국 다 가정으로 해가 지면 돌아갔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던 아내는 그렇게 참으로 허무하게 세상을 떴다. 이제야 최 판사는 왜 사람들이 엄연한 사법제도가 존재함에도 개인적인 복수들을 멈추지 못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형태의 복수였다. 그가 보기에 김점백은 아무리 봐도 다시 뭔가 사회에 큰 나쁜 짓을 할 사람이었다. 자신은 단순한 자신의 사적인 복수를 넘어서, 사회에 터질 재난을 미리 막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탐정에게서 받은 문자를 보았다. 거기엔 자신의 목표인 김점백의 집 주소와 집 외형 그리고 반지하를 밖에서 찍은 사진들이 몇 컷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씩 집 앞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김점백의 최근 사진들도 올라와 있었다.
결국 그는 어느 날 새벽꿈에서 아내를 보자마자 칼을 챙겨서 점백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차를 조용히 점백의 집 앞 공터에 세웠다. 칼이 든 후드티셔츠를 겉에서 한 번 만졌다. 새벽에 운동을 한다는 점백의 옆구리나 목을 찌를 생각이었다. 조금 전부터 해당 빌라의 거실 쪽 창문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아마도 새벽운동을 나갈 채비를 하는 듯싶었다. 녀석, 이제 곧 나오겠지. 오늘이 네 인생의 마지막 날이구먼. 잘 준비하고 나와라. 그래도 쌀쌀하지만 영하의 날씨는 아니니 그렇게 춥게 죽지는 않을 거야.
그때였다. 골목의 가로등 밑으로 검은 물체 하나가 느리게 지나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건 종이박스를 성인어른의 가슴높이만큼이나 쌓은 리어카였다. 나이 든 노인 한 분이 비틀거리면서 천천히 자동차 앞으로 지나갔다. 자동차가 있는 곳은 평지이지만 그때부터는 약간 언덕진 경사가 시작되는 곳이다. 노인은 그 밑에서 힘겨워하고 있었다. 비니모자를 쓴 남자가 그 뒤에 붙여서 천천히 밀어주자 리어카는 천천히 힘을 받아서 올라갔다. 그렇게 몇 분을 올라가자 리어카는 정상에 도달했다.
“아이고, 청년 고마워요.”
“에이 뭘요.” 남자는 손사래를 치면서 다시 언덕을 뛰어 내려와서 최 판사의 앞을 지나갔다.
쉰 목소리가 차량도 없는 새벽 보도 위에 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려고 차량 옆에 나와 있던 최 판사의 귀에도 정확히 들렸다. 분명히 그 남자는 김점백이었다. 최 판사는 약간 당황했다. 그래, 불 켜진 빌라에서 나왔지.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컴컴한 어둠이지만 자신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최 판사는 분명히 느꼈다. 알 수 없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가 보기에 김점백은 확실히 변화된 모습이었다. 그제야 그간 탐정이 보내온 몇몇의 사진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빌라 인근의 쓰레기를 정리하는 모습, 빌라 앞에 쌓인 눈을 청소하는 모습들 말이다.
‘그래, 한낱 벌레 같다고 생각했던, 당신이 변했다면 나도 변해야 하는 것이 맞지. 그렇게 내가 변화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당신보다 못하다는 것일 테니.’
최 판사는 쥐고 있던 나이프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를 몰아서 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는 새벽 성가가 울려 퍼졌다.
그동안 멀리했던 교회를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변했다면 이제 자신이 변할 차례였다. 차창 너머로 새벽 별이 그를 향해서 반짝였다. 어디선가 그의 아내의 환한 미소가 그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