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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더 Jun 14. 2023

해방을 바라다

ㅡ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나'인 딸은 몰랐던, 또는 잊고 있었던 아버지의 삶의 모습들을 하나 둘 만나게 된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찾은 여러 부류의 조문객들한테서 들어 알게 된 아버지는 딸이 정의하고 있던 아버지와 달랐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는 초등학생인 딸과 헤어져 옥살이를 하고 딸이 고등학생이 됐을 때에야 출소했다.

그 세월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겠나? 고등학생인 딸이 아버지한테는 여전히 초등학생의 딸로 남아 있었을 거고, 감옥에서 나온 뒤로 말 수가 적어진 아버지가 딸의 기억 속에는 목마를 태워주던 다정다감한 아버지였을텐데 말이다. 서로가 익히 알고 있는 모습이 있고 그래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정작 그것과 너무 다른 태도의 상대를 마주하게 되면 생각지 못한 낯섦에 뒷걸음질을 치거나 벽을 만들게 된다. 그것도 아니면 무관심한 듯 지내거나.


   그런데, 딸의 기억 속에는 목마를 태워주고 부러 쌀밥을 눌어붙게 해서 두껍고 큼직 막한 누룽지를 만들어주던 아버지에 대한 것은 쥐똥만큼도 남아있지 않았고, 그저 빨치산의 딸로 살아내야 했던 서러움과 억울함이 한가득이었다. 그런 딸이 조문객들을 통해 아버지의 생전의 행적을 들으면 들을수록 자신이 정의하고 있던 아버지 말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수용하고 포용해 준 따뜻하고 신념 있는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알면 알수록 아버지는 그런 분이었던 걸 딸은 깨닫는다. 두껍고 큼지막한 누룽지가 마침내 기억이 나면서.


   독서 모임에서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의견을 나누다가 퍼뜩 나 역시 내가 단단하게 정의 내린 아버지만을 내 아버지의 전부인 양 믿으며 산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술에 취해 밥상을 둘러엎던 아버지, 어머니한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포악하게 굴던 아버지, 수능 시험을 치르고 와서 긴장이 풀린 탓에 저녁밥도 먹지 않고 잠이 들었던 딸을 우악스럽게 깨워서는 시험을 그렇게 보고 잠이 오느냐며 으름장을 놨던 아버지. 아버지는 그런 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난감한 상황에 쳐했을 때 <아버지의 해방일지> 속의 딸처럼 그다지 감정의 동요 없이 무심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집 앞의 주차장에서 주차를 하다가 이웃의 차를 긁게 되었는데, 나는 베란다에서 그 상황을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쩔 줄 몰라하는 아버지를 그대로 두고 거실로 들어와 버렸다. 22 살의 성인이었던 내가 내 아버지를 그렇게 벽 너머에 내버려 두었다. 한 치의 죄송함도 느끼지 않고 살던 나에게, 아니 죄송함은 고사하고 이따금씩 가슴속 저 깊은 데서 울컥하고 올라오는 묵직한 것 때문에 아직도 아버지가 미울 때가 있는데, 이 책은 그런 나를 갑자기 확 밀어버렸다. 내가 모르는 아버지의 모습도 있지 않았을까? 내가 잊어버린 아버지가 있었던 건 아닐까?


   지금껏 잊고 지냈던, 문득 떠오른 좋은 기억의 아버지의 모습이 있다면 나눠달라는 독서 모임에서의 발제에 답을 해보려고 나는 한참을 애를 썼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 하나 떠오르지 않을 때, 어머니가 침이 마르게 하던 말이 기억났다.


"니네 아빠는 바닷일을 끝내고 아무리 피곤한 몸으로 돌아와도 니네 셋이서 아빠 배 위에서 구르든 뛰든 별짓을 다 해도 화를 안 냈어."


   어머니의 이 말로 발제에 답을 하려던 순간 나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술주정을 피해 이웃집에서 그 밤 동안 몸을 숨겼다가 이튿날이면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가 입이 마르게 해 주던 말을 어머니가 집을 나간 14살 이후로 더 이상 듣지 못했고 나는 어머니 말속의 그 아버지를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그런데, 독서 모임에서 입을 뗀 순간 어릴 적 어머니한테서 그 말을 들을 때도 느꼈을 게 분명한 뜨거운 무엇이 내가 미처 어쩌지 못하는 새에 터져 나왔다.


   아버지는 어떤 분일까? 44살의 딸이 이제껏 제단 해놨던 아버지를 가만히 한쪽으로 모셔놔 두고 내가 모르거나 잊고 있던 아버지를 만나 보려고 한다. 더 한시라도 억울함과 서러움을 내 속에서 박박 긁어내어 훌훌 털고 싶고,  가족들에게 있는 모습 그대로 온전히 수용되지 못했던 것 같은 아버지가 느꼈을 외로움도 풀어주고 싶다. 장례식장에서가 아니라, 아버지와 내가 살아있는 현재의 시간 안에서 둘 사이의 무거운 벽을 무너뜨리고 홀가분하게 사랑하고 싶다. 내 아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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