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에 언니가 깨우면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욕실로 가서 씻고 교복으로 갈아입는다. 할머니가 싸둔 점심과 저녁, 두 개의 도시락을 들고 집을 나선다. 세 개 동뿐인 아파트 단지를 나서면 곧 버스 정류장이 나타난다.
6시 25분에 도착하는 시내버스를 탄다. 시내버스인데, 내가 사는 G군에서 학교가 있는 S시까지 운행한다. 한 시간쯤 걸려서 S시에 도착하면 버스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20분을 걷는다. 그러면 S여자고등학교의 내 학급에 도착한다. 곧장 아침 자율 학습이 시작된다.
아침 8시부터 시작된 고3 때의 학교 일과는 아침 자율 학습, 아침 보충 수업, 정규 수업, 오후 보충 수업, 야간 자율 학습을 끝으로 밤 10시에 마무리된다. 그런데, G군에 있는 우리 집으로 가는 막차가 9시 50분에 있고 그 막차는 아침에 20분 동안 걸은 길을 되걸어가야 탈 수 있으므로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기 30분 전에 미리 학교를 나선다. 우리 아파트 근처의 독서실에서 새벽 2시까지 있으면 일과에 마침표가 찍힌다.
고등학교 3학년 3월과 4월에 그렇게 학교를 다니다가 맞은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때였다. 중간고사 첫날 6시 25분 버스가 내 앞에 섰는데 나는 뒷걸음을 쳤다. 늘 같은 시각에 타던 학생이 여느 때처럼 얼른 오르지 않고 오히려 멀어지니 버스 기사님도 이상하다 싶었는지 버스는 곧바로 출발하지 않고 기다렸다.
나는 그저 걸었다. 동해 바다의 한 어촌인 우리 마을은 아직 어둠에 싸여 있었다. 걷다 보니 내가 다니던 교회 앞이었다. 진작 새벽 예배가 끝난 교회는 캄캄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고 의자에 앉았다. 나무 십자가의 불빛만 은은히 비쳤다. 목사님 부부가 거주하는 사택에서 인기척이 들려 얼른 의자 아래로 몸을 숨겼다. 혼자 있고 싶었다.
그 상태로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깼는데 시곗바늘이 8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교회 인근의 중학생들이 한창 등교할 시각이었다. 그 시각을 피하기 위해 조금 더 의자 아래에 엎드려 있었다. 9시가 넘어서 살금살금 교회에서 나왔다. 목사님, 사모님과 마주쳤다면 나를 위로해 주었겠지만 아무도 필요 없었다.
우리 아파트로 갔다. 옥상에 올랐다. 옥상은 혼자 있고 싶을 때 종종 찾던 곳이다. 가방 속에 있던 체육복 바지를 꺼내어 교복 치마 밑에 입고 옥상 난간에 걸터앉았다. 다리를 난간 밖으로 뺐다. 우리 동 바로 옆에 있던 어린이집의 아이들이 어린이집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두 팀으로 나뉘어 목표 지점을 돌아오는 달리기 경주를 하고 있었다. 서너 살들이었겠다. 어리숙한 발음으로 고래고래 자기 팀을 응원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공중으로 올라와 나에게 들렸다.
"은미야!"
깜짝 놀라서 뒤돌아보니 할머니였다. 내가 옥상에 자주 가는 걸 알던 할머니가 손녀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전화를 받고 혹시나 해서 와 본 거였다.
"깜짝이야! 놀라서 떨어질 뻔했잖아."
할머니랑 친구처럼 지내던 나는 친구한테 하듯 말했다. 방금 전까지 이대로 떨어져도 되겠다고 생각했으면서 떨어질 뻔했다고 성을 내다니. 내 참!
나를 끔찍이도 생각하던 할머니는 그 일로 내가 아빠한테 혼이 나고 학교에서 책잡힐까 봐 거짓말을 지어냈다. 나는 아빠와 언니, 담임 선생님께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말했다. 할머니보다 더 나를 끔찍이 아꼈던 내 언니는 할머니의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나를 걱정했다. 이때껏 작은 일 한 번 일으킨 적 없는 동생이 나쁜 생각을 할까 봐 불안해했다. 담임 선생님은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거짓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애정 어린 시선으로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가 나 때문에 걱정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엄마의 마음으로 늘 나를 가슴에 넣고 다니는 언니를 불안하게 한 게 미안했다. 그래서 다시는 언니가 조마조마하지 않게 끝까지 학교에 다녔다. 담임 선생님은 이후로 그 일을 거론하지 않았다. 선하게 생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평소처럼 얼굴에 만연한 따뜻한 미소로 나를 대했다. 그래서 그 일 후에 학교를 가고 교실에 들어가는 게 부끄럽거나 창피하지 않았다.
언니나 담임 선생님, 그리고 할머니와 아빠가 나에게 감정을 터트려서 다그치는 많은 말을 했다면 나는 옳은 쪽으로 생각을 추스를 수 없었을지 모른다. 추스를 겨를이 전혀 없었다면 안타까운 결과가 벌어졌을지도. 어떤 사람의 행동과 형편을 향해서 먼저 말을 쏟기보다 그저 애정 어린 관심 ㅡ 눈 맞춤이나 고개 끄덕임, 차분히 해주는 걱정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는 걸 나는 절대 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