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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완 Jul 24. 2023

날보고 시어머니가 우신다

나의 두번째 엄마



시어머니는 날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하셨다. 결혼할 때 지참금을 많이 들고 오지도 못했고,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직업이 뛰어나거나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었는데 마냥 예뻐하셨다. 아들만 둘만 있는 집에 들어온 첫 며느리라 더 그러셨던 것 같다.

시어머니는 시집살이를 너무 험하게 해서 며느리에게는 절대 힘든 일을 시키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나는 시댁에 가면 귀한 손님으로 밥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머니가 차려준 음식들을 먹고 반찬을 받아 집에 왔다.

제사 때도 부담주고 싶지 않다며 연락하지 않으셨다. 나는 맏며느리임에도 맏며느리 역할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매번 시댁에 갈 때마다 즐겁고 설레었다. 가서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몇주 간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반찬을 받아올 수 있으니까. 철없는 딸처럼 가서 어머니와 수다 떨고 놀다 돌아왔다.

철없는 딸. 그런 딸로 살아보고 싶었다. 내가 사춘기 때부터 집안은 불화했고 부모님은 내가 스무살 때 이혼했다. 엄마는 이혼한 뒤 집을 나갔고 아빠와 살았다. 아빠는 가정적인 사람이 아니어서 내게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다.  



시집을 와서 내가 하는 말 한 마디,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웃음 지으셨다. 마치 아기가 웃고 옹알이하고 뒤집고 걷고 하면 그 자체만으로 부모가 기뻐하며 박수를 치듯이. 나는 시부모님의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실컷 아기로 지냈다.

그런 내가 결혼 7년 만에 임신을 했다. 그것도 쌍둥이를. 어머니는 누구보다 행복해하셨다. 매일 유튜브로 육아 관련 정보를 보시며 하루하루 손녀들 볼 생각에 설레어하셨다.

시부모님이 내게는 친부모님과 같아서, 어머니가 기뻐하시니 나도 기뻤다. 어머니가 내보이신 기쁨의 반대편에 눈물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임신성 당뇨 진단을 받은 뒤 인슐린 주사기와 혈당체크기를 들고 시댁에 갔다. 맛있는 걸 잘 먹지 못한다고 투정하면서. 그 후로는 시댁을 방문하지 못했다. 먹는 것과 움직이는 것이 점점 자유롭지 못해졌다.

30주차를 넘어서자 변비가 심해졌고, 항문질환까지 생겨서 일주일 동안 앉지도 걷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임신에 대한 회의감이 커졌다. 너무 아파서 전문병원에 갔는데도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연고는커녕 아무 처방도 받지 못했다.

아파도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나는 불에 덴 것처럼 놀랐고, 서러웠다. 쌍둥이여서 빈혈 수치가 높았고 철분제를 남들보다 세 배 먹고 있었다. 철분제 부작용으로 지독한 변비에 시달렸다. 여기에 임당 식단으로 식사량을 줄이면서 화장실에 가기 무서울 정도로 악화되었다.


앉지도 걷지도 못하는데 밥은 맛없는 음식을 먹어야 했고 허벅지는 인슐린 주사 자국으로 멍이 수두룩했다.

왜 쌍둥이를 가져서 이럴까. 또 그런 생각을 했다.

전화로 어머니에게 하소연을 했다. 철없는 딸처럼. 너무너무 힘들다고 서럽다고 했다. 어머니는 자기가 대신 아파줄 수 없어 안타깝다고 하셨다. 그때만 해도 어머니의 걱정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우셨다. 어머니를 뵈어온 칠년 동안 우시는 건 처음 보았다. 늘 여장부처럼 씩씩하고 긍정적인 어머니셨다. 어머니는 내가 아파서 드러누운 뒤로 길 가다가도 내 생각을 하고 수시로 내 생각을 하셨고, 그럴 때면 눈물이 난다고 하셨다.

“너는 내 며느리가 아니야. 너는 내 딸이야.”

어머니는 울음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셨다.


“어머니, 저는 괜찮아요. 괜찮아요.”


나는 당황해서 그 말밖에 하지 못했다. 시어머니가 임신한 나를 보며 나보다 더 아파하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단순히 사랑받는 며느리가 된 게 아니라 내게 엄마가 생긴 거였다.


임신을 하고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하고서야, 내게도 엄마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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