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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ISYEON Oct 05. 2024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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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나는 오늘도 평범한 출근길에 올랐다. 

런던은 이나의 항공사가 가장 많이 오고 가는 곳이다. 주에 두 번 이상을 가게 되기도 하고, 영국은 영어를 이용하는 국가라 체류 기간 동안의 언어나 문화적인 부담도 없었다. 이제는 숙소같이 느껴지는 런던의 호텔에서 이나는 아침 운동도 깔끔하게 하고, 샤워를 끝마치고 기분 좋게 나왔다. 그런데 그날따라 빗이 잘 안 들었고, 빳빳하게 세탁되었다고 생각했던 유니폼은 밤 사이에 옷걸이에서 떨어져 바닥에 구깃하게 뭉쳐져 있을 뿐이다. 놀라서 얼른 집어 들었지만, 밤새 어떤 자세로 있었는지를 자랑하듯 중간에 이나를 반으로 가르듯 긴 접힌 자국이 있었다. 이나는 손목시계와 유니폼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결심한 듯 유니폼을 질끈 쥐고 돌아섰다. 하얀색 셔츠와 대비되는 진푸른 색의 유니폼은 구김이 크게 티 나지는 않았지만, 이나의 마음은 한껏 구겨졌다. 시드니로 가는 승객들은 꽤나 다양한 편이었다. 비즈니스 석에는 점잖은 승객들과 앳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탑승한 부모가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올라탄 항공기 좌석이 얼마인 지는 몰랐지만 저 너머의 이코노미 좌석보다 이곳이 편안하고 넓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모두가 친절하게 웃고 있는 이곳은 그들을 온 마음 다해 환영했다. 아이들은 모니터에 있는 게임과 비디오를 열심히 보다가 졸다가 했다. 기내식을 편식 없이 맛있게 먹었고, 아이들의 부모들은 어린아이를 위해 특별히 마련된 기내식의 서비스에 매우 만족해했다. 아이들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사랑과 친절을 받으며 무럭무럭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이 이 시드니비행의 기쁨이라고 이나는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커튼 너머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커튼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화장실이 있는 곳이었다. 이나는 승객들이 웅성웅성 몰려 있는 곳을 뚫고 들어가려고 애썼다. 잠시만 비켜 달라는 이나의 말에 사람들은 흘긋, 이나의 유니폼을 쳐다봤다. 이나는 주름진 유니폼을 쭉 펴면서 화장실로 들어섰다.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도 모르게 코를 잡게 됐다. 누군가가 화장실 바닥에 큰 볼 일을 본 것이다. 뒤처리도 쉽지 않게끔 꽤나 발산적이고 건강이 염려되는 결과물이었다. 그 근처에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자신의 어머니를 나무라는 젊은 여성과, 백발까진 아니더라도 꽤 머리가 하얗게 변한 나이 든 여성이 함께였다. 점차 많은 것들을 잊어간다는 그 병은 정말 간단한 것을 잊게 만드나 보다. 예를 들면 어느 곳에 무엇을 버려야 마땅한지 말이다. 이나는 승객들을 진정시키며 문을 닫았다. 바깥일은 누군가가 해결해 주리라 믿고. 휴지는 넉넉하게 있고, 냄새는 잘 모르겠지만. 좁은 화장실 안에 쪼그려 앉은 이나는 바닥을 조금씩 청소해 나갔다. 

문이 열렸다. 오전 브리핑에 있었던 사람이다. 이나는 잠깐 영문을 파악하려다가 하던 일을 마저 했다. 그가 눈앞의 광경을 보고 인상을 잔뜩 찌푸렸기 때문이다. 그는 고개를 돌려서 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같이 할까?” 공간이 너무 좁아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괜찮아. 얼른 할게.” 그는 이나를 흘긋 보고 문을 닫았다. 승객들을 정리하려는 모양이었다.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들으며 이나는 아까 보았던 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면서 청소를 마저 했다. 규정상 신어야 하는 살짝 굽이 있는 구두와, 규정과는 상관없지만 맨 살이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 매일 입는 스타킹 따위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이 작은 공간 안에서 크나큰 존재감을 드러내는 분변과 함께 있자니 옷에 냄새가 밸까 걱정이 됐다. 오늘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클리닝 서비스를 신청해야겠다. 

“마무리 청소는 내가 할게.” 숨을 쉬는 것도 고작인 것 같은 동료가 다시 와서 말했다. 그의 손에는 휴지 뭉치와, 쓰레기봉투가 있었다. 이나는 이미 가득 차 있던 쓰레기통을 비우고 그에게 건네면서 고민했다. 마무리 청소라는 건 어디부터일까? 냄새? 얼룩? 이나가 건네는 봉투를 받아 들며 동료가 덧붙인다. “그러니까, 혼자서 다 하지 말라는 소리야.” 멋쩍어하던 그를 보면서 이나는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내 이름은 카를로스야.라고 말하니까 기억이 났다. 카를로스는 푸에도리코에서 온 사람이었다.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해서 스페인에서 온 사람이 아닐까 추측했던 적이 있었다. 카를로스는 문을 끝까지 닫지 않고 조금 열어뒀다. 공기를 통하게 하기 위함인가 생각했지만 이나는 문을 당겨 더 굳게 닫았다. 바깥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새어나가는 이 섭취의 증거물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으리라.


[이나 이야기]는 단편영화 "Me:JFK, You:ICN"의 주인공 이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daisyeon.com/mejfk-youi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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