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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ISYEON Dec 13. 2024

소파에서 잠든 것이 고작이었다.


소파에서 잠든 것이 고작이었다. 어떤 옷을 입을지, 하나뿐인 딸의 안목을 빌리고자 하는 엄마에게 밤새 시달렸다. 여러 매장을 전전하면서 고민하다가 결국 더 이상 미룰 수 없던 때에 급하게 주문했던 빨래통이 시야에 들어온다. 체크무늬의 패턴이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고, 빨래통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빨래는 습하고 꿉꿉할 텐데 괜히 캔버스 소재의 빨래통을 썼다간 물때와 세균 번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거다. 친환경적으로 살고 싶긴 한데 빨래를 위한 바구니마저 주기적으로 닦고 소독하며 건조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캔버스 소재처럼 보이는, 실제로는 캔버스 소재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을 구매했다. 내부는 빳빳하게 코팅이 되어서 아마 재활용도 안 될 거다. 그래도 기분은 내고, 책임은 지지 않을 수 있다. 참 편리하지. 아무튼.. 저 친구도 서운하지 않을 거다. 이나가 매일 애지중지 닦아주지 않아도 제 몫을 해내는 삶에 만족할 거다. 그랬으면 좋겠다. 

이나는 어제 입었던 냄새나는 유니폼을 차마 저곳에 넣을 수 없어 현관 바닥에 고스란히 벗어뒀다. 벗어두면서도 흩트려 놓기 싫어서 나름 개어 놓기까지 했다. 입은 기색은 역력하고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을 증명하듯 여기저기 어떤 자국들이 있었다. 모르는 척, 이나가 눈을 더 꾹 감았다 뜬다. 

이건 이나의 방식으로 이나의 물건을 아끼는 거다. 

아무리 쓰레기통이라도, 아무리 빨래통이라도 그들이 싫어할 것 같은 건 최대한 멀리 둔다. 

싫은 걸 싫다고 말할 수 없는 그들이 안쓰럽지 않나. 

이나는 간신히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얇은 흰색 반팔 티셔츠와 검은 스판 바지 차림이다. 밤새 조금 추웠다. 소파에 담요라도 한 장 있었다면 좋았겠다. 담요를 둔다면 무슨 색으로 살까. 조금 부들부들한 재질이었으면 좋겠다. 왠지 부드러운 이불을 품고 있으면 기분이 좋으니까. 여름에는 더우려나. 속바지 끝자락이 간지러워 손 끝으로 살짝 긁었다. 두 번. 세 번 긁다 보니까 샤워가 하고 싶어졌다. 어제 씻지도 않고 잠들었었구나. 이나는 바구니에 담겨 있던 사과를 먹으려다가 말았다. 끝에 곰팡이가 피었다. 이 것도 아마 크루 라운지에 있던 것을 다음 날 아침으로 먹을까 하고 가져왔었던 거다. 물론 먹을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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