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이 하나되는 순간
어릴 적, 우리 가족은 세계 여러나라의 국기를 맞추는 놀이를 즐겨했다.
가장 헷갈렸던 두 국기는 바로 러시아와 네덜란드였다.
같은 빨강, 파랑, 하양을 쓰지만 순서가 달라서 어려웠다.
“흰색이 가장 위에 있는 국기가 러시아라고 생각하면 쉬워.”
아버지는 기억하기 쉽게 문화와 역사와 연결하며 이야기해주셨다.
러시아 국기는 위에서부터 하양, 파랑, 빨강 순서로 수평 배열되어 있다는 것과 각각의 색은 자유, 정직, 용기와 사랑을 상징한다는 것. 러시아 제국의 위상과 서구 문명에 대한 표트르 대제의 열망까지 담겨 있다고 하셨다. 권력과 국민의 삶, 역사적 지역과 민족적 정체성까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셈이다.
반면, 네덜란드 국기는 빨강, 하양, 파랑 순서로 수평 배열되어 있고, 각각 용기, 신앙, 충성을 상징한다. 16세기 후반, 네덜란드 독립 전쟁을 이끈 오라녜 공 빌럼 1세(Orange-Nassau)가 이 색 조합의 삼색기를 사용하며, 이후 이 국기는 독립 전쟁과 왕가의 역사를 담아 국민 정체성과 혁명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이처럼 비슷한 색을 쓰지만, 순서와 상징하는 바에서 두 나라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 정체성 차이가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단순한 배열 속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와 의미가 숨 쉬고 있었다.
‘북유럽의 베니스.’
드디어 생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어린 시절 국기를 맞추며 느꼈던 러시아와 네덜란드의 혼동은 단번에 사라졌다. 네바 강 위 다리와 궁전들은 은빛 햇살을 머금은 듯 황금빛과 맞닿은 장엄함, 파스텔 톤으로 물든 건물들의 고요한 품격. 러시아 국기의 색채가 도시 전체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러시아의 색은 수직으로 쌓여 웅장함과 깊이를 품고 있었다.
여행의 시작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그 당시, 러시아는 비자를 받아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비자 서류를 챙기고 긴 줄을 서며 불편함을 느꼈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 모든 것을 단숨에 잊게 만들었다. 운하와 다리가 얽힌 도시 풍경, 고풍스러운 궁전과 교회, 섬세하게 조각된 외벽 장식과 반짝이는 돔들. 강물 위로 반사되는 햇빛, 건물 사이로 스며드는 은은한 푸른빛, 곳곳에서 반짝이는 황금빛 장식과 잎사귀의 녹색. 모든 요소가 서로 어우러져 한 편의 살아 있는 회화를 이루고 있었다.
한 낮같이 밝은 백야, 설레는 마음으로 첫날을 보내며 잠을 청할 수 없었다.
1703년, 러시아 초대 황제 표트르 1세는 유럽의 강국을 꿈꾸며 새로운 도시를 세웠다. 원래 늪지대였던 이곳은 북방전쟁에서 스웨덴을 몰아낸 뒤, 전략적 요충지에 요새와 도시를 세운 자리였다. 표트르 대제는 사도 베드로의 이름을 따 ‘상트페테르부르크’라 이름 붙였고, 1712년에는 모스크바에서 천도해 러시아의 수도로 삼았다고 한다.
서구의 바로크와 르네상스 양식을 받아들인 계획 도시, 네바 강과 운하가 얽힌 모습은 베니스와 닮아 ‘북쪽의 베니스’라 불렸다. 18세기부터 예카테리나 2세 시대까지 귀족과 상인, 외국인들이 모여들며 국제적인 도시로 발전했지만, 이 아름다운 도시를 세우는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희생되며 ‘뼈 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쓸쓸한 별명도 남았다.
이후 생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격변의 역사 속 무대가 되었다. 데카브리스트의 난, 1905년 피의 일요일, 1917년 혁명 등 굵직한 사건들이 도시를 흔들었고, 20세기에는 페트로그라드와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을 거쳤다. 1991년, 다시 생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지금도, 이 도시는 역사의 아픔과 현재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품고 있어서 매력적이다. 모든 것에 빛과 그림자가 있듯이.
