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완 대표는 평소와 같은 말끔한 모습으로 책상에 앉아 있었다. 컴퓨터를 보다가 서류 더미를 들춰보기도 하며 분주히 눈과 손을 움직였다. 나는 문 앞에 서서 문을 한번 두드려야 하나 생각하며 손을 올렸다.
“아, 어서 와요.”
그제야 인기척을 느낀 이주완 대표는 책상 옆에 앉으라며 손짓했다.
“자, 이것도 받고요. 끝나고 바로 미팅이 있으니 워킹런치로 하죠. 클럽 샌드위치 괜찮죠?”
이 대표는 책상 위에 있던 갈색 봉투를 내쪽으로 밀었다. 나는 봉투를 받아 무릎 위에 올려 두고 이주완 대표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그는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며 내가 건넨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시선을 그에게서 뗄 수 없었다.
10분쯤 지났을 까? 그는 샌드위치와 보고서를 내려놓고 냅킨으로 가볍게 입가를 누른 후 나에게 눈길을 돌렸다.
“재미있는 상황이네요. 마케팅 팀과 영업 팀 사이에 이런 텐션이 있을 거라곤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말이죠. 마케팅 팀은 영업 팀이 무능력하다고 하고, 영업 팀은 마케팅 팀이 무책임하다고 하고 있네요.”
“네. 그렇습니다.”
“성 대리님 결론은 둘 다 옳다는 건가요?”
“네. 서로의 입장이 있는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각자 관점에서는 자신의 말이 옳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죠. 중요한 건 그걸 서로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느냐 인 것 같습니다.”
“흠. 그러니까 답은 상대적이란 얘긴가요? 각자 관점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이죠.”
“네. 맞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이 대표는 미소를 보이면서도 침을 놓듯 따끔히 물었다. 그리곤 내게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는 듯 손깍지를 끼며 의자 뒤로 몸을 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았다. 이렇게 단순히 풀릴 리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답 외 다른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 팀장과 김 팀장의 주장이 모두 참이라는 모순을 극복하려면 답이 상대적이고 그래서 각자의 입장이란 조건 하에서는 둘 다 맞는 답이 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파악된 바로는 그렇습니다.”
이주완 대표는 준비운동을 하듯 깍지 낀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이고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마케팅 입장을 먼저 생각해 보죠. 공공분야로 사업을 확장한 건 마케팅 팀이나 영업 팀에 공통된 상황이에요. 마케팅 팀은 그 상황 변화에 잘 적응해 판매기회를 연초 대비 3배 정도 늘렸죠? 마케팅 팀의 불만은 그럼에도 실적은 그만큼 증가하지 않았다는 거고요.”
“네.”
“마케팅 팀에서 영업 팀 역량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건 본인들에 비해 영업 팀이 상황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얘기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동의하시나요?”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판매기회는 왜 증가했을까요? 한 발짝 떨어져 본다면 시장 확장이 가장 큰 이유겠죠. 공공분야는 시큐테크에게 블루오션이니까 거기서 신규 기회가 많이 나왔을 것 같아요.”
“맞습니다.”
“그런데 공공분야 판매기회와 기업시장 판매기회가 같을까요? 그러니까 판매기회의 성격이나 판매기회에 따른 마케팅 팀과 영업 팀 업무 방식이 동일할까를 묻는 거예요. 만약 그렇다면 마케팅 팀 말대로 판매기회가 늘어난 건 그만큼 역량이 늘었다는 얘기가 될 테니까요.”
판매기회가 다를 거라곤 생각해보지 못했다. 시장 확장에 따라 판매기회가 많아진 건 업무 ‘양’의 문제지 업무의 성격이나 방식의 차이란 가설도 고려해보지 않았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먼저 기업시장에 대해 생각해 보죠. 기업시장에서 판매기회를 어떻게 발굴하죠?”
“홍보 활동을 통해 발굴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온라인 홍보는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보안 솔루션 박람회 같은 이벤트도 참석하고요. 그런 활동을 통해 문의가 접수되면 마케팅 팀에서 연락을 취해 잠재고객을 파악하고 이걸 영업 팀에 전달한다고 합니다.”
