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자소서를 고쳐 쓰다 무작정 집을 나왔다. 밤바람에 머리라도 식히고 싶었다. 하지만 후터분한 열대야 열기에 이마엔 송글송글 땀이 맺혔고, 삼 일간 입고 있던 티셔츠 목구멍을 타고 시큼한 땀내가 피어올랐다.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진 않았다. 어제 <하루 만에 끝내는 자소서>라는 책에서 읽은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라는 구절 때문이었다. 내게 스펙은 없지만 스토리라면 해볼 만했다.
한국 대학교 물리, 수학 복수 전공. 인턴 경력 무. 자격증 무. 토익 점수 상위권. 업무 경력은 졸업 후 3년 간 학원강사 아르바이트.
그게 재료의 전부이긴 했다. 내세울 거라곤 대학 이름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물리와 수학을 복수 전공했다는 점을 내세우면 가능성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머리가 나쁜 건 아니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있다고 말이다. 그래, 스토리 방향은 잡혔다. 가능성과 호기심! 그 둘에 집중하는 거다. 이제 쓰는 일만 남았다.
난 늘 성공하고 싶었다. 남들과 다르고 최고가 될 거라 믿었다. 한국대학 합격 통지를 받고 환희의 눈물을 흘릴 땐 그 믿음이 실현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후 내 삶은 무한반복되는 좌절의 연속이었다.
친구들이 경영학이나 공학을 전공하고 취업을 준비할 때, 세상의 이치와 변화의 원리를 깨치겠다며 이론물리학과 연구실을 택했다. 그때 내게 성공이란 양자중력이나 초대칭 이론 같은 걸 탐구하고 궁극적으로 우주의 모든 힘을 하나로 통일한 ‘대통합이론’을 발견하는 것 따위였다. 세상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것보다 담대한 도전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녹녹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내 머리로 순수 이론에서 두각을 나타내긴 무리란 사실을 깨달았다. 어디선가 물리학은 세상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해석일 뿐이라는 말도 들었다. 물리나 수학은 세상을 해석하기 위한 도구고, 그런 도구를 활용한 해석은 세상에 대한 여러 해석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학문과 세상의 이치 사이 어떤 절대적 상관관계가 없다면 난 그때까지 뭘 했던 걸까? 왜 뇌를 혹사시키며 방정식 하나 풀겠다고 며칠 밤낮을 매달렸을 까? 깨달음과 함께 의욕은 사라졌다. 아니, 어쩌면 의욕을 먼저 잃고 깨달음이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타협을 거듭해 선택한 석사 논문 주제는 양자역학과 위상학에 기반한 검색엔진 데이터베이스였다. 이론이 아닌 응용분야이긴 했지만 ‘통섭’이 한창 유행할 때 야심 차게 선택한 주제였다.
헌데 통섭이란 게 참 애매했다. 양자역학이면 물리학, 위상학이면 수학, 데이터베이스면 컴퓨터공학 교수에게 지도를 받으면 됐다. 하지만 내 논문은 독자가 불분명했다. 주제를 조정해 다시 쓰자던 지도교수 조언을 묵살한 내게 돌아온 건 ‘그럴 거면 자네 혼자 하게!’라는 면박과 힐난뿐이었다.
니체였던가? 시련으로 죽지 않는 한 더욱 단단해질 뿐이라고 말한 게 말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굳은 심지와 의지로 돌계단을 쌓다 보면 언젠가 정상에 우뚝 서 ‘저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답니다’라며 회상할 날이 올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난 계단이 아니라 벽을 쌓고 있었다. 여전히 나만의 길을 가겠다는 아집이 차돌처럼 단단한 석회질 껍데기가 되어 세상과 나를 단절시켰다. 그리고 그 아집을 놓는 순간 남들을 뒤쫓아가야 한다는 두려움에 더더욱 나 자신을 고립시켰다.
친구들이 연수원 로맨스니 사내커플이니 하며 잡담을 할 때도, 커리어나 이직을 논하며 서로에게 힘을 보탤 때도 내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난 그렇게 석회질 알껍데기를 쌓으며 내 안으로 처연히 침잠했다.
연구실에서 허송세월을 보낸 지 2년쯤 됐을 때 언제 정신 차릴 거냐는 친구 등살에 떠밀려 취업준비를 시작하긴 했다. 아무에게도 알리진 않았다. 남 부럽지 않을 직장에 보란 듯 취칙해 그냥 한번 써봤더니 됐다고, 됐으니 다니긴 해야겠다고 심드렁히 말할 참이었다.
