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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세윤 Jul 29. 2023

49. 에필로그

사무실을 나온 난 현대통신 사무실이 있는 뉴저지를 향해 택시를 탔다. 바둑판처럼 짜인 도로를 빡빡 히 채운 차들이 여기저기서 경적을 울려댔고 그 사이를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정장차림에 손목시계를 연신 들여다보며 바삐 걷는 사람도 있고, 청바지에 패딩 하나를 걸치고 느긋하게 움직이는 관광객도 있었다. 모두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맨해튼 5번가를 가득 메우고 자신의 길을 찾아 쉼 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문득 그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윤치수, 정주성 전무, 이주완 대표, 임정혁 이사, 김한겸 부장, 한호진 차장, 최연우 회장, 그리고 잭의 모습도 보였다. 모두들 자신의 활로를 찾아 목숨을 걸고 전진하고 있었다.


치수는 어센트에서 쌓아왔던 공적으로 단번에 날리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회사를 떠났다. 정 전무는 사활을 걸고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전략 프로젝트를 도맡았다. 최연우 회장 또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국 시장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가장 큰 도박을 하는 건 잭이었다. 잭이 라이트 사에 투자하게 될 돈은 그의 자산의 3배에 달했다. 라이트 사가 실패하면 잭은 그대로 파산이었다. 이미 이룰 만큼 이루고 가질 만큼 가진 그가 모든 걸고 다시 도전하는 것이었다. 


모두들 굳건히 떠받혀주는 대지 위에 아무런 노력 없이 서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살얼판 위 낭떠러지 외길을 걷고 있었다. 한 발짝 잘못 디디면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질 판이지만 두려움을 극복하며 힘든 한 걸음을 옮겼다. 살아남기 위해 이를 윽물며 두려움을 떨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오를수록 좁아지는 길목을 따라 서로와 부딪히고 충돌하면서도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그리도 악착같은 곳이었다.


반면 난 여전히 내 세상에 갇혀 있었다. 지금껏 정말 멀고도 험한 길을 왔더라도 앞으로 더 치고 나가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춰버렸다. 그건 일종의 관성이었다. 내가 익숙한 환경에서 내가 잘하던 싸움을 하며 내 만족에 빠져 있었던 거다. 그래서 바람이 소용돌이치는 깊은 낭떠러지를 마주쳤을 때 발 밑 가득 펼쳐진 어둠의 심연과 거센 맞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그렇다. 난 선택의 기로에 선 것이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가 온다. 커리어는 그 선택으로 인해 도약을 하기도 하고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행동하는 것이다. 제자리에 서 있기만 해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극복해야 할 궁극의 빌런, 내가 넘어서야 할 최종 보스는 바로 내일을 가로막은 어제의 나였다. 그를 쓰러뜨리고 전진해야 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미래의 나를 위해 전진해야 했다. 나를 끌어당기고 옭아매려는 이 대지를 안식처나 도피처가 아닌 발판으로 삼아 끝없이 도약해야 했다. 허물을 벗고 알을 깨고 또 깨어 다시 태어나는 한 마리 불새 같은 존재가 돼야 했다.


두려움은 사그라들었고 허벅지엔 힘이 들어갔다. 어느덧 내 발걸음은 투자심의회 회의장 문 앞까지 갔다. 이제 알 것 같았다. 나는 성난 사자가 되어 나의 길을 가야 했다. 내 커리어는 내가 만들어야 했다.


‘당신의 커리어 목표는 무엇입니까?’


이제야 내가 왜 MBA를 가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그건 바로 이 순간을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 행동하고 변화하기 위해서였다. 나만의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나라는 존재는 내 행동의 결과일 뿐이었다. 질량이 에너지 함량의 척도이듯 내 존재는 내 의지와 열정의 척도였다. 굳건한 의지와 불타는 열정으로 행동하는 자 만이 세상을 이해하고 변화시킬 수 있었다.


나는 회의실 양문 문고리 위로 가벼이 손을 올렸다. 그리곤 힘찬 발걸음으로 밀쳤다.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천지가 개벽하듯 회의장 문이 열렸고 그 사이로 흐드러진 빛 다발이 이제 막 변태를 마친 나비 떼처럼 퍼져 나왔다. 오늘의 심장이 내일을 향해 힘차게 요동치며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알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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