“그럼 공공분야에서는 판매기회를 어떻게 발굴할까요? 공공분야에서도 기업시장에서 하듯 홍보 활동을 하나요?”
“하긴 하겠지만 기업시장에서만큼 많이 하진 않습니다.”
“왜죠?”
“프로젝트 발주 프로세스가 다르니까요. 공공분야에선 공개입찰로 사업자를 선정하기 때문에 발주되는 모든 프로젝트를 공공사업지원 시스템에 등록하고 인가된 업체가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니까 인가만 받았다면 굳이 홍보활동을 하지 않아도 판매기회를 발굴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공공사업지원 시스템에 모든 프로젝트를 등록해야 한다면 시스템에서 시큐테크가 입찰할 만한 신규 사업기회가 있는지 검색하는 것 외에 별도로 마케팅 활동을 할 필요는 없겠네요.”
“그렇습니다.”
“그럼 기업시장과 공공분야에서 마케팅 팀의 업무는 상반된 성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기업시장에서는 마케팅 팀이 ‘능동적’으로 홍보를 해서 사업기회를 발굴해야 하는 반면 공공분야에선 ‘수동적’으로 공개입찰 상황을 모니터링하면 되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적으로 공공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판매기회가 3배로 늘었다고 해도, 그게 마케팅 팀 역량이 3배로 늘어 나타난 결과라곤 할 수 없겠네요. 마케팅 팀에게 가장 중요한 건 홍보 역량인데 공공분야에서는 홍보활동을 하지 않아도 판매기회를 발굴할 수 있으니까요.
극단적으로는 입찰 시스템 내 보안 카테고리로 분류된 프로젝트를 모두 판매기회로 등록해도 될 것 같아요. 바꿔 말하자면 공공분야에서 판매기회가 증가했다는 이유만으로 마케팅 팀의 역량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고 판단할 수 없다는 거죠.
판매기회가 증가한 건 공공분야라는 시장 특성에 따라 자연스레 발생한 현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영업 팀에 비해 마케팅 팀이 상황변화에 잘 적응하고 있다거나 역량이 뛰어나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거죠. 따라서 영업 팀이 ‘상대적으로’ 무능력하다는 마케팅 팀의 주장 또한 근거가 없는 거고요.”
반박할 수 없었다. 판매기회가 3배 증가했다고 해서 마케팅 팀 역량 또한 3배 증가했다고 할 순 없었고, 실적이 3배 증가하지 않았다고 해서 마케팅 팀 역량 대비 영업 팀 역량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다시 기업시장에 대해 생각해 보죠. 기업시장에선 홍보가 필수라고 하셨는데요.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홍보활동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진 않겠죠? 온라인 캠페인은 보안 솔루션 관련된 검색을 하거나 관련 사이트를 방문할 때 노출될 테고, 박람회 같은 경우엔 당연히 보안 담당자들이 주 참여자들일테고요. 그리고 판매기회를 접수하는 건 연락처를 남기거나 직접 연락을 해온 사람들이니까 시큐테크 솔루션에 어느 정도 관심은 있다고 할 수 있을 테죠. 그런 의미에서 홍보를 통해 접수되는 판매기회는 이미 검증된 판매기회라고 할 수 있을 까요?”
“네. 그럴 것 같습니다. 마케팅 팀에 연락하는 건 대부분 잠재고객일 테니까요.”
“공공분야는 어떤가요? 공공분야에서 발굴되는 판매기회도 기업시장에서 만큼 검증이 된 판매기회라고 할 수 있을 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상황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기업시장에서 저희 솔루션을 홍보할 때는 솔루션 스펙이나 유스케이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잠재고객이 저희에게 연락할 때는 이미 저희 솔루션이 자신의 니즈를 충족시켜 줄 거란 1차 판단을 내렸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공공분야에선 솔루션 요구조건이 공개입찰로 공지됩니다. 저희 솔루션이 그 요구조건을 충족하는지는 영업 팀에서 판단할 수 있는 문제지 마케팅 팀에서 할 수 있는 업무는 아닙니다. 마케팅 팀에서는 솔루션 분야가 보안 솔루션인지만 보고 판매기회로 등록을 하게 되고 실제로 저희가 입찰할 수 있는 영업 팀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럼 영업 팀 입장에서는 공공분야에서 발굴된 판매기회가 기업시장 판매기회에 비해 검증이 더 필요한 건 사실이네요. 그래서 무책임하다는 표현을 쓴 것도 같고요.
