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영업전략: 파이프라인 관리 (2)

by 성세윤

시큐테크 사는 보안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IT솔루션 업체다. 주로 기업고객을 상대했는데 최근 공공분야에도 적극 투자하며 성장을 도모했다. 하지만 급격한 확장으로 영업망에 문제가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시큐테크 사는 전반적인 영업 체계를 정비하고자 했다. 시큐테크 사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파이프라인(pipeline) 관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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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 프로세스는 기회접수, 정보수집, 제안 및 입찰, 계약체결 이렇게 4단계로 관리됐는데 1단계에서 3단계, 즉 입찰 진행단계에 있는 판매기회를 ‘파이프라인’이라 불렀다. 시큐테크 사의 문제는 시장을 확장하며 파이프라인 크기가 1년 전 대비 3배 이상 커졌지만 매출이 정체라는 점이었다. 파이프라인 관리를 위한 업무량은 많아진데 비해 성과가 없었던 것이다. 시큐테크 사 대표이사는 이 현상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것을 요청했다.


시큐테크 사의 파이프라인은 마케팅팀과 영업팀에서 관리했다. 마케팅팀은 인터넷, 컨퍼런스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입수되는 판매기회 정보를 수집해 시스템 상에 접수시키는 1단계 업무를 맡았다.


영업팀은 시스템 상에 접수된 판매기회를 인계받아 실제 계약을 진행시키는 2단계에서 4단계까지의 업무를 책임졌다. 마케팅팀과 영업팀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서로 협조하며 업무를 진행했는데, 최근 갈등이 불거졌다.


나는 우선 하선우 마케팅 팀장과 미팅을 잡았다. 하 팀장은 나와 만나자마자 차트를 하나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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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트 좀 보세요. 저희가 접수한 판매기회 건수를 보면 월평균 11% 증가했죠. 저희가 처리한 업무량이 연초 대비 3배 넘게 증가한 거예요. 그런데 체결계약 건수는 3% 밖에 증가하지 않았어요. 거의 변동이 없었다고 보면 되죠. 이걸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 팀장이 물었다. 그는 내가 미처 대답할 틈도 없이 바로 말을 이어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만큼 영업팀이 우리 작업량을 쫓아오지 못한 겁니다. 사실 공공분야로 확장하면서 처리할 업무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어요. 저희 팀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매일 야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뭐 합니까? 영업팀에서 실적을 못 내는데요. 게다가 더 가관인 게 뭔지 아십니까? 영업팀 업무량이 많아졌다면서 2단계 업무까지 저희 팀에서 하라고 떠넘기는 겁니다.”


“2단계 업무라면 정보수집 업무를 말씀하시는 거죠? 원래 영업팀에서 하던.”


“그렇죠. 정보수집 업무를 영업팀에서 하는데 엄연한 이유가 있습니다. 판매기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려면 아무래도 고객과 친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정기적으로 고객과 교류하는 영업팀에서 하는 편이 수월하죠. 그런데 그걸 업무량이 많다고 무턱대고 저희 팀에 넘기려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왜 영업팀 무능력 때문에 저희가 피해를 봐야 한단 말입니까?”


하 팀장에 따르면 파이프라인이 증가했음에도 매출이 늘지 않은 것은 다분히 영업팀 책임이었다. 마케팅 팀에서 파이프 라인 크기를 3배 이상 키워 놨지만 실적을 늘리기는커녕 원래 영업팀 업무였던 2단계 업무까지 전가하니 하 팀장으로서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루 뒤, 나는 김도관 영업 팀장과 미팅을 했다. 김 팀장도 나와 만나자마자 차트를 하나 보여줬다.

에잉? 마케팅 팀장이 보여준 것과 똑같은 차트였다. 하지만 해석은 정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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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보시죠. 마케팅 팀에서 접수한 판매기회는 연초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했어요. 저희가 검토해야 할 계약 건도 3배로 증가한 거죠. 그런데 체결된 계약 건수를 보면 거의 변동이 없습니다. 왜겠습니까?”


“글쎄요…”


난 하 팀장에게 들었던 얘기를 굳이 꺼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말꼬리를 흐렸다.


“그만큼 파이프라인 질이 낮아진 거예요. 이길 확률이 거의 없는 판매기회가 접수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판매기회도 허다해요. 파이프라인이 늘어난 만큼 저희가 관리해야 할 판매 기회도 많아졌는데, 그게 전부 헛수고가 돼버리는 겁니다. 일은 일대로 하면서도 실적개선이 안 되는 거죠. 마케팅 팀에서 제대로 판매기회를 접수했으면 이런 일이 발생했겠습니까?”


“마케팅 팀에서도 나름 파이프라인 품질을 관리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던데요. 최근에는 정보수집 업무도 분담하기로 했다고 하고요.”


나는 하 팀장의 말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건 저희 팀에서 요구한 겁니다. 마케팅팀에서 자기 업무를 제대로 안 하니까 저희 팀에서 요구한 거죠.”