자신은 있었다. 한국대 과수석으로 입학한 나였는데 무언들 못하겠나? 하지만 연이은 불합격 통지가 안일한 정신을 추달하듯 날아들었다. 역시나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연구실이란 생각이 들었다. 헌데 그때쯤 연구실 후배 혁진이에게 전화가 왔다.
“선배, 저 이번에 조교 발탁됐어요. 선배한테는 미리 얘기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뇌로 망치를 얻어맞은 듯 우두망찰 해졌다. 축하한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알껍데기에 갇혀 있는 동안 세상은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취직을 하거나 유학을 떠났고, 누군가는 가뜩이나 비인기 전공인 물리학과에 단 하나 남은 조교 자리를 꿰찼다.
하긴 진중한 학구열과 곰살가운 행동거지로 교수들 신뢰를 독차지하던 혁진이가 조교가 된 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모지락스레 내 방향만 고집하던 나와 혁진이가 어찌 같겠는가? 선연했던 미래가 아스라이 멀어지며 허공 중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시간이 없었다. 더 이상 세상을 외면해선 안 됐다. 연구실을 박차고 나와 <하루 만에 끝내는 자소서>를 집어든 게 바로 그날이었다.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어제 읽었던 구절을 되뇌었다. 희망회로가 돌며 기분이 뭉근히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랬다. 스토리 보강이 필요했다. 내 도전과 좌절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스토리가 필요했다. 비록 끝내진 못했지만 논문에 대해 쓸 수 있었다. 논문에 담긴 지식과 세상을 이해하려던 열정을 누군가는 알아줄 것이다.
편집에도 신경 써야 했다. 가독성이 좋도록 말이다. 제대로만 읽혔다면 이리 쉽게 탈락할 수 없었다. 누굴 탓하려는 건 아니다. 인사담당자 사정은 이해할 법했다. 수백 건을 검토해야 할 테니 내 입사지원서 한 장은 눈에 안 들어올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편집에 신경을 썼어야 했다. 내 이력 한 문장에 담긴 섬세한 은유와 통찰을 쉽게 알아보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어디선가 가독성을 높이려면 좌우 여백과 줄 간격을 맞춰야 한다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폰트도 너무 튀지 않으면서 눈길이 가는 폰트를 써야 했다.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할 일이 너무도 많았다. 곧장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걸음을 막 떼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내게 제발 정신 차리라고 태질을 해대던 대학시절 절친 윤치수였다.
내가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집어 들 때 치수는 스터디 모임을 만들고 케이스 인터뷰를 준비했다. 그는 아직 어리다는 핑계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진 않겠다고 말했다. 현실을 직시하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미래를 준비하기보단 현재를 우선 정복할 거라고 말이다. 그러던 치수는 몇 번의 실패 끝에 ‘어센트’라는 글로벌 컨설팅 업체에 입사해 과장 진급을 앞두고 있었다.
대학 때 수없이 티격태격 하긴 했지만 내가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게 치수였다. 그래서 며칠 전 치수에게 자소서와 이력서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이었다. 논문을 쓸 때도, 수십 번 공채에 탈락하면서도 결코 내놓지 않았던 나 자신을 누군가에게 보여준 건 말이다.
“미안, 연락이 늦었지? 요즘 프로젝트 때문에 정신없어서 말이야.”
“… 보내준 건 봤어?”
“어. 자소서는 어차피 안 보니까 상관없는데, 이력서는 다시 써야겠더라.”
“그래? 자소서도 중요하다 그러던데, 아닌가?”
“대기업은 그럴 텐데 우리 회사는 이력서 위주로 봐. 그런 건 미리 좀 알아 놨어야지.”
그런 건 미리 좀 알려주지... 게다가 이 꼰대 같은 말투는 뭐지?
“그나저나 너 스펙이 너무 없어. 졸업하고 별거 안 한 건 아는데 뭐라도 만들어야 돼. 이 정도면 인터뷰도 힘들 거야.”
“…”
“요즘 스토리텔링이 대세라고 하잖아. 근데 스펙이 스토리야. 재료도 없이 뭔 요리를 하겠냐? 스펙 없으면 말짱 황이야. 오죽하면 신입사원 뽑을 때 제일 중요한 게 경력이라잖냐.”
