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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스 else Jul 03. 2023

저는 수능에서도 영어는 포기했었어요

다국적 기업 생태계에서 헤엄치는 IT 디자이너의 일기 - 5

*특정 업체 광고가 아닙니다. 업체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만 제 경험담을 풀면서 커리큘럼과 수업 내용으로 특정될 수도 있어 미리 알림 드립니다.



영어는 끔찍해!


첫 문장부터 사실 매우 울렁증이 생긴다. 나는 입시 시절에도 공부 자체를 싫어하진 않았지만 배운 것을 확인하는 용도가 아닌 변별력을 위해 일부러 문제를 틀리게 하기 위한 시험에 굉장한 강박과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기사 대한민국 학생 중에 입시 시험에 괴롭지 않았던 학생들은 극소수일 것이다.)


특히나 나는 영어를 너무나 어려워했는데 요새도 유튜브나 많은 곳에서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도 수능 문제를 보면 굉장히 난해하고 이해가 잘 안 간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많이들 보았을 것이다. 아무리 어느 정도 풀이 필승법이 있다 하더라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너무 구조적으로 어려운 문장들을 읽고 있자니 가뜩이나 생각이 많은 나는 머리가 터져나갈 뿐이었다.


그렇게 아무리 공부해도 실력은 늘지 않고 수능 영어 시험을 처참히 망쳤다.


그러나 다행히 지원할 대학교에 지원자격 턱걸이 등급 점수는 받아냈고 미대는 실기 제도가 또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었다. 대학교 졸업 때도 타 학과들은 토익이든 토플이든 영어 시험이 필수 졸업요건이었지만 미대는 졸업작품이 이를 대신했기 때문에 이때도 나는 영어나 다른 외국어랑은 거리가 먼 삶을 계속 살고 있었다.



그런 내가 어쩌다 해외와 일하는 회사에 입사해 버렸네?


물론 글로벌적인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재직 중인 회사에 입사 지원을 한 것은 맞으나 사실 한국 기반 회사였고 디자이너한테 사실상 외국어적으로 크게 기대하는 게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이력서에도 언어능력 기술칸이 있긴 하지만 대다수 디자이너들은 포트폴리오에 더 집중하지 다른 능력 기술에는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적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지금.. 다들 외국어로 말하시는 거야..?


그런데 웬걸..

어느 날 우연히 안이 다 보이는 투명유리 회의실에서 화상미팅 시간에 조직장님이 원어로 열변하며 토론하는 모습을 보게 되자 그때 내 머릿속 한 구석이 트였다.


물론 리더급 이상만이 요구되는 자질 중에 하나였고 디자이너 직군은 필수가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이 회사에 만약 오래 근무하고 성과를 인정받게 되어 상급자가 된다면 언젠가는 이 자질을 요구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니 이상하게 그때부터 묘한 위기감과 함께 각성하기 시작했다.


'안되면 이직하자.'가 아닌 '안 되겠다. 공부를 해야겠어.'라고 마음을 먹었다는 건 그때의 나는 이미 이 회사를 오래 다닐 것을 예견했던 것일까.





답은 어린 시절에 있다.


다시 영어를 공부하려고 했을 땐 나는 습관적으로 학생 때처럼 토익이나 토플 문제집과 강의를 사서 들으며 문제 풀이를 하고 있었다.(12년간의 공교육의 관성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러다 보니 이건 시험을 위한 거지 나처럼 실제로 회사나 실생활에서 쓰일 목적의 영어 공부가 아님을 곧 깨닫고 나는 아예 공부 방법 자체를 틀어버려야 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마침 어린 시절에 지금도 아주 유명한 영어 시험들을 주관하는 교육 기관 산하의 '영어 유치원'을 다녔던 때가 떠올랐다.


어머니가 굉장히 치맛바람이 세셔서 요새야 흔하지만 그 당시에는 많이 있지도 않았고 그때도 굉장히 가격적으로도 비싼 영어 유치원을 다녔었는데 그 시절에 외국인 선생님과 함께했던 영어는 싫지 않았고 오히려 행복했었다. 그때는 그냥 그 외국인 선생님하고 놀려면 한국말이 안 통하니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사용해야 했어서 말 그대로 영어가 '공부 과목'이 아닌 '언어'로써 배우고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게 핵심 관점이라고 번뜩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국인과 함께 평소 대화를 나눌 때 쓰는 영어는 절대로 수능 문제처럼 논문에 한 번 쓸까 말까 한 어려운 단어들과 주야장천 어려운 문법들로 복잡하게 쓰면서 길게 말하는 모습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직감적으로 '어린 시절'에 답이 있다고 느꼈다.


우리도 모국어인 한국말을 배울 때 영어 시험 공부하듯 그렇게 배우진 않았다. 이 사물을 무어라 부르는지 단어로 배우고 그걸 부모님한테 말하면 부모님은 상호작용하여 그 단어를 이용해 좀 더 긴 문장을 나에게 들려주고 나는 또 그것을 습득하여 다시 써먹으면서 배워나갔다.


그렇다. 내가 공략해야 할 부분은 '회화 영역'이었다.





그래도 암기는 필요해.


그렇다고 무조건 학교 때처럼 책과 연필이 동원되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분명 말을 하려면 당연히 단어도 알고 있어야 하고 숙어처럼 표현들도 알고 있어야 하니 어느 정도 암기도 사실상 필수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암기를 시험 풀이용처럼 하진 않겠다는 뜻일 뿐.


다시 기초인 단어 암기부터! From. 2017년.


