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가, 불운이 행운이 되는 순간

하늘위에서 떨어지는 새똥

by Color Curator

회색의 불운, 황금빛 암시

말라가는 출발부터 엉망이었다.

불친절한 승무원, 사라진 캐리어, 도착하지 않은 집주인.
설레임으로 물들었던 핑크빛 마음은 순식간에 칙칙한 회색으로 바뀌었다.

혼자 떠나는 첫 여행은 설레임과 두려움이 동시에 따라붙는다.
거기에 예상치 못한 일이 겹치면 그 감정은 몇 배로 증폭된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더 크게 다가왔다.

그래도 돈, 여권, 그리고 필수품은 다행히 당시 갖고 있었다.


작은 안도감이 회색 속에 반짝이는 황금빛 조각처럼 스며들었다.

그 순간 문득 스페인어 수업 시간에 배운 속담이 떠올랐다.

"No hay mal que por bien no venga."

(불운 속에서도 반드시 좋은 일이 함께 온다.)

스페인어 속담 속에는 그들의 긍정적인 기질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그 예상치 못한 사건은 사실, 말라가가 내게 건넨 첫 번째 황금빛 암시였다.



겹쳐진 시간의 색

투우장으로 사용되는 로마 원형극장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도시, 말라가. 스페인에서 가장 아랍같은 도시.

이곳은 무엇보다 빛과 바다의 색으로 기억된다.

스페인어를 전공했던 나에게는 유독 특별했다.
푸른 지중해와 강렬한 태양, 로마와 이슬람이 남긴 상반된 흔적, 그리고 안달루시아 항구 도시만의 반짝이는 매력이 겹겹이 드러나는 곳.

이야기는 기원전 770년, 페니키아인들이 ‘말라카’라는 이름으로 건설한 순간부터 시작된다.
로마 제국, 이슬람 왕조, 기독교 왕국까지—수많은 시대가 남긴 흔적은 오늘날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도 도시는 흩어지지 않고, 오히려 서로 다른 문명의 색을 품으며 한층 풍요롭게 성장했다. 로마 원형극장의 거친 돌, 그 옆 언덕에 자리한 무어인의 요새 알카사바, 그리고 그 위로 하얀 대리석이 반짝이는 웅장한 성당이 나란히 서 있다. 각기 다른 문명이 남긴 유산이 서로 다른 색을 발하며, 도시 전체가 거대한 문화의 팔레트처럼 다가온다.



돌계단과 햇살, 시간의 팔레트

알카사바 성벽과 말라가의 상징인 분수

공항에서 1시간 넘게 캐리어를 찾아 헤매던 나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숙소로 향했다.

어이없는 내 마음을 위로하듯, 하늘은 더 파랗게, 태양은 더 강렬하게 빛났다.
마치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면서도, 살짝 놀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택시기사도 동양인 여자아이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이것저것 물어봤다.
"¿Hablas Español?"
(스페인어 할 줄 알니?)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다. 대화할 수 있을 만큼.

기사 아저씨는 마치 관광가이드처럼 지나가는 길목의 명소를 가리키며 설명해주었다.
창밖으로 언덕 위 알카사바(Alcazaba)가 모습을 드러냈다.

석양은 요새 성벽 위에서 붉은빛과 황금빛을 교차시키며, 시간의 그림자를 비췄다.
그 아래 자리한 로마 극장은 또 다른 색을 덧입혔다.
회색 대리석 계단 위로는 오래된 환호가 메아리치고, 그 위에는 무어인의 돌담이 겹겹이 쌓여 있다.
서로 다른 색과 질감이 층층이 쌓여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 모습은, 말라가라는 도시의 문화를 압축한 듯했다.



피카소, 빛의 아들

이곳은 파블로 피카소다 태어난 곳.

1881년, 스페인 말라가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소박한 황토빛 건물 속에서 보냈다. 외관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생가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어린 시절의 스케치, 가족사진, 원색 드로잉, 그리고 선명한 선으로 그려진 첫 드로잉이 놓여 있었다. 천재의 시작이 반드시 비범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도보로 몇 분 거리에는 피카소 미술관이 있다. 16세기 궁전을 개조한 이 공간에는 2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내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은 큐비즘 작품 앞이었다.

파편처럼 해체된 시선, 중첩된 시선, 과감한 색채. 그것은 단순한 회화적 실험이 아니었다. 말라가의 강렬한 빛이 쪼갠 시선, 겹겹의 역사가 덧입힌 색이었다. 피카소에게 색은 단순한 영감이 아니라, 고향의 공기와 빛을 기록하는 언어였다. 그의 화려한 색채 감각은, 아마도 어린 시절 이 도시에서 느낀 빛과 색, 그리고 겹겹의 역사에서 온 것이리라.



도시의 일상 팔레트

말라가를 걷다 보면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빛이다.

