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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더 Jun 22. 2023

부끄럽거나 별일 아니거나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수학여행 적금을 붓게 했었다. 2학년 수학여행에 임박해서 경비를 한꺼번에 내려면 가계에 부담이 될 수 있으니, 여덟 개 반 거즌 400여 명의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월 1만 원씩의 정기 적금에 가입하게 한 거다. 나는 그때 그 1만 원의 금액을 집에 얘기하기가 죄송해서 말하지 않았고 적금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리고 생애 첫 제주도 여행이 될 수도 있었던 수학여행의 꿈을 마음속 저 깊숙이 접어 넣었다.


   2학년이 되어 수학여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수학여행 참가 신청서에 X표를 한 나를 담임 선생님이 교무실로 불렀다. 선생님들의 자리가 다닥다닥 붙었고 또 개방되어 있어서 그러셨는지 내게만 들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수학여행을 왜 안 가냐시길래 나름 당당하게 돈이 없어서 못 간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집에다 확인을 해 봐야 한다며 선생님이 수화기 쪽으로 손을 뻗으셨다. 순간 깜짝 놀란 나는 수화기를 집은 선생님의 손을 재빨리 붙들었다. "전화하면 아버지가 속상하시잖아요."


   담임 선생님은 내 처지를 학교 어머니회에 알렸고 어머니회장님은 이십오 년 전 그때 이십만 원이 훌쩍 넘었던 내 수학여행 경비를 후원해 주었다. 고2 때의 이 일이 나에게는 단 한 번도 단 한 치만큼도 가난 때문에 부끄러운 상황으로 기억되지 않았다. 교실에서 학급 친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수학여행을 못 가는 사람이 누군지 손을 들어보랬거나 교무실에서 옆으로 쭉 앉은 다른 선생님들도 다 들을 만큼 큰 소리로 내 집에 전화를 해봐야겠다고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조용하게 어머니회에 내 사정을 알렸고 수학여행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 또한 나에게 조용히 전해 주었다. 고2 때의 담임 선생님은 그러셨다.


   이십오 년이 훌쩍 지나 두 아이의 엄마로 지내오면서 고2 때의 담임 선생님을 아주 많이 생각했다. 선생님이 나를 대하신 방식과 태도에 대하여 말이다. 내가 다급하게 붙들자 선생님은 수화기를 놓았고 그저 알겠다고 했다. 더는 나에게 이것저것을 캐묻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돈이 없어서 수학여행을 못 가는 게 담임 선생님이 그저 알겠다며 덤덤하게 받아주실 만한 일이구나 했다. 선생님의 두 눈이 새빨개지더니 그 눈에서 큼지막한 눈물 방울이 또그르르 떨어지기라도 했다면, 나는 고개를 떨군 채 선생님 앞을 떠날 때까지 들지 못했을 것 같다. 돈이 없는 게, 그래서 수학여행을 못 가는 게 누군가의 눈물을 받을 일이 아닐뿐더러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느낌을 받자 내 마음은 참 홀가분했었다.


   미리미리 수학여행에 대한 기대를 접긴 했었지만 그래도 처음 타 볼 수 있었을 비행기를 못 탄다는 건 못내 아쉬웠다. 그런데, 선생님의 반응은 그래, 비행기를 못 타는 게 좀 아쉽다는 나의 느낌, 바로 딱 그 정도가 돈이 없어서 수학여행을 못 갈 때 느끼기에 적당한 정도라며 나를 지지해 주는 것 같았다. 뭐 별거 아니었잖아. 괜히 1학년 동안 수학여행이 다가오는 걸 반갑지 않게 생각했네.


   별일 아니라는 그 느낌을 받고 나서 며칠 후 담임 선생님은 나를 부르더니 이리이리 되어서 나도 함께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순간 나는 오열을 했냐고? "정말요? 감사합니다."라고 기쁘게 인사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흑흑흑 흐느끼면서 평생 잊지 않겠다고 할 수도 있었을 거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별일 아니라는 느낌을 받은 일이 해결된 것이었기에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을 뿐, 생명의 은인을 만난 것 같은 감격에 휩싸인 건 아니었다.


   담임 선생님과 어머니회장님 덕분에 수학여행을 참으로 뜻깊게 잘 다녀왔는데, 선생님이 또다시 나를 불렀다. 어머니회장님한테 감사 편지를 쓰면 선생님이 전해 주겠다고 했다. 시키는 대로 진심을 담아 한 자 한 자 껏 썼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교무실로 불려 갔다. 이번에는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선도 부장 선생님이 부른 거였다. 참 많은 학생들을 도와주었지만 편지를 보내온 학생은 처음이었다며 어머니회장님이 학교로 걸어온 전화를 선도 부장 선생님이 받았고, 나한테 이 일을 말해 준 선도 부장 선생님 역시 몇십 년을 교직에 있었지만 나 같은 학생은 처음이라고 했다.


   돈이 없어서 수학여행을 못 간다고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릴 때도, 후원을 받아 수학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도 주르륵 흐르지 않던 것이 선도 부장 선생님한테 냅다 인사를 하고 담임 선생님이 있는 교무실로 달려가는데 왈칵 쏟아졌다. 아, 수치스럽게 느끼지 않고 오히려 별일 아닌 일로 여길 수 있게 나를 대해 주시더니, 도리를 분명히 알고 감사함을 표현하는 귀한 자세까지 지니게 지도해 주신 담임 선생님이었다. 이러니 내가 후원받아서 다녀온 고2 때의 수학여행을 가난으로 인한 부끄러운 상황으로 기억할 리가 있겠나! 내가 상대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상대는 수치심을 느낄 수도, 격조를 지닐 수도 있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움츠러들 수도 있었던 열여덟 살 소녀는 교무실 문을 힘껏 열고 크게 웃었다. "선생님 덕분에 저 칭찬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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