“자기 업무라뇨? 정보수집은 원래 영업팀 업무 아닌가요?”


“저희가 요구한 건 저희 팀이 하는 정보수집 업무하고는 성격이 달라요. 얘기했다시피 마케팅 팀에서 무책임하게 판매기회를 접수하다 보니 저희 팀에서는 접수한 판매기회가 실제 판매기회인지 확인하는 작업을 하게 됐어요. 담당자는 배정돼 있는지, 구매 스케줄은 확정된 건지, 실제로 예산은 할당된 건지, 그런 기본적인 정보를 확인하는 거죠.


이건 사실상 판매기회 접수 때 확인해야 할 정보지 저희 팀에서 하는 정보수집 업무와는 다릅니다. 정보수집 업무는 실제 고객 요구사항이나 경쟁사, 평가요건처럼 사업수주와 직결된 정보를 수집하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저희가 요구한 건 1단계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라는 거지 저희 업무를 대신해달라고 한 건 아닙니다. 마케팅 팀의 무책임함 때문에 저희 업무가 가중되는 건 막아야 하잖습니까?”



마케팅 팀과 영업 팀 중 어느 팀의 주장이 맞는 말일까? 모순이긴 하지만 데이터는 두 사람의 주장이 모두 맞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마케팅 팀은 힘껏 판매기회를 늘렸음에도 영업 팀에서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영업 팀의 영업 역량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영업 팀은 접수된 판매기회를 실적화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판매기회 건수만 늘린 마케팅 팀의 무책임함을 비판했다.


나는 하 팀장과 김 팀장을 번갈아 빙의하며 모순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그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 봐도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는 결론 밖에 내릴 수 없었다.


잠깐, 왜 두 사람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면 안되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런 가설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나는 다시 데이터로 돌아가 판매기회 증가량과 입찰 건수, 수주율 등을 분석했다.


지난 일 년 간 월별 판매기회 건수는 500건 가까이 늘었지만 그중 절반 이상은 예전에 접수되던 판매기회 대비 정보가 부족했다. 예전 데이터에는 고객 질의에 응대한 콜센터 로그까지 첨부돼 있는 반면 최근 데이터에는 사업개요, 규모, 일정과 같이 판매기회 접수를 위해 필요한 최소 정보만 포함되어 있었다. 전체 판매기회 데이터를 정보의 풍성함으로 분류해 보면 데이터가 풍성할수록 계약 체결률은 2배 가까이 높았다.


공공분야를 확장하며 판매기회가 늘어나니 마케팅 팀에선 예전처럼 자세히 정보를 수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판매기회 별 정보 수준은 하향평준화 됐고 계약 체결도 그만큼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마케팅 팀이 무책임하게 판매기회를 접수하고 있다는 김 팀장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대목이었다.


나는 추가로 수주율의 변화도 분석해 보기로 했다. 공공분야 확장 전 시큐테크 영업 팀은 7% 수준의 프로젝트 수주율을 보였다. 확장 후 수주율은 3% 수준으로 떨어졌다. 공공분야가 새로운 사업 영역이란 점을 감안하면 공공분야 프로젝트 수주율 때문에 평균 수주율이 떨어지는 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실제 데이터를 보면 기업시장 수주율 또한 7%에서 4% 수준으로 떨어졌다. 물론 여기에는 마케팅 팀에서 수집하는 정보 수준이 하향평준화 됐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영업 팀은 기업시장과 공공분야 사이에서 어떻게 우선순위를 정해 수주율을 높일지 해법을 찾지 못한 것 같았다. 마케팅 팀의 경우엔 해법을 찾아 판매기회를 3배까지 늘렸지만 말이다. 따라서 영업 팀 역량이 부족하다는 하 팀장의 주장 역시 사실이었다.


가설대로 하 팀장과 김 팀장이 했던 얘기 모두 맞는 부분이 있었다. 이 사태의 근인을 어느 한 팀의 책임이라고 몰아갈 수는 없었다. 마케팅 팀이 무책임한 부분도 있었고, 영업 팀이 무능력한 부분도 있었다.


문득 이번 프로젝트는 내가 임정혁 부장이나 김한겸 부장과 진행했던 프로젝트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분석을 통해 해답을 도출하기보다는 각자 다른 의견을 조율하고 중재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모순을 타파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내 결론은 근인과 책임 소재를 찾기보다 상황을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해서 양 팀 간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에 집중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두어 번 전반적인 스토리라인과 논리를 곱씹어 봤다.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있었지만 그걸 보완하자고 시간을 쏟아 붓기엔 비효율적이었다. 이쯤에서 이주완 대표에게 피드백을 한 번 받아야 했다.


이주완 대표의 캘린더는 다음 주까지 빡빡히 스케줄이 있었지만 비서에게 앓는 소리를 내며 다음 날 점심시간에 미팅 일정을 욱여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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