낮에는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렘브란트와 다 빈치의 명작과 마주했다. 벽색, 작품 속 빛과 그림자의 대비, 캔버스 속 깊이 있는 색채—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외부에서 보여지는 황금빛과 녹색의 조합과 달리 적갈색의 미묘한 조화는 도시의 역사와 인간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색과 빛이 만드는 분위기는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 내 마음을 움직이는 여행의 중심이 되었다. 부족한 시간이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그중에서도 앙리 마티스의 「춤 Ⅱ」는 내 기억 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았다. 지금도 컬러와 관련된 강연을 할 때마다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세계 미술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니.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1910년에 제작된 「춤 II」는 야수파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가로 약 4m, 세로 약 2.5m의 거대한 캔버스를 가득 채운 다섯 명의 무용수는 손을 맞잡고 시계 방향으로 빙글빙글 돈다. 특히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본 첫 번째 작품 「춤 I」과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색채, 동작, 완성도가 만들어내는 조합은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색과 형태를 통해 감정과 움직임을 달리 표현한 마티스의 의도를, 두 작품을 나란히 비교하며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춤 I」는 부드럽고 연한 톤이 지배적이다. 하늘의 파랑, 대지의 초록, 인물의 붉은 피부가 조화롭게 배치되어 차분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준다. 반면 「춤 II」는 색이 훨씬 선명하고 강렬하며, 대비가 뚜렷해 화면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준다. 붉은 인물들은 더 진하고 밝게 빛나고, 파랑과 초록 또한 깊고 화려해 시각적 충격과 역동성이 극대화된다.
구도에서도 차이가 두드러진다. 두 작품 모두 다섯 명의 무용수가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춤추지만, 「춤 II」에서는 몸짓이 더 과감하고 높게 들려 물리적 긴장감과 리듬감이 살아 있다. 반면 「춤 I」는 상대적으로 정적이고 선이 단정하지 않아, 초기 실험적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작품은 인간 본성 속 원초적 기쁨과 생동감을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살아 있는 장치다. 그 앞에서 나는 잠시 숨을 멈추고, 색과 형태가 주는 힘과 예술이 인간의 감정을 통째로 흔드는 능력을 실감했다.
에르미타주 미술관의 수많은 걸작 중에서도, 「춤 Ⅱ」는 단연 하이라이트였고, 내 발걸음을 끝까지 잡은 작품이다.
러시아 황실에서 즐겨 사용하던 색을 볼 수 있는 겨울 궁전.
디즈니 애니메이션 「아나스타샤」에서 봐서인지 반가웠다. 특히 ‘ 어느 12월에 (Once Upon a December)’ 장면에서는 화려한 무도회와 아나스타샤의 추억과 황실 무도회의 상징적 배경으로 자주 등장했던 궁전이다. 특히 이 노래가 나오는 장면에서 화려한 무도회와 가족들과의 즐거운 기억이 회상되며, 아나스타샤의 신비로운 과거와 상실이 극적으로 드러난다.
영화에서처럼 겨울 궁전은 색채와 질감이 살아 숨 쉬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연한 녹색 벽면은 낮은 채도로 차분하게 빛나, 햇살 아래서도 고요한 무게감을 전달했고, 순백의 기둥과 장식 조각은 상대적으로 높은 명도로 눈길을 사로잡아 건물의 웅장함과 질서를 강조했다. 지붕과 돔을 장식한 금빛은 채도가 높아 햇살과 만나 반짝이며 녹색과 흰색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금빛의 질감은 세월의 흔적이 남은 미세한 요철과 반짝임을 머금어, 단순한 장식이 아닌 살아 있는 시간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1,945개의 창문에서 스며드는 빛은 명암과 색조를 계속 변화시켰다. 낮에는 은은한 파스텔 톤의 녹색과 흰색이 강물 위에 비치고, 황혼이 다가오면 낮은 채도의 푸른 그림자가 건물 외벽을 타고 흐르며 궁전은 마치 하루의 시간과 함께 호흡하는 살아 있는 회화처럼 느껴졌다. 이 색과 질감의 조합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역사와 권력, 황제의 위엄과 인간의 감정을 동시에 담아낸다.
