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 살던 사람이고 굉장히 못생겼다고 해요. 이 못생긴 사람이 매일 마다 아테네 아고라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도를 아십니까 덕을 아십니까 귀찮게 질문을 하고 다녔어요. 근데 이 질문이 과연 소크라테스가 뭘 몰라서 질문을 하느냐? 자기는 그렇다고 말하지만, 질문에 대답을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닌데' 하면서 ‘잘 모르겠습니다.’는 대답을 유도했어요. 이런 얄미운 행동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금방 유명해졌고,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있었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굉장히 싫어했죠. 그래서 그 소크라테스를 싫어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새웠고, 소크라테스는 멋지게 변명을 한 후 독약을 먹고 죽었지요.
소크라테스가 활동하던 시대의 아테네가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어요. 펠레폰네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거든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한 껏 치고받고 싸우다가 결국엔 스파르타가 이겼어요. 아테네가 전쟁에서 지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졌는데, 민주정치를 하다 보니 왠 친 스파르타파 뭐 고립정책파 친연합파 개혁파 보수파 이런 게 괭장히 많이 나왔겠죠. 그러면서 지들끼리 싸우다가 ‘재는 좀 없어야 할 것 같아, 죽여하 할 것 같아’ 그러면 암살도 좀 하고 이상한 이슈 터트려서 신성모독죄나 군중 혼란죄로 제판 보내서 추방도 좀 하고 독약도 먹이면서 눈앳가시나 정치적 정적을 없앴죠. 그리고 그게 그때 아테네의 정치 문화였어요. 마치 우리네 정치 상황이 누가 맘에 안 들면 뭐 문건 이런 거 터트려서 비리 고발하고 언론사에 퍼트려서 사회적으로 매장을 시키는 것과 비슷하게 아테네에선 죽이고 추방시키는 게 있었던 거예요. 대충 이제 감이 오시죠? 소크라테스가 왜 허무하게 독약을 먹고 죽었는지? 그리고 그 정적들이 바로 제판에 새워서 죽이는 일이 가능했는지. 그때는 그게 정치 문화였기 때문이에요.
안 그래도 전쟁 져서 분위기 뒤숭숭한데 왠 못생긴 놈이 광장 돌아다니면서 계속 사람들을 들쑤시고 다니고 하니까, 보다 못해서 재판장에 새웠죠. ‘너는 젊은이를 타락시켰고, 태양을 그저 큰 불덩이라 부르는 등 신성모독을 저질렀고 시민들을 혼란 캐 하였다.’ 이런 죄몪으로 기소를 해요. 근데 그때 소크라테스의 나이가 69세였어요. 그때 69세면 진짜 나이 많이 먹은 거거든요? 요즘도 한 70 되셨다면 나이 드셨다 소리 듣는데 고대의 69세면 채감상 거의 89세 정도 되는 거예요. 그랬는데 제판장에 새운 걸 보면 굉장히 맘에 안 들었나 보죠. 소크라테스 입장에서 보면 내가 평균 나이도 훌쩍 넘었고, 펠레폰네스 전쟁도 참전했다 살아남았고, 나름 길바닥 논객에서 제자들의 존경도 받았는데 수치스럽게 고개 숙이면서 나와봤자 뭘 부귀영화를 누리겠어요, 그래서 멋있게 가자 이런 마음이 있었는지 소크라테스는 자기 목숨 변호가 아닌 자신의 사상을 변호하게 됩니다. 무죄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멋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변호를 했던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변명인 거죠.
그래서 거기서 나온 몇 가지 이야기를 가져오자면, 소크라테스가 묻기를 ‘내가 죄목에 젊은이를 타락시킨다고 제판장에 새워졌는데, 반대로 젊은이를 선하게 만드는 건 누구입니까.’라고 하자 기소 측에서 ‘우리 존경하는 판사님과 배심원 여러분들이 젊은이를 선하게 선도하십니다.’ 이래요. 소크라테스는 ‘그럼 아테네 시민이면 모두 배심원이 될 수 있으니 모든 아테네 시민들은 젊은이들을 선하게 만들 수 있습니까?’ 이렇거 말하니 기소 측은 이래요.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당신만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소크라테스는 ‘그게 사실이라 치자. 만약 이 아테네에서 나만이 젊은이를 악하게 만드는 타락의 근원이라면. 방금 말한 아테네 시민들의 능력, 사람을 선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너희들이 나를 선하게 만들어야지 왜 나를 없애느냐.’ 이렇게 변명을 하죠.
