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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ISYEON Sep 14. 2024

이나는 문득,


이나는 문득 좋은 빗이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머리카락을 감고 빗다 보면 바닥에 늘어져 있는 머리카락들이 새삼 대단히 거치적거릴 때가 있다. 청소기를 며칠에 한 번씩이나 돌려주는데 머리는 왜 이렇게 많이 빠지는 건지. 스님들이 왜 머리를 밀고 열반에 이르시는지 다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손으로 만지작 거리면 스르르 흘러나오는 머리칼이 항상 기분 좋았다. 머리 위로 종여 매면 가끔 티브이에 나오는 연예인 남부럽지 않을 만큼 부드럽고 예쁘게 떨어져 내려오는 잔머리들이 제법 야시시하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누구 보여줄 것도 아닌데 머리를 예쁘게 묶는 데에 공을 들일 때도 있었고. 이렇게 공들이는 데도 잔뜩 빠져나오는 머리칼들은 야속하기만 하다. 나이를 먹었나 보다.라는 말이 입 안에 맴돈다. 이나는 출근할 때 머리를 사정없이 묶어서 깔끔하게 정리한다. 한 톨의 머리칼조차도 흠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작은 플라스틱 빗은 두피에는 좋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스프레이와 함께 사용하면 놓치는 머리칼 없이 잘 묶어주어 오랜 시간 동안 좋은 동료 사이로 지내왔다. 

이나의 비행 가방에선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남색 꼬리빗이었다. 하지만 이나는 트윈 룸을 배정받아 동료와 함께 취침할 때에도 대체로 푼 머리를 잘 보여주지 않았다. 이나는 괜히 항상 빳빳하게 다린 유니폼과 쪽진 머리를 하고 다녔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이나는 이 편이 마음이 편했다. 이나는 스스로가 미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이나를 보면서 동료들은 미련하다고 생각하기보단 경외의 눈치를 보였다. 

이나는 항상 해외여행을 꿈꿨다. 이나의 집은 인천과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지하철을 타고 있으면 종종 거대한 캐리어를 끌고 떠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저 사람들은 다들 어디를 가고 있을까? 하지만 이나는 막상 승무원이 되어서 두바이라는 머나먼 곳으로 향할 때에 트렁크에 담을 것이 없어 사뭇 놀랐다. 가끔 요가나 헬스장을 갈 때 입던, 이나의 체형에 딱 맞는 스포츠 브라. 이 브라는 앞쪽에 지퍼가 있고 잡아주는 힘이 좋아서 다른 브라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이나가 선택하게 되는 녀석이었다. 이나의 몇 안 되는 친한 친구 소연이 이나의 생일 선물로 몇 년 전에 사줬던 거다. 소연은 이나와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해 온 친구지만 이나와 자주 연락하진 않았다. 둘은 이 세상 어딘가에 서로가 잘 살고 있다는 것만 확인하면 된다는 듯 굴었다. 소연은 고등학교 때에 유학을 떠나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는 외국계 기업에 자리를 잡았다, 이나와 소연은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했지만 두 사람은 꽤 가까운 사이인 건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나는 친구가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함께 갔던 친구도 소연이다. 누구나 다 간다는 오사카에 가서 글리코상 앞에서 두 팔을 번쩍 들고 사진을 찍는 소연을 보면서 이나는 어제 다녀온 나라의 사슴들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관광객이 자신들을 얼마나 예뻐하고 귀여워하는지는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채로 먹는 것에 열중하던 사슴들. 그 사슴들의 눈 안에서 빛나던 원초적 갈망이 인상적이었다.



[이나 이야기]는 단편영화 "Me:JFK, You:ICN"의 주인공 이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daisyeon.com/mejfk-youi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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