이때는 몸이 기억하게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학생 때는 시간에 쫓겨 빨리 문제풀이로 넘어가버려 제대로 다지지 못한 기초인 단어 암기를 처음 한글 배우듯이 손글씨로 하나하나 쓰면서 각인시켰다. 시험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자의로 스스로 정리하면서 하다 보니 시험에 자주 등장할 단어가 아닌 '내가 말할 때 필요한 단어'부터 정리하니까 단어를 외우는 속도며 암기 폭도 더 빠르게 증폭되었다.


어느 정도 단어의 습득력이 올라왔을 때는 모바일로 자주 틈만 나면 볼 수 있는 구글 드라이브 문서에 분야별로 단어들을 정리해서 잊을만할 때쯤이면 정리해서 보았다. 곁다리로 첨부 이미지에 있는 'Enthusiasm'과 'Enthusiast'라는 단어를 아직도 나는 너무 좋아한다.


무엇이든지 '열광'하게 되면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인생 경험 하나는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보통 사람은 말하기 전에 말할 문장을 생각하잖아요.

                     

단어나 문법 같은 암기 단계의 그다음은 실제 '말하기 연습'이다.


원어민처럼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바로바로 문장이 튀어나온다는 것은 진짜로 많은 시간과 경험을 요하는 것이었기에 처음부터 그 정도 수준을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렇게 무리하다가 기대만큼 입에서 문장들이 안 나온다면 좌절감만 느낄 거 같아 어떻게 하면 회화 영역에서 단계별로 실력을 늘릴 수 있을지 당시에 많이 고민했다.


그렇게 여러 영어 교육 서비스를 훑어보다 친구처럼 친근하게 메신저로 영어 대화하면서 영어도 배우는 교육 서비스에 영감을 받았다. 메신저로 영어 대화를 한다는 것은 실제 말하기 회화보다는 문장 만들기에 대한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서도 그렇다고 너무 한없이 천천히 쓰면 안 되는 것이기에 적어도 몇 분 내로는 영어 문장을 빠르게 조합하여 만들어내는 연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모국어인 한국말로 대화할 때도 머릿속에서 여러 문장들을 조합해서 생각한 뒤에 말을 꺼내는 경우도 있었기에 거기에 착안했다.


지금부터 이 짤의 공부법으로 간다!


그렇게 해당 메신저 서비스를 통해 점점 문장 조합 속도가 향상되었고 머릿속에서 전보다는 빠르게 문장이 조합되니 나는 그 조합된 문장을 바로 입 밖으로 꺼내면 되는 것이었다. 내 예상대로 실제 말하기에서도 그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 쏼라쏼라는 역시 무리지만 말이다.


문장 조합이 어느 정도 되니 대화의 표현 교정, 문법 교정 등은 외국인과 직접 대화하는 대면 영어 교육 서비스로 갈아타 수업을 받으며 실력을 더 키워나갔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선생님 1대 학생 다수 회화 수업은 절대 기피했다. 


그렇게 되면 수강료는 싸겠지만 내가 선생님과 실제 대화하는 양은 진짜 몇 마디도 채 되지 않는다. 수업 내 학생들끼리 대화하는 것도 사실상 말을 내뱉는 연습은 할 수 있겠지만 내가 제대로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교정을 받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와, 노력 많이 하셨나 봐요.


그리고 나는 틈만 나면 회사에서도 외국인 동료분들이나 외국어를 잘하시는 기획자분들에게 일부러 외국어로 말을 걸기도 하며 그들을 십분 활용(?)했다. 그들이야말로 정말 학원과 교육 서비스를 벗어난 실제 말하기 현장이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물론 완벽하지도 않은 실력의 외국어를 업무 중에 쓰진 않았고 업무 외적으로 사내 카페에서 만나거나 스몰 토크를 할 때 도전(?) 해 보았다. 나의 이런 노력을 그들도 참 귀엽게 봐준 것인지 상대를 해주셔서 지금도 참 감사하다. 그들은 해외 미팅 아니고서는 사내에서는 절대적으로 한국어만 사용하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정말 나를 배려해서 상대해 주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문단의 제목처럼 그들이 내 언어 실력에 대한 칭찬을 건넸을 때는 아직도 사실 원어민처럼 완벽하진 않아도 실전 비즈니스에서 어느 정도 사용할 수는 있는 수준의 성장을 내가 했다는 것에 엄청난 성취감을 느꼈다.


수능 시험을 말아먹을 정도로 영어에 젬병이었던 나도 할 수 있었다!


특히 기획자분들은 원활한 업무를 위해 영어뿐만 아니라 정말 필요하면 동남아시아나 한국에서는 비주류 언어들까지 노력하시면서 계속 공부하시는 분들이 많았기에 나의 공부 고충을 더 많이 공감해 주셨다. 그러다 보니 나 또한 그들의 외국어로 업무 진행 중 생겼던 에피소드를 듣다 보니 자연스레 타 직군의 애로사항들도 알게 되어 유대감이 생긴 우리는 같이 일하게 될 때 서로서로 더 끈끈하게 업무 할 수 있었다.



 


아직도 공부는 현재진행 중.


실력면에서 과거에 비하면 많은 궤도 위로 올라왔지만 평상시에도 항상 외국어를 쓸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기에 많은 분들이 그렇겠지만 공부는 여전히 현재진행 중이다. 그래도 회사 환경과 능력자 동료들과 함께하면서 나 또한 자극받아 일궈낸 성장 중 하나였기에 지금도 회사를 다니면서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이다.


이후 이야기에서는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업무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써볼 계획이다.



*표지 이미지 출처 - Freepik Free Lic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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