18세기 중반부터 1917년까지 로마노프 황제들의 공식 거처였던 이곳은, 녹색과 흰색을 중심으로 한 장엄한 외관과 우아한 곡선미, 정교하게 새겨진 조각 장식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1,500여 개의 방과 117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공간은 단순한 건축을 넘어 러시아 제국 황실의 부와 권력을 온전히 담아낸 상징이다. 화려한 외관 속에는 아픈 역사도 깃들어 있다. 러시아 황실에서 벌어진 일상과 정치, 그리고 제국의 굵직한 역사가 얽혀 있다. 근대 러시아사의 중요한 사건들이 이 궁전을 무대로 벌어졌고, 1837년 대형 화재로 소실된 후에도 단 2년 만에 원형 그대로 재건되며 제국의 끈질긴 생명력과 위엄을 보여주었다.
오늘날의 겨울 궁전은 과거 황실의 권력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방문하게 한다. 에르미타주 미술관의 중심 건물로서 세계 각지의 예술 작품을 품고, 과거와 현재, 권력과 예술이 교차하는 공간 속에서 시간의 깊이와 인간의 이야기를 직접 느끼게 한다.
이 곳은 살아 있는 시간과 색, 빛, 그리고 감정의 거대한 캔버스이다.
생페테르부르크는 영감의 도시다. 문학과 예술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인생을 이야기하는 작가들의 상상력과 인간 내면이 교차하는 작품이 많다.
톨스토이는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고 돕는 힘이며, 삶을 지탱하는 근본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힘. 이번 여행에서 나는 그 사랑의 의미를, 북쪽의 마법 속에서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강물이 은빛으로 반짝이는 순간, 도시는 단순한 공간을 넘어 인간의 감정과 역사, 문학의 기억을 담은 살아 있는 캔버스처럼 느껴졌다.
한편, 도스토옙스키는 생페테르부르크의 그림자와 인간 내면의 심연을 작품 속에 담았다. 『죄와 벌』 속 라스콜리니코프가 방황하던 음울한 골목을 따라 걷노라면, 소설 속 불안과 고독이 현실 속에서 되살아난다. 화려한 궁전과 백야의 황홀함 뒤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함께 존재했고, 그 균열과 긴장이야말로 도시가 가진 진짜 얼굴처럼 느껴졌다.
그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사랑과 그림자, 빛과 어둠, 환상과 현실. 이 모든 상반된 요소가 공존하며, 생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를 완전하게 만든다는 것을. 특히 톨스토이가 강조한 사랑의 힘—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힘—은 이 도시의 숨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깊은 진리였다.
궁전 앞에 서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우리는 시내를 벗어나 서쪽으로 약 20km쯤 달려서, 페테르고프(Peterhof)에 도착했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닮은 이곳은, 러시아 황실이 여름철 별장을 즐기며 자연과 예술을 함께 누리던 궁전이었다. 아나스타샤 공주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표트르 대제가 1710년부터 1714년 사이에 건설했지만, 지어졌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규모였다. 넓은 정원과 20여 개의 궁전, 7개의 공원, 140여 개의 분수가 연속적으로 펼쳐지고, 황금빛과 녹색, 대리석과 돌, 나무와 잔디가 만들어내는 색과 질감의 대비는 마치 살아 있는 회화를 보는 듯했다.
금으로 만든 조각상 분수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물줄기가 하늘로 솟구치며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이는 장면은, 시간마저 잠시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 분수들은 모터나 펌프 없이 지형 차이만으로 운영되는 자연 수압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며, 당시 러시아 최고의 공학 기술이 집약된 걸작이었다.
궁전과 분수 뒤로 이어진 숲과 연못은 햇살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질감을 선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었지만, 30년이 넘는 복원 끝에 오늘날의 화려함을 되찾았다. ‘러시아의 베르사유’라 불리는 이유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여름 궁전은 물과 빛, 색채와 질감이 조화를 이루는 살아 있는 예술 작품이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분수의 물방울은 햇빛을 받아 미세하게 반짝였고, 나무 잎과 잔디는 온도와 바람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녹색 톤을 보여주었다. 그 속에서 나는 표트르 대제의 자연 속 예술적 감각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러시아는 음식이 맛이 없다는 편견도 있지만, 직접 맛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점심은 소박한 비즈니스 메뉴였지만,
담백한 수프와 신선한 빵, 허브 향이 매번 새로운 감각을 선사했다.
특히 보르시는 진한 붉은빛으로 식욕을 자극했다.