햇살에 눈부신 흰 벽, 그 위를 수놓은 하늘빛 창문, 발코니마다 늘어진 제라늄의 붉은 꽃. 골목 안쪽은 그림자 속에 잠기지만, 오히려 그 대비가 더 선명한 리듬을 만든다. 어찌나 눈이 부신지 검정 썬글라스는 필수템이다. 어느 날 브라운 선글라스를 쓰고 나갔는데 계속 울게 되었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안달루시아 여성들의 패션은 또 다른 팔레트다. 작은 체구지만, 대담한 빨강·노랑·초록 프린트와 레이스, 볼륨감 넘치는 프릴이 마치 골목의 흰 벽 위에 그려진 강렬한 색채화 같다. 그들의 존재감은 도시가 가진 자유와 생동감을 몸으로 표현하는 듯하다.

말라가의 색은 스포츠에서도 이어진다. 축구팀의 대표 색상, 하늘색과 하얀색은 도시의 해양적 특성과 청명한 하늘을 담고 있다. ‘멸치들(Los Boquerones)’라는 별명처럼, 말라가는 지중해의 풍부한 해산물과도 맞닿아 있다. 하도시의 청정함과 활기를 상징하듯 하늘색과 흰색의 조합은 편안함과 친근함을 선사한다.



안달루시아의 빛과 색

안달루시아, 스페인 남부. 태양과 정열이 깃든 땅.

하늘은 믿기 어려울 만큼 짙푸르고, 대지는 태양빛으로 붉게 타오른다. 붉은색은 투우사의 망또처럼 용기와 열정을 상징한다. 플라멩코 여인의 드레스 속 붉은 프릴과 선명한 원색은 춤을 추며 바람 속으로 퍼진다. 작은 키에도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그녀들의 의상은 안달루시아의 삶이 고통과 아름다움, 강인함을 동시에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푸른빛도 빼놓을 수 없다. 깊고 고요한 지중해와 대서양은 청명한 파란색으로 도시와 사람들에게 평온을 준다. 황금빛 올리브 나무와 어우러진 푸른 바다는 생명력과 신선함의 상징. 붉은 대지와 푸른 바다의 대비는 안달루시아 문화의 극적이고 감각적인 조화를 보여준다.

언어조차 색을 닮았다. 끝 자음을 흘리는 안달루시아 스페인어는 생선을 뜻하는 ‘빼스카도(pescado)’가 ‘빼까도(pecao)’, 친구들은 ‘아미고스(amigos)’에서 ‘아미고(amigo)’로 변한다. 단어는 부드럽게 녹아내리고, 억양은 파도처럼 출렁인다.

안달루시아에서 걷다 보면 빛과 색, 언어와 패션, 대지와 바다가 어우러져 눈앞에 살아 있는 팔레트를 만들어낸다. 이곳의 색과 리듬은 단순한 시각적 경험이 아니라, 삶의 감각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방식이라는 것을.



론다, 협곡 위의 붉은 시간

론다의 누에보 다리

안달루시아, 말라가 주의 작은 도시 론다.
이곳은 스페인 투우의 발상지이자, 협곡 위에 세워진 드라마틱한 풍경으로 유명하다.

처음 론다 투우장(Plaza de Toros de Ronda)에 들어섰을 때, 나는 숨이 막히는 듯했다.
18세기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은 붉은 벽돌과 흰색 대리석이 어우러져, 햇살 아래서 금빛으로 반짝였다. 약 6,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원형 구조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세월이 쌓인 무대처럼 느껴졌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바람이 잔잔히 스며들고, 뜨거운 흙 냄새와 오래된 돌의 차가운 질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론다의 투우는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옛날, 목축업의 번영을 기원하며 숫소를 신에게 바치던 의식에서 시작된 이 전통은 18세기부터 스페인 대중문화로 자리 잡았다. 프란시스코 로메로 같은 명 투우사가 등장하며 국민들에게 감동과 위안을 선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쉽게 와닿지 않지만, 스페인 사람들에게 투우는 스포츠이자 깊은 전통, 남성성을 나타내는 정체성이며, 음악·의상·무대 예술이 어우러진 복합 문화 행사이기도 하다.

투우장의 붉은 흙과 흰 담장, 그 위에 쏟아지는 햇살은 마치 역사가 쌓인 시간의 색을 보여주는 듯했다.

투우장을 나와 골목을 걷다 보면, 론다 강이 만든 깊은 협곡이 모습을 드러낸다.
협곡 사이로 솟은 누에보 다리(Puente Nuevo)는 단순한 다리가 아니다. 붉은 벽돌과 회색 돌이 조화를 이루며, 협곡의 깊은 그림자와 맞닿아 도시 전체에 극적인 색 대비를 만들어낸다.
발 아래로 내려다보면, 아찔한 고도감 속에 세월이 흐른 흔적이 스며들고, 바람은 협곡 사이를 휘돌며 귀를 스치고, 머리칼과 옷자락을 살짝 흔든다.



바다의 풍미와 태양의 맛

스페인을 대표하는 음식, 파에야.

안달루시아식 파에야는 지중해와 대서양에서 잡힌 신선한 해산물을 아낌없이 넣어, 맛과 색 모두 한층 화려하다. 새우, 오징어, 홍합, 바지락, 문어가 한 팬에 어우러져,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가족과 이웃이 함께 모여 나누는 공동체적 식사 문화의 중심이기도 하다. 축제나 휴일이면 커다란 철제 팬에 대량으로 조리해 모두 함께 즐기고, 마을 사람 모두가 먹을 수 있을 만큼 넉넉히 준비하는 경우도 많다. 단순한 배 채움을 넘어, 음식 속에는 공동체의 결속과 문화적 연대감이 스며 있다.

