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하면 배만 나오는 줄 알았다. 주변에 임신한 친구들이나 길가다 보는 임신부들의 모습은 모두 배가 나와 뒤뚱거리고 있었으니까. 그들을 보며 한 생각은 ‘배가 나와 걷기 힘들겠다’는 것 정도였다.
임신한 친구들은 행복해보였다. 힘들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얼굴은 미소짓고 있었다.
친구들은 내게 정확히 임신을 하면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 얼마나 힘든지 얘기해주지 않았다. 어쩌면 말했을 수도 있는데 내가 건성으로 들었을지도 모른다. 임신, 그거 다들 하는 거라고 생각해왔으니까. 임신은 축복해줘야하고 축복받은 일이라고 믿어왔으니까.
임신을 하면 내 몸이 여자가 아니라, 아예 다른 존재로 변한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임신 초기 입덧은 무시무시했다. 임신 6주차쯤 되었을 때 갑자기 새벽에 속이 쓰려서 일어났다. 임신 전에도 역류성식도염이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속이 쓰리고 토할 것 같은 느낌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뜬 눈으로 시간을 보내고 산부인과에 갔다. 의사는 그게 입덧이라고 했다. 입덧약을 처방받았는데, 그것도 70%정도의 산모들에게만 효과가 있다고 했다. 내가 그 70% 안에 들기를 간절히 바라며 약을 먹고 잠들었다.
다행히 약을 먹으면 잠을 잘 수 있었다.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가뜩이나 잠을 못자고 입덧 때문에 무기력한데, 약을 먹으면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고 싶지 않았다. 무기력한 내 자신을 보니 너무 우울해졌다. 그래서 약을 먹지 않았다.
내 입덧이 먹덧이라는 걸 알게된 후 관리 요령이 생겼다. 3시간 마다 한번씩 뭘 먹을 것. 그런데 음식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 먹을 수 있는 건 김치전, 김치볶음밥, 토마토, 감자였다. 이 네 가지만 입덧이 끝날 때까지 먹었다. 먹는 것도 행복하지 않았다. 먹을 때만 울렁거림이 멈출 뿐, 먹고나면 다시 입덧이 시작됐다. 온종일 토할 것 같았다.
임신 초기 출혈도 있어서 거의 집에서 누워만 있었다. 그러다보니 저 네 가지 음식만 먹었는데도 5킬로그램이 쪘다. 입덧은 16주가 지나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평소에 하던 운동도 못하고, 억지로 음식을 먹는 그 기간 동안 나는 생각했다.
“임신은 팔다리가 달린 인큐베이터가 되는 일이구나.”
내 몸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아기를 위해 모든 것이 바뀌어갔다. 주수가 올라갈수록 흉하게 커진 가슴은 부푼 배 위에 얹혔고, 배꼽 위와 아래쪽으로 갈색 임신선이 생겼으며, 풍선같은 배 아래쪽엔 붉게 튼 살이 가득했다. 내가 몸의 주인이 아니었다. 나는 그냥 아기를 키우기 위한 인큐베이터였다.
두 번째 나를 찾아온 위기는 빈혈이었다. 아직 철분제를 먹을 시기가 아니었는데도 산부인과에서 빈혈 진단을 받았다. 쌍둥이라 피가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태아는 산모의 피를 통해 영양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산모의 혈액량이 늘어난다. 피를 많이 만들어내야 하니 철분도 그만큼 더 필요하다.
볼그레를 처방받아 먹기 시작했다. 하루 두 포씩 먹어서 다행히 빈혈 수치는 정상 마지노선 점수를 받았다.
손톱도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붉은 살 있는 부분이 찌글찌글해지더니 흰 부분이 늘어갔다. 검색해보니 조갑박리증이라고. 손톱과 살이 분리되는 증상이다. 이유는 다양한데 임신이나 빈혈 때문일 수 있다고도 했다.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임신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임신 때문에 특별한 치료는 하지 않고 손톱을 바짝 깎고 영양제를 발라주는 정도로 관리 중이다.
철분제도 열심히 챙겨먹고 있지만 손톱은 계속해서 변형이 오고 있다. 볼때마다 낫지 않으면 어쩌나 두렵고 불안하다. 그렇지만 아프거나 고통스럽지 않다.이건 별 거 아니다.. 임신 25주차, 임신성 당뇨가 확정되면서 겪은 일에 비하면.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