그리고 또 하나 ‘내가 태양을 불덩이라고 해서 신성모독죄라 했는데 이거 100년도 전에 아낙사고라스가 기소를 당했던 내용인데 지금 100년 전 내용으로 나를 기소를 하는 겁니까? 시장바닥에서 몇 푼이면 아낙사고라스가 썼던 책을 구할 수 있는데 그건 뭡니까?’ 이렇게 변명을 하고, 그리고 왜 그렇게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고 다녔느냐를 변명합니다. ‘내가 예전에 댈포이에서 신탁을 한번 봤는데 내가 아테네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겁니다. 근데 나는 그걸 못 믿겠어서, 나는 그리 똑똑하지 않은 걸 알기 때문에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을 찾아서 무엇이 선인지 무었지 덕인지 시인들한테도 물어보고 장인들한테도 물어보고 정치인들한테도 물어보고 했는데 다 바보들이더라. 그런데 더 심각한 건 다들 자기가 바보인 것 도 몰랐던 겁니다. 그래서 그때 내가 깨달았습니다, 아 스스로 멍청하다는 것을 나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제일 똑똑하구나,라고 말입니다. 저 똑똑하다 하던 놈들은 무지의 무지에 가려져 있었구나. 그래서 내가 제일 똑똑하다는 신탁을 내렸구나.’ 이렇게 변호가 아닌 변명을 합니다. 당연히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선고받고 죽습니다. 파란만장하게 죽은 소크라테스는 학문적으로 봤을 때 뭘 말했고 뭘 주장했냐면, 일단 산파식 교육을 말했어요. 질문을 통해 일깨워 주는 교육이죠. 그 산파식 교육을 뒷받침하던 것은 바로 삼단논법이고요. a는 b이고 b는 c이기 때문에 a는 c이다. 는 논리죠. 그리고, 인간의 덕을 중시했습니다. 덕을 중시했다는 건 지금 들으면 당연하게 여겨지겠지만 앞서서 예기했던 소피스트들의 상대주의와 비교해서 보셔야 합니다. 절대적 덕, 도덕은 없다고 말했던 소피스트들의 주장에 대해 절대적인 덕은 있다고 얘기한 것이죠.
한번 더 이 시대상에 대해 말하자면, 전후 시대라고 했죠? 스파르타와 아테네 간 펠레폰네스 전쟁이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나고 얼마 안 돼서 이야기이기 때문에 당시 스파르타의 상황이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철학에게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책에서 스파르테에 대해서, 스파르타는 어떤 나라였는지 집고 넘어갑니다. 스파르타라 한다면 영화 300의 영향도 있고, 여러 매체 덕분에 굉장히 마초스럽고 용맹스러운 이미지로 각인이 돼 있는데요. 그게 사실 맞는 말이긴 해요. 스파르타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색채가 강한 군사 국가였죠. 하지만 그런 이미지는 스파르타의 반쪽만 보는 거예요. 즉 스파르타는 너무 좋게 포장되어 있다. 스파르타는 잘 알고 보면 고대 북한 정도에 더 가깝다. 이 말이에요, 애들은 나자마자 약한 애들은 죽이고 강한 애들만 키워냈고 성인이 될 때까지 전사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혹독한 훈련과 잔인한 체벌을 지속하고, 그런 모습에 어떤 자유라던지 간단한 유희라던지, 여유나 휴식, 즐거움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고. 그렇게 전사가 된 다음에도 싸우다 후퇴를 했거나 명예롭지 못하게 살아남았다면 명예를 잃었다 판명되어 없는 취급, 거의 기수 열외를 당하다가 전쟁에 나가 전사해서야 명예를 되찾았다 인정해주는 빡빡하게 명예만 보고 가는 사회였죠. 어떤 면에서는 이런 스파르타가 굉장히 좋게 볼 수 있는 점이 있어요. 일반 시민 그러니까 스파르타 시민들은 전부 군사화시키고, 그 와중에 노예들을 부려서 생산활동을 시키고, 그 와중에 상과 벌을 주고 관리자를 뽑으며 체제를 유지하게끔 한 그런 구조적인 견고함 자체는 그 시대 어떤 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어요.
하지만 그 그늘을 보자면, 너무 명예를 중시한 나머지 너무 사람을 꽉 조인 나머지 사람들이 욕구를 뒤에서 풀기 시작했어요. 즉 부정부패와 은밀한 타락이 마치 눌린 풍선처럼 손에서 삐져나와 빠르게 커져갔던 거예요. 일단 관리자들의 뇌물 문제도 컸고, 고위 관직자들의 은근한 사치나 퇴패 문화가 커져갔고, 또 노예들의 불만을 통제하기 위한 반 인륜적인 통제를 했었죠. 경제적 성장이 없으니 국가 안에 가치 있는 것이 줄어들었고 따라서 명예에 대한 보상으로 줄 토지나 제화나 노예들이나 그런 것들이 줄어들어갔고 불만과 문제점은 커져만 갔죠. 이렇게 여러모로 외강 내유, 전쟁과 체제 유지 말고 딱히 잘한 점이 없었던 국가가 되죠, 안에서부터 썩어나갔던 국가가 스파르타였어요.
이 스파르타의 체제를 다진 것이 라쿠르고스란 사람인데요. 리쿠르고스의 업적은 잘 짜인 스파르타의 법, 정치 구조를 만든 거예요. 스파르타가 우리가 보기에는 1984가 떠올려지는 그런 국가의 모습이지만, 그 시대 때에는 참고할 만한 과거가 그리 많지 않았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식으로 법을 짜고 계급을 나누고 그에 따라서 할 일과 책임, 그리고 그 인간적인 기틀을 만들고 그 안에서 국가가 어느 정도 잘 굴러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라쿠르고스는 위대한 법학자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어요. 플라톤도 이 라쿠르고스를 좋아했어요. 그리고 그가 만든 스파르타의 단단한 체제를 좋아요. 그래서 플라톤이 말하는 강력한 체계를 가진 국가상이 이 스파르타의 정치상을 본떠 만든 것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만들죠. 그때 플라톤이 있던 시기에는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졌던 시기였고, 마침 자신의 스승도 아테네 체계로 죽었고, 그것 말고도 내 외적으로 아테네가 몰락하던 시기이기에 플라톤이 스파르타에 대해 어떤 선망적인 감정을 품을 수 있으리라는 개연성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