저녁 무렵, 해변의 초링기토(Chiringuito)에서는 숯불 연기가 피어오른다. 초링기토는 우리나라 포장마차와 비슷하다. 모래 위 화덕에서 구워지는 멸치 꼬치와 에스파또(espeto) 정어리 꼬치는 소박하지만, 바다의 풍미를 온전히 담고 있었다. 처음 입에 넣었을 땐 그 맛을 완전히 알지 못했다. 소금이 튀는 소리, 연기에 섞여 퍼지는 고소한 향, 손끝에 묻는 기름—모든 감각이 동시에 깨어났다. 바닷바람과 함께 씹고 삼키는 순간, 말라가의 바다는 더 이상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맛과 향으로 몸속까지 스며드는 경험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말라가 와인. 달콤하면서도 묵직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지고, 삼킨 뒤에도 길게 남는 햇살의 여운이 있었다. 현지인들이 이 술을 “태양의 와인”이라 부르는 것은 결코 수사가 아니었다. 포도알 하나하나가 안달루시아의 빛을 가득 머금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운의 새똥

말라가에서 사귄 친구들과 시내를 즐기기 위해 꽃단장을 하고 나왔다.

여자 셋이서 수다를 즐기며 가다가 갑자기 친구와 자리를 바꾸게 되었다.

바로 그 때, 하늘에서 내 머리 위로 무언가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설마하는 마음에 머리를 만져보니 새똥이었다. 드라이까지 예쁘게했는데, 하필이면!! 급하게 휴지와 물티슈로 머리를 닦았지만, 찜찜함은 샤워 전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스페인에서는 새똥을 맞으면 로또를 사라고 한다. 그 이유는 실제로 새똥에 맞을 확률은 1/540~1/423만 사이로 매우 희박하기 때문이다. 시내에서 2시간 동안 걷는 동안 맞을 확률이 1.2% 정도라는 사실을 떠올리자, 더욱 황당하면서도 신기했다. 그 당시에 알았더라면!!

나중에 알게 되고, 이런 행운을 놓쳤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 순간부터 나는 이 여행이 예사롭지 않을 거라 예감했다.

처음의 캐리어 분실은 회색빛 불운이었지만, 말라가의 빛과 역사, 따뜻한 사람과 맛있는 음식은 결국 그것을 황금빛 행운으로 바꿔 주었다. 새똥 덕분일까, 말라가에서는 안달루시아 해안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도시를 떠올릴 때마다, 여전히 그 속담이 맴돈다.



감각으로 배우는 말라가

말라가의 문화는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몸으로 배우고, 다섯 가지 감각으로 온전히 느끼는 순간들이 기다린다.

플라멩코의 리듬 속에서 감각을 열고, 로마 극장에서 시간의 숨결을 마주하며,

시장에서는 도시의 맛을 그대로 삼킨다.


먼저, 플라멩코 스튜디오.

햇살 가득한 골목, 철제 문을 열고 들어서면 붉고 검정이 어우러진 프릴 스커트가 걸려 있고, 벽에는 화려한 부채들이 빛을 반사하고 있다. 전통 플라멩코 복장을 입는 순간, 내 몸은 안달루시아의 집시와 무어인, 그리고 여러 민족이 엮어낸 역사를 품게 된다. 기타 선율이 길게 흐르고, 불레리아와 솔레아의 리듬이 공기를 메우자, 발뒤꿈치로 바닥을 두드리며 손뼉과 구두 소리로 리듬을 만들었다. 몸치인 나에게 선생님은 말했다.
“리듬은 몸으로 익히는 거예요.”
강렬한 색과 소리에 감정을 실어내자, 춤은 어느새 나만의 이야기가 되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시간이 겹겹이 쌓인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알카사바 성채 아래 자리한 로마 극장은 기원전의 숨결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투박한 돌계단에 앉으면, 2천 년 전 관객들의 환호가 메아리처럼 되살아난다. 무어인의 요새와 기독교 성당이 나란히 서 있는 풍경 속에서, 말라가는 서로 다른 문명을 품어내며 이어져 온 도시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른 곳, 아타라자나스 시장(Mercado de Atarazanas).
아랍풍 아치가 장식된 입구를 지나자, 햇살에 반짝이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시장 전체를 화려하게 물들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싱싱한 해산물, 올리브, 아몬드, 향신료의 향이 공기를 채우고, 상인들의 목소리가 배경음악처럼 울려 퍼졌다. 말라가 미식 투어에서 현지 셰프가 내어준 작은 접시 위의 타파스—짭조름한 올리브, 바삭한 빵 위에 올린 앤초비, 그리고 한 잔의 와인—가 입안에서 어우러졌다. 그 순간, 음식은 도시의 삶과 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한 페이지처럼 다가왔다.


말라가에서 다채로운 경험은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한 태도와 감정의 표현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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