스펙이… 스토리라고? 아차, 그렇구나. 스펙 없이는 스토리도 만들 수 없었다. 실험 데이터 없는 논문이나 캐릭터 없는 플롯처럼 말이다. 스토리가 스펙을 이기는 건 스토리가 스펙을 돋보이게 해 주기 때문이지 없는 스펙을 만들어 낼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공채로만 지원했다 그랬지? 이걸로 공채는 어림없어. 교수에 선배 인맥까지 총동원해 평가표 알아내고, 거기 맞춰 스펙 쌓고 스토리 만들어 지원하는 게 요즘 애들이야. 너 성격에 모집요강도 제대로 안 봤을 텐데 경쟁이 되겠냐?”
모집요강. 안 보긴 했다. 그래도 중요한 건 지원자인 ‘나’ 아닌가? 나만 온전히 표현됐다면 충분했다. 스펙이 없어 눈길은 덜 가겠지만 제대로 된 인사 담당자라면 내 자소서와 이력서에 담긴 내면의 스토리를 읽어낼 수 있어야 했다. 오디션에서 원석 찾아내듯 말이다. 기획사 연습생처럼 밑바닥부터 스펙 쌓고 정석대로 입사를 준비했던 치수와 내가 같을 순 없었다.
“일단 기본 스펙은 갖춰야 해. 삼성에 합격하는 애가 LG나 SK에도 합격하거든. 그러니까 다 그 나물에 그 밥이야. 기본은 갖춰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음. 내가 기본도 안 됐단 말인가? 기본이라면 나도 충분히 고려했고 이력서에 이미 반영했다. 내가 생각하던 ‘기본’은 나 자신이었다. 세상을 이해하겠다는 담대한 꿈을 꾸며 물리와 수학을 전공했던 나. 학계라는 틀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논문을 써보려 했던 나. 그런 거야 말로 ‘기본’ 아닌가?
교수한테 사정해 억지로 만들어낸 한 줄짜리 인턴 경력 따위가 기본이 될 순 없었다. 그딴 건 본질이 부재한 허울뿐인 문장에 불과했다. 생각의 차가 너무도 컸다. 역시나 치수에게 부탁하는 게 아니었다. 없는 스펙을 어떻게 만들어 내란 말인가? 이런 쓸데없는 비판이나 듣자고 부탁한 건 아니었다. ‘됐다, 관두자’ 란 말이 목울대까지 차올랐다.
“그러니까 내 말은, 스펙도 없는 놈이 왜 공채에 목을 매냔 말이야. 진작 나한테 얘기하지 그랬어. 너한텐 오히려 우리 회사 같은 데가 더 가능성 높아. 여긴 한국 기업하고 달라서 특채도 많이 진행하거든. 프로젝트 담당자 재량껏 특채로 채용 프로세스를 진행할 수 있다고. 한국대 선배도 많고 너처럼 괴짜도 수두룩하고 말이야.
마침 인력 딸리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얘기해뒀어. 스펙은 없어도 내 친구들 중에선 제일 머리 좋은 놈이라고 추천했으니까 조만간 인터뷰 일정 잡자고 연락 갈 거야. 잘해봐!”
관두자고 외치려던 나는 뜻밖의 인터뷰 얘기에 어쭙잖게 ‘고맙다’라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상황파악이 됐다. 뭐야? 인터뷰까지 바로 갈 수 있다고? 그것도 까다롭기로 소문난 글로벌 컨설팅 펌에?
더위가 단번에 가셨다. 매번 불가해의 블랙박스 앞에 선 기분이었다. 피땀으로 집필한 지원서는 구조도 작동 원리도 알 수 없는 몰강스런 기계에 빨려 흔적도 없이 파쇄됐다.
조바심에 마음 졸이며 수많은 날을 기다려도 돌아오는 건 어김없이 ‘안타깝지만’으로 시작하는 문자나 이메일이었다. 이유도 설명도 없었다. 그저 인연이 아니라는 말 뿐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한마디에 이런 진리가 숨겨져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결국 내게 필요했던 건 윤치수라는 ‘인연’ 하나뿐이었으니 말이다.
어센트 인사과에서 인터뷰 일정을 잡자며 전화가 온 건 정확히 일주일 뒤였다.
예전에 썼던 글을 소설 형식으로 다시 써봤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