달콤하면서도 흙내음이 느껴지는 비트, 부드럽게 익은 감자와 고기가 어우러져
한 숟가락마다 따뜻함이 온몸으로 퍼졌다.
러시아는 광대한 영토 덕분에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살아, 북유럽과 동유럽, 중앙아시아,
카프카스 지역 음식의 영향을 받은 다국적 요리가 풍부하다.
음식 한 접시에도 지역과 문화가 스며 있어, 한 숟가락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그중에서도 러시아 전통 만두, 펠메니(пельмени)가 가장 내 취향이었다.
얇은 밀가루 반죽 안에 다진 고기와 양파를 가득 채운 만두는 삶아낸 뒤
사워 크림이나 버터와 함께 먹으면 포근한 맛이 입안을 감쌌다.
다음에는 도시를 대표하는 ‘푸시킨 양배추 수프’나
‘아리나 라디오노바의 블린’처럼 특정 인물이나 문학에서 이름을 따온 메뉴에도 도전해보려 한다.
러시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달콤한 경험,
바로 ‘알룐까(Аленка)’ 초콜릿이다.
1966년, 혹독한 소련의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정부는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초콜릿을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알룐까는 포장지에 그려진 귀여운 아기 얼굴로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사실 러시아에서 먹은 제일 맛있는 음식이다.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함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그 달콤함만큼 러시아 사람들의 일상과 역사가 함께 스며드는 듯했다.
그리고 러시아라면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 보드카.
곡물과 감자를 원료로 빚어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을 자랑하는 보드카는
러시아인의 삶 속에서 우정과 축하를 전하는 매개가 되어왔다.
영하 30도에서 40도까지 떨어지는 혹독한 겨울,
보드카 한 모금이 몸과 마음 속으로 스며들며 따뜻함을 전한다.
식욕을 돋우고, 소화를 돕는 동시에, 차가운 날씨 속에서 마음까지 어루만져준다.
‘스톨리치나야(Stolichnaya)’, ‘러시안 스탠다드(Russian Standard)’,
‘스미르노프(Smirnoff)’ 같은 브랜드는 전 세계에 러시아 보드카의 명성을 알렸지만,
현지에서 한 잔을 나누는 경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함을 준다.
알룐까 한 조각과 보드카 한 모금.
“낮이 이렇게 길다면 좋겠다.”
나는 늘 하고 싶은 일보다, 시간이 더 많았으면 했다. 그래서인지 잠은 죽어서 자자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균형이 중요하다. 균형이 무너지면 사람들은 쉽게 지치고 흔들린다. 빛은 단순히 세상을 비추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감각과 감정, 나아가 삶의 리듬을 조율하는 거대한 배경이다. 눈에 들어오는 빛의 양과 색채는 우리의 호흡과 기분, 심지어 기억까지 흔들어 놓는다. 아침 햇살이 방 안을 가득 채우면 몸은 자연스레 깨어나고, 해질녘 주황빛이 스며들면 하루가 저물었음을 실감한다. 빛은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시계이자, 감정의 온도를 조절하는 무언의 언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맞이한 여름 백야(白夜)는 내게 빛의 이중성을 강렬히 체험하게 한 순간이었다. 해가 지지 않는 계절, 밤인데도 거리 위는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낮과 밤의 경계가 흐려진 도시는 몽환적이면서도 낯설었다. 그러나 그 신비로움 뒤에는 묵직한 그림자도 존재했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사람들이 많았고, 어떤 이들은 끝없는 밝음 속에서 우울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빛이 과하면 오히려 삶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실감했다.
여행할 때 비는 늘 불청객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오히려 뜻밖의 손님이었다. 시원하게 내리는 비는 단순한 상쾌함을 넘어, 잠을 깊게 잘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구름이 두껍게 드리워 햇빛을 차단하는 순간, 세상은 비로소 고요해지고 어둠이 찾아온다. 그 어둠 속에서야 숙면을 취하고 마음도 쉬어간다. 이 순간, 나는 빛과 어둠, 휴식과 활동—각자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다시금 깨달았다.
유럽같은 러시아.
백야의 빛 속에서 만난 생페테르부르크는
빛과 어둠, 시간과 사랑을 한껏 품은 도시로 내 기억 속에 남았다.
화려한 황실의 테이블을 물들였던 임페리얼 포슬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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