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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완 Jul 21. 2023

임당식단이 이렇게 배고픈 건가요


“다들 첨엔 거의 굶다시피 하고 와요.”

임신성 당뇨 식단 교육을 한 영양사가 내가 4일간 먹은 양을 보더니 말했다. 4일 동안 나는 정말 배가 고팠다. 밥을 세 숟갈만 먹는데도 혈당 수치는 기준치를 넘어섰다.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임신성 당뇨는 산모가 식단을 잘못해서가 아니에요. 태반 호르몬 때문이에요. 쌍둥이는 태반 호르몬이 두 배로 나오기 때문에 더 힘들어요. 굶지 말고 인슐린 주사를 맞으세요. 출산 후 태반이 떨어져나가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요.”

인슐린 주사를 맞으면 굶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한줄기 희망처럼 다가왔다. 주사는 무섭지만 맞고 싶었다. 밥을 제대로 먹을 수만 있다면!

이어진 의사 상담에서 내분비내과 교수님도 인슐린을 맞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바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냥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서 약을 받았다.

내가 처방받은 약은 인슐린 효과가 천천히 올라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레버미어(자기 전 맞는 것)와 인슐린 효과가 급격히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노보래피드(식전에 맞는 것)였다.

인슐린 주사약은 뚜껑이 달린 펜처럼 생겼다. 뚜껑을 열면 펜촉이 없는 밋밋한 펜대만 있는데, 거기에 일회용 주사바늘을 연결하면 주사기가 된다. 뒤에 달린 버튼을 돌려 용량을 맞춘 다음 배나 허벅지, 팔뚝에 있는 피하지방에 맞으면 된다.

처음엔 4단위부터 시작해 혈당수치를 봐가면서 1, 2단위씩 약을 올려맞았다. 인슐린 주사만 맞으면 되는 줄 알았다. 배불리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임당 식단은 쌍둥이를 가진 임산부가 먹기엔 적은 양이었다. 게다가 양념이 있는 반찬을 먹으면 수치가 더 높아져서 입에 대지도 못했다. 식전엔 샐러드 140그램을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쌀밥은 현미보리밥으로 바꿨고, 먹을 때마다 용량을 쟀다. 반찬도 마음껏 먹을 수 없었다. 하나하나 용량을 재어 가면서 식판에 담았다.

겨우 1인분 될까말까한 양을 그것도 다이어트 식단으로 먹는데도 인슐린 주사 용량은 계속해서 올라갔다.


용량이 올라갈 때마다 어쩐지 더 아프고 무서웠다. 주사바늘이 얇은데도, 허벅지는 멍들고 빨갛게 부풀었다.

식단을 지켰는데도 혈당 수치가 높은 날이면 더없이 우울했다. 주사를 맞지 않고 식단 관리만 하는 임신부들이 부러웠다.

나는 주사도 맞고 밥도 맛없게 먹는데 왜 이러지 싶었다. 늘 배가 고팠고, 엉망이 된 허벅지를 볼 때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나마 유튜브를 틀어놓고 식후 20분씩 운동을 하면 혈당이 내려갔다. 그래서 열심히 운동을 했는데, 산부인과 교수님이 쌍둥이 임산부는 운동을 많이 하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그마저도 그만뒀다. 그러니 혈당 관리가 더 되지 않았다.


쌍둥이 임산부라고 운동도 하지 말라니. 왜 하필 쌍둥이를 가져서 이런 고생을 하는 걸까. 서럽고 억울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냉장고 안에는 인슐린 주사약이 있고, 싱크대엔 식판이 있었다. 그리고 뱃속의 아이들은 계속 자라고 있었다.



내게 맞는 음식을 찾아야 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적정량만 먹어야 간신히 수치 안에 들었지만, 닭고기는 많이 먹어도 괜찮았다. 고추장과 올리고당은 안됐지만, 간장과 참치액젓으로 짜지않게 간을 하는 건 괜찮았다.


케첩도 저당 케첩은 괜찮았고, 마요네즈도 괜찮았다. 계란프라이도 혈당을 올렸는데, 두부를 으깨서 같이 부치면 괜찮았다.


간고등어는 혈당을 올렸지만 간이 되지 않은 가자미 반쪽은 혈당을 올리지 않았다. 우유를 많이 먹어도 혈당에 크게 영향이 없었다.

유일하게 맘 놓고 먹을 수 있는 일탈식은 치킨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니 고정식이 만들어졌다. 아침엔 오이계란샐러드에 통밀식빵 한 개, 언스위트 아몬드브리즈를 먹는다. 점심엔 으깬 두부를 넣은 계란오믈렛에 저당 케찹을 먹는다. 저녁엔 고기를 구워 먹는다. 외식이 하고 싶을 때면 후라이드 치킨을 먹는다.

과일은 한 입도 먹지 않는다. 아무리 조금 먹어도 먹지 않을 때와 수치 차이가 많이 난다.

많이 먹고 수치가 높으면 그러려니하는데 몇 입 먹고 수치가 높으면 절망감이 더 크다.

그럴 바엔 안 먹는 게 낫다.



간식이 당길 때면 저당 간식을 먹는다. 처음엔 롯데 제로 라인을 먹었는데 그것도 혈당에 영향을 주었다.

라라스윗 파인트 아이스크림을 사서 두달 가까이 그것만 먹고 있다. 그것도 네 스푼씩만.


비슷한 음식을 반복해서 먹을 뿐 아니라, 양도 평소 먹는 것에 못 미쳤다.


뱃속 아이들 때문에 더 배가 고팠고 먹고 싶은 게 많았다.


누가 임신하면 먹고 싶은 거 다 먹을 수 있다고 했나.


산부인과에 가는 길, 차창 너머로 음식점과 카페 간판을 보며 생각한다. 난 저것도 못 먹고, 저것도 못먹네...


임신했을 때 먹고 싶은 걸 못먹으면 평생 한이 맺힌다던데, 임당 산모는 일반적으로 먹는 음식도 먹지 못한다.


게다가 한번이라도 배불리 먹어보는 게 소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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