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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석 Jul 24. 2020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 아테네의 문화

아낙사고라스, 프로타고라스, 소피스트

초창기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렇게 만물의 근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뭔가 신비주의자나 급진적인 말도 많이 나왔었죠. 이제 흔히들 그리스 하면 생각하는 아테네 시대로 넘어가게 되는데요. 근데 아테네가 생각보다 작더라고요. 면적은 인천 한 세배쯤 하고 인구는  70만 명 정도 되는데, 그것도 시골 사는 사람들이랑 노예들이랑 다 빼고 나면 나머진 얼마 안 될 거예요. 근데 그게 아테네가 역사가 짧거든요. 200년이 덜 되는데 이것저것 남긴 것도 많고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평가를 해요.



그 다음에 언급되는 사람은 아낙사고라스예요. 아낙사고라스는 소크라테스 제판 변명 장면에서 언급 됐던 학자예요. 소크라테스 기소 이유 중 하나가 ‘태양을 불이라고 했다. 고로 신성 모독이다.’라는 신성모독죄가 끼워져 있었거든요. 헌데 소크라테스 재판 때로부터 한 100년 전쯤에  아낙사고라스도 같은 이유로 태양을 불덩어리라고 했다고 제판을 받은 적 있어요.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지금 100년도 더 된 죄몪 가지고 기소한 거냐고 뭐라 하는 장면이 나와요. 우리로 따지면 3 공화국 때 판결 가지고 재판하는 느낌이랑 비슷하죠. 하여간 아낙사고라스도 소크라테스랑 비슷하게 신성 모독 죄로 유죄를 받고 죽을 위기에 처했었어요. 그렇지만 소크라테스 완 다르게 아낙사고라스는 재자들과 함께 도망갔어요. 도망가서 잘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이낙사고라스는 4원 소설을 이야기했어요. 불 땅 바람 물 이렇게 4 원소를 이야기하면서 하나 더 첨언을 했는데요, 바로 누스라는 요소를 추가해요. 이 누스가 그리스어로 정신이란 뜻이에요. 만물은 4 원소로 이루어졌죠. 그 안에서 무생물과 생명체를 판가름해 주는 요소가 바로 이 누스라는 거예요. 살아있는 것엔 누스가 들어 있다고요. 이 누스가 나중에 플라톤은 물론이고 그 이후 신플라톤주의자들이 아주 잘 써먹는 그런 요소가 되기 때문에 기억을 해 두시면 좋아요.



아테네 문화를 얘기해서 바로 소크라테스로 넘어가는 게 자연스럽긴 한데, 소크라트스 플라톤 얘기를 하면 다른 철학자들 얘기를 못해서 일단 원자론자들 아야기를 하게 돼요. 책에서 언급이 되는 원자론자들이 레우키포스 테모 크리토스예요. 사람은 많지만 주장은 비슷해요. 모래 같은 걸 쪼개다 보면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무언가가 나와요. 그것이 바로 원자이고 그 원자들이 이 세계에서 소용돌이를 치면서 서로서로 조합해서 우리가 보는 세계가 만들어졌다. 이게 원자론자들의 기본 주장이에요. 



여기서 이어지는 특징은 원자론자들이 결정론자들이었다는 거죠. 원자가 이쪽으로 움직여서 원자를 밀어 네고 또 저쪽으로 움직이면서 저쪽으로 밀어 네고 움직이다 보면 결국에는 우리의 원자의 흐름은 정해져 있다. 과학적으로 모든 원자가 어떻게 움직일지 계산을 하면 우리 미래를 알 수 있다는 이런 내용이에요. 원자론자들은 이렇게 이 세계를 굉장히 기계적으로 설명을 했죠.



하나 원자론자들은 세계의 목적이나 시작을 설명을 많이 안 했어요. 그래서 원자의 첫 시작은 뭐냐고 했을 때 그걸 반박할 만한 기록을 많이 남겨놓지 않았죠. 그런 점에 대해서 러셀은 자체적인 오류가 있다고 평가를 해요. 하지만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결과적으로 원자론자들이 맞고, 이 사람들의 논증이 르네상스 시기에 다시 제점화 될 정도로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설명이 잘 돼 있는데 이 사람들이 그 주도적인 지적 우위성을 잡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버트런드 러셀은 약간 안타까운 기색을 보여요.    



원자론자들을 이렇게 마무리 한 다음에 소피스트로 아테네 시대 이야기가 시작돼요. 프로타고라스, 소피스트의 아이콘이 등장하죠.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 다는 말로 유명해요. 만물의 척도라는 말이 ‘내가 하는 말이 다 맞아’ 라기 보단 ‘너도 인간이고 나도 인간이고, 우리 모두 다 인간이니까 우리 모두마다 자신의 척도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즉 프로타고라스는 절대적인 상대주의를 말한 거예요. 절대적인으로 맞다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어찌 보면 허무주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주장을 한 거죠. 이런 주장은 지식을 유용성에 따라 판가름하여 사고팔던 소피스트 집단의 상황과 잘 맞아요.



소피스트는 편협한 사기꾼 정보상이란 이미지가 붙어 있지만 점점 소피스트 들네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어요. 소피스트들이 그 당시 합리적인 교육 집단이라는 건 부정할 수가 없거든요. 돈을 받고 교육을 가르쳤다는 것은 귀족 평민 가리지 않고, 또 어떤 종교적 믿음을 가져야 된다던지 조건을 걸지 않았다는 뜯이에요. 그저 경제력을 통해 지식을 전달함으로써 돈에 의한, 생산성에 의한 합리적인 교육을 했다고 재 평가를 받습니다. 근데 욕을 먹을 만도 했던 게요. 소피스트들이 어그로를 많이 끌었거든요. 자신들의 그 상대주의를 증명하고자 지식에 대한 절대성을 주장하는 철학자들 한데 괴변을 이용해서 논쟁을 해요. 너는 이것에 대해서 반박을 하지 못한다. 네가 말하는 절대적인 지식이 도대체 어디 있느냐는 식으로 비꼬며 주장을 했어요. 그 일례로 ‘너는 개의 아들이다.’ 논증이 소개돼요.

“너의 집 개가 하나 있지.”

“맞습니다.”

“그 개는 네 가족의 일원이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개가 아이를 낳았지.”

“그렇습니다.”

“그럼 그 개는 아버지이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인 개는 네 가족의 일원이고”

“그렇습니다.”

“그럼 그 개는 가족 일원에서 아버지를 맡고 있으니까 당신은 그 개의 아들이겠구나”

이렇게 괴변을 펼칩니다. 그런 식으로 사람의 속을 박박 긁어놨으니, 평가가 좋을 리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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