하지만 이건 마케팅 팀의 노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판매기회의 성격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차이’입니다. 그걸 인정하고 대응책을 찾아야 하는 거지 문제를 유발했다며 손가락질을 할 사안은 아닌 거죠. 결론적으론 마케팅 팀이 무책임하다는 영업 팀의 주장 또한 ‘거짓’이 되는 것 같은데, 동의하시나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영업 팀이 무능력하다는 주장과 마케팅 팀이 무책임하다는 주장은 모두 거짓이 되는 거네요. 성 대리님은 관점에 따라 둘 다 옳다고 했지만, 각자 관점을 따라도 둘 다 틀렸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네요. 각자 관점에 따라 옳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인 건 가요? 그럼 우리 결론은 뭐죠?”
“…”
이주완 대표는 잔뜩 찡그린 내 얼굴을 보며 가벼운 미소를 한번 짓고는 말을 이었다.
“이런 상태를 ‘아포리아’라고 해요. 해결 방도를 찾을 수 없는 난관을 의미하죠. 난관에 부딪혔을 때 난관 자체를 결론으로 내려선 안 돼요. 컨설턴트가 판단을 내리지 않고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저렇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해선 안 됩니다. 그건 게으른 생각에 불과해요. 서로의 입장 차가 있으니 답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면 대리님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겁니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한 거냐며 수시로 확인하던 김정혁 부장의 목소리라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이주완 대표가 한 얘기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난 최선을 다했던 걸까? 타인의 얘기를 답이라고 단정해버리고 나 스스로 고민하길 멈춰버린 건 아닐까? 나도 모르게 숙여진 고개 위로 이주완 대표의 목소리가 머리를 쓰다듬듯 울렸다.
“모든 게 상대적이고 옳은 답이란 없다고 하셨죠? 그건 어떤 의미에선 맞는 말일지도 몰라요. 그렇더라도 그게 결론이 되어선 안돼요. ‘답’은 없고 오직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의견’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건, 이성을 부정하고 우리 컨설턴트의 존재를 부정하는 얘기죠. 컨설턴트의 역할은 입장을 정하고 답을 제시하는 겁니다. 그 답을 논리로 방어하세요. 상대보다 더 생각하고, 더 고민해서 방어할 로직을 만드세요.
모든 게 상대적이라면 그건 결국 어떤 주장이라도 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중요한 건 상대성을 극복해 자신의 주장을 만들고, 그 주장을 방어할 논리를 만드는 거죠. 그러니까 우선 해야 하는 건 자신의 관점과 주장을 만드는 거고, 그다음에 필요한 건 주장을 뒷받침하고 방어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드는 겁니다.
어떤 답을 찾았다고 그게 끝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돼요. 중요한 건 답을 탐구하려는 자세거든요. 답은 우리에게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죠. 답을 찾겠다는 의지를 발현시켜 탐구를 시작하게 하고 정진시키지만 탐구를 멈추게 하기도 해요. 그래서 항상 답이 있다고 믿고 답을 탐구하면서도 답을 부정해야 한 답니다. 하나의 이중사고죠. 중요한 건 답이 아니에요. 답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이고 그 한걸음 한걸음마다 찾게 되는 깨달음이죠.
발걸음을 멈춰 서면 상대성을 극복할 수 없어요. 어느 순간 상대방은 반대 논리를 준비해 세윤 씨가 쌓아 올린 논리를 단번에 무너뜨려 버릴 거예요. 그러니 멈춰 선 안 돼요. 시력 검사를 할 때 렌즈를 갈아 끼듯 관점을 바꿔가며 현기증이 나도록 뇌를 괴롭히고 또 괴롭히세요. 그래서 상대를 압도할 주장과 논리가 완성될 때, 그리고 그 주장과 논리로 상대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을 때, 그게 답이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