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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완 Aug 11. 2023

임산부 좌석엔 임산부가 앉을 수 없다

대중교통 타는 게 무서운 이유



“출근을 하는데 임산부석에 자리가 없었어. 너무 힘들어서 노약자석에 앉았는데 어느 할아버지가 막 뭐라고 하는 거야. 죄송해요 제가 임신 중이어서...그러면서 막 울었어.”

친한 선배가 임신 중에 겪은 일이다. 내가 임신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선배를 만났을 때 선배는 그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궁금한 것은, 어떻게 임산부들은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을 할 수 있을까. 그 고통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겪어보니 정말로 임신을 하면 대중교통 타는 게 힘들었다. 살면서 대중교통 이용하는 게 이렇게 힘든 적은 없었다.

보건소에 임산부 등록을 하면 임산부 배려석에 앉을 수 있는 임산부 배지를 준다. 임신 초기에 약속이 있어 임산부 배지를 가방에 달고 전철을 탔는데, 비어있는 임산부석이 없었다.

임산부석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앉아있었는데, 그들은 졸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지 못할 만큼 바빠 보였다.

임산부는 초기에 티가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임신 호르몬이 막 생길 시기여서 몸 상태가 불안정하다. 입덧으로 24시간 울렁거리고 잠은 계속 오고, 기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꼭 병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 상태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서서 출퇴근을 한다.

다행히 나는 집에 있는 사람이라서, 몇 번 대중교통을 겪어보고 웬만하면 먼 곳은 가지 않았다. 서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게 예전에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는데, 임신을 하고 나서는 나조차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에 부쳤다.



임신 30주가 넘어가니 배가 나오고 발까지 붓기 시작해서 한 정거장 거리를 걷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였고, 서서 버스를 타자니 잘못해서 버스 안에서 넘어지기라도 할까 불안했다.

‘그래도 위축되지 말자.’

집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길어져 우울감이 극에 달한 날,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사람이 없을 때 버스를 타는 것이었다. 폭염이 극성을 부리는 한낮에 버스를 탔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이 멀지 않았는데도 걸음이 느리다보니 시간이 임신 전보다 두 배는 넘게 걸렸다. 밖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도 늘어났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땐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한 정거장 거리 가는데 이렇게 힘이 들다니. 인형탈을 쓰고 한 여름에 걷는 것도 이런 느낌일까.

임신 전에는 만삭의 임산부를 보면 그리 힘들어보이지 않았다. 다만 배만 나온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겪어보니,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니다.

임산부들의 몸은 혈관이 확장돼 있고, 일반인보다 많은 혈액이 더 빨리, 많이 흐르고 있다. 심장도 그만큼 빨리 뛰어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찬다.

부운 발바닥은 땅에 닿을 때마다 아프고, 배 때문에 중심을 잡기가 힘들며, 몸을 앞으로 굽힐 수도 없다.

겪지 않으면 모른다. 임신과 출산과 육아는 겪은 사람만 알 수 있는 영역이다. 임신을 한 뒤로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협한 사고로 살아왔는지 반성하게 된다.

그렇게 눈이 넓어지고, 깊어지고, 겸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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