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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더 Aug 12. 2023

미안함? 고마움!

   가수 양희은 씨가 시골 마을에 들러 때가 되면 이집저집에서 밥과 찬을 얻어다가 끼니를 해결하는 내용의 티비 프로그램이 있었다. 한 번은 제작진이 양희은 씨한테 무어라고 물었는데 그때 답한 양희은 씨의 대답이 대충 이랬다. 뭐 미안할 게 무어냐고. 어르신들이 냉장고에 있던 김치랑 찬을 꺼내서 흔쾌히 주시니 그저 맛있게 먹으면 되지. 그리고 내가 다시 베풀면 되고. 그렇게 말하며 그저 감사해하면서 얻은 것들을 가슴에 폭 안고 가는 양희은 씨의 모습이 십여 년이 훌쩍 지나서도 나에게 선명하게 남아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느라 자취를 할 때였다. 방은 1인씩 따로 쓰고 주방 겸 거실과 욕실을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구조였다. 방이 모두 다섯 개였기에 다섯 명이 같이 지냈는데, 다들 대학원생이거나 직장인들이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구역이 있다 보니 당연히 서로 자주 마주쳤다. 2구 가스레인지에서 동시에 조리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1인 메뉴를 요리하다 보면, 식재료가 참 아쉬울 때가 많다. 약간의 애호박이 있었으면 싶고, 반 숟가락의 다진 마늘이 있었으면 싶다. 아, 한 줌의 대파도 아쉽다. 사자니 혼자서 먹기에는 양이 많아서 금세 못 먹고 쉬이 물러져서 결국 버릴 것 같고, 메뉴에 안 넣자니 맛이 부족해서 자꾸 생각나는 부재료들. 그때도 그랬다. 그런데, 마침 개수대에서 그런 부재료를 손질하고 있는 다른 방의 세입자를 보면 그거 몇 조각만 얻을 수 있을까요? 마늘 몇 알만 주실 수 있으세요? 대파 한 뿌리만 어떻게 좀 안 될까요? 이런 말들이 목구멍에 잔뜩 쌓이기만 했다. 매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말이다.


   내 방에는 이미 냉장고가 있었다. 그런데 근처에서 자취하던 선배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선배의 냉장고를 나에게 주었다. 이미 냉장고가 있었지만 선배의 것이 아담한 게 내 방 크기에 딱이다 싶어서 받았다. 그리고 내 내장고는 옆방의 대학원생한테 줬다. 그 대학원생이 얼마나 고마워하던지, 그 김에 남아도는 부재료가 있는지, 있으면 조금만 나눠줄 수 있는지 얘기를 꺼내봐도 좋았겠는데 끝끝내 그러지를 못했다.


   도와달라거나 빌려달라는 등 다른 이에게 부담을 줄 것 같은 말들을 입으로 뱉는 걸 나는 그렇게도 못했다.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 일들을 부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양희은 씨는 어렵지 않게 말하고 넙죽넙죽 받아가는 게 아닌가. 여느 때 같으면 넉살 좋은 성격인가 보다며 지나쳤을 텐데, 자기도 베풀고 살고 있고 앞으로도 나누고 빌려주면 되지 뭘 그렇게 미안해할 게 있느냐는 말에 나는 티비 속의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었다. 분명히 이미 누군가가 수도 없이 했음직한 말인데, 그날은 그 말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래? 안 그래? 빌렸으면 너도 빌려주고 도움을 받았으면 너도 도와주면 되지, 뭘 부담을 줄까 봐 지레 말도 못 하고 그래? 그때 남는 부재료를 빌리는 게 그리도 부담줄 일이었어? 너는 냉장고를 거저 잘도 줬으면서.


   애호박과 다진 마늘과 대파를 얻었으면, 계란이나 감자 몇 알과 퇴근할 때 자취방 앞에서 산 붕어빵 한 마리를 나누면 된다. 저녁밥을 먹은 후 두어 시간이 지나면 입이 딱 심심할 때인데 바로 그때 똑똑하는 노크 소리 뒤로 예상치 않게 디밀어진 붕어빵의 맛을 아실런가. 나는 미리서부터 빌려주고 도와주며 살고 있었는데, 왜 양희은 씨처럼은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결혼 전에 직장에 다닐 때, 이른 아침에 걷는 게 좋아서 직장에 걸어서 출근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대여섯 명 되었던 동료들의 음료수를 사들고 가서 동료들이 출근하기 전에 그네들의 책상 위에 세팅해 두곤 했다. 아이가 유아 기관에 다닐 때 하원 시각에 맞춰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했는데, 그때마다 내 손에는 하원 후에 놀이터에서 내 아이와 같이 놀 여러 아이들의 간식이 바리바리 들려 있었다. 찐 옥수수부터 아이스크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도 준비했었다. 그랬으면서 정작 나는 직장 동료나 친하게 지내는 맘들한테 무엇을 부탁하기는 고사하고 그네들이 나에게 나눠주는 무엇 하나조차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게 그렇게 여길 거였냐고?


   얼마 전 열 살 먹은 작은아이가 친구 ㅎ네 집에 또 다른 친구 ㅈ과 ㅈ의 엄마가 건너가서 그날 두 집이 같이 저녁밥을 먹기로 한 걸 듣고는 자기도 그 자리에 꽤나 가고 싶어 했다. ㅎ네 엄마한테 전화해서 가서 얻어먹어도 될지 물어보라고 작은아이한테 시켰더니,


   "안녕하세요, 저 OO인데요, 오늘 ㅈ네랑 치킨을 먹는다고 ㅎ이 그러던데, 저도 오늘 저녁에 가서 치킨을 얻어먹어도 될까요?"


   작은아이는 그날 ㅎ네 집에 가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고 신나게 놀다가 밤 9시가 훨씬 지나서 돌아왔다. 나도 ㅎ과 ㅈ에게 베풀 수 있는 걸 주면 된다. 오늘처럼 ㅎ네 엄마가 바빠서 내가 ㅎ을 바둑 학원에 데려다준 것처럼 말이다. 꼭 기브 앤 테이크 그런 거 말고, 내가 줄 도움이 분명히 있고 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 확신하련다! 그리고 나도 부탁하련다. 그럼, 점점 나는 줄 수 있는 것보다는 받은 것을 되새기게 될 것 같다. 한 번의 도움을 받으면 한 번만 되돕는 게 아니고 두세 번, 서너 번 되돕게 되는 게 참 희한하다고 중얼거리면서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희한한 인지상정의 수레바퀴 위를 나도 걷고 있을 것 같다. 미안해하기보다 고마워하면서.


ㆍ '양희은의 시골 밥상'을 검색해 보니 12년 전에 방송됐었는데, 몇 년 전부터 방송을 재개한 모양이다.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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